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연주
“쳐라!”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장개의 병사들은
망설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듯
민부들에게 달려들었다.
비명이 터져 나왔고,
그 위로 창과 칼이 난무했다.
아우성에 놀란
조숭과 그 식솔들이
급히 토지묘 밖으로 뛰쳐나왔다.
밖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장개의 병사들은
사람을 찌르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비에 젖은 땅 위로
핏물이 흘러내렸고,
잠시 후—
발 빠르게 달아난 일부를 제외하고
민부들은 모두
빗속의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냐!”
조숭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장개는
그 모습을 보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뭐긴 뭡니까.”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당신들을 죽이고,
저 재물을 차지하려는 거지요.”
“이놈!”
조숭이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이러고도
서주목 도겸이
널 가만두지 않을 것 같으냐!”
“도겸?”
장개는 코웃음을 쳤다.
“저 많은 재물을
왜 내가 도겸에게 바쳐야 합니까?”
챙—!
칼이 뽑혀 나오는 소리가
빗소리를 가르며 울렸다.
장개의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너··· 너 이놈···!”
조숭이 뒷걸음질쳤다.
“뭘 하긴.”
장개가 한 걸음 다가왔다.
“죽이는 거지.”
그 순간—
푹!
장개는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철극 하나가
그의 머리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대··· 대장!”
병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리고—
“죽여라!”
수림 속에서
우레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위였다.
적은 이백.
아군은 고작 오십.
하지만
머리를 잃은 뱀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위는 맹수처럼
적진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병사들이 쓰러져 나갔다.
건장한 청년들만 선발한 가병들 역시
전위의 등 뒤를 따라
주저함 없이 덮쳐들었다.
순식간에
수십 구의 시체가
땅 위에 나뒹굴었고,
장개의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
“자··· 자네는···”
조숭은
넋이 나간 얼굴로
전위를 바라보았다.
전위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사흘 전,
어르신께 인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소인은 전위라 하며,
제 아우 하후광이
어르신께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렇군.”
조숭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전위가
조숭과 식솔들을 구한 뒤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그제야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전위와 함께 훈련하던
백 근이 넘는 쇠방망이를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
쇠방망이에는
이미 짓뭉개진 고깃살과
핏물이 뒤엉켜
지저분하게 붙어 있었다.
조숭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그 방망이에 머물렀다.
“어르신.”
나는 먼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지요?”
조숭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서주목 도겸이 보낸 병사가
어찌 우리를 해치려 한단 말이냐?”
“저희도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서주로 향하는 길에
도적 무리를 만나 충돌했는데,
그놈들 입에서
이자들이 서주의 병사가 아니라
인근의 도적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뭣이?
인근의 도적들이라고?”
조숭의 눈이 커졌다.
“장개라는 자는
원래 팽성국의 도위가 맞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몇 달 전,
무고한 백성들을 약탈하다
이미 쫓겨난 자였습니다.
황건적 잔당이었는지라
다시 도적으로 돌아간 것이지요.”
“휴······.”
조숭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식솔은 모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하후 가문의
하후광이라 했느냐?”
“네.
하후 가문의 하후광입니다.”
“자렴 장군과 자효 장군을
숙부님이라 부릅니다.”
그 말에
조숭의 표정이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조홍과 조인과도
친분이 있단 말이냐?”
“예.”
조숭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면
나는 할아버지라 불러야겠구나.”
그리고 말했다.
“내 목숨을 구해준 은혜,
연주에 도착하면
아만에게 반드시 전하겠다.”
그 말은
약속이자 선언이었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이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이 손자가
진류성까지 모시겠습니다.”
“상단의 일은 괜찮겠느냐?”
“할아버지의 안위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조숭은
진심 어린 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렇다면 든든하구나.”
그렇게—
나는
조숭을 모시고
연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조조의 시선은
천천히
나를 향하기 시작했다.
조숭이 서주에서 겪은 일을 하나하나 들려주자,
조조의 표정도 점점 달라졌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크게 웃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하하하!
이 녀석과는 나도 인연이 깊습니다, 아버지.”
조조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낙양에서 잃어버렸던
준마 절영을 찾아준 것도 이 녀석이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아버지와 식솔들까지 구해주셨다니—
이건 정말 갚고 싶어도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연주에 있는 동안
이 아이는 네가 잘 보살펴주거라.”
조숭의 말에
조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암요.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 말에는
형식적인 대답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때 조홍이 나섰다.
“형님,
이 녀석 보통 녀석 아니요.”
그는 나를 가리키며 씩 웃었다.
“진류성에서 가장 큰 주루,
영웅루를 아시지요?
그 영웅루의 주인이 바로 이 녀석이요.”
“영웅루라면
나도 소문을 들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다시 보았다.
“하후 가문의 산업이라 들었는데,
이렇게 어린 하후광이 주인일 줄은 몰랐구나.
기특한 녀석이로구나.”
“과찬이십니다, 백부님.”
이미 조숭을 할아버지라 불렀으니
조조를 백부라 부르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호칭 하나였지만,
나는 조조와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조숭을 구한 이야기가 퍼지자
영웅루의 명성은
연주 전역으로 더 크게 번졌다.
조조까지 가끔 방문한다는 소문에
손님은 끊이지 않았고,
장사는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하후은은
하나를 더 차리자는 말까지 꺼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영웅루의 역할은
이미 여기까지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장사 이야기가 아닌
다른 말을 남겼다.
“조앙이나,
그 또래 청년들과
잘 지내 두거라.”
하후은은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알 필요가 없는 진실도
있는 법이니까.
