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밀실 실종 수사
밀실 살인도 아닌, 밀실 실종이라니!
밖에 여러 명의 상궁이 있었는데,
'세자빈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세자가 죽을 뻔하더니, 세자빈은 사라져?!
'진돗개 1단계!'
지금 시대라면 이런 경보가 발령될 만한 국가 비상 사태다!
***
왕은 빈 방을 보자마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재빨리 움직였다. 최대한 소란 일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 결과, 세자빈 실종은 극소수 몇명만 아는,
'최고 등급 국가 기밀'
이 되었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하기 위해, 왕은 여러 상황을 활용했다.
-첫째, 왕과 중전은 굉장히 금슬좋은 부부임에도, 2남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터울도 꽤 있어서, 맏이인 세자의 혼례일인 오늘, 둘째 아들의 나이는 10살이 안 되었다.
-둘째, 세자빈의 부모도 금슬이 좋다 하는데, 무남독녀밖에 생산하지 못했다.
-셋째, 중전의 무남독녀 조카도 혼인 후 꽤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아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작년에 부부가 온천 여행을 다녀 온 후, 임신에 성공했다.
게다가 얼마전 낳고보니, 아들이었다.
-넷째, 세자빈은 간택 면접 후에, 약초를 잘 아는 것이 널리 알려졌다. 즉, 의학 지식이 있는 편이다.
-다섯째, 세자는 혼례 얼마 전에 크게 아파서, 왕이 한동안 궁 밖 출입이나 독서를 금하고, 몸조리에만 신경쓰라 명령할 정도였다.
-여섯째, 세자는 몇년전 결혼을 앞두고 대비가 급사해버렸을 때도 크게 아팠었다.
작년에 다시 혼례 얘기가 나왔을 때도 아팠었고.
-일곱째, 방금 전 상황인데, 세자가 합궁일 밤에도 아파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여덟째, 방금 전 상황에서, 왕 부부가 세자를 동궁전으로 데려다주는 것도 목격되었다. 파격대왕 부부답게, 합궁을 앞둔 아들 부부와 대화의 시간을 가지려 했다는 것까지.
***
물론 여덟째는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다.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은 맞으나, 세자빈 없이 왕과 중전, 세자 셋만의 속닥거림이었다. 가족간의 허심탄회한 대화라기보다는,
국가 최고위자들의
'긴급 기밀 회의'
였고.
의장이 파격대왕인 회의답게, 파격적인 공식 입장이 도출된.
***
"세자 부부와 대화를 나눠보니,
-첫째, 세자는 합궁에 앞서 몸을 먼저 보할 필요가 있다.
-둘째, 세자 뿐 아니라 세자빈도 아기가 잘 생기는 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셋째, 고로 둘의 온천 여행이 딱인 듯 하다.
-넷째, 단, 세자빈이 먼저 떠나고 세자는 나중에 합류하는 게 나을 듯 하다.
-다섯째, 합류 후에도 당분간 둘은 온천에 머물다 오는 게 좋을 듯 하다.
라는 결론에 이르러, 내일 당장 세자빈 먼저 온천으로 떠나기로 했노라."
는 것이 왕의 공식 입장이다.
***
다음 날 신하들에게 발표할 때,
"나머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터이니, 넷째 항목을 보충 설명하면,"
이라 운을 떼었는데, 대충 이런 설명이다.
"아기가 잘 생기고 건강하려면, 여자 먼저 자궁의 기운을 충분히 보하는 동안, 합궁은 미루는 게 좋은데, 둘이 가까이 있으면 어려운 바, 한동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대충 말이 되게, 왕이 지어낸 근거이다. 왕 또한 아기가 안 생겨서 이것 저것 알아본 사람이라, 산부인과 지식이 조금 있었기에 가능했다. 뜨거운 신혼을 보내본 남자라면, 뒷부분에 딴지를 걸 신하는 없을 것이고.
***
이것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덕종대왕의 '파격의 왕' 에피소드 중 하나인
'세자 부부 냅다 신혼 여행 보내버리기'
의 진실이다.
***
합궁 장소에서 열린 긴급 기밀 회의로 다시 돌아가보면,
언년이를 세자빈 대역으로 보내기로 했다.
세자가 세자빈을 처음 만났을 때 함께 있던 몸종으로, 세자빈이 궁에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왔다.
'바로 준비시킬 수 있다'
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모셔온 몸종이니, 충성심이 강할 것이라는 것이다. 세자빈에 대해, 특히 습관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고.
"따라서 그만한 대역이 없다."
라고 왕이 속삭였고, 중전과 세자도 바로 동의했다.
***
마찬가지 이유로, 세자빈 실종 사건 수사도
"세자가 직접 맡는 게 가장 좋겠구나."
라는 것이 왕의 판단이다.
'밀실 실종 트릭'을 밝혀내는 것을 비롯해, 궁내 수사는 왕이 맡되, 궁 밖에 나가 세자빈 주위를 수사하는 것은 세자가 직접 하라는 것.
