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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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기 일행이 떠나고, 하루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강주언과 배지현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당연하잖아. 이제 먹을 것 걱정도 없는데, 여기에서 최대한 마석을 벌어가면 좋지.”
“맞아!”
머물던 폐건물을 중심으로 사방을 돌면서 마석 노가다를 시작했다.
밥을 잘 먹었더니 더 잘 깨지는 것 같다.
퍼걱!
이 녀석이 마지막이다.
녀석의 시체가 하얗게 타서 사라지고, 마석 대신 아이템 하나가 떨어진다.
누렇고 뾰족한 것이 고블린 이빨이다.
잠시 고민하던 강주언은 그것을 주워 인벤토리에 넣었다.
배지현이 잡템은 모두 주워놓으라고 했다.
“오빠! 오빠!”
뒤쪽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고블린들 이만큼이나 모아왔어!”
정말이다.
열 마리에 가까운 고블린들이 괴성을 지르며 배지현을 쫓고 있었다.
여유롭게 잡텝과 마석을 줍던 강주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으아악! 지현아!!!”
“와아! 얘는 좀 빠른데?”
무슨 술래잡기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강주언은 기겁하며 고블린들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강주언이 ‘실드 lv.1’을 발동합니다.]
“손대지 마!”
배지현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던 고블린의 대가리가 제일 먼저 사라졌다.
키에에!
고블린의 포효가 어쩐지 비명처럼 들렸다.
정신없이 후려치다보니, 마지막 고블린만 남았다.
녀석의 칼질을 실드 두른 팔로 막아내고, 대가리를 깨주었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남김없이 대가리를 깼다.
“후우.”
깊게 숨을 내쉬고 몸을 휙 돌렸다.
이번에야말로 따끔하게 혼을 내야겠다.
떨어진 템들을 줍고 있는 배지현을 향해 소리쳤다.
“지현아, 너!”
“오빠, 여기 마석. 잡템은 나 줘.”
“아? 으, 응.”
화를 내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오빠는 여전하네.”
“응?”
“낯가리는 거. 나한테는 말 이렇게 잘하면서.”
고블린이 떨어뜨린 천 조각을 주우며 배지현이 말했다.
“낯가리는 거 아냐.”
“치, 그럼 뭔데?”
“못 믿는 거지.”
쓴웃음을 지으며 마석들을 모두 인벤토리에 넣었을 때였다.
“어?”
배지현이 놀란 소리를 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
그쪽으로 두 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아는 얼굴이었다.
“어이, 여기 있었네!”
김두기였다.
손까지 흔들며 다가온다.
입가엔 여느 때처럼 사람 좋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배지현도 손을 마주 흔들어주며 인사한다.
“하하하. 잘 있었어요?”
김두기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아무 말 없이 그것을 쳐다보던 강주언이 옆에 있던 남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누구죠?”
“하하하. 얘는 내가 아는 동생이에요. 그쪽이 준 물건을 보더니 자기도 좀 사고 싶다고 하지 뭐에요. 하하하.”
여전히 내밀고 있던 손을 멋쩍게 흔들며 말했다.
190은 훌쩍 넘어보이는 큰 키를 가진 남자였다. 덩치도 그에 어울리게 우람하다.
남자가 씨익 웃더니 고개를 까딱였다.
“원래 일행은요?”
“하하. 먼저 보냈어요. 내 개인적인 일인데 여기까지 데리고 올 수 없지. 하하하. 뭐, 어쨌든 물건은 있죠?”
“지현.”
강주언이 낮게 불렀다.
“안에 들어가서 물건 좀 가져와.”
배지현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
“응.”
그녀는 말없이 폐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강주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거 알아요?”
“네?”
김두기가 멍하니 그를 봤다.
강주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난······이런 사람들 많이 만나봤거든.”
그 말과 동시에.
[강주언이 ‘실드 lv.1’을 발동합니다.]
덩치 큰 남자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퍼억!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정말로 터졌다.
뼈가 부서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커다란 몸이 뒤로 날아갔다.
콰광!
벽에 부딪히며 철골이 구겨졌다.
공기가 멎었다.
적어도 김두기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입이 떨린다.
“저런 눈이 사람 많이 죽여본 눈깔이거든.”
강주언의 낮은 목소리가 김두기의 귓가에 울린다.
번들거리는 그의 눈동자가 김두기에게 향한다.
“커헉.”
