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현 (1)
“포기하시죠.”
의사의 입술이 그렇게 움직였다.
삐이이-.
순간, 귀에서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하얀 형광등 아래.
차가운 공기가 피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
강주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의사의 말은 명확했다.
치료 불가.
“이미 유전자 대부분이 변이되었습니다. 아무리 마석을 투여한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목소리가 무심하다.
그건 수십 번의 사망 선고를 반복한 사람의 말투였다.
그러나 주언의 세상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무너졌다.
강주언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손가락 관절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제 환자분은 몬스터가 되어갈 것입니다. 그 전에-.”
“선생님······뒷말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짐승의 울음처럼 들렸다.
탑이 나타나고 3년.
세상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그 중 가장 좆같은 것이 바로 이 병이었다.
‘몬스터 화’.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몬스터가 되어버린다.
“하필이면······.”
눈앞에서 배지현이 숨을 쉬고 있었다.
산소 마스크가 들썩인다.
여전히 예쁘다.
창백한 얼굴에,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
“지현아.”
손끝이 떨린다.
피부에 닿는 체온이 믿지기 않았다.
이 감각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찢어졌다.
강주언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방법을 찾을게.”
옆에 있던 의사가 눈치 없게 끼어들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그 말에, 강주언은 미세하게 웃었다.
“그건 선생님 생각이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는 차가운 마찰음을 내며 뒤로 밀렸다.
병실 문이 닫히는 순간, 숨이 막힐 듯한 정적이 따라왔다.
서울.
붉은 노을이 병원의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린다.
‘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한강 위, 바람이 불던 날이었다.
배지현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그런데도 포기하라고?
“지랄하지 말라고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의 웃음을 되찾고 말 것이다.
약속했으니까.
“몬스터화에 걸렸다면서요?”
낯선 목소리였다.
강주언은 고개를 들었다.
하얀 복도.
형광등 불빛 아래에 여자가 서 있었다.
긴 머리, 검은 패딩, 마스크.
눈만 드러나 있었다.
그녀가 강주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엿들어서 미안해요. 여자친구 분이라고.”
“······.”
“치료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뭐라고요?”
강주언이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돈이 좀 든대요.”
돈이라면 괜찮다.
병원비 때문에 집을 팔고 남은 돈이 있다.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여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오늘 밤 안에 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몰라요.”
배지현이 누워있는 병실 문을 돌아봤다.
기계음이 일정하게 울리고 있었다.
“가죠.”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었다.
병원 밖 공기는 매서웠다.
밤이었다.
거리엔 택시 불빛과 뉴스 전광판이 얽혀 있었다.
「속보. 화랑 길드 탑 32층 공략 실패. 사상자 19명. 생존자 12명. 브레이크까지 남은 시간 약 48시간.」
붉은 자막이 번쩍였다.
앞에서 일정하게 걷고 있던 여자가 손가락으로 저 멀리 가리켰다.
회색 하늘을 가르는 검은 그림자.
서울의 중앙.
그곳에 수십 층 빌딩들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탑이 있었다.
탑의 중앙에 빛을 내고 있는 커다란 숫자가 보인다.
「47: 58」
“저 시간까지 새로운 층을 공략하지 못하면 서울도 브레이크가 발생한대요.”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는 계속 말했다.
“브레이크가 터지면 저 탑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나봐요. 베이징에서도 그래서 난리가 났었잖아요.”
“······.”
“그 사람도 저기에서 왔어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 사람?”
“당신 여자친구를 살릴 방법을 아는 사람.”
강주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조용히 울렸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도시의 끝자락.
버려진 공장 지대였다.
가로등은 꺼져 있었고, 공기엔 먼지 냄새가 짙었다.
“들어가요.”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낡은 건물이다.
페인트가 벗겨진 철문.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강주언은 문 앞에서 잠시 섰다.
“여기, 맞아요?”
“맞아요. 안심해요.”
여자가 웃었다.
“그 사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 미소가 묘하게 불편했다.
강주언은 손을 코트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낡은 기계들.
어둡고 눅눅한 냄새.
안에는 몇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차가웠다.
강주언은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요. 금방 끝날 거예요.”
쾅.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뭐야, 이건.”
강주언이 몸을 돌리는 순간, 뒤에 있던 여자가 가방을 열었다.
찰칵.
금속음.
그녀의 손에서 삼단봉이 튀어나왔다.
“씨-.”
말이 끝나기도 전에 봉이 날아왔다.
휘두르는 궤적이 매끄러웠다.
한두 번 휘둘러본 솜씨가 아니다.
반사적으로 팔로 가로막았다.
퍽!
팔에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고통을 참아내며 주먹을 휘둘렀다.
퍽!
삼단봉을 쥐고 있던 여자의 얼굴이 틀어졌다.
피가 튄다.
비틀거리던 그녀가 쓰러졌다.
“저 새끼가!”
“와, 새끼. 여자고 뭐고 바로 갈겨버리네.”
건물 안에 있던 남자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낡은 의자가 밀리며 바닥을 긁었다.
강주언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무언가가 손가락에 걸렸다.
너클.
쇠로 된 싸구려 무기.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었다.
쳐다보고 있으면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걸 쥐면 이상하게 힘이 솟았다.
강주언은 손가락을 끼웠다.
금속이 손등을 조인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 더러웠는데.”
그가 으르렁거리듯 중얼거렸다.
“잘 됐다. 자신 있으면 덤벼봐.”
남자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공기 속에 긴장감이 섞였다.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누군가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쳐 죽여!”
쇠파이프, 몽둥이, 야구방망이.
무기를 든 남자들이 공시에 달려들었다.
