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동생, 배우로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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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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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6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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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8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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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첫날은 예상보다 일찍 온다

DUMMY

아침 6시.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평소 같으면 이불 밖으로 나가기까지 세 번은 고민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눈이 말똥했다.


······불길한 예감일까, 아니면 기대감일까.


어쨌든 오늘은 그놈,

아니 우리 집 오타쿠의 공식 테스트 날이다.


커피포트가 끓는 동안 노트북을 켰다.

메일함에는 밤새 온 메시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플랫폼 회의 일정 공유’

‘테스트 일정 확인’

‘작가님 코멘트’


그리고 맨 위, 유독 눈에 들어오는 제목 하나.


[유서현 작가] 배우 톤에 맞춰 대본 수정 중입니다.


······잠깐만요, 작가님.

배우 확정도 안 됐는데 왜 수정이 들어가요?


메일을 열자, 문장이 눈에 박혔다.


“그 친구 연기 톤이 오히려 현실적이에요.

덕질을 하면서도 인간적인, 그 미묘한 어색함이 좋아요.

그 느낌으로 전체 대사를 정리 중이에요.”


아, 예감이 맞았다.

이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때 방문이 덜컥 열렸다.


도현이었다.


후드티에 트레이닝바지, 머리는 누운 자국 그대로.

딱 봐도 ‘오늘 별일 없다’는 사람.


“······너 뭐야, 테스트라는데 그 꼴로 나갈 거야?”


“왜? 깨끗한 옷이잖아.”


“깨끗한 거랑 준비된 건 다르거든.”


“오타쿠 연기라며.

그럼 평소처럼 입는 게 세계관 붕괴를 최소화하는 거야.”


······그 전에 내 멘탈이 붕괴하겠다.


나는 결국 비상 키트를 꺼냈다.


면도기, 왁스, 쿠션, 립밤, 섬유 탈취 스프레이.


“앉아. 최소한 문명인은 만들고 간다.”


“으윽!”


“닳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어.”


“마음이 닳아······.”


“그건 네 문제고.”


도현이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지만,

나는 쿠션으로 얼굴을 톡톡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 정도면 사람 맞지······?”


“아무리 생각해도 세계관 붕괴인데······.”


“그쯤은 붕괴해도 돼.”


분위기는 늘 이랬다.

내가 현실을 붙잡으면,

도현은 그 위에 판타지를 쌓는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나도 진지했다.


“됐어. 이 정도면 인간 인증 통과.”


얼굴까지 정리해준 게 8시 반.

나는 시계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스튜디오까지 버스로 40분 거리.

이제부터는 장난도, 여유도 없다.”


그런데 도현은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슬리퍼 신고, 삼국지 웹소설을 보며

태연하게 바나나우유를 빨고 있네?


나는 소파 등받이를 잡고 일으키기 직전까지 갔다.

정확히 말하면, 잡아끌 뻔했다.


“나갈 준비 안 해?”


“했는데?”


“뭐가?”


“마음의 준비.”


······아아, 역시 오늘도 불길한 예감이 맞을 것 같다.


다이브픽처스 지하 1층 스튜디오.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확 달라졌다.


습기랑 먼지 냄새 사이로 조명 열이 섞여,

특유의 ‘촬영장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벽에는 흰 천,

천장에는 톱라이트 하나.


카메라는 FX6 두 대.


사운드는 부스 안에서 붐 오퍼가 포지션 잡는 중이고,

안전용 라발 마이크까지 이미 세팅돼 있었다.


좁지만, 장비만큼은 전부 프로급.


그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케이블 풀고, 라이트 각도 조정하고, 모니터 연결하고.


그때 청년 하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PD님 왔어요!”


헤드셋 너머로 삐죽 나온 머리카락,

팔에 감긴 테이프 자국.


현장 막내, 조연출 김민수였다.


“누나, 지금 테스트 컷 세팅 중이에요.”


상황을 보고하던 그가,

뒤따라 들어온 도현을 보는 순간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 그쪽이? 이야, 잘생겼네! 근데 생각보다 젊네요?”


