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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풍장하군
작품등록일 :
2025.11.17 17:26
최근연재일 :
2026.01.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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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1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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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호소인 vs 호소인

DUMMY

세자는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자기 신분을 일부러 비천하게 만들기까지 하다니!


"기생이라 하시었소? 아까 애기씨라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데?"


"애기씨요? 에이, 애기야..라는 소리를 잘못 들으셨겠지요. 제 스승님은 제자들을 그리 부르시지요."


잠깐 당황한 듯 하더니 이리 둘러댄다. 그녀가 중년의 기생을 보며 눈짓하자, 기생도 맞장구쳤다.


"맞습니다, 도련님."


해보자는 거군. 그렇다면 상대해주지.


***


"그래? 어느 마을의 누구냐?"


"네, 한양 아차골의 애월관 기생들이옵니다."


곧바로 호통이 돌아왔다.


"대체 어느 댁 처자이길래, 있지도 않은 기생집을 둘러대면서 기생인 척 하는 것이오?"


"어찌 그리.."

말을 하는 중간에 깨달았다. 앗! 혹시 아차골 사는 도령인가? 낭패네!

".. 여기시옵니까?"


말을 마무리하는 속도를 늦추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번 하인현이 빠르게 둘러댔다.


"사실 맞긴 맞습니다. 아직 개관은 하지 않았지요. 저희는 지금 개관식을 크게 하려고, 축하 공연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축하에 장구와 북이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


하인현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필 겨를이 없었지만, 다들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역시 애기씨는 거짓말을 너무 못하셔. 차라리 이제라도 그냥 송구하다 하시는 게 낫지 않으실까?'


역시나! 하인현이 다음 말로 넘어가기도 전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좋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관아에 가도록 하자! 네 말이 거짓이라면, 곤장을 맞아도 되겠지?"


"과..관아요?"


***


당황한 하인현은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역시 나는 거짓말 따위 못하는구나. 급하니, 나름 술술 나온다 생각했건만.'


전략을 바꿀 수 밖에 없다.


"좋습니다. 인정하지요. 저는 기생이 아닙니다."


"기생 놀음을 하더니 신분까지 속이고, 대체 어느 댁 처자요?"


"이렇게 하지요. 제가 누군지는 아시려 마시고, 제가 앞으로 장구는 치지 않기로 하는 것으로요. 그걸 원하시는 것 아니옵니까?"


"정말 어이가 없군! 말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장구는 치지 않는다? 그래, 그럴 거라 칩시다. 그럼 저 가야금들은?"


"도련님, 저도 도련님이 뉘신지 알려 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잠시 스친 인연, 서로가 서로를 잊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라의 법도를 이리 어지럽히는 것을 발견했는데, 내어찌 가만 있을 수가 있단 말이오?"


이런 끈질긴 젊은 꼰대! 하인현이 요즘 사람이라면 세자를 이렇게 규정했을 것이다. 세자는 하인현을 거짓말까지 하는 바람난 날라리라 불렀을 것이고.


***


하인현은 다시 태도를 바꿨다. 맞받아치기로.


"그쪽은 대체 어느 댁 도령인데, 이리 무례한 것이오?"


"내가 무례한 것이다?"


"무례하지요. 어쨌거나 길을 가르쳐드렸으니, 작으나마 도움을 드린 것인데, 감사의 인사는 커녕, 다짜고짜 이러시는 것이 예의를 갖춘 행동입니까?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음식도 드리려 했는데."


***


세자는 잠시 반박하지 못했으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럼 그쪽은 어떻소? 엄연히 위, 아래를 나누고 있는 이 나라 법도를 지키고 있는 것이오? 게다가 꼴은 또 그게 뭐요?"


"지금 외갓 여인의 외모를 지적하셨습니까? 그렇다는 것은 어느 댁 도련님인지, 그쪽 또한 남녀칠세부동석을 어기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무례를 얹어서요."


"그러면 잘못 된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오?"


"뭐가 그리 잘못되었는데요?"


"본인도 알지 않소? 그러니까 사람없는 곳에 온 것 아니오?"


***


이런 식으로 말싸움이 이어지다 보니, 결국 세자 신분을 밝혀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궁 밖을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세자다. 위험하게 아무에게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지 않겠는가?

물론 이런 여자에게는 더욱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사시라고요?"


하인현의 말투와 표정을 보니, 이번에는 세자가 거짓말을 못하는 티를 낸 셈이 된 듯 하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은 것이나, 길을 가르쳐준 아녀자를 간섭한 것의 변명으로, 어사가 딱이다 싶었는데 말이다.


***


"죄송하지만 어느 지방으로 가시는 어사이신가요? 제가 알기로는, 올해 과거 시험에 합격하신 분들.. 최연소자가 33세이시고, 어사는 보통 과거 합격자 중에 뽑으신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그건 어떻게 아시오?"


"아는 분 중에 과거 시험을 보신 분들이 계셔서요."


