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 있는 곰팡이는 없다 (1)
"출장비는 누구한테 청구하냐."
어제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펜트하우스를 나섰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명확해졌다.
"청구는 개뿔. 내 돈이나 안 날리면 다행이지."
오전 11시 30분. 청담동 명품 거리.
나는 퀭한 눈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어젯밤, 그 '나이트클럽 여왕'인지 뭔지 하는 놈을 찾겠다고 서울 바닥을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놈은 대포폰을 쓰고 잠수를 타버렸고, 나는 밤새 엄한 잡귀들만 청소하느라 체력과 교통비만 날렸다.
결국 '출장비'를 청구할 대상은 증발했다.
남은 건 텅 빈 위장과, 오늘 점심 예약된 레스토랑의 '예약금 환불 불가' 문자뿐이었다.
[르 블랑(Le Blanc) 예약 안내]
― 노쇼(No-Show) 시 예약금 10만 원은 환불되지 않습니다.
"10만 원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나는 이를 갈며 레스토랑 '르 블랑' 앞에 섰다.
이곳의 런치 코스를 먹기 위해 중고나라에서 웃돈까지 얹어주고 예약권을 샀다.
밤새 노동으로 지친 내 육신을 달래줄 유일한 안식처.
설령 귀신이 나온다 해도 내 밥상은 사수해야 한다.
끼이익―
무거운 원목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대신 심상치 않은 기류가 나를 반겼다.
"죄, 죄송합니다, 손님! 금일은 주방 사정으로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매니저가 사색이 된 얼굴로 달려 나와 나를 막아섰다.
"영업을 안 해? 나 예약했는데?"
"그게··· 주방에서 가스 누출 사고가··· 아니, 아무튼 지금은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매니저의 등 뒤로, 주방 쪽에서 쿵! 쿵! 하는 소음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가스 누출? 웃기고 있네.
내 코에는 가스 냄새 대신, 아주 익숙하고 역겨운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기름 쩐내와 섞인, 썩은 영혼의 악취.
"비키쇼. 내 돈 10만 원이 저 안에서 타고 있는 것 같으니까."
"소, 손님! 위험합니다!"
나는 매니저를 가볍게 밀치고 주방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이봐요! 밥 줘! 나 지금 공복 16시간째라 예민하···!"
고함을 지르며 들어선 주방.
하지만 내 목소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내 식욕을 뚝 떨어뜨리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치이이익―
달궈진 팬 위에서 최고급 스테이크가 익어가고 있어야 할 자리.
그곳에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메인 쉐프로 보이는 남자가 구석에 처박혀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조리대 위에는, 희뿌연 형체의 남자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아니, 남자가 아니다.
눈은 퀭하고, 입은 귀밑까지 찢어졌으며, 배는 기아처럼 홀쭉한 악령(餓鬼).
― 배고파···
― 왜 나한테는 안 줘···?
― 간이··· 안 맞아···
악령이 중얼거릴 때마다 주방의 식칼들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쉐프 강준혁은 나를 보더니 구세주라도 만난 듯 소리쳤다.
"사, 사람 살려! 저것 좀 어떻게 해주세요!"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어우, 썅. 환기 좀 시키지. 곰팡이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네."
나는 성큼성큼 악령 앞으로 다가갔다.
악령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텅 빈 눈구멍에서 붉은 안광이 번득였다.
― 너는··· 누구냐?
― 너도··· 내 요리를 비웃으러 왔나?
"비웃긴 누가 비웃어. 밥 먹으러 왔다, 임마."
나는 작업 조끼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예약 문자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 예약 손님이다. 쉐프가 일을 안 하니 너라도 고기 굽든가."
― ···고기?
― 크흐흐··· 그래, 고기 좋지.
악령이 기괴하게 웃더니, 갑자기 표정을 싹 바꿨다.
금방이라도 덤벼들 줄 알았는데, 녀석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 내 이야기를 들어봐···
― 나는··· 이 주방의 막내였다.
― 매일 18시간씩 양파를 까고, 설거지를 했지.
갑작스러운 신파 모드.
주방의 공기가 축축하게 가라앉았다.