“아마 민수 너랑 동갑일걸?”


그 말을 하자마자 민수가 씨익 웃었다.

그 특유의 ‘아하, 이제 눈치 챘다’ 표정으로.


“오? 그럼 반갑다, 친구야.”


민수가 손을 내밀었다.


“난 조연출 맡고 있는 김민수.”


도현도 잠깐 어리둥절하더니 손을 맞잡았다.


“한도현입니다.”


“동갑인데 존대는 무슨, 그냥 편하게 하자.”


당황한 도현이 슬쩍 나를 봤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도움받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래.”


“좋아, 친구!”


그게 뭐가 그렇게 좋은지,

민수가 잡은 손을 마구 흔들었다.


······만난 지 사흘 만에 나한테도 누나라고 부르더니,

이젠 친구까지 만든다.


저 친화력은 진짜 재능이다.


“민수야! 사적인 얘긴 촬영 끝나고 하고! 지금은 세팅부터!”


조명 뒤쪽에서 날선 목소리가 날아왔다.


민수가 “넵!” 하고는 다시 카메라 쪽으로 뛰어갔다.


“톱라이트 과해! 하이라이트 10프로만 내려!”


“네, 감독님!”


민수의 대답이 스튜디오를 울렸다.


저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촬영감독 오민지.


나보다 한 살 아래지만,

단 한 컷의 그림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 완벽주의자.


그래서 내가 누구보다 믿고 맡기는 파트너였다.


내가 도현을 데리고 다가가자,

민지가 뷰파인더에서 시선을 뗐다.


“왔어요? 그쪽이 PD님 동생분이죠? 반가워요, 오민지예요. 촬영감독 맡고 있어요.”


“한도현입니다.”


“근데 옷이··· 너무 캐주얼하지 않아요?”


“세계관 붕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평소처럼 입고 왔습니다.”


민지가 눈을 끔뻑이며 나를 바라봤고,

나는 피곤해서 이마를 짚었다.


“······리얼리티 과다야, 도현아.”


내 중얼거림에 민지가 웃음을 참다 작게 헛기침했다.


“어어, 그래도 미남이니 화면은 잘 받을 듯하네요.

오늘은 소품도 쓸 거니까, 일단 그거부터 확인해 주세요.”


민지는 손을 들어 민수를 불렀다.


“민수야! 이분 소품 사용법 좀 알려줘!”


“넵! 감독님!”


민수는 대답하자마자 도현을 데리고 장비 쪽으로 뛰어갔다.


민지는 그런 민수를 흘끗 본 뒤,

다시 차분히 카메라 세팅 값을 확인했다.


업무 중엔 한 치 틈도 없는 눈빛.


평소엔 한 살 터울이라 농담도 주고받지만,

렌즈 앞에선 철저히 ‘감독님’으로 선을 긋는 사람.


그래서 내가 제일 믿는다.


“근데 생각 이상으로 본격적인데?”


좀 과해 보이는 세팅에 내가 의아해 묻자,

민지가 카메라에 눈을 붙인 채로 대답했다.


“공식 티저로 사용될지도 모르니까요.

게다가 작가님도 참관하시니 겸사겸사요.”


“맞다··· 작가님도 오시지.”


《오타쿠의 연애》를 집필한 유서현 작가.


빅히트는 없지만 마니아층이 두텁고,

디테일 집착으로 유명한 분이다.


오늘은 ‘기록차’ 온다고 했다.


기록차라는 말은, 업계에서 곧


“작가님이 꽂히셨음.”


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민지 너도 투입하라고 지시 내려온 거야?”


“아뇨. 저는 자원했어요.

제대로 조명받고 찍힌 모습, 보고 싶었거든요.”


민지는 기대 섞인 눈빛으로 저 멀리 도현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니,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PD님은 아무리 조악해도 그렇지, 형광등은 좀 너무했죠.”


“현실적으로 집에서 조명을 어떻게 까니?”


“왜 못 깔아요?”


진심이다.

‘그게 왜 불가능하냐’는 표정이었다.


······얘도 은근 촬영 오타쿠다.


