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오랏 꽁 응우옌 -2-
“네? 싸장님. 월급을 비트코인으로 주신다고요?”
까오랏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 제안이 부당하다거나 곤란해서가 아닌 것 같았다.
그저 내쪽에서 먼저 그런 제안을 해올 줄 몰랐다는 반응 같았다.
‘왜 진작에 떠올리지 못했을까?’
까오랏은 불법체류자인 베트남인이었다.
불법체류자는 통장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통장이 없으니 보수도 당연히 현금으로 밖에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까오랏은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장도 못 만드는 까오랏이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까오랏은 비트코인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후진국일수록 치안이 좋지 않아 비트코인이 검은돈으로 많이 돌기 때문에.
비트코인으로 환전하여 송금하면 고향에서도 쓸 수 있기 때문.
돈이 아쉬운 입장에서는 환전 수수료 한 푼이 아쉬울 테니.
원화로 주는 것보다는 비트코인으로 직접 주는 게 훨씬 반가울 것이다.
‘까오랏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에게도 엄청나게 이로운 상황이지만 말이야.’
사실 까오랏의 사정 따위는 내 알바 아니었다.
중요한 건, 까오랏의 사정이 내게 이롭게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새로운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나는 대기업 시절 받은 퇴직금과 예금통장에 손을 댈 각오를 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더럽고 치사한 꼴을 견뎌가며 한 푼 한 푼 어렵사리 벌어들인 내 피 같은 돈.
그 돈을 쓴다는 게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월급 대신 비트코인을 주겠다는 고용주와 함께 일하려는 직원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가 직원이라고 해도 그딴 일터에는 지원하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이렇게 눈앞에 한국돈보다 비트코인으로 급료를 받는 것이 더 이로운 적임자가 나타났으니까.
나는 지금 비트코인이라면 썩어 넘치게 많았다.
거기까지 깨달았으니, 더는 이리저리 재거나 간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까오랏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
“합격입니다. 오늘부터 함께 일하시죠.”
“네? 싸장님. 그게 정말이에요?”
합격이라는 말을 듣고도 까오랏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만했다.
불법채류자라는 말만 듣고 내가 여태 거절의 뜻만 비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비트코인이라는 한마디에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 바꾸었으니까.
까오랏이 나의 반응에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너무 속보이게 행동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첫 만남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까오랏이 나를 신용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않을까?
‘오늘 잃은 신뢰는 앞으로 차차 극복해 가야지.’
까오랏이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바꾸기 전에, 나는 필요한 서류들을 후다닥 탁 해치웠다.
직원이 도망갈까 봐 중요한 절차들을 후다닥 탁 해치우다니.
벌서부터 악덕 고용주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 까오랏 씨. 오늘부터 함께 일하게 되어서 반가워요.”
“감싸합니다. 싸장님.”
“그럼, 조금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지금부터 일을 시작하실 수 있으세요?”
“네? 지금부터요?”
까오랏의 당황한 반응에 나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부터 일을 시키는 건 좀 선을 넘은 일이었나?
하긴, 면접에서 합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일터로 직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구멍가게나 편의점 아르바이트조차 다음 주 월요일에 나오라던가 그렇게 말하지.
한시라도 빨리 2조 원어치나 되는 비트코인을 돈세탁하고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조금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았다.
“아, 아무리 그래도 지금부터 일을 시작하는 건 너무 갑작스럽겠죠? 그러면 일을 정식으로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서로 협의를···”
“아, 아닙니다! 싸장님. 까오랏 지금 당장이라도 일할 수 있습니다! 뭐든지 시켜만 주세요!”
이 얼마나 의욕과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란 말인가?
요즘 젊은이 답지 않은 패기와 에너지였다.
까오랏이 사준 커피를 다 마신 뒤.
나는 그를 내 차에 태우고 쇼핑몰로 향했다.
쇼핑몰로 운전해 가는 동안, 나는 까오랏에게 조금 밑밥을 깔아 두기로 했다.
귀신의 집이나 다름없는 쇼핑몰의 꼬락서니를 보고 까오랏이 놀라지 않도록.
미리 조금 언질은 해두는 게 좋겠지.
“그, 저기 까오랏 씨?”
“네, 부르셨나요? 싸장님.”
싸장님이라.
대기업 노비로 살던 시절에는 싸장님이라 불릴 일이 없었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가는 단어였다.
기분 좋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까오랏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제가 아직 개인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사실 사업이라기보다는 돈세탁이 목적이긴 하지만.
나는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까오랏에게 말을 이었다.
“아직 사업처를 정리 중이라서 많이 어수선할 거예요.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괜찮아요. 싸장님. 까오랏 더 후진 곳에서도 일해봤어요. 웬만한 걸로는 놀라지 않아요.”
흠.
뭔가 예의 바르게 대답한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건 썩 예의 바른 대답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까오랏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떨떠름 한 표정으로 운전하며 쇼핑몰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쇼핑몰의 전경을 확인한 까오랏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우와···”
너무 티가 나게 놀라는 까오랏.
그 바람에 옆에 있던 나는 조금 멋쩍어져서 말했다.
“그래서 내가 미리 말했잖아요··· 좀 많이 어수선하다고.”
설마 이 귀신의 집 같은 쇼핑몰의 형상에 질겁해서 빤쓰런 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까오랏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까오랏이 놀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인 것 같았다.
“아, 아뇨. 싸장님. 일할 곳이 너무 커서 놀랐어요.”
