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3. 삼류
‘각성?’
그래도 눈 앞의 소녀가 먼저였다.
조금 전까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소녀의 맥박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이부터 살려야 해⋯.”
소녀의 맥을 확인하려 심장 부근에 손을 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밀려왔다.
내 몸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꿈틀꿈틀-
펄떡펄떡-
활력인지, 생동감인지 모르겠다.
딱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 무언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혈류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슴에서 시작한 그것은 어깨를 지나 팔뚝을 지나, 결국 내 손에 닿아 있는 소녀의 가슴부근에 이르렀다.
그것이 내 피부를 뚫고 나왔다.
피처럼 붉은 안개였다.
붉은 안개가 소녀의 심장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미약했던 아이의 심장이 다시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소녀가 살아났다.
그 순간,
핑-
내 목덜미를 타고 묵직한 경직감이 올라왔다.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한다.
“생존자다!”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소방관들의 외침이 희미하게 들리며,
내 의식은 다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 보인다.
“환자님!?”
“정신이 드세요?”
병원이었다.
팔에 꽂혀 있는 주사 바늘 때문에 움직이기가 조금 불편했다.
그래도,
‘살았구나..’
살아있음에 안도를 느끼는 순간,
의식을 잃기 전까지 겪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균열, 소녀, 괴물, 각성자..
혼란스럽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들.
모두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럼에도..
관통당했던 허벅지와 가슴이 멀쩡하다.
심지어 작은 흉터조차 보이지 않는다.
‘각성이라고 했었나..?’
만약, 내가 꿈을 꾼 게 아니라 사실이라면,..
그저 확인해 보면 될 일이었다.
각성자들이 본인의 상태를 어떻게 확인하는 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하여 마음속으로 외쳤다.
‘상태창..!’
순간, 눈 앞에 텍스트가 홀로그램처럼 촤르르 펼쳐졌다.
———————————————
-이름 : 강무진
-등급 : 삼류
-레벨 : 측정 불가
-스킬 : 삼재검법, 운기토납
-특성 : 천무지체
-소속 : 없음
-명성 : 0
-임무 : 고유 임무 (2) !
———————————————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내가 각성한 게 맞았다.
그런데⋯⋯,
지금껏 내가 알고 있던 각성자들의 상태창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레벨은 ‘측정 불가’.
불량이라는 건지, 아니면 보통을 뛰어 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그 다음,
‘삼류?’
세가지 흐름이라는 뜻인가?
아니면, 일류 이류 삼류 할 때 그 삼류인가?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리고 삼재검법, 운기토납..
전부 무협 소설에서나 쓰이는 단어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천무지체’
내가 알고 있는 그 천무지체?
한 때 무협소설 작가를 꿈꿨던 나로서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단어였다.
모든 무협소설에서 세계관 최강자를 만드는 설정에 사용하는 절대적인 단어니까.
‘그런데, 내가 그 천무지체라고?’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상태창에 써진 임무가 뭔지부터 확인했다.
***
나는 오늘 퇴원했다.
내가 구했던 아이는 무사하다고 했다.
다만,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말에 얼굴은 보지 못했다.
반면, 내 몸은 언제 다친 적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럼에도 의사는 내게 정신적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갑자기 발작이나 경직같은 이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 당분간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결국 이틀이라는 시간을 병원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래도 덕분에 이틀 동안 여러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으니, 마냥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니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건지,
앞으로는 뭘 해야 할지,
남은 빚은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같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했다.
각성자들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돈을 벌게 된다고 알고는 있지만,
그와는 별개로 우선 정리해야 할 것은 정리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먼저 하기로 결정한 것은 ‘각성자 등록’을 하는 일이었다.
각성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이자 대출’이었다.
각성 등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최하급인 F급만 되더라도 최소 3억원까지 무이자 대출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각성자 등록을 하고 나면, 바로 대출을 땡겨 카드 연체금을 상환할 생각이다.
연체 금액이 엄청 많은 건 아니지만, 매일마다 상환 독촉 문자를 받는 건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다.
하지만, 각성자 등록부터 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받은 등급이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등급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등급은 F 부터 A까지의 알파벳 순이고, 최고 등급은 S급이다.
그런데 나는 ‘삼류’다.
내가 각성자로서 정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지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만약, 협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인정을 받지 못해 무등록 각성자가 되는 것 또한 큰일이다.
이 세상은 무등록 각성자를 ‘빌런’ 이라 부르며 배척하고, 집요하게 추적해 척결한다.
졸지에 도망자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협회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부르릉-
헬멧을 착용하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켰다.
목적지는.. 종로다.
***
각성자 협회의 입구에는 커다란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탑은 인류의 새로운 도전. 오직 생존만이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다.’
존재의 가치라⋯⋯.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다.
내가 지금껏 이루지 못했던 화두이기도 하고.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그 후로는 계속 운이 안좋았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살았다.
언젠가는 나도 대박을 칠 수 있을거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렀다.
헛된 망상은 곧 무능력이었다.
마땅히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는 무능력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내가 지켜야 할 모든 것들을 잃었다.
지금의 내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기념비에 새겨진 문구를 보며 잠시 상념에 잠겨 있을 때,
“어떻게 오셨습니까?”
협회의 입구를 지키는 경비가 용건을 물었다.
그런데 말투가 사뭇 정중하다.
어찌보면 당연했다.
괜히 각성자의 비위를 건드려 좋을 건 없을터.
