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의 시작.
동화는 힘이 쫙 빠진 목소리로 공주에게 부탁합니다.
“얘기를 다 하신 거면 가도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밤이 늦었다 보니 씻고 자러 가야 해서. 나중에 얘기해요.”
동화는 더 머무르다간 피곤해 지겠다 여겼는지 탈출을 시도합니다.
그가 여기서 훈련하며 늘은 것은 무력만이 아닙니다.
여러 사람과 만나다 보니 약간의 눈치도 올랐습니다.
“도망치는 거 아니죠?”
“아닌데요. 시간도 늦으니 나중에 얘기하죠.”
나중에 거리를 두든지 하면 됩니다.
지금은 빠져 나가는 게 더 중요해 보입니다. 아니 중요합니다.
공주의 눈매가 살짝 날카로워 졌습니다.
“눈도 못 마주치잖아.”
“어두워서 공주님이 착각하신 겁니다. 어서 빨리 가시죠. 훠이 훠이.”
“그 손짓하고 태도는 뭔가요. 무례하단 느낌이 가득 느껴지는데.”
“저희 세계에선 친한 사람들하고 이별하는 인사 방식 중 하나 입니다.”
동화의 지식으로 고르자면 공주 같은 타입은 역이면 귀찮아 질 타입입니다.
이대로 공주와 연관되었다가는 미래가 피곤해질 겁니다.
확정에 가까운 예감.
그 초조함이 동화가 다소 무리하게 행동할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좋게 말하면 용기라 할 수 있겠군요.
“그럼 사람 귀찮게 하지 마시고 어서 얼른 가서 주무세요.
키도 작으신데 그래야지 빨리 큽니다.”
“제 키는 평균이라고요!”
이런 공주가 키 얘기에 발끈합니다.
아무래도 키가 민감사항 이었던 모양입니다.
동화의 가슴에 오는 키로 까치 발을 들며 위협합니다.
물론 귀여운 얼굴 탓인지 위협보다는 귀여운 느낌에 가깝습니다.
동화는 코웃음 치며 반박에 반박으로 대응합니다.
“제가 볼 때는 더 커야 합니다. 공주님 좋은 밤 주무세요.”
급히 뒤를 돌아 빠져나가려 그였지만 몇 걸음 나가지 못하고 멈췄습니다.
정확히는 멈춰졌다가 맞겠습니다.
잡아 끄는 느낌에 동화가 뒤를 돌자 공주가 양손으로 그의 옷을 붙잡고 있습니다.
2차 탈주에 실패한 동화는 공주의 눈동자 속 빛나는 별을 보고 직감합니다.
그의 바램과 반대로 예정이 어긋나 버렸다는 사실을 요.
“공,공주님?”
“후후 얼렁뚱땅 마무리 지어 놓고 도망치면 될 줄 아셨나요?”
공주의 눈 안에 호박빛 별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빛납니다.
“절대 이손 놓지 않을 거예요.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그거 좋은 의미 맞죠?”
“물론이죠. 영광으로 아시라고요.”
“아닌 거 같은데.”
“그 의심스러워하는 태도.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어.”
공주는 신분과 함께 귀여운 외모 덕에 어렸을 때부터 주위의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정확히는 가족을 제외한 사랑이지만 아무튼 주위의 사랑은 컸습니다.
문제는 사람은 부족하면 채우려 하는 생물이란 사실이네요.
그녀는 부족한 사랑을 채우고자 발버둥 쳤습니다.
그 덕에 사고뭉치 면모가 강해졌지만 대부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외모와 조화되니 그런 단점조차 애교의 한 부분으로 승화 되었거든요.
성 안에서 살아온 공주에게 애정, 행복, 사랑은 숨 쉬는 것과 당연합니다.
부정적인 악의는 가까이 오지도 않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긍정적인 공기가 일상이기에 이질적인 동화의 태도는 호기심만 북돋았습니다.
명명백백한 동화의 실패입니다.
이 세계에서 동화에게 첫 실패를 안겨준 존재는 멋대로 이야기 진행을 시작합니다.
“용사님, 용사님. 용사님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내 이름 대충 알고 있지 않아? 왕궁에서 심심하면 오를 내릴 텐데.”
왕궁에서 국왕에게 용사라는 직함은 받은 이방인.
딱 보아도 사람들 입방아에서 오르내리기 쉬운 주제입니다.
공주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공주는 거리를 두려는 아이의 심정을 모르는지 성큼 다가옵니다.
“알고 있지만 직접 용사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요.”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 군요.”
“남에게 듣는 이름하고, 당사자가 직접 말해주는 것은 의미가 다르니까.
들을 수 있을까? 부탁할게.”
공주의 눈동자가 눈물로 글썽거립니다.