***
이번 기밀회의는 세자에게 또다시 감탄을 안겨주었다.
'아바마마는 역시 판단이 화살처럼 빠르시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어찌 이리 빠르게 이런 대책들을 생각해내실 수 있으실까?!'
한편으로는 자신은 절대 저 경지에 못 도달할 것 같아서, 차기 군주로서의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곧바로
'아바마마는 신의 경지이시니, 나는 인간 중에서는 그래도 낫다..하는 경지까지만이라도 가자. 그러면 성군 소리는 못 들어도, 나름 훌륭한 왕까지는 가겠지.'
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가졌지만 말이다.
예전에 어마마마한테 배운 태도대로.
***
"중전이 세자와 세자빈의 온천 여행을 맡으시오."
동궁전을 나서며, 상궁들 앞에서 왕이 아내에게 공식적으로 준 이 미션은, 물론 이미 방금 전 회의에서 논의한 바다.
언년이를 수행할 상궁과 궁녀 등 사람을 뽑는 일만 해도,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하므로, 굉장히 무거운 책임이다. 중전이 적임자이다.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중전도 오늘 밤 밤을 세울 것이다. 밤새 생각할 테니까.
***
"세자는 오늘밤 침소를 세자빈에게 양보하도록 해라. 잠자리를 옮기는 것도 번거로울 것이다. 먼 길을 먼저 떠나야 하니, 잠을 편히 자게 하자꾸나."
중전은 짐짓 세자에게 이리 말하고는, 자기 침소로 떠났다.
"대신에 이 아비와 혼례 축하주를 나누는 게 어떻겠느냐?"
왕은 짐짓 세자에게 이리 말하고는, 세자와 함께 떠났고.
***
왕과의 독대에서 세자는 굉장히 놀랐다. '세자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왕이 진실을 말해줬으므로.
'첩자가 아니라, 내부의 적 소행이라고?!'
세자가 죽을 뻔 한 게 사람의 공격 탓이라는 것은 기밀이었다. 앞에서 말했듯,
'공식적으로는 혼례 얼마 전인 봄에 크게 아팠던 것'
으로 되어 있다.
세자도 물론 왕이 이 사건을 극비리에 수사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세자의 호위 무사들이 직접 수사하고 있었으나, 세자의 건강이 걱정된 왕이, 세자와의 접촉을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진짜 내막을 알면, 세자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
실제로 세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몇몇 신하만이 이 기밀을 알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사실은 용의자라니!!'
왕은 사랑하는 아들이 충격받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네가 죽임을 당할 뻔한 것과 세자빈이 사라진 것이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더이상은 숨길 수가 없구나."
라며, 왕은 세자빈 실종 사건을 수사하면서, 누구와 누구, 이것과 이것 등도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단! 수사하는 티를 낼 것이면, 차라리 살펴보지 않는 게 낫다. 알겠느냐?"
***
세자는 또한번 부왕에 대해 감탄했다.
'아바마마는 그동안 이런 티를 어떻게 하나도 안 내실 수가 있으시지?'
세자가 묻자, 왕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처음에는 나도 눈이 뒤집혀서 피바람을 일으킬 뻔 했다. 감히 너를 죽이려 했는데, 어찌 아니 그러하겠느냐? 하지만 군주는 외로운 법이다.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명심하거라."
***
"그리고 이것은 내가 장난기가 발동해서, 때가 될 때까지 말 않으려던 것이다만.."
이리 말을 꺼낸 왕은, 세자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놀라운 사실을 하나 더 알려주었다.
또다른 충격이었다. 세자빈 이야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
왕의 걱정이 더 클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아버지를 안심시키려 하는 한편, 세자는 비로소 아침에 아버지에게 느꼈던 배신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자빈에 대해, 왕조차 상상도 못했던 것이 있었으니,
그녀에게
'짝사랑남이 있었다'
는 것이다!
***
하인현도 처음에는 못 느꼈다. 밤에 누워 이불킥 하며 분개했을 뿐.
"아니, 그게 무슨 태도야? 나는 엄연히 도움을 준 사람인데, 죄인 취급이나 하고!"
물론 스스로도 양심에 찔리긴 했다. 길을 가르쳐 준 도움이 큰가, 다치지 않게 잡아준 게 큰가?
***
그런데 거기에 생각이 닿으면,
"아유, 더워! 아직 꽃샘추위도 있는데 왜 이리 더운 거야!"
하며 벌떡 일어나 나가, 밤바람을 쐬게 된다.
다치지 않게 잡아주던 순간이 눈 앞에 떠오르면, 필연적으로 볼이 빨개졌으므로.
그 짧은 순간
'그녀의 허리에 닿았던 그의 손의 감촉이,'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듯 했으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의 심장은 그때만큼이나 빨리 뛰었으므로.
쿵쾅쿵쾅! 쿵쾅쿵쾅! 쿵쾅쿵쾅!
***
결국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 짝사랑에 빠진 거구나!'
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말이다.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그런 거 모르고 살 줄 알았는데, 자나 깨나 그 귀공자가 생각나다니!
