1화
"최산 대리, 이거 오늘 중으로 다시 해."
부장의 책상 위로 기획서 뭉치가 던져졌다.
나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젯밤 새벽 4시까지 매달려 완성한 기획서였다. 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단 몇 초 만에 반려당했다.
"부장님,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말씀해주시면···"
"아, 몰라. 그냥 마음에 안 들어. 다시 해."
박성훈 부장은 그렇게 말하곤 자리를 떠났다. 점심 약속이 있다며.
나는 흩어진 기획서를 주웠다. 이미 분노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내 인생이 이렇게 소모되고 있다는 자각이, 온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괜찮아요?"
옆자리의 동료직원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네, 괜찮아요."
거짓말이었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대한산업개발. 직원 수 300명 규모의 중견 건설사.
이곳에서 나는 6년째 일하고 있었다. 사실 일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했다. 그냥 시간을 팔고 있었다. 내 청춘과 건강을.
입사 첫해만 해도 달랐다. 건축을 전공한 나는 이 회사에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다고 믿었다. 좋은 건물을 짓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회사는 실력보다 줄을 중시했다. 박 부장의 대학 후배라는 이유로 승진한 놈이, 나보다 3년 늦게 입사했으면서도 이미 과장이 되어 있었다.
야근은 미덕이었고, 주말 출근은 충성도의 척도였다. 휴가를 쓰면 눈치를 줬고, 정시 퇴근하면 '일이 없나보다'는 소리를 들었다.
"최 대리, 커피 좀."
대표이사의 딸인 전략기획실의 윤지혜 과장이었다. 나보다 5살 어렸지만, 회사에선 갑이었다.
"네."
나는 일어나 커피를 타러 갔다.
급여명세서를 떠올렸다. 세전 3,800만 원. 세후 실수령액 3,100만 원.
서울에서 혼자 살기에 빠듯한 금액이었다. 월세 80만 원, 관리비 10만 원, 식비 50만 원, 교통비 15만 원, 통신비 7만 원, 보험료 20만 원···
저축? 많아야 50만 원이었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더 일해봤자 전세자금도 모으기 힘들었다. 결혼?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리님."
동료직원이 나지막이 불렀다.
"이번 주말에 우리 집들이 오는 거 잊지 마세요."
나와 동갑인 그는 3개월 전에 결혼했다. 30평대 아파트를 전세로 얻었는데, 부모님이 전세금의 절반을 보태주셨다고 했다.
부러웠다. 나는 비빌 언덕도 없었다.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으니까.
'이게 내 인생인가.'
서른두 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건축사 자격증도 땄다. 영어와 중국어 둘 다 능통했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었다.
오후.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부장이 아직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박 부장이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수고했어. 먼저 가볼게."
그가 떠나자, 직원들이 하나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도 가방을 들었다.
"최 대리."
윤지혜 과장이었다.
"네."
"내일 아침까지 이 보고서 검토해서 메일로 보내줘. 급한 거야."
"...지금이 몇 신지는 아시죠?"
"왜? 할 일 있어?"
"아뇨."
"그럼 되잖아. 내일 오전 회의 때 필요하니까 꼭 보내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곤 퇴근했다. 명품 가방을 들고.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보고서를 열었다. 50페이지. 최소 3시간은 걸릴 작업이었다. 그걸 보자마자 아득한 감정이 들었다. 눈앞에 벽이 솟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하아. 그만둬야겠다.'
그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생각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 몇년간 수없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하지만 매번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이직? 30대 초반에 이직하면 연봉이 깎였다. 지금보다 나은 회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창업? 자본금도 없었고, 실패하면 돌아갈 곳이 없었다.
휴식?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냥··· 그만두자.'
다음날 아침, 나는 인사팀에 사직서를 냈다.
"이유가 뭔가요?"
인사팀장이 물었다.
"개인 사정입니다."
"재고해보지 않겠어요? 지금 그만두면 퇴직금도 얼마 안 돼요."
"괜찮습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점심시간, 박 부장이 나를 불렀다.
"최 대리, 잠깐 나와봐."
회의실로 따라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박 부장이 입을 열었다.
"야, 최산.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사직서 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자식아. 왜 나한테 먼저 얘기 안 하고 인사팀에 바로 냈냐는 거야."
"보고 드려야 할 사안인지 몰랐습니다."
"뭐?"
박 부장의 얼굴이 붉어졌다.
"야, 너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야? 내가 그동안 너 얼마나 챙겨줬는데?"
챙겨줬다는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챙겨주셨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뭐?"
"6년 동안 새벽까지 야근시키고, 주말에도 불러내고, 제대로 된 피드백 한 번 없이 '마음에 안 든다'고 기획서 던지신 게 저를 챙겨주신 건가요?"
"이 새끼가 지금···"
"그리고 김상욱 승진시키실 때요. 그 친구 실력이 저보다 나아서 승진한 건가요? 아니면 부장님 대학 후배라서 승진한 건가요?"
박 부장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최산, 너 지금 회사 다닐 생각 없지?"
"없습니다. 그래서 사직서 낸 겁니다."
"좋아. 너 같은 놈은 어디 가도 성공 못 해. 회사 관두면 후회할 거야."
"별로 안 그럴 것 같은데요."
나는 담담히 대답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오후에는 윤지혜 과장이 나를 불렀다.
"최 대리, 어제 부탁한 보고서는?"
"못 했습니다."
"뭐라고?"
"인수인계 할 사람한테 넘기세요."