최대한 불쌍한 척 연기를 하는 겁니다.
그녀를 귀찮아 멀리하는 가족은 몰라 주위엔 효과가 확실했습니다.
“동화에요. 아니 동화입니다 됐죠?”
동화는 눈물에 못 이겨 공주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알려주는 편이 낮다는 판단이 나서 였습니다.
어차피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이름을 알 방법은 많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서 알려주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무의미합니다.
어쩌면 오히려 손해 쪽이 맞겠습니다. 이 모습에 누가 오해를 키울지 모르니까요.
넓은 왕궁이나 결국 그녀의 집.
동화가 왕궁을 벗어나지 않는 한 계속 따라 붙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누구 귀에 들어갈지도 뻔합니다.
이러면 차라리 사소한 문제를 끌어 키울 바엔 초기에 진압하는 편이 맞습니다.
공주는 소년의 이름을 읊조리며 반복해 씹습니다.
“동화..동화...응. 동화님 좋은 이름이네요. 기억했어.”
“제 이름 자주 듣지 않았나요?”
“듣긴 했지만 흘려들었지. 지금을 위해서 일부러 한 귀로 흘려들었죠. 여태까지 대충 듣기 잘했네요.”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순수했습니다.
순진하게 웃는 공주를 보며 동화는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칩니다.
너무 강한 빛은 침묵에 익숙한 이들에게 약했습니다.
다행인 점은 아이를 제외한 그 자리의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아리아.”
“네?”
“내 이름은 란체스트 오라토리 아리아라고 해.
너무 길면. 친근하게 줄여서 아리아라고 불러주면 더 좋고.”
서로 이름 교환을 하자는 듯 웃는 그녀입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기대감이 잔뜩 담겨 있었습니다.
표정 위로 화창한 날씨를 보이는 공주에게 아이가 할 대답은 뻔했습니다.
“공주님.”
“아리아.”
공주가 정정합니다.
“공주님.”
“아리아.”
“공주님?”
“아리아.”
“공..주님.”
“아리아.”
“공.”
“아리아.”
“...”
“아리아.”
이젠 말하지도 않았는데 공주는 강조합니다.
공주는 마음은 독하게 먹은 상태입니다.
불러줄 때까지 물러서지 않겠단 확고한 의지가 엿보이네요.
아리아의 생각은 간단했습니다.
여기서 물러섰다 간 그대로 동화가 도망갈지도 모릅니다.
겨우 잡았는데 그녀 입장에서는 다시 놓칠 수 없었지요.
강압적인 느낌이 찝찝했으나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애써 넘깁니다.
어차피 첫 인상은 구겼습니다.
종이 뭉치는 더 구겨져도 봤자 흠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리아는 차라리 망치는 한이 있어도 이용해 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아리아님.”
“...님자도 빼세요.”
묘한 대치가 이루어집니다.
아무래도 공주님은 아리아라 불리 때까지 포기할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동화에게 아리아의 눈은 익숙했습니다.
훈련 도중 병사들이 가끔가다 뜨는 눈빛입니다.
불굴의 의지를 다지고 목표 만을 향해 뛰는 투사들의 집념이죠.
동화는 익숙한 기세에 확신합니다.
그녀가 결코 무르지 않을 거란 사실을..
미묘하게 줄을 타는 신경전에서 먼저 발을 무른 쪽은.
“알겠어, 아리아.”
동화였습니다.
꺾일 리 없는 의지를 아리아가 보였을 때부터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결국 그녀는 공주이고, 그는 용사라는 그럴듯한 직함만 있는 이세계의 표류자 입장입니다.
무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밀리는 그가 물러서는 것은 당연한 현실입니다.
다행인 점은 공주가 성격이 나쁘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녀 성격이 나빴다면 사사건건 간섭하고, 집착하며 난리를 쳤겠죠.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귀여운 투정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그녀는 고작 한번 이름으로 불러줬다고 세상 다 가진 날아갈 표정을 짓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에도 감동 받는 사람을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아리아는 동화에게 불린 자신의 이름을 음미합니다.
“아리아, 아리아. 좋내. 누가 제 이름을 불러준 적은 많지만 새삼 감미로워. 여태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것도 용사의 능력이려나.”
“설마 그럴 리가 있나요.”
“겸손해 하지 말고. 저 진심으로 고마우니까요.”
저런 소녀를 고집 만으로 울게 만들다니 아이라도 무리입니다.
그 또한 겉치례라곤 하나 용사란 직함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동화는 아리아를 내려다보며 피식 웃고 맙니다.
그는 그녀에게 두 손, 두 발을 모두 듭니다.
아리아에게 항복한 것입니다.
귀찮은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아이는 추측합니다.
“나 사실 친구랑 제대로 사귀어본 적이 없거든.