생각해보니, 내 팀엔 정상인이 없다.


그때, 스튜디오 한쪽 문이 열렸다.


커피잔을 든 유서현 작가가 들어왔다.


“테스트 치고는 분위기가 살벌하네요. 오! 지유 PD님, 반가워요. 오늘 테스트 본다는 동생분은―”


서현 작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후드티에 트레이닝바지, 슬리퍼 차림의 도현을 발견했다.


눈이 동그래졌다.


“엑설런트! 그래, 오타쿠는 저런 차림이지.

PD님이 고민 많이 하셨네요.”


“하, 하하하······.”


······고민은 무슨, 세탁기도 안 돌렸는데요.


“작가님, 저쪽에 모니터링 자리 준비해 뒀어요. 앉으시면 바로 테스트 들어갈게요.”


“그래요. 지유 PD님이 고생이 많아요.”


서현 작가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말투엔 격려와 농담이 적당히 섞여 있었다.


“PD님, 카메라 준비 끝났습니다.”


“응, 수고했어. 아참, 민지야. 상대역은? 여주분 오시기로 하지 않았나?”


“아, 그게요··· 다른 분이 오기로 했어요.”


“다른 분? 누구?”


“그게······.”


머뭇거리는 민지를 보며 의아해하던 그 순간,

문이 또 한 번 열렸다.


“안녕하세요! 안 늦었죠?”


모두 고개를 돌렸다.


경악스럽게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오타쿠의 연애》의 원래 남주, 박재민이었다.


“박재민 배우님?”


내 목소리가 반쯤 비명처럼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PD님. 윤하린 배우가 일정이 꼬였다 해서요. 제가 대신 들어왔습니다.”


“아니, 하지만―”


“어차피 남주는 제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그는 미소를 지은 채, 느긋하게 덧붙였다.


“얼마나 ‘오타쿠 연기’가 대단하길래 테스트까지 보려는지,

저도 직접 확인해 보고 싶고요.”


그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웃음 뒤에는 분명한 가시가 숨어 있었다.


이건 호의가 아니라 도전장이다.


나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테스트,

순탄하게 끝날 리가 없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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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엑스트라의 경험치 +4 26.01.13 456 16 10쪽
43 연기 노트 +3 26.01.12 484 16 10쪽
42 첫 테이크, 첫 살인 +1 26.01.09 490 12 10쪽
41 전작은, 그렇게 남는다 26.01.08 487 15 9쪽
40 오타쿠는 전염된다 26.01.07 492 15 9쪽
39 심문실, 첫 맞대면 +2 26.01.06 500 13 10쪽
38 리딩 +2 26.01.05 498 13 9쪽
37 캐스팅은 결국 기사로 떨어진다 26.01.02 511 14 9쪽
36 악역의 딸을 찾다 26.01.01 512 17 9쪽
35 아역 +1 25.12.31 530 19 10쪽
34 공개 오디션 +1 25.12.30 549 15 9쪽
33 즉석 연기 25.12.29 543 14 9쪽
32 불발 +1 25.12.26 551 12 9쪽
31 A급 배우의 조건 +2 25.12.25 566 12 10쪽
30 캐스팅 25.12.24 590 16 10쪽
29 다음 무대를 위한 준비 +1 25.12.23 593 19 9쪽
28 마지막 조각 25.12.22 613 19 10쪽
27 작가면담 +1 25.12.19 632 16 10쪽
26 운명의 시나리오 25.12.18 644 15 9쪽
25 메소드 25.12.17 662 16 9쪽
24 연기라는 것 +1 25.12.16 704 14 11쪽
23 DIVE ARTIST +4 25.12.15 720 16 8쪽
22 도현의 마음 +4 25.12.12 734 15 8쪽
21 새로운 시작 +2 25.12.11 756 16 8쪽
20 유튜브 출현 +1 25.12.10 772 13 9쪽
19 코믹월드의 난 +4 25.12.09 780 17 7쪽
18 공개의 날 25.12.08 799 20 9쪽
17 완성의 날 25.12.05 795 1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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