이곳은 뜨내기나 평범한 민원인이 드나드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각성자 등록을 하러 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우선 축하드립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각성자 등록 담당 직원을 불러 드리겠습니다.”
경비가 내부로 무전을 보내자, 곧이어 안내인이 마중을 나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각성자 관리팀 김선영 대리입니다. 각성자 등록을 하러 오셨다고 하셨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아. 네..”
날 안내해주는 사람은 검은 자켓에, 검은 스커트를 입은 단정한 느낌의 여성이었다.
딱 봐도 좋은 회사에 다니는 번듯한 직장인처럼 보였다.
그런데 내가 그런 사람의 안내를 받다니..,
각성했다는 사실이 새삼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 시. 한. 번. 인사드릴께요. 김선영 대리입니다. 여기 제 명함이구요.”
안내직원이 내게 명함을 건내고, 난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빙긋 웃으며 빤히 나를 바라본다.
눈도 깜빡이면서.
음??
“아!.. 강무진입니다.”
“호호. 감사합니다. 강무진 각성자님.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네.. 저도 감사합니다...”
등록은 지하 9층에서 이루어 진다고 했다.
등록과정에서 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두꺼운 방벽이 설치된 지하에서 하는 거라고 했다.
사고의 위험이라니.
뭔지 모르지만 괜히 불안했다.
그래도 없어 보이긴 싫어, 덤덤한 척 했다.
“원래 말씀이 별로 없으신 편인가요?”
“네?”
“보통 각성자 등록을 하러 오신 분들은 이런 저런 질문들을 많이 하시거든요. 아무래도 처음이면 궁금한 게 많으실 테니까요.”
“아⋯⋯.”
“호호.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나 보네요. 이제 막 각성하신 분 치고는 너무 덤덤하셔서..”
“⋯⋯.”
그렇게 담당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지하 9층은,
중간에 기둥 하나 없는 넓은 광장이었다.
광장 중앙에는 동그란 검은색의 암석이 공중에 떠 있었다.
TV에서 본 적 있다.
‘판정석’이라 부르는 돌덩이였다.
탑에서 가져 온 거라고 했었나?
“신분증은 가지고 오셨죠?”
김선영 대리가 물었다.
“네. 가지고 왔습니다.”
“신분증을 여기에 대 주시면 됩니다.”
단말기에 신분증을 갖다 대자, 삐- 소리와 함께 내 전신에 빛이 쏘아진다.
바디 스캐닝이란 절차였다.
내 신원 정보가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펼쳐지며 기계적인 음성이 들렸다.
[신원 확인 완료. 확인 결과 정상. 각성 등급 확인을 시작하세요.]
“이제 저쪽으로 가셔서 손을 판정석에 접촉하시면 됩니다. 저는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김선영 대리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각성자 등록을 할 때 폭발이 생기기라도 하나?
괜히 긴장이 됐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판정석에 손을 올렸다.
내 손이 판정석에 닿자 매끈했던 돌의 표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투명 유리 안에서 여러가지 색의 물감들이 섞이는 모습 같았다.
알려진 바로는,
판정색의 색은 각성자의 등급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무지개처럼 정해진 순서가 있었고,
남색이 가장 낮은 F등급,
주황은 가장 높은 A급이라 알려져 있었다.
단, S급의 색깔은 지금까지 한 번도 공식적으로 공개된 적이 없었다.
그저 붉은색일거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난.. 무슨 색일까?’
한 동안 지속되던 판정석의 일렁임이 멈췄다.
그런데,
‘???’
“뭐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판정석에 나타났다.
한 가지 색이 아니었던 거다.
녹색, 파란색, 남색, 보라색, 붉은색, 주황색까지..
모든 색깔들이 다 존재했다.
판정석의 색을 본 내가 황당함을 느끼고 있을 때.
[등급 판정 불가. 상태창 직접 확인 필요.]
아까봤던 홀로그램에 새로운 글자가 나타났다.
“각성자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샌가 김선영 대리가 내 뒤에 와 있었다.
“네..?”
“잠시 저와 파티를 맺어주시겠습니까?”
파티를 맺어서 내 상태창을 확인해보려는 거였다.
파티가 아닌 상태에서는 타인의 상태창을 엿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 그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B급 각성자 김선영님이 파티를 요청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다?]
머릿속으로 음성이 들려왔다.
아. 이 사람도 각성자였구나. 그것도 B급. 엄청 높네.
“수락한다.”
난 김선영 대리의 파티 요청을 수락했다.
“⋯⋯.”
그리고, 가만히 기다렸다.
그런데..
내 상태창을 들여다 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뭔가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 같기도 한데⋯.
당연하다 싶다. 처음엔 나도 그랬으니까.
“저... 강무진 각성자님?”
“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제 권한 밖의 상황이라 상부에 보고를 드리고 와야 할 것 같아서요.”
“네. 그러세요.”
김선영 대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리를 떠났고,
지하 9층 홀에는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
CCTV가 여기저기 잔뜩 달려 있었기에 함부로 움직이기도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일.
홀 안을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특히, 저 판별석이 궁금했다.
다시 가까이 가보니, 매끄럽던 표면에 살짝 금이 간 게 보였다.
원래 이랬나? 싶기도 했지만 그건 모를 일.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걸로 오해 받을까 걱정이 됐다.
슬그머니 몸으로 CCTV를 가린 다음,
판별석의 금 간 부분이 보이지 않도록 아래로 돌려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
“강무진 각성자님!!”
어느새 돌아온 김선영 대리가 내 이름을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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