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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풍장하군
작품등록일 :
2025.11.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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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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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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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최종 합격자

DUMMY

왕은 므흣한 표정으로 맏아들의 결혼식을 지켜보았다.


아들 부부가 나란히 행진을 시작한 참이다.


중국 사신이 감탄하고 갈 만큼 잘난 세자와, 왕이 자신있게 뽑은 세자빈이다. 함께 걷고 있는 둘의 모습이 싱그럽고 희망차다.


'마치 곧 짙은 초록이 되어, 튼튼하게 뻗어나갈'

초여름의 나무처럼.


하늘도 축복을 건네오고 있는 듯 하다. 아들 부부도 잘 살 거고, 아들 부부가 이끌어나갈 조선도 더욱 번영하리라고.


***


서두르다보니 초여름에 식을 치르게 되었음에도, 덥지 않다.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부드럽고, 궁궐에 가득 찬 나무 향기, 풀 향기, 꽃 향기가 싱그럽다. 하늘은 가을인 냥 깨끗하고 예쁜 파랑이다.


참석자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는, 아름답고 상쾌한 날!


역대급 성군으로 불리는 현 리더의 훌륭한 치세에 이어, 차세대 리더가 이끄는 앞날도

'먹구름 없이 깨끗하고 예쁜'

오늘의 하늘을 닮을 것 같은 예감!


***


왕은 그런 표정들 하나 하나를 눈에 담았다.


이 혼례를 서두르게 만든 일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몇몇 신하들의 표정과 몸짓도, 왕의 뇌리에 기록되었다.


신께 감사드리는 것은,

'그들 덕분에 저 아이를 찾아내어,'

사랑하는 아들의 배우자로 짝지어주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화위복이다.


***


그 아이의 입장에서도 오늘은 전화위복의 순간이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세자빈으로 간택된 것이 '화'라는 차이가 있지만.


어젯밤까지는 함정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토끼같은 심정이었다. 신나게 뛰어다니며 행복하게 살았으나, 한순간에 깊은 함정에 빠져버린 토끼.


'누가 봐도 내가 아니라, 그쪽이 합격해야 하는 거잖아! 왜 나냐고! 왜! 왜!'


감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하지만, 맘 속으로 끊임없이 이리 외치던 그녀.


***


요즘 취준생이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들까? 누군가 재계 순위 1위인 대기업에서 자기를 뽑았다고 이 난리를 친다면?


'왜 나를 면접에 오라 하냐고! 왜 최종 면접까지 올려보내냐고! 왜 둘 중 나를 뽑냐고! 왜! 왜! 왜!'


게다가 그 대기업에서 생짜 신입을 무려 임원으로 뽑았을 뿐 아니라, 조건부이기는 하지만, 장차 회장 사모님 지위로 올려보내겠다는 것까지가 계약서 내용인데도 이런다면?


'내가 이력서 냈어? 내가 뽑아달라 했냐고! 난 그런 대기업 따위 존재조차 신경 안 쓰고 살아왔다고!'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조선에서부터 이어져 오는 말이 있잖은가,

'평양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

이라는 말.


문제는 평양 감사는 싫으면 안 갈 수 있는데,

'세자빈은 싫어도 거절할 수 없다'

는 거다!


평양 감사는 갔다가 올 수 있는 벼슬 자리일 뿐이고, 세자빈은 평생 무를 수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


세자빈 뿐 아니라, 그 부모에게도 이건 '복'이 아니라 '화'였다.


뜬금없는 면접 통보에 세자빈만큼이나 화들짝 놀랐고,


면접 날 아침에도

'미끌어져라!'

미역국을 끓여주었고,


면접을 보는 동안에는 시험장에는 못 들어가고 궁궐 밖에서

'설마 붙진 않았겠지?'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는 한편으로,


'제발! 제발 떨어지게 해주세요!'

정성을 다해 치성을 드렸다.


요즘 대입 수험생 부모님들과 정반대의 행동을 한 것이다. 그것도

'우리 애가 시험 잘 볼 리가 없지'

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부모임에도 말이다.


빵점 안 맞으면 다행인 애가 합격에 장학금까지 받아버리는 기적이 발생했을 때, 부모는 자책까지 했다.


'치성 드릴 때 정성이 부족해서'

딸을 합격시켜버렸다고.


***


딸의 이름은 하인현. 세자빈 후보가 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하려고 호출했을 때도

'요즘은 혼날 만한 일을 한 게 없는데..'

라고 생각했을 뿐인 아이였다.


우리 시대 시험에서는 수능 빵점이 아니라, 상위 1%의 성적을 거둘 아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조선 시대 여자 아이로는 빵점인 아이였다.


세자빈은 커녕, 일반 양반가로 시집보내기도 어려울, 생각하는 능력이 있음을 숨겨지 못하는 아이.


