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킬 잠금 해제
경험치란 무엇인가?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경험에서 무엇을 깨닫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는 순간 정해진 양의 경험치가 자동으로 쌓인다.
유저의 생각, 감정, 상황 따위는 상관없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금의 현실에서 경험치는 그냥 몬스터를 잡았다고 해서 무작정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꺠닫고,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해 움직이려는 '의지'가 필요했다.
때문에 생각없이 몬스터에게 달려들고, 두려움만 느끼며 휘두르는 공격으로는 경험치를 거의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경험치를 받을 자격조차 없었다.
그저 공포만 경험할 뿐...
"으아아아 다가오지마!!"
공포에 사로잡혀 뒷걸음만 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상태창은 결국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면, 죽음의 문턱에서...
"으아악! 이렇게 죽긴 싫어"
퍼억!!
살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마지막 힘으로 휘두른 주먹 한번.
그 작은 몸부림에 상태창은 마침내 반응했다.
띠링.
[플레이어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그들은 마침내 플레이어가 되었다.
반면-
이미 '유저'였던 사람들.
이 세계를 모니터 너머로 일부 혹은 전체를 경험해 본 자들.
그들이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순간-
띠링-
[축하합니다. 모든 스킬 잠금이 해제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계가, 완전히 열려버렸다.
몬스터 웨이브는 각성의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
강제로 사람의 한계를 밀어붙이고, 벼랑 끝에서 '변화'를 강요하는 장치.
그녀에게도 그랬다.
그녀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모든 사람을 지키는 건 불가능할지라도-
적어도 눈앞의 사람들만큼은 반드시.
아이를 좋아해 유치원 교사로 일해왔던 그녀였다.
아이의 울음, 작은 손, 두려움...
그런 것들에 누구보다 약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맑은 눈동자 속에
한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아이를 향해 검은 형체 하나가, 날카로운 울음과 함께 달려들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안 돼...'
그녀는 간절히 바랐다.
그 아이를 지킬 힘을.
도망이 아닌, 막연한 희망이 아닌-
실제로 지킬 수 있는 힘을.
그 순간-
쐐애왱!!
퍼억!!
꼬마아이는 공포에 질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떨리는 몸.
하지만-
스르륵.
투욱.
몬스터가 아이 앞에서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흘러내리며 쓰러졌다.
가슴에는 구멍하나.
바람이 뚫고 지나간 듯한 정교한 궤적.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푸슉!
푸슉!
푸슉!
눈에 보이지 않는 활과 화살이 그녀의 손끝에서 연달아 튀어나와
몹시 자연스럽게 몬스터의 몸을 관통했다.
그것은-
무형의 활.
궁수의 기본 약타와 강타.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낮고 단단한 속삭임.
"파이어 에로우"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불꽃이 타올랐다.
콰아아아-!!!
손끝에서 튀어나온 불화살 한 발.
하지만 그 한 발은 곧 불꽃의 파도처럼 터져나가
근처 몬스터들을 한 번에 삼켜버렸다.
뜨겁고, 밝고 눈부신 불길이.
그녀의 이름은 서지안.
몬스터 헌터 25 레벨, 궁수 유저였다.
"괜찮아?"
불꽃이 가라앉기도 전에
지안은 곧장 그 꼬마아이에게 달려가 상처가 있는지 확인했다.
떨리는 어깨.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
하지만 아이는 용케도 버텨내고 있었다.
지안은 부드럽게 아이의 손을 잡았다.
"무서웠지? 하지만 잘했어. 정말 잘 버텼어."
그 말에 꼬마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짧고 은은한 알림음과 함꼐,
처억.
그 꼬마의 작은 손 안에서 초급용 나무 몽둥이 하나가 천천히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누가 건네준 것도 아니었다.
마법처럼 스스로 나타난 무기.
지안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혹시, 너도...?"
아이의 눈동자에는 아직 공포가 남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 작은 용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온은 그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직... 10 레벨을 찍지 않은 것 같은데...
스킬을 개방했다고...?
스킬은 처음부터 레벨 제한으로 잠겨 있는 게 아닌가...?'
반면, 불량한 남자 무리의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몬스터가 공중에는 소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마치 기회를 본 듯 허겁지겁 윗층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2층 건물 지면에도 몬스터가 소환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대로 포위됐다.
처음에 유저 플레이어로 각성했을 때,
그는 자신만 선택받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기고만장했고, 거칠 것이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또 다른 유저가 있었다.
자신보다 강한 유저들이 수두룩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몬스터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었다.
그는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이건 말도 안 돼...!"
그들은 정신없이 달아나며 마법진이 지나가지 않은 공간을 찾아 위층으로 계속 도망쳤다.
3층에는 소환되지 않겠지...
4층은 괜찮겠지...
그의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다.
결국 그들이 도착한 곳은 옥상.
하지만-
옥상에서도 몬스터는 계속 소환됐다.
"여... 여기에도 계속 튀어 나온다고....?"
마법진은 쉬지 않고 계속 하늘로,
더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높은 하늘 위에서 절망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네 개의 머리.
각 머리는
불, 얼음, 바람, 대지 속성으로
각각 다른 색의 아우라를 뿜어냈다.
하지만 몸은 하나.
한 번의 날갯짓으로 하늘을 뒤흔들 것 같은 거대한 날개.
