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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풍장하군
작품등록일 :
2025.11.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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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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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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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미션하다가

DUMMY

하늘의 축복은 결혼식 밤에도 이어졌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에 뜬 밝은 보름달. 살랑거리는 바람과 향긋한 꽃 내음. 소원을 빌기에도, 산책을 즐기기에도, 사랑하는 사람과 바깥 데이트하기에도 딱 좋은 날씨였다.


"조선 역사상 가장 금슬이 좋았을 것 같은 임금 부부를 뽑아주세요."

라는 설문조사가 있다면 1, 2위를 다툴 만한 왕과 중전이다. 맏아들의 혼례를 무사히 마친 날 밤, 보름달 데이트를 마다할 리 있겠는가?


둘은 세자 부부의 합궁이 무사히 끝나고, 첫날 밤에 바로 세손이 잉태되기를 기원하며 정원을 거닐었다.


어쨌거나 허니문 베이비가 태어나기에 딱 좋은 밤 아닌가? 일부러 보름날을 혼례일로 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예상보다 더 로맨틱한 밤이어서 느낌이 좋았다.


***


물론 결혼식에 대한 대화를 아니 나눌 수 없다. 자신들의 혼례일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예. 그 날 소첩도 뛰는 가슴 가라앉히고 침착한 척 하려 애 많이 썼습니다. 이 분이 나의 낭군이시라니! 감격해서 혼례를 어찌 치뤘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우리 아들은 그날 나 같아서 웃음이 났소."


이 말에도 중전은 웃으며 동의했다.


"전하도 그리 보셨습니까? 소첩도 그때의 전하가 생각나서 웃음이 지어졌습니다."


왕이 처음에는 중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것이다.


***


'세자도 처음에는 세자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

이라는 둘의 예상도 맞았다.


세자의 혼례와 합궁은 개인의 인생에서도 중요한 일이지만, 국가중대사이다. 당연히 결혼식 내내 세자의 태도와 표정은

'국가 공식 행사의 주인공'

다웠다. 그 모습은 당연히 그의 부모를 더욱 자랑스럽고 므흣하게 했고.


하지만 왕과 중전은 다정하고 관찰력 좋은 부모이기도 하고, 경험자이기도 해서, 세자가 세자빈을 마음에 들어했다면, 미묘하게 달랐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하면 왕은 아들의 그 반응 또한 므흣했다. 장난기가 있었던 것이다.


'내 아들은 언제 자기 아내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지 볼까? 나보다 빠를지 느릴지?'

라는 마음이 그 동안에도, 세자를 바라보는 왕의 반짝이는 눈빛에 담겨 있었다.


***


세자도 아버지가 뭔가 꿍꿍이가 있음은 읽었었다.


'아바마마께서 또 저 안광을 장착하셨구나.'


하지만 왕의 장난에 익숙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눈빛을 보였을 때의 결과가 나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이유를 알려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럴 때 물어봐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자기 아내는 자기가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다. 왕에게 그런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혜안을 믿었다가 데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믿고 기다렸다.


그런 그의 믿음이 하필

'인생중대사인 혼례일 아침에'

배신당할 줄이야!!


***


세자는 세자빈 간택을 위한 최종 면접을 끝내고 돌아가는 두 처자 중, 한명의 뒷모습을 봤었다.


그 자태에 이끌리어 잠깐 서 있었는데, 그녀가 길 옆에 서있는 꽃나무를 보느라 잠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포착된 옆모습에, 심장이 멎을 뻔 했다.


'그 낭자다!'


죽다 살아난 그날 만난 그녀임이 확실했다. 그날 이후 한시도 잊은 적 없는 그녀! 선녀같은 그녀!


그녀인 줄 알았다, 세자빈으로 간택된 처자가! 그래서 결혼식 당일 세자빈이 다른 여자임을 알아봤을 때, 난생 처음 아버지에게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녀인 것처럼 말해왔으니까.