그래서 어머니는 혼내면서 가르쳐보려 애써왔지만, 아버지가 같이 있으면, 말로만 하는 야단조차 흐지부지여서, 부모가 호출해도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고, 맘껏 집 밖을 싸돌아다니는 말광량이 금지옥엽.


"이래 가지고 혼처를 어찌 찾으려고 이러시는 거에요? 이런 말괄량이를 어느 집안에서 시집 오라 하겠어요? 이러다가 우리 인현이 시집 가서 소박맞아 오면 어쩌시려고요?"


이런 하인현을, 판서도 정승도 아닌, 그냥 왕가도 아닌, 무려 세자, 무려 미래의 왕의 배우자로 데려가겠다 하는 날이 올 줄이야!


***


뜬금없는 면접 통보를 받았을 때, 어머니 양현모는 무려 궁궐씩이나 가서 소박맞으면 어쩌냐는 걱정부터 들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인현이가 궁의 엄격한 법도를 어떻게 지키겠어요? 거의 매일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던 것이 어떻게 그 담장 안에 갇혀 살아요?"

라는 것인데,


아버지 하정수의 걱정은 오히려 더 심했다.


"내 말이 그 말이오! 궁에 들어간 여인의 소박은 그냥 되돌려보내지는 게 아니라, 본인은 사약, 집안은 멸문까지도 갈 수 있는 것인데!"


게다가 소박으로 보내버리려는 암투, 권력 투쟁, 정치 게임을 벌이는 사람들을 매일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 자리이잖은가, 세자빈과 중전은!


'인현이도 나도 그런 것에는 재능도 관심도 없는데, 인현이가 어찌 견딜 것이며,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라며 수심이 가득해진 하정수. 그는 관직에 있기는 하나, 한직인데다가 정파도 없어서, 거의 은거한 선비 수준이다.


'대체 누구 눈에 띄어서..'

딸을 세자빈 간택 면접에 참여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온 것일까?


***


"걱정마라. 너는 구색 맞추기용일 뿐일 것이니. 원래 세자빈 간택은 외척을 경계하기 때문에, 권력과 멀어보이는 집안을 택하지 않느냐."


이리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불길한 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한직에 있는 자의 딸을 후보로 내세우더라도, 사실상 권력을 잡고 싶은 자들의 라인이 작용하기 마련인데, 하정수는 그런 이들을 멀리 하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그래도


"걱정마라. 네가 생각해도 네가 면접을 통과할 일은 없지 않느냐?"


이리 말해본다. 하지만 아내의 말도 일리가 있다.


"그래도 면접 준비는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가문에 먹칠할 정도로 망치고 오면, 인현이 혼인은 다 시킨 거에요."


***


그래서 셋은 면접 전략을 짜본다.


일명 '중간만 가자' 작전. 다른 말로 하면 '가만히만 있는다' 작전이었다. 조선시대 며느리의 3대 덕목인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

를 응용해보자는 건데, 핵심은


"면접관이 무언가를 물으면 먼저 나서지 마라. 남들이 하는대로 그대로만 따라해라."

이거다.


요즘 면접으로 따지자면, 이런 식으로만 대답하는 것이다.

"앞 분과 같은 생각입니다."


***


안타깝게도 하인현은 면접을 크게 '망치고' 만다. 1차 면접에서부터 어긋났다.


초반에는 면접 전략대로 가만히 있었으나, 면접관 중 한명인 중전 마마의 면접관 스킬이 지나치게 훌륭했달까.. 점점 입을 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중전 마마께 질문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러버렸다.


특히 약초 관련 질문들에 하인현은

'면 러버가 라면 냄새 그냥 못 지나치듯'

흥분해버렸다. 한 젓가락만 먹자 하다가, 한 그릇 다 비운 후에야 정신 차리듯 한 것.


나중에는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중전 마마와 신나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1차 면접이 끝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괜찮아. 나는 심지어 질문까지 했잖아. 내가 뽑힐 리는 없어.'

라는 위로를 스스로에게 던져봤지만,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중전 마마도 자신을 좋아하더라는 것을.


점점 면접자들 중에서 입을 여는 이, 질문을 받는 이가 본인 포함 단 두명으로 압축되어가지 않았던가! 나중에는 거의 독대 느낌이었고.


***


'어떻게 우리 인현이가 면접을 통과하지?'


믿기 어려웠던 부모는 딸에게서 1차 면접 질문들을 듣자, 딸이 가만 있지 못했을 것은 바로 수긍했다. 다른 질문들은 그렇다 쳐도, 약초는 못 참지..랄까.


'그렇지만 중전마마는 왜 그런 걸 물으셨을까?'


부부는 닮는다더니, '파격의 왕'의 아내라서 이런 파격적인 질문들을 던진 걸까?


***


왕은 원래 장난기도 많고, 정책도 행동도 파격적인 게 많았다. 예를 들어,


'중전 팔불출'

로 유명했다. 사적인 자리에서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아내에 대한 사랑을 감추지 않고 맘껏 드러냈다.

