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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월 모의고사.
고3들이 보는 첫 전국 단위 평가이자, 이 성적을 토대로 학기 초 상담이 진행되는 중요한 시험이다···만!
‘완전히 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은 훌쩍 넘었으니까.
거기다 회귀 직후에는 사기꾼한테 정신이 쏠려있었고.
‘솔직히 3월 모고 정도면 적당히 넘겨도 되지 않나.’
“아들, 밥 많이 먹어. 내일 시험 보려면 힘내야지!”
“크흡···!”
이런 속내를 읽은 듯, 엄마가 빙긋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눈앞의 따뜻한 밥이 부담스럽구먼.’
엄마는 내가 고3이 된 이후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갓 지은 밥을 내주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가 돌아가시고 살림을 내가 하면서 깨달았다.
매일 따뜻한 새 밥을 내오며 밥상을 차리게 얼마나 번거롭고 귀찮은 일인지.
그러니 이런 밥상은 전부, 날 생각하는 엄마의 정성이었다.
‘끄응, 이렇게 생각하니까 적당히 넘길 수가 없네.’
밥값은 해야겠지.
우걱우걱
엄마가 차려준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조심히 가!”
“네.”
대충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섰다.
아침 찬 공기와 함께 학교로 향하며, 난 내 상태를 점검했다.
‘아빠 가르치느라 밤을 새웠는데, 하나도 안 졸리네.’
오히려 뇌가 각성이라도 된 것처럼 말똥말똥하다.
이러니까 편하기는 한데.
‘혹시 몰라. 이게 내 미래의 체력을 끌어 쓰는 걸지도.’
진짜 급할 때 아니면 되도록 밤은 세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팔랑-.
사각, 사각.
이른 아침임에도 교실에는 애들이 벌써 다 와있다.
고요함 속에서 들리는 건 책 넘기는 소리와 샤프를 움직이는 소리뿐.
독서실이 따로 없는 광경에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얘네 진짜 열심히 한다.’
솔직히 고3이라고 전부 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학기 초엔 어느 정도 공부하는 분위기가 잡히지만, 한 달만 지나도 하나둘 풀어지면서 곧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돌아오니까.
수시 시즌이 오고 합격자가 생기면 그런 분위기는 더 심해지고.
‘뭐······. 어디까지나 이건 평범한 인문계 고등학교의 사례지만.’
여기는 사정이 좀 다르다.
동네에서 가장 학구열 높은 학교다 보니 다들 공부 좀 하고, 대학 욕심도 크다.
덕분에 이 필사적인 분위기는 수능까지 쭉 이어졌다.
‘내가 이런 애들을 제치고 모의고사를 잘 볼 수 있을까?’
수학은 문제없다.
평생 가르쳤던 게 중고등 수학인데, 못 볼 수가 없지.
문제는 다른 과목이다.
국어, 영어, 과탐 같은 것들.
‘특히 국어는 쥐약인데.’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아 국어 문제집을 뒤적였다.
역시나, 오랜만에 보는 지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 시에 대한 화자의 상태로 적절한 걸 고르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도대체 화자라는 놈들은 자신의 마음을 왜 이렇게 애매하게 표현하는 걸까?
그냥 공허하면 공허하다고 쓰고, 슬프면 슬프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국어 문제집을 붙잡고 끙끙거리는 사이 시간은 훅훅 흘러갔다.
어느새 다가온 점심시간.
이때만큼은 얼어붙어 있던 교실 분위기가 살짝 풀린다.
배고픈 10대들이 우르르 이리떼처럼 밥을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저편에서 현서도 내게 다가왔다.
“고3 돼서 좋은 점은 다른 학년보다 급식을 빨리 먹는 것밖에 없구나. 가자, 형님 배고프시다.”
“에휴, 그래. 나가자.”
“표정이 왜 그래? 똥 씹었냐?”
“더러운 새끼, 밥 먹기 전에 똥이 뭐냐.”
“이런 드립 좋아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래. 그것보다 뭔데? 뭐 문제 있어?”
현서의 질문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공부가 잘 안돼서. 국어가 어렵네.”
“국어? 아하~, 넌 국어가 약했지. 특히 문학.”
“다른 과목도 빨리 공부해야 하는데. 막막하다.”
20년 만에 수학 말고 다른 거 하려니까 골치 아파 죽겠다.