게다가.. 게다가.. 저 여자라니! 저 여자가 내 신부라니!



***


왕의 세자 교육은 독특해서, 어느 정도 자란 후부터는, 궁 밖으로 돌아다녀야 하는 미션을 자주 주었다.


지덕체(智德體)..

무릇 한 나라의 리더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지만, 갖추기 결코 쉽지 않다.


아시다시피, 덕종대왕은 특히 '지'를 강조했다. '덕'만 강조하던 신하들과 성리학자들에게,


"덕이 있다고, 지가 저절로 갖춰지는가?

백성을 사랑하기만 하면, '능력 없이도', 나라 경영이 저절로 되나?"

라는 일침성 물음을 던진 일화가 유명하지 않나?


"시를 잘 짓는 것이 '지'인가?"

라는 추가 물음을 통해,


"나라 경영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지'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관철시킨 일화.


***


"외침이 있을 때 이겨낼 수 있는 '지'"

가 그중에서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고로, 무릇 군주라면 '병법'을 잘 알아야 한다. 허나, 이론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어떻게 '적용, 운용'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법! '살수대첩'을 보아라."


그래서 왕은 '지리'를 강조했다. 병법의 운용에 중요하므로.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보급' 또한, 지리를 알아야 제대로 해낼 수 있느니라."


단순히 어디에 무엇이 있다 암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


왕이 세자에게 궁 밖을 직접 돌아다녀야 풀 수 있는

'수수께끼 미션들'

을 주곤 했던 이유에는. 이런 깊은 뜻들이 모두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정한 아버지라, 아들이 재미있어 할 과제를 주고 싶기도 했고, 본인이 장난기가 많은 성격이기 때문에, 그리 만든 것이기도 했다.


시간 내에 문제를 풀기 위해 바삐 돌아다니다보면 자연스레 길러지는 체력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었고.


시대를 앞서가서, 이미 그 시대에

'미션 수행형 게임'

을 아들에게 만들어 준 것인 셈이니, 실로 '파격대왕'답지 않나?


실내에 앉아서 플레이하는 게 아니라, 직접 발로 뛰어야 하는 게임이니, 그 재미와 고생이 훨씬 큰

'교육용 게임'

을 그 시대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최정예 호위 무사들을 동행시켰다. 강하게 키우려는 거지, 소중한 아들을 잃으려는 게 아니니까.



***


그날은 호위 무사들에게 특별한 명령이 내려졌다.

"세자가 혼자 길을 찾게 하라."


미션도 복잡해서, 제 시간에 끝내려면 무사들과 헤어져야 했다. 나눠 풀어야 했으므로.


전에도 그런 복잡한 미션들이 있었지만, 곧 무사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한동안 멀리 숨어서 몰래 호위하고,

'절대 세자 눈에 띄지 말 것'

을 명령받았으니, 나타날 리 없었다.


게임 장소도

'길 잃기 딱 좋은 산'

이었지만.


***


처음 얼마 동안은 혼자 미션을 끝낼 자신이 있었지만, 오히려 지나친 자신감, 그것이 문제였다. 후회의 시작이었으니.


'괜히 지름길로 갔다가, 이게 뭔가!'


그 짧은 한순간의 잘못된 결정 때문에, 옷만 가시에 찢긴 게 아니다. 바위 절벽에서 미끄러져 구를 뻔 했고, 결정적으로

'길을 잃어버렸다!'


따뜻한 봄 햇살이 무사들 대신 세자를 호위해주고 있었기에, 미션 수행중이 아니었다면, 사실 별 문제 아니었다.

동서남북 구분은 당연히 쉬웠으니.


'다음 미션 장소, 즉, 목표물의 위치'

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놓쳐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


정말 쉽지 않은 산이었다. 왕의 바람대로, 세자는 '체' 중에서 산 타기 능력이 자연스레 길러진 상태였지만, 바위투성이나 빽빽한 숲을 벗어나도, 길은 여전히 찾기가 어려웠다.