***
'어째서 방자도 없이 혼자 산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일까?'
라는 호기심이 생겼었다.
오랫동안 험한 산길을 헤맸다는 것을 인증하듯, 찢기고 긁히고 꼬질꼬질해지긴 했지만, 입고 있는 옷의 고급 원단을 봤을 때, 돈 많은 유력 가문 자제가 틀림없으니까.
아까 보여준 묘기만 봐도, 하인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서생은 아님이 확실하지만 말이다.
'눈이 참 크고 맑구나! 자신감에 차 있고.'
가 첫인상이었는데,
눈 뿐인가? 다부진 입매나 자세에서도 자신감이 보였다. 쭉 뻗은 콧대와 짙은 눈썹마저 당당해보였고.
훤칠한 귀공자였다. 큰 키, 넓은 어깨, 탄탄한 몸매나,
'파란 가을 하늘이 생각나게 하는'
맑은 눈이,
그날의 고생으로 인한
'일시적인 꾀죄죄함'
에 가려지지 않는 도령.
그땐 그게 문제였고.
***
그가 기생 놀음이라 했기 때문인데, 속으로 수긍하긴 했다. 어머니의 걱정이 딱 그거니까.
"인현아, 제발! 자꾸 기생하고 어울리면, 누가 너를 데려가겠느냐?"
아무리 혼내도 자꾸만 기생과 만나 가야금을 배우니, 어머니가 거의 빌다시피 한 것이다.
"가야금이 뭐가 어때서요? 양반들이 안 듣는 음악인가요? 남편이 듣는데 아내가 연주하는 게 뭐가 문제에요? 오히려 좋죠. 남편이 기생집이나 잔칫집 안 가도 음악을 즐길 수 있잖아요?"
말빨로 이길 수 있는 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이나 시부모는 말빨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않은가? 험한 소문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어머니는 다른 건 다 놔둬도, 기생에게 가야금 배우는 것만큼은 말리려 했다.
"너 자꾸 집안 망신 시킬래? 이러다가는 혼례도 못 치르고 죽은 처녀 귀신이 되거나, 소박 맞고 쫓겨온 죄인이 되거나라는 걸, 몇번을 말해야 알겠니!"
그래서 들에 가서 배우는 것이다. 어린 아이의 반항심으로는
'소문, 소박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섭지만, 어머니가 너무 질색팔색하니까!
어차피 약초 캐러 산에 자주 가니까.
***
하지만 사실은 세자와 마주친 곳이 레슨 장소는 아니었다. 평소에는 경치가 좋지만 다 쓰러져가서 인기없는, 그래서 실속 있는 정자에서 만난다.
그리고 사실 장구는 그날 처음 배운 것이었다. 장구와 북은 가야금보다 소리가 크기 때문에, 그날은 좀더 인적이 드문 곳까지 올라간 것이었고.
그건 어머니한테 또 걸리기 싫어서일 뿐이었으나, 그 도령이 가르치려 들었을 때,
어머니의 경고가 처음으로 와 닿았다.
'내가 진짜 가문 망신이 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것이 말이다.
***
게다가 도령의 옷이든 태도든 말투든 모든 것이 유력 집안 자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아버지께 화가 미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이 아니 생길 수 없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영의정 아들이라면, 자기 아버지한테 말해서, 아버지를 자리에서 내쫓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도령의 태도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럴 것 같았고.
***
'어사래. 웃겨.'
이쪽이 누군지 끝내 몰랐을 테니 다행이다 생각하다가, 그쪽 변명에 생각이 가 닿아 피식 웃기도 했다.
"저 기생인데요."
라는 식으로 반응한 게 더 어이없는 일임을 자신도 알고 있지만,
'나는 어쩔 수 없었고.'
라면서,
'그냥 좀 넘어가지, 뭘 그렇게 끈질길게 알려 해!'
라고 괜히 혼자 화를 내기도 했고.
***
호랑이 얘기도 사실은 거짓이었다. 트집을 계속 이어가는 도령이 얄미워서 해본 말.
'별로 무서워했을 것 같진 않아.'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 간섭이 지나친 도령의, 자신감 있는 모습과 태도로 봤을 때 말이다.
꾀죄죄해진 옷조차도 맵시를 좋게 해준, 도령의 탄탄한 몸매와 큰 키로..
말 그대로 화룡점정인, 파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눈으로..
자신을 안아 빙그르르 돌리는 것만으로 넘어지지 않게 막아준 그의 묘기로 이어지는 생각이었다.
***
아니, 솔직히 그 어떤 생각도 그 도령 생각으로 이어졌고, 결국에는 그 묘기와 그로 인한 스킨십이 종착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날 이후 하인현은 열이 있냐, 어디 아프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왜 이리 자꾸 얼굴이 빨개지냐고.
이러니 하인현이 세자와 결혼을 하고 싶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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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이 이야기에는 **가상의** 인물, 책, 약초 등이 등장하지만, 상상의 산물일 뿐임을 주의하시라는 말씀을 다시 한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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