이런 기분이구나. 친구를 사귀는 게.
뭐랄까 가슴 안쪽이 따뜻하면서도 몽글몽글 한 게 엄청 행복하네.”
어느새 동화는 아리아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동화는 반박할까 입을 열었지만 아리아를 보고 곧바로 닫습니다.
어느 때보다 애틋하면서 아름답게 빛나는 얼굴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리아는 기분 좋은 꿈을 헤엄쳐 다니다 늦게 나마 정신을 차립니다.
“내 정신 좀 봐. 동화님을 세워 놓고 무례를 저질렀네.”
“동화.”
“네?”
“동화라고 불러. 나만 아리아라고 부르면 이상하니까. 주위에서도 이상하게 볼 거고.”
먼저 거리를 둬 놓고 갑자기 이러는 것은 이상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복수였죠.
소소한 복수를 이룬 동화나 이내 욕심이 났습니다. 또한 궁금했습니다.
그가 저 빛을 반드시 피해야 할 이유가 있나 하고요.
그는 아리아의 저 빛을 더 보고 싶단 충동을 느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보다 아름다운 빛을 볼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이것.
그는 여태까지의 이성적 행동을 버리고 이번은 충동적 선택을 하고 맙니다.
그 답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인간 다웠습니다.
그는 속으로 쓴 내는 감추지 못합니다.
어쩌면 공주의 빛에 홀린 걸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아리아라고 불렀는데 나만 동화님은 불리는 건 부담스럽달까.
공적으로는 서로 님 자를 붙여도 사적 자리에서는 그러지 말자고. 어때?”
스스로 말하면서 동화는 어지럽습니다.
이유는 뻔합니다.
그도 이게 맞는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먼 미래에 이 선택을 후회할 지도 모릅니다.
허나.
당장 후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네!!!”
아리아는 정말로 기뻤는지 입을 틀어 막습니다.
정말 기쁜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네요.
눈을 크게 뜬 그녀는 틀어 막은 손을 뚫고 당찬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벅차오른 목소리에 더해 저리 빛나고 있습니다.
저런 아름다운 미소를 보았는데 어떻게 후회를 하겠습니까.
동화의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정말이지 알기 쉬운 공주님입니다.
“잘 부탁해. 아리아.”
만족과 별개로 피곤해질 미래에 사과하며 아이는 손을 내밉니다.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해요, 동화.”
밝게 빛날 미래에 웃음 꽃이 핀 공주는 환한 미소로 소년의 손을 붙잡습니다.
두 사람이 악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기는 시작 되었습니다.
세상은 이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습니다.
이 미미한 변화를 잡은 이들은 아주 극소수였습니다.
“...뭐지?”
감이 좋은 기사는 음식을 먹다 돌연 바깥을 쳐다봅니다.
“이상해.”
“뭐가 말이야?”
“아무튼 이상해.”
포션을 만들던 마녀는 귀찮다는 듯 눈을 찌푸립니다.
꽃 집 상인인 친구가 묻지만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그녀도 선명하게 잡을 수 없었기에.
“...”
달밤에 성.
술을 마시던 누군가의 붉은 잔이 미미하게 떨립니다.
“크아아아아아아!!!”
인간의 마음을 잊은 괴물은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 달을 올려다보며 울부짖습니다.
“후훗. 시작했구나.”
내기를 시작한 작은 소녀는 웃음을 흘립니다.
“뭐지?”
“왜 그래 아리아?”
공주는 어지러움을 느끼며 비틀거립니다.
그녀를 잡아준 동화는 걱정스러운 미소를 띄웁니다.
동화에게 기댄 아리아는 걱정 시켰다는 사실에 미안한지 어색한 미소를 짓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동화. 약간의 빈혈일 거야. 요 며칠 간 계속해서 동화 뒤를 쫒아 다녔으니까. 몸이 많이 피곤해졌나 봐.”
“너 지금 태연하게 무서운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그녀는 걱정을 지울 겸 사실을 섞은 농담을 합니다.
동화는 아리아의 의도를 눈치 챘지만 어울려줍니다.
본인이 원치 않는데 캐물을 순 없죠.
무엇보다 간단히 흘려들을 얘기도 아니고요.
아리아는 태연하게 받아칩니다.
“친구가 됐으니 아무 문제없으니 괜찮아.”
“괜찮기는! 그건 친구 사이에서도 문제가 많거든?! 안된다고!!!”
동화는 아리아의 상식에 절규합니다.
앞으로 고난의 바다에서 수영할 용사에게 애도를.
오늘도 세계는 일상 속에서 천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끝에 무엇이 가리킬지는 이제부터 알아보도록 하죠.
누구도 예상 못 할 변화.
당장을 알지 못할 미래.
확실한 게 있다면 한 가지입니다.
내기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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