아까 계곡에서 뜬 물도 다 떨어졌고, 먹을 것은 당연히 떨어졌고, 발은 아파왔는데, 이 고생 끝 알아낸 것은 오직,

'다음 미션 장소로 가려면, 산의 동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는 것 뿐. 허탈했다.


"삐익~!"


결국 내려가서 백성들에게 물어 찾아가기로 결정한 세자가, 호출 호루라기를 불었지만, 무사들이 나타날 리 있겠는가?


'조선 최고의 정예 요원들이니, 어두워지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알아서들 쫓아오겠지. 다행히 해도 아직 많이 남아있고.'


세자는 혼자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산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고지대라 그런지, 사람은 나타날 기미가 없었다. 지쳐서 잠시 쉬는데, 바람을 타고 장구 소리, 북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다! 드디어!'


얼른 일어나 그 소리 쪽을 향해 갔다. 신명나는 소리에 힘이 절로 났다. 군대에 왜 북이 필요한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애기씨! 조심하세요!"

여자 목소리가 나더니, 장구 소리, 북 소리가 뚝 그쳤다.


***


얼른 가까이 다가가다보니, 세자 나이 또래의 댕기머리 아가씨가 멈춰서는 게 보였다.


어깨에 끈으로 장구를 메었고, 양손에는 장구채를 들고 있었다.

'양반집 규수가..?'


일행은 신분들이 낮았다.


아가씨 옆에 북을 메고 선 중년 남성은, 놀이패나 기생집 하인인 듯 싶고..

아까 소리를 친 사람이 분명한 중년 여성은, 아직도 미모가 살아있는 기생..

그 옆 세자 또래의 여자는, 아가씨의 몸종으로 보였다.


두 여성은 각자 가방에서 가야금을 꺼내던 중이었다.


***


"애월이가 빚어준 귀한 술을 엎지를 뻔 했구나!"


장구를 치다가 발이 돌부리에 걸려 크게 넘어질 뻔 했던 아가씨는, 몇발짝 만에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나무 그늘에 놓여있던, 간식 도시락으로 보이는 보자기에 코를 박기 직전이었다. 넘어졌다면 그 옆에 놓인 술병들이 깨져서, 크게 다쳤을 것이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한쪽 다리로만 몸을 지지하고 다른 쪽 다리는 공중으로 치켜든 자세가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 자세 그대로 씨익 웃으며,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던 장구채를 한손으로 옮기고는, 빈 손으로 술병을 들어올렸다.


술병을 지팡이처럼 짚고 일어서며, 그 힘으로 나머지 다리도 땅에 내려놓으려던 거였지만, 장구의 부피와 무게를 계산 못하고 한 행동이라, 또다시 몇번 주춤거리고서야,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실례하오."


세자는 헛기침 소리를 낸 후 말했다.


***


갑작스러운 남자 목소리에 놀란 아가씨가 급히 뒤돌다가, 손에 든 술병 마개가 열리면서 빨간색 술이 날아갔고, 세자의 얼굴과 옷에 끼얹어졌다.


"에그머니나!"


놀란 아가씨가 술병과 장구채들을 놓치는 동시에, 뒤로 주저앉으려 했다.


음식을 깔고앉을 참이었다. 술병은 깨지고 음식은 뭉개져버리는 참사가 일어날 참.

아가씨도 뒷머리를 나무에 세게 부딪혔을 것이다. 장구와 술병이 있어서, 이래 저래 크게 다칠 판.


***


순간적으로 세자의 반사신경이 작동했다.


한손으로는 술병을 받아내고, 다른 한손으로는 아가씨의 허리를 감싸면서 빙그르르 돌았다.


그렇게 여러번 돌면서 아가씨가 주저앉으려는 힘을 흡수해서 없앤 후, 다시 반대 방향으로 빙그르르 돌면서 아가씨를 풀어내,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모두가 멍하니, 갑자기 나타나 묘기를 보여준 도령을 쳐다보았다.