하인현이 내 잘 알지..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어쨌든 도련님, 말씀 못 드렸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저를 잡아주셔서오. 솔직히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아까 술이 끼얹어져서 닦아드리려 했었는데, 갑자기 딴지를 거시는 바람에 잊었습니다."


딴지? 하며 발끈하려 했으나, 하인현은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말을 이었다.


"이쯤에서 헤어질까 하는데, 어떠신지요. 길을 또 잃으실 수 있으니, 저희들이 먼저 떠나면, 먼 발치에서 따라오시지요.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 근방은 가끔 해가 지면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이라, 저희도 도련님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싫으니까요."


이리 말을 쏟아놓고는, 또 대답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바로 뒤돌아 가버리는 것이다. 일행도 눈치를 보면서도, 서둘러 짐을 챙겨 하인현을 따라갔고.


***


뒤에 남겨진 세자는 황당해서 그 뒷모습만 바라보다가, 하인현의 말대로, 먼 발치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아까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도 꽤 멀다 했었는데, 정말 그랬다.


'그나저나 저 여인은 무슨 걸음이 저리 빠른가? 역시 매일 집밖을 나돌아다니는 게 틀림없어.'


***


마을 입구에서 하인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는,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더니, 다시 빠른 걸음으로 가버렸다.


그때서야 어디선가 무사들이 나타나 합류했다. 알고보니 이 마을이 수수께끼 해답으로 가는 길이었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옷매무새를 다듬던 세자는, 하인현과 마주칠 때 자신의 모습도, 술 얼룩을 제외해도 꽤 꾀죄죄했겠음을 깨달았다.


기분도 더러웠다 몹시.


***


'졌다!'

이것이 세자가 느낀 기분이었다.


차세대 지도자인데,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는 아녀자 하나도 제대로 바로잡지 못했다!'


여자는 오히려 대들더니, 어느 순간 승기를 잡았다 싶었는지, 정중하게 두드려패기까지 하고는 가버렸다.



***


세자가 이런 여자를 세자빈으로 맞고 싶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너무 늦었다. 혼례 준비를 다 끝낸 당일 아침에야, 아내가 그녀임을 알게 되었으니!


그렇다고 조선의 세자가, 현대의 영화에 나오는

'도망치는 신부'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아침에 그녀임을 알아본 후, 마음 준비에 한참이 걸렸다. 부모에 순종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어려웠던 적이 없었다.


결혼식 때도 내내, 마음을 다잡느라 온 힘을 다 썼다. 왕과 중전이 세자의 태도와 표정에서 놓친 게 하나 있다면,

'그가 생각보다 훨씬 더 세자빈을 가까이 하기 싫어했다'

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세자였다면 혼례는 치르되, 합궁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되도록 거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세자는 매우 도덕적인 인간이었다. 당시의 도덕인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효', 그중에서도 '무조건 순종'인 고로, 합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마음은 따르려 해도, 몸이 거부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


보름달 밝은 달빛 아래 휘청이며 걸어오는, 힘 하나 없는 세자를 발견했을 때, 왕과 중전이 얼마나 놀랐던지!!


안 그래도 실은 세자가 걱정되어 방안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달빛 산책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이유 자체가!


'세자의 몸이 합궁을 견딜 수 있을까?'


둘에게 이런 걱정이 없을 수 없었으므로.


젊은 신체인데다, 왕의 특별한 교육 덕분인지 워낙 체력이 좋아서, 회복이 빠르긴 했지만, 어의가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의도 대기시켜 놓았고, 자신들도 동궁전과 가까운 정자 주위에서

'달빛 데이트'

를 가장한

'비상사태 대비중'

이었다. 합궁에 방해될까 봐 너무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그런 상황에서, 합궁을 시작한 줄 알았던 아들이, 수행 내관도 없이 홀로, 곧 쓰러질 듯 힘없이 걸어왔으니, 부모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


세자 입장에서도 놀랍고 당혹스러웠다.


이 정자는 세자가 좋아하는 장소로, 뒷간과도 가까웠다. 뒷간을 들락날락거리느라 너무 힘이 빠져서, 잠깐 앉아 쉬려고 왔을 뿐이지, 어머니 아버지와 마주치려 한 것이 절대 아닌데 말이다.


부모님의 놀란 모습을 보니 몹시 죄송했고, 심부름 갖다와보니 사라진 세자를 찾아 헤매다가 뒤늦게 달려온 수행 내관이 혼날까 마음쓰였다.


그리고 굉장히, 굉장히 민망했다.


***


특히 세자빈에게 민망했다.


안 그래도 첫 만남에서 모냥 많이 빠졌다 여기고 있었는데, 첫날 밤을 남편이

'뿌지직, 뿌지직'

복통으로 뒷간에서 사느라, 방에는 들어오지도 못한 날로 기억할 것 아닌가!