순식간에 멱살을 붙잡힌 김두기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지?”
김두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애써 움직인다.
“나, 난, 난 그냥, 물건만-.”
“!”
목덜미에 얼음이 닿은 것처럼 오싹한 느낌.
강주언은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김두기를 끌어당겼다.
퍼억-.
화살이 김두기의 등판을 뚫고 튀어나왔다.
붉은 핏물이 강주언의 얼굴에 튀었다.
“커헉!”
김두기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낸다.
그 짧은 찰나, 튀어나온 화살촉의 방향과 각도를 살핀다.
‘방향, 오른쪽.’
시야 끝, 폐건물이 보인다.
“빌어먹을!”
강주언은 김두기의 몸을 들어올린 채, 그대로 오른쪽으로 뛰었다.
슈슛!
강주언을 향해 일직선으로 그어지는 쇳빛.
이번엔 두 발이 거의 동시에 날아온다.
푹! 푹!
김두기의 몸이 흔들렸다.
“윽, 으으······.”
김두기의 숨이 끊어져간다.
하지만 강주언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방금의 사격으로 확실히 방향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김두기의 몸에 하얀 불꽃이 번지기 시작한다.
“뭐야?”
사라지기 시작한 그의 몸 너머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강주언은 김두기의 몸을 그대로 던졌다. 그리고 자신은 옆으로 몸을 날린다.
텅!
화살이 박힌 바닥이 쩍 갈라진다.
폐건물의 안쪽, 그림자가 들썩였다.
활을 들고 있는 모자 쓴 놈.
‘저 놈이다.’
강주언은 숨을 들이키며 속도를 높였다.
궁수가 빠른 손놀림으로 화살을 장전한다.
시선은 여전히 강주언에게 둔 상태다.
“죽어.”
한치의 낭비도 없는 깔끔한 동작.
화살이 번개처럼 날아왔다.
궤적은 정확히 강주언의 눈을 향했다.
[강주언이 ‘실드 lv.1’을 발동합니다.]
머리에 실드를 집중시킨 강주언이 그대로 박치기를 날린다.
팍!
산산조각이 난 화살이 사방으로 퍼진다.
그 모습을 본 궁수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말도 안 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퍽!
강주언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후려쳤다.
콰광!
몸뚱이가 벽에 처박힌다.
“시발 새끼가!”
“죽어!”
강주언이 숨을 고르기도 전에 옆에서 철제 몽둥이와 칼을 든 남자들이 튀어나왔다.
세 명.
몽둥이가 휘둘러지고, 칼끝이 반짝였다.
하지만 강주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주먹으로, 무릎으로, 어깨로.
신체 전부가 그의 무기였다.
콰직!
세 번의 충돌.
공평하게 모두 대가리를 깨주었다.
화르르.
김두기의 그것처럼 하얀 불꽃과 함께 사라지는 그들의 몸뚱이.
그들이 장비하고 있던 장비템과 아이템 몇 개가 바닥에 떨어진다.
김두기도 그렇고, 이놈들도 그렇고.
‘호오.’
뭔가 알겠다는 얼굴로 떨어진 장비템과 아이템을 챙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몸뚱이를 쳐다본다.
성큼성큼 다가가 바닥에 떨어진 활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눈꺼풀.
그것을 잠시 쳐다보다가 뺨을 후려쳤다.
“끄아아!”
비명을 지르며 눈을 뜨는 궁수놈.
그 새끼와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알고 있는 거 다 말해, 개새끼야.”
**
“이제 이 길 따라 쭉 가시면 됩니다, 형님.”
궁수 놈을 앞세우고 그 뒤로 강주언이 따라 걸었다.
끝까지 따라오겠다고 떼를 쓰던 배지현은 근처에 있던 작은 폐건물에 숨겨두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손을 흔들길래, 강주언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힐끗 보고 있던 궁수 놈, 백민성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형님, 제 활 정말 저 누님께 줘도 되는 겁니까? 저거 비싼 건데.”
“뭐?”
강주언의 목소리에 백민성의 몸이 크게 뛰었다.
그에게 두들겨 맞은 부위가 아직도 아프다.
아는 대로 다 말하겠다는데도 듣지도 않고 계속 때렸다.
“아니, 아까워서 그런 게 아니고 말입니다, 형님. 위험할까봐 그럽니다. 혹시라도 누님 고운 손에 상처라도 생기면 어떡합니까.”
