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지현 (2)
강주언은 너클을 내밀었다.
손이 떨린다.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배지현은 절대 잃을 수 없었다.
마법사는 그것을 받아 들고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꼬리가 길게 찢어진다.
“치료법은 탑에 있다.”
마법사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이가 절반이나 되지만.”
“살아서 각성자가 되는 사람이 절반이나 됩니다.”
강주언의 대답에 마법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특별히 알려주리라. 마음에 들었으니.”
머리가 벽에 박힌 채, 축 늘어진 남자를 보고 다시 낄낄거린다.
아무리 좋게 봐도 미친놈이다.
하지만 저 미친놈이 배지현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놈이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강주언은 그의 웃음이 끝나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마법사가 어깨를 미세하게 올렸다.
“데려가라. 몬스터화에 걸린 너의 여자를.”
의식도 없는 사람을?
강주언이 물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탑에서는 ‘몬스터화’가 멈추리니.”
듣고 있던 강주언의 눈이 커졌다.
“정말입니까?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죠?”
마법사는 대답 대신 입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녹색으로 물든 그의 어깨가 보인다.
아니, 단순히 녹색이 아니다. 물고기의 비늘처럼 되어버린 피부.
“내가 증거니라. 탑이 시대에 내린 저주조차 이겨낸 이가 바로 나로다.”
강주언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았다고?
“그 병을 나았다는 말씀입니까?”
입 밖으로 나오는 목소리가 떨린다.
“내가 몬스터로 보이는 않겠지.”
“몇 층입니까? 몇 층에서 그 병의 치료제를 구할 수 있죠?”
“시련은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다, 우매한 것아.”
“그래도 그 정도는 알려주실 수 있잖아요.”
마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따금씩 뒤쪽에 축 늘어진 남자를 보며 낄낄거릴 뿐이다.
대답해줄 생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그래도 좋은 정보를 얻었다.
물론 마법사의 정신 상태를 보면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서울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도 손을 놓아버린 이상, 충분히 시도할 가치는 있었다.
“크크크.”
마법사는 강주언이 넘긴 너클을 보며 웃고 있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 너클, 팔 겁니까?”
“이것의 가치를 네가 알고는 있느냐? 이것의 진정한 가치를 알 리가 없지. 탑이 내려준 기적도 없는 녀석이.”
“좋습니다. 팔지 말고 잘 가지고 계십쇼. 내가 꼭 찾으러 올테니까.”
마법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선명한 비웃음이 그의 얼굴에 걸려있었다.
“좋다. 이것보다 가치 있는 것을 가져온다면.”
“물론입니다.”
강주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깊숙하게 숙여 마법사에게 인사를 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손에 들린 너클을 바라보다가.
휙 몸을 돌렸다.
“죽지나 마라.”
“아직 그럴 생각 없습니다.”
뒤에서 들리는 마법사의 낮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강주언은 건물을 빠져나왔다.
**
병실로 돌아왔다.
배지현의 숨은 여전히 가늘다.
산소마스크를 조심히 벗겼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가자.”
배지현을 업었다.
가볍다.
너무 가볍다.
그녀의 손이 허공에서 흔들렸다.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그렇게 두 사람은 병원을 떠났다.
“백호 길드에서는 이번 32층 공략과 관련해서······.”
“정부에서는 브레이크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탑이 가까워지자, 방송국 장비와 기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형님들, 이번에는 제가 정말로 탑에 들어가서······.”
“탑은 신이 인류에게 내려주신 선물입니다!”
그밖에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까지.
탑 주변 안전 지대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금만 참아, 지현아.”
강주언은 배지현을 고쳐업고, 잠시 늦췄던 발걸음을 다시 재촉했다.
각자의 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탑으로 향한다.
도심의 불빛과 멀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따라붙었다.
“······사람을 업고?”
“또 죽으러 가는 놈이 또 있네.”
“형님들, 저기 보여? 여자를 왜 업고-, 아, 진짜. 형님. 나 오늘은 정말로 들어갈거라니까?”
낯선 목소리들이 귓가를 스친다.
혀를 차기도 하고, 휴대폰을 들이대기도 한다.
강주언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저 걷기만 했다.
어두운 길의 끝에서, 탑이 보였다.
검은 거탑.
도시의 심장에 박힌 흑철의 덩어리.