번개처럼 빛나는 비늘.
그 모습은 누구나 던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드래곤-
네 속성을 품은 혼종.
재앙 그 자체.
지상도 안전하지 않았고,
윗층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하늘마저 안전하지 않았다.
혼종 드래곤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띠링.
띠링.
유저였던 플레이어들에게만 특별한 알림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이제 영웅이 될 시간입니다.]
[봉인된 힘을 깨우고,
하늘에 나타난 재앙을 물리치십시오.]
[제한 시간: 10분]
[성공 시 -> 본 도시는 안전지역으로 전환됩니다.]
[실패 시 -> 도시 멸망.]
...도시 멸망.
그 단어 하나가 모든 유저 플레이어의 등골을 차갑게 식혔다.
하늘 위, 혼종 드래곤은 네 개의 머리를 각각 들고
각 속성의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속성의 힘이 모일 때마다 하늘의 색이 일그러졌다.
웅-
웅-
웅-!
네 개의 속성이 서로 맞물리며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 하나가
천천히-
그러나 무시무시한 형태로 응축되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를 지울 수 있는,
한 번의 공격.
그리고-
[카운트다운 시작]
[10:00]
[09:59]
[09:58]
똑딱-
숨이 멎는 소리와 함꼐 절망의 타이머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유저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10분.
그 안에 하늘에서 떨어질 재앙을 막아야 한다.
서지안과 강시온은
그 재앙을 직접 확인해야 했다.
서지안의 파이어 애로우 덕분에 건물 내부의 몬스터들은 대부분 소탕된 상태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각성자.
이 정도면 당장은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둘은 거의 동시에 위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서지안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빠른 이동 속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따라오는 남자.
서지안: "당신은...?"
강시온: "네. 저도 유저예요."
윗충에 도착하자 눈앞에 빽빽하게 소환된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서지안은 망설임 없이 손끝을 겨눴다.
"파이어 애로우."
콰아아-!
불길이 터져 나오며 몬스터들이 재로 변했다.
강시온은 한 걸은 뒤에서 조용히 그녀를 따라 나섰다.
서지안: "당신은 스킬 안 써요?"
강시온: "저야 말로 묻고 싶네요. 스킬개방... 어떻게 한 거예요...?"
서지안: "...?"
강시온: "...?"
둘은 동시에 멈칫했다.
서지안은 너무 급박하게 상황 속에서 자신이 스킬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제대로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들은 말을 잇지 못한 채 침묵 속에서 또 다른 몬스터 무리를
더 높은 층을 향해 올라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서지안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스킬이 열린 거지?
내가 했던 건... 단지...
그 아이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는데...?'
옥상에 도착하는 순간-
두 사람은 숨을 멎었다.
옥상 바닥에는 몬스터들의 시체와 불량한 남자 무리의 시체가 뒤섞여 쓰러져 있었다.
콰드득..
콰득...
살아남은 늑대형 몬스터 몇마리가 한 사람의 몸을 물어뜯고 있었다.
서지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푸슉! 푸슉! 푸슉! 푸슉! 푸슉!
다섯 발의 무형 화살이 순식간에 꽂히며 늑대들은 차례로 쓰러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괴롭힘을 일삼던 불량무리의 리더였던 남자.
그는 완전히 목숨을 잃어 있었다.
서지안과 시온은 순식간에 엄습한 현실에 말문이 막혔다.
몸이 떨렸다.
심장이 빠르게 올라붙었다.
그리고 그 떨림 속-
그들의 시야 한쪽 끝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그림자가 일렁였다.
서지안과 시온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자신들에게 닥쳐온 재앙을.
웅-
웅-
혼종 드래곤이 모으는 에너지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었다.
서지안: "막아야 해..."
그녀는 떨리는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활 사격 자세를 잡고
힘겹게 외쳤다.
"파이어 애로우!"
콰아아아-!
거대한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그러나 불꽃은...
드래곤에게 닿기고 전에 허공에서 허무하게 사라졌다.
시온: '사거리 밖이군.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닿아.'
반면, 지안은
자신의 스킬이 닿지 않는 현실에 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 때였다-
타닷.
타닷, 타닷.
주변 곳곳에서 발소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몇몇 유저들이 지안이 쏘아올린 거대한 불기둥을 보고 옥상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궁수 유저다!"
"사거리가 안 닿는 모양이군."
"방금 스킬 쓴 거예요?"
"우리도... 스킬 쓰는 법 좀 알려줘요!"
그리고-
쐐애액~
도시 곳곳에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 도시 중심의 가장 높은 건물로
동시에 향하고 있었다.
"거의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군."
"대답은... 저기에 가면 얻을 수 있겠지."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시의 모든 유저들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옥상 위,
이미 48명의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그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즉시 전력 분석에 들어갔다.
모두가 협조적으로,
유저 시절 자신의 레벨을 순순히 말했다.
30레벨 이하 유저: 10명.
30~60레벨 중급 유저: 30명.
60레벨 이상 고레벨 유저: 5명
99레벨 만렙 유저: 3명.
숫자가 정리되자,
누군가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도시 전체에서 몬스터 헌터를 해본 사람이...
겨우 이 정도밖에 없었다니..."
사람들의 표정에 실망이 스쳤다.
- 작가의말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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