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 그리고 카운터의 한방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
사람들은 만렙 유저가 두 명뿐이라고 생각했다.
강시온 역시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자신이 무도가라고 밝히는 순간 돌아온 건 무시였기 때문이다.
만렙 유저 두 명은 모두 마법사 계열이었다.
마강석
99레벨, 2차 전직 대마법사
이수영
99레벨, 2차 전직 성마법사
몬스터 헌터가 레벨업 난이도가 극악이었던 이유는 컨텐츠 후반부였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잡아야 하는 몬스터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중에도 가장 만렙에 도달하기 쉬운 직업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마법사였다.
마법사는 마나 운용 효율이 가장 좋은 직업군이었고,
사냥 구조도 매우 단순했다.
원거리 광역 스킬이 많아
그저 안전한 거리에서 마법만 난사하면 됐다.
그래서 몬헌에서 만렙 유저의 절반이 마법사였고,
흔한 직업이면서도 강력한 직업이었다.
반면, 강시온의 직업 무도가.
그의 2차 전직 직업 카운터는 오직 단거리 단일 스킬만 갖고 있었다.
시온은 몬스터와 한마리씩, 1대1 맞붙어 사냥해야 했고
항상 적과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해야 했기에 안전과는 거리가 먼 플레이를 반복해야 했다.
같은 무도가 계열이라도
다른 2차 전직인 파이터는 그나마 에너지파 같은 광역 스킬이 하나 있었고,
덕분에 몰이 사냥이 가능했다.
하지만 카운터에게는 그런 사정이 없었다.
그래서 몬헌 서버가 종료될 때까지
카운터 만렙 유저는 단 두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가-
바로 강시온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혼종 드래곤을 공격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10레벨에 도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험치를 올리는 법도, 레벨업하는 정확한 방식도 아무도 몰랐다.
초반 1~7레벨까지는 단순했다.
그저 주어지는 퀘스트만 깨면 자동으로 레벨이 올랐다.
그러나 7레벨 이후부터는 경험치가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플레이들은 7레벨 보상으로 받은 나무 목검을 손에 쥔 채,
막연히 혼종 드래곤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스킬 잠금을 풀려면 10레벨을 찍고 직업 전직을 해야 한다."
그 때,
88레벨 2차 전직 버서커였던 정우주가 앞으로 나섰다.
콰앙!!
그는 목검을 휘둘러 들고
강하게 지면을 박차며 혼종 드래곤을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하지만-
휘이이익...
아무리 높이 뛰어도,
그의 점프력은 드래곤에게 닿지 않았다.
정우주는 허공에 허무하게 떠 있다가
결국 다시 지상으로 떨어졌고,
잠시 멍해지 표정으로 다시 옥상으로 올라왔다.
뻘줌한 침묵만이 흘렀다.
그 때, 서지안의 스킬을 직접 목격했던 누군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일단 서지안님 말씀부터 들어봅시다.
지금 상황에서... 스킬 잠금을 풀어낸 건 이분뿐인 것 같으니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지안에게 쏠렸다.
서지안은 숨을 고르고, 자신이 겪었던 순간을 최대한 자세하게 그리고 빠르게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사람들은 곧장 각자의 방식대로 그 의미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지키려는 마음... 그런 감정 때문에 열린 건가?"
"아니면, 스킬을 쓰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일까?"
그떄-
만렙 유저 중 한 명인 이수영이 작게 중얼거렸다.
"강력한 마음...
스킬을 사용하려는 의지...
그러고... 어쩌면 난 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확신!"
번쩍!!
순간, 그녀의 몸에서 마나의 폭풍이 터져 나왔다.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그녀의 눈동자는 푸른 마나처럼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이수영이 낮고 선명하게 선언했다.
"난 성마법사.
별의 마나를 다루는 자."
그녀는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붉은 별이여."
붉은 화성 같은 구체 하나가 그녀 곁에서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파란 별이여."
푸른 수성 같은 마나 구체가 이어서 떠올랐다.
"푸른 별이여."