강주언은 몸을 낮추며 맨 앞의 놈의 복부를 찼다.
“컥.”
숨이 터졌다.
동시에 몸을 숙인 녀석의 턱을 후려쳤다.
피와 침이 사방으로 튄다.
“하나.”
옆에서 달려드는 남자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둘.”
강주언은 무표정하게 움직였다.
눈빛만은 차가웠다.
그러나 그때, 뒤에서 무언가가 휘둘러졌다.
퍼억!
쇠파이프가 어깨를 후려쳤다.
뼈가 울린다.
시야가 흔들렸다.
“컥.”
강주언이 그대로 고꾸라졌다.
바닥의 먼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쇠맛이 느껴진다.
“지금이야! 죽여!”
남자들이 몰려들었다.
발길질이 그의 몸을 짓밟았다.
타격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퍽, 쾅, 푹.
팔, 옆구리, 머리, 등.
모든 방향에서 주먹과 발이 쏟아졌다.
피가 입안에 고인다.
강주언이 고개를 들었다.
한쪽 눈이 피로 덮여 있었지만, 눈빛은 또렷했다.
씨익.
피범벅이 된 상태로 그는 웃고 있었다.
“웃어?”
“완전히 미친 새끼네, 이거.”
강주언은 너클을 낀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까지 맞았던 고통들을 떠올리며.
순간, 손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그리고.
콰앙-!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터졌다.
바닥의 먼지가 일제히 튀었다.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몸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다른 놈들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졌다.
숨이 멎은 듯한 정적.
강주언은 천천히 일어섰다.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기분 좀 풀리네.”
바닥에 쓰러진 남자들이 신음했다.
방금까지 폭력을 휘두르던 그들의 눈이 공포로 얼어붙어 있었다.
강주언은 너클을 내려다봤다.
그 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심장박동과 같은 리듬으로 진동했다.
“진짜 죽을 것처럼 아프지?”
강주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너희 오늘 여기서 죽을 거야.”
정적이 가라앉았다.
남자들의 눈이 커졌다.
먼저 맞고 쓰러졌던 여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딱 한 명.”
강주언이 입구를 막은 채, 너클 낀 손을 빙글 돌렸다.
“‘몬스터화’ 치료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진 한 놈만 살려준다.”
덜덜 떨던 남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깝습니다!”
남자의 턱이 덜덜 떨린다.
강주언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거짓말이면 찢는다?”
“부모님 다 걸 수 있습니다.”
“기다려.”
강주언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쇠파이프를 들었다.
“약속은 지켜야 하니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공포에 질린다.
“사, 살려주세요! 저 진짜 불쌍한 놈입니다!”
엎드려 빌기 시작하는 남자.
강주언의 입꼬리가 삐뚤게 올라갔다.
“너희는?”
“네?”
“사정 봐두면서 이런 짓 했냐?”
강주언은 사정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
잠시 후, 철문이 열렸다.
열린 철문 사이로 피비린내와 함께 강주언과 남자가 걸어 나왔다.
“이, 이쪽입니다.”
남자가 강주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앞장 서.”
그를 앞장 세운 채 길을 따라 걸었다.
가로등도 없는 골목은 어두웠다.
고양이 울음 같은 바람이 틈을 헤집었다.
“저기입니다.”
앞에서 걷던 남자가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잘 알고 있는 거, 확실해?”
“어떤 병이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돈만 준다면······.”
골목 끝에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칠해져 있었다.
핏물로 그린 것처럼 검붉은 색이다.
문 앞에서 남자가 멈췄다.
“저, 다 알려드렸는데. 이제 전 가도 되지 않을까요?”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강주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고리를 잡아 당기자, 그대로 문이 열린다.
열린 문 사이로 남자의 등을 눌러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천장에 벌거벗은 전구가 달린 거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의 활짝 열린 방.
그곳에 마법사가 있었다.
기괴한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드러난 발가락에는 어울리지 않는 은반지가 몇 개 끼워져있었다.
옷자락에는 뼛조각들이 매달려 흔들거린다.
“오랜만이로다. 초대 받지 않는 자가 여기에 오는 것은.”
마법사의 목소리는 낮았다.
겁을 먹어 움직이지 않는 남자의 등을 억지로 떠밀었다.
“잠깐만! 잠깐!”
남자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마법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착각하지 마라.”
그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벽에 구멍이 열린다.
희미한 붉은 연기가 그곳에서 흘러나왔다.
눈이 따끔거린다.
“날 만날 수 있는 건 죽은 자뿐이다.”
마법사가 속삭였다.
“죽음을 마시고, 나를 보아라.”
독한 냄새가 확 퍼졌다.
남자가 기침을 하며 바닥에 엎드린다.
강주언이 그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그리고 연기가 나오는 구멍에 그의 얼굴을 처박았다.
“끄악-!”
남자의 비명이 뚝 끊겼다.
버둥거리던 그의 몸이 축 늘어진다.
“으하하하하하.”
마법사가 크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눈이 맵고, 폐가 쓰리다.
하지만 얼굴에 힘을 주고 마법사 앞에 앉았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몬스터화’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정적이 내려앉았다.
천장의 전구가 한 번 깜빡였다.
어딘가에서 들리는 물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몬스터화? 내가 잘 안다.”
그가 몸을 앞으로 당겼다.
로브 자락이 바닥을 스치며 뼛조각이 소리를 낸다.
“거래하자.”
마법사가 웃었다.
“네 손에 끼고 있는 그거. 내게 넘겨라.”
강주언의 손이 미세하게 굳었다.
“주면 알려주리라. 방법을.”
마법사의 미소가 깊어졌다.
-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작품을 시작합니다.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선작과 추천은 작가에게는 '마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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