가까이 다가갈수록 숨이 막혀오는 것 같다.
공기가 진흙처럼 끈적하게 느껴졌다.
탑의 입구 근처에는 안전선이 쳐져 있었다. 근처에 있던 요원이 말했다.
“탑에 들어가면 절반은 죽는 거 알고 있죠?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괜찮아요.”
그 말과 함께 강주언은 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요원들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그런데 저 사람, 여자는 왜 업고 가는 걸까?”
“알 게 뭐야. 어차피 조금 있으면 울면서 내려오겠지.”
“하긴. 오늘은 몇 명이나 다시 내려오려나.”
요원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탑으로 향했다.
밤하늘보다 더 까만 어둠.
그 어둠을 드러내고 있는 탑의 입구.
그 앞에 이미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망설이고 있었다.
중얼거리기도 하고, 울고 있기도 했다.
막상 여기까지 와놓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
강주언은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사람까지 업고 들어가나?”
대기하고 있던 사람 중 누군가 말을 걸었다.
눈가에 잔주름이 있고,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인상 좋은 중년 남자였다.
바짝 말라있는 입술만 아니었다면 더 그랬을 것이다.
“나야 인생이 막장까지 몰려서 여기 오긴 했는데. 자네는 아직 창창한데.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겐가?”
“······.”
남자는 뒤에 업혀있는 배지현을 슬쩍 보았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빌어먹을 몬스터화. 후우. 내 마누라가 생각나는구만. 자네도 고생 많았네. 정말 많았어.”
붉어진 눈시울로 위로해주는 남자.
강주언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였다.
“가보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나간다.
사람들의 시선이 강주언에게 모여들었다.
이제 탑의 입구까지 한 걸음.
누군가의 숨소리가 멎었다.
강주언의 발끝이 입구를 지나는 순간, 공기가 일그러졌다.
“나도. 나도 가야지!”
노란색으로 염색을 한 예쁘장한 여고생이 강주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에잇, 시발! 죽기보다 더해?”
“간다. 나 진짜로 가!”
뒤이어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마침내 탑이 그들 모두를 삼켰다.
**
“!”
공기가 뒤집혔다.
귀가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눈앞의 공간이 갈라졌다.
빛이 휘어지고, 그림자가 소용돌이쳤다.
강주언은 배지현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어어억!”
누군가의 비명이 들렸다.
인상 좋던 중년 남자였다.
비틀거리던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몸이 하얗게 타오르다가 사라진다.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강주언은 더욱 거칠게 바닥을 내딛었다.
“꺄악!”
“컥!”
한 명. 또 한 명.
입구를 통과하던 사람들이 쓰러졌다.
살갗이 갈라지고, 눈처럼 녹아내린다.
그들의 시체는 빛이 되어 사라졌다.
“지현아, 버텨.”
강주언은 이를 악물었다.
한 발, 또 한 발.
그 순간, 무언가가 심장을 쥐었다.
“큭!”
숨이 멎었다.
눈앞이 하얘진다.
얼어붙은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자격 검증 중]
심장이 조여들었다.
손끝이 시렸다.
눈앞에 배지현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제발······지현아, 제발.’
그 순간.
빛이 터졌다.
[당신은 각성하였습니다.]
[강주언]
[특성: 실드]
[보유 스킬]
[액티브]
실드 lv.1
[패시브]
-
눈앞에 푸른 빛의 글씨들이 떠오른다.
숨이 터져나왔다.
공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살았다.”
강주언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탓에 다리가 주저앉으려고 했다.
하지만 등 뒤의 온기가 여전히 느껴졌다.
“지현아!”
캐리어는 던져버리고 그녀를 감싸 안았다.
미약하게 뛰고 있는 배지현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살아있다.
정말로 살아있다.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오빠?”
순간.
세상이 멎었다.
귓가를 스치는 낮은 속삭임.
환청이라 생각했다.
강주언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멍한 얼굴로 배지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빠.”
입술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미약하게 느껴지던 심장 박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배지현의 속눈썹이 떨리더니.
조용히 눈을 떴다.
창백했던 얼굴에 빛이 스며들었다.
“여기 어디야?”
“지······지, 지현아.”
목이 잠겼다.
호흡이 엉켜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살아있어. ······너 지금, 지금 살아있어.”