어차피 모고는 성적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 있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오늘 아침에 엄마가 차려준 아침을 떠올리면 멈칫하게 된다.
회귀하자마자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아, 어디 공부 좀 기막히게 가르쳐줄 사람 없나.”
이렇게 한탄했지만, 나도 안다.
그런 사람은 찾기 아주 힘들다는 걸.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한테 찾아가 질문도 해봤지만, 큰 도움은 안 됐다.
‘역시 20년의 공백을 메우기에 반나절은 터무니없었을지도.’
내 중얼거림에 현서도 동의했다.
“그러니까. 학교쌤들이 다 너만큼만 했다면 얼마나 좋냐.”
“나만큼은 바라지도 않아.”
애초에 내 강의력은 순수 체급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능력에 기인한 거라서.
딱히 자랑은 아니었는데, 현서 놈이 킥킥 웃으며 내 등을 쳤다.
“어쭈, 최영식. 그런 재수 없는 발언도 하고 많이 컸다?”
‘난 원래 다 컸어, 인마.’
그리고 이 자식, 감정 좀 담아서 때린 것 같은데?
얼얼한 등을 문지르는데 현서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아니면 네가 네 설명을 녹음하고 다시 듣는 건 어때? 어지간한 수업보다 그게 더 나을지도 모르잖아?”
“!”
“좀 오글거리긴 하겠지만.”
현서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지, 이내 대화의 화제를 다른 것으로 옮겼다.
하지만 난 가만히 현서의 아이디어를 곱씹었다.
‘녹음이라······.’
그래, 선생님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보다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내 능력이 나한테도 발휘될 수 있는 거니까.’
그렇게 되면 나도 아빠와 현서가 경험한 놀라운 이해력과 집중력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럼 그동안의 공백을 단번에 메울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시도해 볼 가치가 있겠어.’
새로운 가능성에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
야자까지 전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에게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아들~. 아빠 학원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많이 바쁘네. 엄마도 아빠랑 같이 학원에 있어야 할 것 같아. 너무 걱정 말고, 아침 전에는 돌아갈게~.]
‘그래요, 아버지. 힘내십쇼.’
이 아들도 힘내겠습니다.
후다닥 집에 도착한 난 곧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가방에서 현서에게 뜯어낸 핵심 정리 노트들을 꺼냈다.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랑 과탐 핵심 정리 노트도 전부 받아냈지.’
현서와 내가 응시하려는 과탐이 겹쳐서 다행이다.
촤르륵.
빠르게 노트를 펼쳤다.
모범생 현서의 가장 큰 장점은 확실하고 깔끔한 노트 정리였다.
‘이야, 지금 봐도 잘 썼네. 이대로 제본해서 팔면 인기 많겠어.’
난 씨익 웃으며 내 폴더폰을 열었다.
그리고 버튼을 띡띡 눌러, 녹음 기능을 켠 후.
“흠흠, 시작해 볼까.”
목소리를 가다듬고, 현서의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낯설어서 말도 버벅대고 현타도 좀 왔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녹음을 이어갔다.
‘어차피 오늘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타이밍도 날 응원하는구나.
그렇게 나름 열심히 현서의 노트를 녹음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다 보니 이것도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누군가에게 가르치듯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오케이, 국어 녹음은 이 정도로 끝내고.’
3월 모고면 이걸로 충분할 거야.
난 기대감으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녹음본을 재생했다.
-“비문학의 핵심은 지문을 얼마나 빨리 읽고 해석하느냐이다.”
‘으악, 내 목소리 왜 저 모양이냐.’
이런 딴생각이 들기도 잠시.
서서히 난 내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학에서 화자의 감정을 파악하려면 우선 감정이 드러나는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저절로 몰입된다.
난 녹음에 귀 기울이면서 작게 주먹을 쥐었다.
‘된다···! 이 방법이 통하는구나!’
신기한 경험이다.
들리는 설명 하나하나가 귀에 콕콕 박혀서, 순식간에 내 지식으로 소화하는 기분.
단순히 잘 들리는 것만이 아니라, 문제나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확 올라간다.
‘크하! 이 좋은 걸 현서랑 아빠만 느꼈단 말이야?!’
연신 감탄하며 내 설명을 따라서, 문제 풀이와 필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작은 의문도 따라왔다.
‘그런데 뭔가······. 내 기대보다는 부족한 것 같은데?’
분명 아빠와 현서는 무아지경으로 내 수업에 심취했다.