그날도 나는
조홍과 하후연을 초청해
영웅루 이층 원탁룸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자렴 형님.”
하후연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주공께서
여름에 서주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셨소?”
“그럼.”
조홍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에는 도겸을 완전히 섬멸하고
서주를 장악할 거야.
내가 직접 선봉에 설 테니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숙부님들께서 보시기엔,
복양성의 진궁 선생이나
장막 대인과
맹덕 숙부님의 사이는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조홍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막연한 사이는 아니지.
주공이 연주목이 되기까지
진궁 선생의 공이 컸다.”
“장막 대인도 마찬가지요.”
하후연도 말을 이었다.
“지난번 서주로 출전할 때,
주공께서 식솔들을
그분에게 맡기셨잖소.
그 정도면 신임이 얼마나 깊은지
말할 것도 없지.”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칫하면
힘들게 쌓아 올린 위신만
깎아 먹을 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잔을 들었다.
“이 조카가
숙부님들의 대승을 기원하며
한 잔 올리겠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경고가 아니라
관계를 다지는 일이었다.
어차피—
연주는
아직 빼앗기지 않을 것이고,
이들 또한
지금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 후로
나는 영웅루의 운영에는 거의 손을 떼다시피 했다.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재물의 이동.
영웅루에서 벌어들인 은전과 비단, 귀물들은
조용히, 그러나 빠짐없이
광은산장으로 옮겨졌다.
진류성을 빼앗기더라도
집 안에 남은 것이 없다면
적들은 굳이 불을 지르거나
집을 허물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의 표적은 변함없었다.
조숭.
나는 사흘에 한 번씩은 조숭을 찾아가
술자리를 열었고,
열흘에 한 번은
그를 광은산장으로 모셔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특히 여름이 되자
조숭은 더욱 광은산장을 좋아했다.
진류성의 눅눅한 열기와 달리
산장에는 늘 선들바람이 불었고,
밤이면 서늘할 정도였다.
서주 전방에서는
조조가 연전연승을 거두고 있다는 소식이
쉬지 않고 연주로 날아들고 있었다.
연주의 관원들은
벌써부터 서주 점령 이후를
이야기하며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이었다.
나, 그리고 진궁.
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어
조숭과 조조의 동생 조덕,
그리고 원래 역사에서
서주에서 죽어야 했던 식솔들을
모두 광은산장으로 불러 모았다.
될 수 있는 한
진류성은
역사의 흐름 그대로 두되,
이 시각 죽어 있어야 했던 사람만은
반드시 빼내겠다는 각오였다.
조조의 승승장구를
기뻐할 수 없는 또 한 사람,
동군 태수 진궁(陳宮).
조조가 연주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진궁의 추천 덕분이었다.
연주자사 유대가
황건적에게 격살된 혼란 속에서,
연주의 호족들을 설득해
조조를 연주로 끌어들인 인물이
바로 진궁이었다.
하지만 조조는
연주를 장악하자마자
가장 먼저 중용한 것은
거병 시부터 함께한
초창기 부하들이었다.
이 정도까지는
연주 호족들도 이해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영천군 출신 인물들이
대거 연주 요직을 차지하면서
호족들의 몫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여포가
하북을 떠나 장양을 찾아가는 길에
연주를 지나게 되었다.
흥평 원년 9월.
광은산장에서 더위를 피해
연회를 즐기던 조숭은
마침내 그 소식을 들었다.
“뭣이?”
조숭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진공대가 복양성에서 배신해
여포를 연주목으로 추대했다고?”
챙그랑!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진궁이··· 그 진궁이란 말이냐···?”
나는 곧바로 나섰다.
“진정하십시오, 할아버지.
진류군에는 하후돈 숙부님과
순욱 선생이 계십니다.
식솔들은 모두 안전할 것입니다.”
조숭의 눈이 흔들렸다.
“게다가 대부분의 식솔들은
이미 광은산장에 모셔 두었습니다.”
그제야 조숭의 숨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럼···
나는 진류성으로 가보는 게 좋지 않겠느냐?”
“위험합니다.”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곳에 계시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순욱 선생께서
반드시 수습하실 것입니다.”
“아만이 회군하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연주가 버틸 수 있을까···?”
“약속해 주십시오.”
나는 조숭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가병을 이끌고 내려가겠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 계신다고 약속해 주셔야 합니다.”
잠시 침묵 끝에
조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늙은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나는 즉시
전위와 함께 가병 삼백을 이끌고
범현으로 향했다.
범현에서 오 리쯤 떨어진 곳.
급히 달려가는 마차 한 대와
이를 호위하는 병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차에서 내려온 이는
홀쭉한 체구에 키가 큰 문사였다.
낯설지 않은 얼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정욱 대인 아니십니까?”
“자네는··· 하후광이군.”
정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양성으로 가는 길이신가요?”
“이미 함락되었네.”
정욱은 한숨을 내쉬었다.
“범현 현령 근윤이
아직 항복하지 않았다는 소문을 듣고
설득하러 가는 중일세.”
그때 가병 하나가 달려왔다.
“공자님, 범현 쪽에서
병졸 백여 명이 접근 중입니다.”
정욱은 말 없니 나를 바라봤다.
“범현에서 나오는 병졸이라면
아군이 아닐 가능성이 높겠군요.”
“확신하는가”
“확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느낌이 그렇습니다. 내기해볼까요?”
나는 전위를 바라봤다.
“내기는 무슨 그냥 죽여야지.”
전위가 즉시 움직였다.
전투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
노파 한 명, 여인 둘, 아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 작가의말
많은 선작과 추천 부탁드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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