강주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숨을 들이쉬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말도 안돼. 병원에서도 다 포기하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흘렀다.
뜨거운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웃었다.
울면서 웃고 있다.
배지현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손끝으로 강주언의 얼굴을 더듬었다.
“울어?”
“그래······울어.”
“왜?”
“너가 살아있잖아.”
“그럼 안아.”
포옥.
배지현이 강주언의 품에 안긴다.
“······지현아?”
품에 안겨있던 그녀의 몸이 움직인다.
강주언은 숨을 삼켰다.
배지현이 그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깐만 움직이지 마!”
강주언이 부랴부랴 손을 뻗었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으며, 허둥대는 눈빛으로 외쳤다.
“아직 회복도 안 됐는데, 갑자기 일어나면-.”
“손.”
짧은 한 마디.
배지현이 시선을 들었다.
“응?”
“손 치워.”
강주언의 손이 얼어붙었다.
슬쩍.
눈을 피하며 손을 거둔다.
배지현은 아무렇지 않게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을 주더니, 마치 방금까지 혼수상태였던 게 거짓말처럼 자연스럽게 섰다.
“······거짓말이지?”
강주언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듯 바라보는데 눈동자가 자꾸만 떨린다.
“괜찮아? 어지럽진 않고? 손가락 움직여봐. 숨은-.”
“시끄러워.”
배지현이 단호하게 잘랐다.
“······.”
단숨에 조용해진 강주언을 바라보다가 한 발 다가섰다.
그의 시야에 그녀의 눈동자가 담겼다.
“많이도 울었네.”
배지현의 손이 그의 볼에 닿는다.
뜨거운 눈물이 묻어났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기억하고 있던 그 미소 그대로였다.
“울지 마. 나 여기 있잖아.”
그 말에 강주언도 따라 웃었다.
“여긴 탑이야.”
“탑?”
배지현이 늦게 중얼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강주언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손끝이 아직 떨렸다.
“살았어!”
뒤쪽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강주언의 뒤로 따라붙었던 노란 머리 여고생이었다.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진다.
“살았다고! 각성했어! 이제 나도!”
강주언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
다른 사람도 살아남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운 좋은 애네.”
시크하게 뱉은 말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묘한 안도가 비쳤다.
여고생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그쪽도 각성한 거죠? 우리 같이 다녀요! 일단 어디부터-.”
말을 끝맺지 못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가 칼로 그녀의 목을 사정없이 그어버렸다.
피가 허공에서 터진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여대생의 몸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강주언은 반사적으로 배지현을 감싸 안았다.
눈앞으로 뜨거운 피가 튀었다.
피 냄새와 금속 냄새가 뒤섞여 공기를 뒤덮었다.
키이이!
괴이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작고 비틀린 몸. 날카로운 이빨.
고블린이었다.
그냥 고블린은 아니다.
단단해보이는 갑옷, 검붉은 빛이 도는 단검까지.
“내 뒤에 있어.”
강주언은 숨을 고르며 한 걸음 물러섰다.
무기나 방어구는 없지만, 각성한 능력이 있었다.
[강주언이 ‘실드 lv.1’을 발동합니다.]
단지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만으로 스킬이 발동된다.
고블린이 달려들면서 날카로운 단검을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팔을 올렸다.
텅!
파편처럼 흩어진 빛이 눈앞에서 번쩍였다.
“어?”
팔로 날아오는 검을 막았다.
그런데도 아프기는커녕 아무 느낌이 없다.
마치 보이지 않는 단단한 막이 팔 위에 씌워진 느낌.
텅! 텅!
고블린이 하는 공격을 연속해서 막아낸다.
잠깐만.
그런데 이렇게 막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전투를 끝내려면 저 고블린을 죽여야 한다.
‘무기로 쓸만한 날카롭거나 단단한······응?’
고블린이 다시 뛰어올랐다.
강주언이 숨을 들이켰다.
“모르겠다.”
강주언의 눈빛이 번뜩인다.
주먹을 말아쥐었다.
주먹 위로 실드가 덮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에.
시야에 들어온 고블린의 머리통에 주먹을 날렸다.
퍼걱!
고블린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터졌다.
- 작가의말
드디어 탑에 입장했네요.ㅎㅎ
오늘은 5화까지 올릴 예정입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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