구석에 있던 강준혁 쉐프도 멍하니 악령을 쳐다봤다.
― 어느 날이었어. 3일 밤을 새우고 곰탕을 끓이다가··· 깜빡 조는 바람에 솥을 엎었지.
― 뜨거운 국물이 내 다리를 덮쳤고··· 쉐프님은 나를 해고했어.
― 퇴직금도 없이··· 쫓겨난 나는 고시원에서 굶어 죽었단 말이다!
악령의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었다.
주변의 접시들이 덜그럭거리며 공명했다.
한(恨).
한국 귀신 특유의 그 지독한 감정이 주방을 휘감았다.
― 내가 얼마나 억울한지 알아?!
― 내가 만든 요리는 아무도 먹어주지 않았어!
― 내 한을··· 내 슬픔을 네놈들이 알기나 해?!
악령이 비명을 지르며 나를 노려봤다.
보통의 퇴마사라면 여기서 성불을 권하거나,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달랬을 것이다.
"저런, 안타깝군요. 하지만 이제 그만 가시죠." 같은 멘트를 날리면서.
하지만 나는 강태주다.
그리고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
꼬르륵―
내 배꼽시계가 악령의 절규보다 더 크게 울렸다.
나는 귀를 후비며 하품을 쩍 했다.
"그래서?"
― ···뭐?
"네가 양파를 까든, 곰탕에 데었든, 고시원에서 굶었든. 그게 내 알 바냐고."
나는 짝다리를 짚으며 삐딱하게 섰다.
"야, 나는 지금 내 돈 내고 밥 먹으러 왔는데, 네가 깽판 쳐서 못 먹고 있잖아. 너 때문에 날아간 내 예약금 10만 원은? 내 공복 스트레스는? 그건 누가 보상해 주는데?"
― 이, 이 인정머리 없는 놈이···
"그리고 뭐? 억울해? 세상에 안 억울한 귀신이 어디 있어. 다들 사연 하나씩은 끼고 살지. 근데 죽었으면 곱게 저승 가서 국밥이나 말아 먹을 것이지, 왜 남의 영업장에서 행패야?"
나는 손가락으로 악령의 이마를 툭툭 쳤다.
"지저분하게 기름때나 흘리고 말이야. 너 같은 놈들 때문에 자영업자들이 힘든 거야, 알아?"
정적.
주방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강준혁 쉐프는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저 사람, 귀신한테 설교를 하고 있어···'
악령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슬픔과 한탄으로 시작했던 녀석의 감정이, 순식간에 분노와 살의로 바뀌고 있었다.
― 감히···
― 감히 내 고통을··· 그깟 돈 10만 원이랑 비교해?!
"그깟 돈? 야, 너 10만 원 벌려면 최저시급으로 몇 시간 일해야 하는 줄 알아?"
― 닥쳐!!!
콰아아앙!
악령이 폭발했다.
녀석의 몸에서 검붉은 오라가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주방의 가스 화구들이 저절로 켜지며 불기둥이 치솟았고, 선반에 있던 수백 개의 접시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 찢어 죽일 테다!
― 네놈을 다져서 햄버그스테이크로 만들어주마!
악령의 형체가 거대해지더니, 주방 천장을 뚫을 기세로 부풀어 올랐다.
입에서는 펄펄 끓는 기름을 침처럼 흘리며, 손톱은 날카로운 식칼처럼 변했다.
강준혁 쉐프가 비명을 질렀다.
"피, 피하세요! 저건 미쳤어!"
하지만 나는 도망치는 대신, 작업 조끼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아주 귀찮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 말로 하니까 안 듣네."
나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혀 있던 분홍색 고무장갑을 꺼냈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락스 통의 뚜껑을 땄다.
"사연 팔이 실패하니까 바로 본색 드러내는 거 봐라. 하여간 요즘 것들은 끈기가 없어요."
짝!
나는 고무장갑을 끼고, 손목 밴드를 튕기며 악령을 올려다봤다.
"어이, 곰팡이."
― 크아아아!
"설거지감이 좀 크네. 추가 요금 받아야겠어."
나는 락스 통을 든 채, 놈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배고픔을 참는 청소부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지, 교육이 좀 필요해 보였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