까오랏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연신 쇼핑몰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짜로 이 커다란 건물이 전부 싸장님 건가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고요. 마침 건물을 싸게 넘긴다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중국사람이었는데.”
“와. 싸장님. 운도 좋으시네요. 이렇게 커다란 쇼핑몰의 주인이시라니···”
순수한 눈으로 쇼핑몰을 쳐다보면서 감탄하는 까오랏.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장난기가 생겨서 물었다.
“왜? 내가 이런 커다란 건물의 소유주처럼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까오랏 씨는 어떤 일터에서 근무하게 될 줄 알았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어디 작은 창고에서, 비료포대 나르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어요. 싸장님.”
“흠··· 그렇지 않아도 당분간은 그 비슷한 일을 하게 될 거예요.”
쇼핑몰의 전경을 쳐다보면서 까오랏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조금 자신이 없다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싸장님. 그럼 지금 직원은 저 한 명인 거죠?”
“네. 맞아요. 사실 태어나 살면서 누군가를 내 돈 주고 고용해 본 적은 처음이거든요.”
“저 혼자서 이 넓은 건물을 전부 관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싸장님.”
아,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걱정도 팔자 셔.
나는 까오랏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안심시켜 줬다.
“그런 괜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까오랏 씨. 어차피 지금 우리가 사용할 공간은 쇼핑몰에 있는 상가 한 칸뿐이니까요.”
나의 설명에 까오랏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칸만 써요? 사장님.”
“지금 하려는 일은 한 칸만 써도 충분할 것 같아서요. 건물의 나머지 부분을 쓰려면 또 자재를 치워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귀찮으니까···”
“이 커다란 쇼핑몰 건물의 한 칸만 쓰면··· 그러면 나머지는 언제 쓰나요? 싸장님.”
“그건 뭐··· 그때 가서 쓸 일이 생기면 써야겠죠.”
“나중에 쓸 일이 생기면? 싸장님. 쓸 일도 없는데 이렇게 커다란 건물을 통째로 사신 거예요? 주차장까지 포함해서?”
나 왜 혼나고 있냐?
그것도 오늘 막 고용한 부하직원한테?
하지만 까오랏의 반응은 나를 혼낸다기보다는 자신의 상식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에 단순히 경악한 것 같았다.
하긴.
대형 쇼핑몰 같은 걸 일시불로 턱 사버리는 대부호를 보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긴 하지.
까오랏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싸장님. 그렇게나 돈이 많으신 분이셨어요?”
“왜요. 까오랏 씨. 그렇게 부유한 사람 같이는 안보이던가요?”
“네. 싸장님. 많아 봐야 까오랏 보다 조금 더 돈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어요.”
너무 솔직하게 대답하잖아.
외국인이라서 한국식 돌려 말하기 방법을 모르는 건가.
나는 타이르듯 부드러운 말투로 까오랏에게 말했다.
“까오랏 씨. 그럴 때는 아닌 것 같아도 그냥 부유해 보인다고 말하는 거예요.”
“아! 죄송해요. 싸장님.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하는 걸 좋아하실 줄 알고···”
그렇게 말하면 가식적으로 돌려 말하라고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내가 조금 없어 보이잖아···
하긴, 돈이 걸린 사업을 하는 중인데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사업을 할 때는 언제나 현 상황을 미사여구 없이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부꾼이 있으면 듣기는 좋겠지만, 사업의 이득 자에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감언이설에 속아서 자신만의 아집에 갇히기도 쉽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황급히 까오랏에게 손을 휘저었다.
“아니, 내가 잘못했어요. 까오랏 씨.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해줘요. 오히려 까오랏 씨처럼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걸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는 직원이 내 사람이 되어서 기쁘네요.”
“알겠어요. 싸장님.”
“그럼 슬슬 일을 시작해 볼까요?”
“네, 싸장님. 뭐부터 하면 되나요?”
“일단은 매장 내부에 있는 쓰레기부터 전부 치우도록 하죠. 일단 그것들을 어떻게든 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알겠어요. 싸장님.”
내가 별다른 추가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도, 까오랏은 당장 일을 시작했다.
상사가 별 다른 지시를 할 필요가 없는 ’알잘딱깔센’의 표본과도 같았다.
원래 과거에 하던 일도 이쪽 계통인지, 까오랏은 능숙하게 매장 안에 있던 부서진 집기들과 쓰레기봉투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직원 하나는 정말 잘 뽑았구먼.
젊은이들이 더럽고 힘든 일은 피하려 하는 이 시기에 말이야.
까오랏이 한창 매장을 청소하는 사이.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백화점 건물이 거의 귀신의 집 같은 형상이듯이, 주차장도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서 엉망진창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아마도 백화점이 폐점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비질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드넓은 주차장은 낙엽이 덮인 것을 넘어서 아예 덩굴식물까지 자라고 있었다.
매장의 정리와 청소가 끝나면, 까오랏에게 주차장도 좀 어떻게 해놓으라고 해야겠네.
오랫동안 관리가 안 되어서 주차장의 상태가 너무 나빴다.
오죽 나빴으면 내 소유의 백화점 주차장인데도 내가 다른 곳에다가 차를 주차할 지경이었다.
‘당연히 주차 등록기도 망가졌겠지.’
백화점이 운영하던 시절에는 멀쩡 했겠지만, 지금은 망가져있었다.
나는 망가져서 더 이상 바늘이 움직이지 않는 주차 등록기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곧 생각했다.
‘이 정도는 내 손재주로도 고칠 수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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