***


"누..누구세요?"


잠시 후 아가씨가 물었다.


"길을 잃었소만, 여기가 어디요?"


뺨이 살짝 달아오른 채, 눈만 깜박거리며 잠시 멍하니 있던 아가씨는, 곧 길을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세자는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달라고는 못했다.


'이런 자들에게 얻어 먹느니, 차리리 굶겠다!'

그만큼 그는 이 처자가 용납이 안 되었다.


***


양반집 규수가 꼴이 이게 뭔가?


기생들이나 하는 놀음을 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조신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용모단정과도 거리가 멀었다.


댕기머리를 했음에도 부스스 튀어나와있는 잔머리들 하며, 치마에는 음식을 흘렸는지 흙탕물이 튄 건지 얼룩이 묻어있고, 봄 햇살에 탄 얼굴도 지저분해 보였다.


술병과 도시락 옆에, 봄나물을 캔 것으로 보이는 바구니가 있긴 했다. 양반집 규수들도 봄나물은 캐러 나가니까.


하지만 이 애기씨는

'집에는 봄나물 캐러 간다고 나와서는,'

천한 기생, 놀이패와 놀아 제끼고 있나보다.


'조선에 이런 여자가 있다니!'


세자는 충격을 넘어, 의무감을 느꼈다.


***


"쯧쯧.. 무릇 규수라면 몸가짐을 조심해야 하는 법이거늘.."


파격대왕의 아들이라 해도, 그는 조선의 세자다.


누가 다치는 건 볼 수 없는 착한 성품이라, 반사신경이 자동 작동해버려 구한 거지만,


이런 여자가 마음에 들 리도 없고,

'감히 나라의 법도를 깔아뭉개는 이런 행위'

를 모른 척 넘어갈 리도 없다.


비록 우리 시대의 눈으로 보면, 오히려 세자의 딴지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여자, 반응도 황당하다.


----------

-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는 **가상의** 인물, 책, 약초 등이 등장하지만, 상상의 산물일 뿐임을 주의하시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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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원초적 질문 26.01.12 0 0 13쪽
35 35 아버지의 청 26.01.11 0 0 11쪽
34 34 꿈 속의 여인 26.01.10 0 0 12쪽
33 33 진단명 26.01.05 0 0 12쪽
32 32 당혹스러운 깨달음 26.01.04 0 0 12쪽
31 31 의원 26.01.03 0 0 12쪽
30 30 응급상황 25.12.28 2 0 12쪽
29 29 김옥동이 겪은 일 25.12.25 1 0 12쪽
28 28 강솔찬이 겪은 일 25.12.24 1 0 13쪽
27 27 불원재회 25.12.23 1 0 12쪽
26 26 경계 경보 25.12.22 1 0 12쪽
25 25 애기씨! 25.12.21 1 0 12쪽
24 24 도둑 25.12.18 1 0 12쪽
23 23 역모죄 25.12.17 1 0 12쪽
22 22 전설 25.12.16 1 0 11쪽
21 21 투명옥 25.12.15 1 0 11쪽
20 20 김추희 장하군 25.12.14 1 0 12쪽
19 19 수사 시작 25.12.11 3 0 12쪽
18 18 그녀?! 25.12.10 1 0 12쪽
17 17 누나?! 25.12.09 1 0 14쪽
16 16 대책회의 25.12.08 2 0 13쪽
15 15 은혜갚는 방식 25.12.07 1 0 12쪽
14 14 은인 25.12.04 1 0 13쪽
13 13 어설픈 첩자 25.12.03 1 0 11쪽
12 12 위급한 순간 25.12.02 1 0 12쪽
11 11 수상한 여자 25.12.01 2 0 13쪽
10 10 아름다운 여자 25.11.30 4 0 13쪽
9 09 이름이 뭐에요 25.11.26 4 0 12쪽
8 08 의외의 제안 25.11.25 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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