"야, 최산. 아직 퇴사 안 했잖아. 월급 받으면 일은 해야지."
"제 업무는 하고 있습니다. 인수인계 준비하는 게 제 업무고요. 과장님 개인 심부름은 제 업무가 아닙니다."
"지금 나한테 말대꾸하는 거야?"
"말대꾸가 아니라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저는 과장님 비서가 아니라 기획팀 대리입니다. 그간 커피 심부름, 택배 수령, 개인 업무까지 해드렸지만, 이제 그만하겠습니다."
윤 과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좋아. 너 이 바닥에서 다시는 일 못 할 줄 알아."
"이 바닥이 그렇게 좁은 줄 아십니까? 전 건축사 자격증도 있고 경력도 있습니다. 아버지 낙하산 믿고 취직한 당신과 달리 저에겐 선택권이 있고 갈 데 많습니다."
윤 과장은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참았던 말들을 신랄하게 쏟아냈다.
동료들이 몰래 엄지를 치켜세웠다.
인수인계 마지막 날.
대표가 나를 불렀다. 6년 만에 처음이었다.
"최 대리, 그동안 수고 많았네."
"네."
"박 부장이랑 무슨 일이 있었다던데?"
"별일 없었습니다."
"그래... 우리 회사가 완벽하진 않지만, 나름 좋은 직장 아닌가?"
나는 대표의 눈을 똑바로 봤다.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해봐."
"이 회사는 사람을 소모품으로 봅니다. 능력보다 연줄을 중시하고, 직원들의 삶보다 회사 체면을 우선시합니다. 그리고 대표님은 그걸 모르는 척하고 계시죠."
대표의 표정이 굳었다.
"6년 동안 수시로 새벽까지 일했습니다. 주말에도 나왔고, 휴가도 제대로 못 썼습니다. 그런데 제 연봉은 동종 업계 평균에도 못 미칩니다. 이게 좋은 직장입니까?"
"..."
"저 같은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겁니다. 대표님이 변하지 않는 한."
나는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나왔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고생하셨습니다."
형식적인 인사들이 오갔다.
하지만 몇몇 동료들은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형, 나도 그만두고 싶어요."
후배가 나직이 말했다.
"그럼 그만둬. 세상 넓어."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짐을 챙겨 회사를 나왔다.
가을바람이 차가웠다.
하지만 기분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후련하다.'
6년 동안 쌓였던 응어리가 다 풀린 것 같았다.
'이제 뭐 하지?'
일주일 뒤, 나는 인천공항에 있었다.
큰 배낭 하나와 캐리어를 끌고.
***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12시간을 날았다.
나는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우버를 탔다. 다운타운의 에어비앤비 숙소. 하루 60달러짜리 작은 원룸이었다.
짐을 풀고 창밖을 바라봤다.
LA의 밤.
낯선 도시,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하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여기선 아무도 날 모르니까.'
첫날 밤은 그렇게 잠들었다.
***
다음날 아침.
나는 느지막하게 넘어서야 눈을 떴다. 한국에서라면 이미 출근해서 1시간은 일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다.
누가 깨우지도 않았다.
그저 내 몸이 원하는 만큼 잤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지금이 몇시지?'
자동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회사에서 7년 동안 몸에 밴 습관.
하지만 곧 웃음이 나왔다.
'아, 나 이제 회사 안 다니지.'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11월의 LA는 한국과 달리 따뜻했다.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만으로도 충분했다.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블루보틀 간판이 붙은 카페였다.
"안녕하세요, 뭐 드릴까요?"
"카푸치노 하나요."
"여기서 드실 건가요, 가져가실 건가요?"
"여기서요."
5달러를 냈다.
커피를 받아 창가 자리에 앉았다.
거리를 바라봤다.
사람들이 걸어갔다.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 관광객들···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급할 것도 없었다. 가야 할 곳도 없었다. 해야 할 일도 없었다.
그냥, 이렇게 앉아있어도 됐다.
'이게 자유구나.'
카페에서 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도 못 할 사치였다. 평일 오전에 카페에 앉아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는 것.
점심은 멕시칸 음식을 먹었다.
부리또 하나에 10달러.
양이 어마어마했다. 한국 식당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진짜 크네···"
중얼거리며 먹었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다 먹었다.
오후에는 다운타운을 걸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걷고 싶은 대로 걸었다.
고층 빌딩들이 도열해 있었다.
나는 건축을 전공했다. 건물을 보는 눈이 있었다.
'저건 아르데코 양식이고··· 저건 포스트모던···'
하나하나 관찰하며 걸었다.
특히 눈길을 끈 건 US뱅크 타워 였다. 73층짜리 초고층 빌딩으로, 완공된 이후 LA에서 가장 높은 빌딩 명맥을 이어온 빌딩이었다. 17년에 올라온 윌셔 그랜드 센터에 그 타이틀을 내줬지만.
한참을 올려다봤다.
'언젠가 나도 이런 걸 설계해보고 싶었는데.'
쓸쓸한 웃음이 나왔다.
그 꿈은 회사에서 접었다. 중견 건설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아파트, 빌라, 가끔 소규모 상가 건물.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 뭐든 할 수 있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은 열려있었다.
저녁이 되어 숙소로 돌아왔다.
피곤했다. 많이 걸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회사생활을 하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침대에 누웠다.
휴대폰을 보지 않았다. 카톡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냥 천장을 바라보다가, 잠들었다.
창문 틈으로 LA의 밤바람이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내일이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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