'그녀 뿐인가? 온 궁궐에 소문도 나겠지! 가벼운 여자니, 친정에도 소문낼 거고, 기생들까지 쑥덕거릴지도 모른다! 결국 대신들까지도!'


세자의 힘없는 뇌는 이런 걱정까지 사서 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법 아니겠는가? 세자의 발동걸린 부정적인 생각은


'이리 위신 떨어져서, 장차 어찌 신하들을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까지 뻗어나가던 중이었다, 부모와 마주쳤을 때.


***


왕이 이를 헤아렸다. 아들 부부의 관계가 크게 틀어져버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자 나이 또래의 남녀관계란 굉장히 예민하다. 자신도 그 나이를 겪어봤으므로 알았다.


'정작 세자빈은 신경쓰지 않더라도, 세자가 민망해할 테니..'


세자 부부가 그리 되어 버리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혼례를 서둘러 치른 보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세손의 잉태가 요원해져버릴 수 있는 고로.'


***


다행히 신중하게 오랫동안 진찰한 어의가, 건강 걱정 자체는 내려놓게 했다. 스트레스를 받아 위와 대장이 긴장했을 뿐이라 진단 내린 것이다.


"다만,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합궁은 당분간 삼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왕은 세자가 안도하는 미묘한 반응도 알아차렸다. 건강이 괜찮다는 말에는 보이지 않은 반응이었다. 안되겠다.


"어찌 됐든 같이 동궁전으로 가자. 내 친히 세자빈에게 세자의 상태를 보이고, 양해를 구해야겠다."


가면서 세자에게 세자빈의 칭찬을 늘어놓았다. 평소와 달리 주절거리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끼면서.


"세자빈이 약초를 많이 안다는 건 세자도 알지 않느냐? 앞으로 복통이 생길 때는 세자빈의 도움을 받도록 해라. 부끄러워 할 것 없다. 지금이야 민망하겠지만.."


***


동궁전에 도착하였을 때, 밖에서 합궁을 감시, 지도하는 일을 맡은 상궁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세자가 뒷간에 가서 늦어지고 있다는 말을 감히 세자빈에 아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자가 원치 않는다는 전언이었고, 세자빈 또한,


"게 아무도 없느냐."

불러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거나,


"음식이 식었구나. 저하가 오시면 따뜻하게 드시게 다시 해오거라."

라고 할 만도 한데, 아무 기척이 없었기에.


합궁주라도 다시 올려야 할텐데, 자칫 새 상전의 심기를 잘못 건드릴까 저어되어, 끙끙대고 있는 것이다.


***


드디어 세자가, 심지어 왕과 중전과 함께 왔지만, 여러번 아뢰어도, 세자빈 쪽은 여전히 인기척이 없다.


그럴 만 했다.


방에 들어선 왕과 중전과 세자가 발견한 것은, 손도 안댄 주안상 옆에서, 등불만 홀로 타고 있다는 것이었으므로.


세자빈이 방 안에 없었던 것이다!


----------

-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는 **가상의** 인물, 책, 약초 등이 등장하지만, 상상의 산물일 뿐임을 주의하시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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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36 원초적 질문 26.01.12 0 0 13쪽
35 35 아버지의 청 26.01.11 0 0 11쪽
34 34 꿈 속의 여인 26.01.10 0 0 12쪽
33 33 진단명 26.01.05 0 0 12쪽
32 32 당혹스러운 깨달음 26.01.04 0 0 12쪽
31 31 의원 26.01.03 0 0 12쪽
30 30 응급상황 25.12.28 2 0 12쪽
29 29 김옥동이 겪은 일 25.12.25 1 0 12쪽
28 28 강솔찬이 겪은 일 25.12.24 1 0 13쪽
27 27 불원재회 25.12.23 1 0 12쪽
26 26 경계 경보 25.12.22 1 0 12쪽
25 25 애기씨! 25.12.21 1 0 12쪽
24 24 도둑 25.12.18 1 0 12쪽
23 23 역모죄 25.12.17 1 0 12쪽
22 22 전설 25.12.16 1 0 11쪽
21 21 투명옥 25.12.15 1 0 11쪽
20 20 김추희 장하군 25.12.14 1 0 12쪽
19 19 수사 시작 25.12.11 3 0 12쪽
18 18 그녀?! 25.12.10 1 0 12쪽
17 17 누나?! 25.12.09 1 0 14쪽
16 16 대책회의 25.12.08 2 0 13쪽
15 15 은혜갚는 방식 25.12.07 1 0 12쪽
14 14 은인 25.12.04 1 0 13쪽
13 13 어설픈 첩자 25.12.03 1 0 11쪽
12 12 위급한 순간 25.12.02 1 0 12쪽
11 11 수상한 여자 25.12.01 2 0 13쪽
10 10 아름다운 여자 25.11.30 4 0 13쪽
9 09 이름이 뭐에요 25.11.26 4 0 12쪽
8 08 의외의 제안 25.11.25 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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