“······양궁부였다.”
“예?”
“양궁부였다고.”
“······예.”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강주언의 주먹은 많이 매웠다.
배지현이 숨어있는 폐건물이 작게 보일 때 쯤.
“저 건물입니다, 형님.”
백민성이 앞에 있는 3층짜리 건물을 보며 말했다.
“확실하겠지?”
“아, 정말. 형님. 저 부대장입니다, 형님.”
백민성의 말에 강주언이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 입 가벼운 새끼가 무슨.”
“아니, 그 새끼한테 정말. 전 원래 불만이 많았습니다. 이번에도 보십쇼, 형님. 이 위험한 임무에 그 새끼는 안 가고, 저랑 딸랑 네 놈만 보내는 거.”
이제 건물이 제법 가까워졌다.
앞서 걷던 백민성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형님. 진짜로 혼자서 들어갈 겁니까? 저 안에 애들 상당합니다.”
“······.”
“저한테 활만 주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형님. 제 모든 것을 걸고.”
좀 닥치라는 의미로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주었다.
그제야 입을 닫는다.
“누구, 아, 부대장님.”
목소리가 들린다. 2층이다.
부서진 창문을 통해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부대장이다.”
백민성이 가슴을 펴고 말했다.
“그런데 뒤에는 누구?”
“힘 좀 쓰는 씹새끼다. 대장한테는 내가 소개할테니까 신경 꺼.”
“넵.”
강주언을 향하던 시선이 사라진다.
“형님, 절대로 진심이 아닌 거 아시죠? 의심 받지 않으려고 그런 겁니다, 형님.”
강주언에게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백민성이다.
닥치고 활을 쏠 때가 훨씬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건물에 들어서자, 어슬렁거리고 있는 몇 명이 보였다.
“어? 부대장님?”
백민성을 보자 아는 척 한다.
“아, 급똥! 존나 급해!”
백민성은 무시하고 급하게 안쪽으로 뛰어들어갔다.
강주언 앞에 남게 된 두 명이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강주언을 쳐다본다.
[강주언이 ‘실드 lv.1’을 발동합니다.]
강주언의 주먹이 그들의 머리통으로 향한 것도 그와 동시였다.
퍼걱!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진다.
“3층이랬지.”
숨을 한 번 내쉬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복도 안쪽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이 새끼, 뭐야?”
“혼자 온 거야?”
“야, 잡아!”
각자 무기를 꼬아든 놈들이 달려든다.
강주언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캉! 캉!
휘둘러진 무기들을 그냥 몸으로, 아니 실드로 받아낸다.
그리고 주먹을 휘둘러 한 명씩 머리통을 깨주었다.
퍼거걱!
터져나오는 피와 함께 하얀 불꽃이 되는 녀석들.
놈들이 후려친 도끼가 튕겨져 나오고, 쇠파이프는 휘어졌다.
뒤에서 덮치길래 발로 걷어찼더니, 벽에 처박혀버렸다.
“히익!”
“시, 시발! 괴물이다.”
남은 녀석들이 주춤했다.
아예 뒤로 물러서는 녀석들도 있었다.
강주언은 3층을 쳐다보았다.
“방해하면 죽인다.”
낮은 목소리.
“넵.”
누군가 자기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강주언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계단 끝까지 오를 때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3층의 복도 끝.
문이 반쯤 열려있는 그곳은 넓은 사무실이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그럴듯한 책상도 있다.
그곳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있었다.
팔에 가득한 문신, 손에 들린 담배.
“하여간 쓸모없는 새끼들. 퉤.”
바닥에 침을 뱉은 강도익이 몸을 일으킨다.
“여자를 데려오랬더니, 남자 새끼를 데려왔네. 백민성, 병신 새끼.”
그 말에 강주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크게 한 걸음 강도익을 향해 다가간다.
바닥이 삐걱거린다.
“남자 새끼는 싫은데.”
히죽이던 강도익의 손끝이 붉게 빛났다.
[강도익이 ‘죽음의 불꽃 lv.3’을 발동합니다.]
“그러니까 꺼져.”
콰아아아아!
강주언의 발밑이 터졌다.
불꽃이 폭풍처럼 솟구쳤다.
- 작가의말
첫날부터 5화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빠르게 전개하려고 노력했는데,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선작과 추천은 작가에게는 '마나'입니다.
부족한 부분은 계속 보완하면서 꾸준히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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