단 한 번의 흐트러짐도 없이 내 설명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녹음본을 듣고 있는 난······.
‘이렇게 잠시 딴생각은 들 정도란 말이지.’
무아지경으로 수업에 심취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집중력과 학습력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이해력도 체감될 만큼 상승했고 말이다.
그럼에도······.
현서나 아빠처럼 홀린 듯 공부할 수는 없었다.
‘뭐가 다른 걸까?’
아무래도 난 직접 설명을 듣는 게 아니라, 녹음본을 들어서 그런가?
잠시 고민하던 난 이내 그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었다.
내 능력이나 녹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구나, 수업을 듣는 학생의 기존 학습 수준과 관련이 있는 거야!’
듣는 사람의 기초 지식이 얼마나 탄탄하냐에 따라 효율이 차이 났다.
가령, 원래 9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음 단계인 10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1밖에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10을 이해하려고 하면 어렵지 않은가!
내 설명에서 비롯된 엄청난 집중력과 학습력이 그 1과 10 사이의 틈새를 채워주지만.
‘그럼에도 약간의 빈틈은 생길 수밖에 없는 거네.’
하긴, 현서 같은 경우는 원래 모범생이라 기초 지식이 탄탄했고, 아빠 같은 경우는 내가 단계별로 심혈을 기울여 가르쳤으니.
지금 이 상황이랑 경우가 달랐지.
‘물론 이 빈틈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직접 경험해본 결과, 빈틈은 찰나에 불과하다.
집중이 좀 떨어지려고 할 때면, 내 목소리가 다시 집중력에 불을 붙였다.
몰입하고 싶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몰입이 되는 상황.
좀 쉬고 싶어도, 내 설명을 듣는 동안에는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원래 지식이라는 건 다 연계되어 있으니까.’
내 능력으로 억지로 10을 이해하니, 이를 바탕으로 9, 8, 7 같은 이전 단계 학습은 훨씬 빠르고 손쉬웠다.
고등학교 수준의 공부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좋아, 수능 준비도 이렇게 하면 되겠어.’
얼른 영어도 녹음하고 과탐도 녹음해야겠다.
그나저나 이거 다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겠는데.
‘오늘은 급하니까 하는 수 없이 밤새우겠네.’
솔직히 재밌기도 하다.
옛날부터 난해하고 어렵기만 하던 국어를 완전히 이해하고, 문제가 휙휙 풀리니까.
학습의 즐거움이 저절로 생길 수밖에.
‘자기효능감이 이런 건가?’
덕분에 난 밤새도록 녹음과 듣기를 반복하며 공부에 열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맞이한 다음 날.
이 노력의 결과는 모의고사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와, 최영식! 너 뭐야? 국어 98? 심지어 문학에서는 하나도 안 틀렸네?!”
모의고사가 전부 끝나고 가채점 시간.
현서가 호들갑을 떨며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너 분명 어제 국어 개새끼라고 했잖아!”
“오해를 살 만한 말은 넣어두렴, 친구야.”
난 현서가 더 오버하기 전에 가채점을 끝낸 다른 시험지도 팔랑였다.
놈은 잽싸게 내 시험지를 낚아채더니 두 눈을 크게 떴다.
“수리 100에 영어 97?! 과탐도 각각 만점이네!”
‘과탐은 운이 좋았지.’
3월 모고에서는 과탐이Ⅰ만 나오니까.
‘거기다 녹음본 들으면서 공부하니까 기억이 살아났거든.’
이 기세라면 심화 버전인 Ⅱ도 문제없을 터.
솔직히 수능 만점도 충분히 가능했다.
난 여유로운 마음으로 현서를 바라봤다.
“그러는 넌 어떤데? 수학 잘 봤냐?”
나보다는 현서의 성적이 궁금하다.
이번 수리 가형은 난이도가 꽤 높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3월 모고는 어렵게 나오는 편이지.’
아무래도 그 해 첫 시험이다보니, 출제의원들이 어려운 문제를 섞는 경향이 있거든.
‘그래도 어제 반응을 보면, 자신있어 보이던데.’
내 능력으로 가르친 첫 학생이라 은근히 신경 쓰이네.
조마조마한 내 시선에 현서가 어깨를 으쓱였다.
“네가 직접 봐봐.”
그리 말한 현서가 순순히 자기 시험지를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들고 점수를 확인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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