자식들에게도 다정하고 장난기 많은 아버지였고.


동시에 단호한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역시.. 남다른 아버지였다. 그냥 양반도 아니고, 왕인데 말이다.


당연히 취임 초기에는 신하들의 반대 상소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 워낙 왕이 넘사벽 혜안인지라, 보통 사람은

'왜 저러지?'

하며 이해하기 힘든 짓을 많이 하는데도 결과가 늘 좋았기 때문에,


점점 웬만한 파격에는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 자리잡았다.


그래서

'보수적인 조선 성리학자들이 어찌 저런 행동에 태클을 안 걸었지?'

라는 의문이 떠오를 만한 일을 굉장히 많이 한 왕이었다.


***


이 정도 힌트면 '파격대왕' 또는 '파격의 왕'이라는 별명이 떠오르지 않나?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이 거의 유실되어 버린 왕인데도, 문화가 꽃핀 시기라, 당대의 많은 저술에 조선 임금답지 않은 파격적 행적의 기록들이 남아있는 왕, 덕종대왕이 세자의 아버지다.


(**작가의 말 참고)


그렇지만 세자빈 간택 면접 질문조차 파격이라니!


세자빈이 약초를 알아서 뭐한다고 그런 걸 물으신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려니 할 수 밖에. 두 분 다 뭔가 이유가 있으시겠지.


***


"그래도 다행이오. 두 분은 솔직한 성격을 좋아하시는 듯 하니."


하인현은 좋으면 좋은 것이, 싫으면 싫은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나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말도 꾸밈이 없었다. 며느리로서 사랑받을 수 있을까..걱정인 성격.


"그래요. 시부모만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긴 해요. 두 분만큼 좋은 시부모님 찾기도 힘들 거에요."


"그렇지."


"게다가 세자 저하께서도 두 분을 고루 닮으셨다고들 하잖아요."


"그렇구려! 그렇다면 우리 인현이도 남편 사랑만큼은 듬뿍 받고 살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지요! 저도 당신 사랑 덕분에 다 이겨낼 수 있었던 거.. 아시죠?"


이렇게 하인현의 부모는 곧바로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


게다가 혼례일이 매우 급박한 게 당황스러우면서도 도움이 되었다.


아직 딸을 시집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앞날에 대한 걱정은 치워둘 수 있었다.


'그래! 전하를 믿고 맡기자! 전하께서 잘 이끌어주시겠지!'


'그래! 우리가 딴 건 몰라도 사위 하나는 잘 보는 셈이지. 세자 저하 잘나신 거야, 이웃 나라에까지 소문 났을 정도잖아."


이런 식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자, 얼마 후에는 이런 말이 오가기 시작했다.


"우리 인현이 소박맞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이렇게 하씨 부부는 금방 웃음을 되찾았다.


그러나 하인현 본인은 부모의 긍정 회로에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

- (**작가의 말: '파격대왕'(덕종대왕) 부분에서 놀라셨죠? 우리의 세자 아버님은 가상의 임금이십니다. 물론 세자도 역사적 인물이 아니지요.


'성라설'이라는 책이나 약초들 이름과 효능 등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많은 것이 상상의 산물이니, 헷갈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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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원초적 질문 26.01.12 0 0 13쪽
35 35 아버지의 청 26.01.11 0 0 11쪽
34 34 꿈 속의 여인 26.01.10 0 0 12쪽
33 33 진단명 26.01.05 0 0 12쪽
32 32 당혹스러운 깨달음 26.01.04 0 0 12쪽
31 31 의원 26.01.03 0 0 12쪽
30 30 응급상황 25.12.28 2 0 12쪽
29 29 김옥동이 겪은 일 25.12.25 1 0 12쪽
28 28 강솔찬이 겪은 일 25.12.24 1 0 13쪽
27 27 불원재회 25.12.23 1 0 12쪽
26 26 경계 경보 25.12.22 1 0 12쪽
25 25 애기씨! 25.12.21 1 0 12쪽
24 24 도둑 25.12.18 1 0 12쪽
23 23 역모죄 25.12.17 1 0 12쪽
22 22 전설 25.12.16 1 0 11쪽
21 21 투명옥 25.12.15 1 0 11쪽
20 20 김추희 장하군 25.12.14 1 0 12쪽
19 19 수사 시작 25.12.11 3 0 12쪽
18 18 그녀?! 25.12.10 1 0 12쪽
17 17 누나?! 25.12.09 1 0 14쪽
16 16 대책회의 25.12.08 2 0 13쪽
15 15 은혜갚는 방식 25.12.07 1 0 12쪽
14 14 은인 25.12.04 1 0 13쪽
13 13 어설픈 첩자 25.12.03 1 0 11쪽
12 12 위급한 순간 25.12.02 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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