초록빛 목성을 닮은 구체가 이어졌다.
"황색 별이여."
노란 금성 같은 마지막 구체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성마법사는 별을 소환하고,
각 별의 속성에 따라 마법 시전 속도와 위력을 극대화 하는 직업.
그리고 성마법사의 궁극기-
자신이 소환한 모든 별과 마나를 한 지점에 집중해 쏘아 올리는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위력의 마법.
그 설명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하나둘 떠오르며
경외감 섞인 웅성거림이 옥상위를 채웠다.
시온도 그 관경을 지켜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몰입."
조건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몰입이라는 건,
하려고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억지로 하려 들수록 더오글 거리는 법이었다.
"나오란 말이야.. 내 마음속의 중2병..."
그떄, 누군가 갑자기 옆에서 쓸데없는 드립을 던졌다.
"흐흣... 푸흣..."
순식간에 사람들이 분위기를 못 참고 터져버렸다.
나름 진지하게 몰입하려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한마디에 그대로 정신줄이 끊긴 것이다.
"쓸.. 쓸데없는 소리는 속으로 해주세요... 푸흣..."
웃음을 참으면서 말하는 그 목소리에 옥상 한켠에서 작은 웃음이 연쇄적으로 새어 나왔다.
어느덧 남은 시간은 2분.
스킬을 개방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 기괴한 현실에 자신을 억지로 몰입시키며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반면, 서지안은
남아 있는 마나를 짜내다시피 사용해
계속해서 드래곤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렸지만-
드래곤이 두르고 있는 거대한 마나 장벽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고 손끝이 저려올 때쯤-
드디어 성마법사 이수영의 스킬 시전 준비가 끝났다.
게임에서는
버튼 한번으로 '펑' 하고 나가던 궁극기.
하지만 현실에서의 시전은 비교도 안 될 만큼 길고 압도적인 과정이었다.
그녀의 몸 주위로 네 개의 별이 행성처럼 공전하고 있었고-
마나 폭풍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사정없이 휘날렸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하늘의 혼종 드래곤을 겨냥했다.
숨 하나 내쉰 뒤,
그녀의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데스뜨룩시온... 에테르나!"
콰아아아아아아!!!
폭발적인 에너지 광선이 하늘로 뿜어져 나갔다.
하늘 자체가 갈라지는 듯한 굉음.
땅이 진동했다.
사람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그 한 줄기의 에너지에 시선을 고정했다.
거대한 빛줄기가 드래곤의 마나 장벽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퍼엉-!!
하늘이 뒤집히는 듯한 폭발.
빛과 충격파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이수영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네 개의 구체가 더욱 빠르게 회전하며
광선의 위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적...!
쩌저적...!
챙그랑!!!
마침내-
드래곤을 감싸고 있던 마나 장벽이산산조각 나며 깨져버렸다.
마치 하늘에서 유리가 부서지듯 빛의 파편이 비처럼 흩어졌다.
도시 전체에 감탄과 공포가 뒤섞인 숨소리만이 울렸다.
남은 시간 1분.
이수영이 쏘아올린 광대한 빛줄기는 드래곤의 마나 장벽를 산산이 부쉈지만-
동시에 그녀의 마나도 완전히 고갈되어 버렸다.
다시 그 위력의 마법을 시전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때-
또 다른 만렙 유저,
대마법사 마강석이 조용히 속삭였다.
"이젠 내가 해볼게."
그의 눈빛이 번쩍이며 몰입에 성공하는 순간-
"텔레포트"
슈슉-!
한순간에 마법이 닿는 거리까지 드래곤 바로 아래로 순간이동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양손에서 수십 개의 마법진이 빠르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대마법사.
그는 단 한 방의 위력은 성마법사보다약하지만-
대신 미친 시전량과 물량으로 승부하는 직업이었다.
성마법사가 마법 대포라면
대마법사는 마법 기관총.
콰콰콰콰콰콰!!!!
수십 발의 마법이
혼종 드래곤을 향해 폭우처럼 쏟아졌다.
남은 시간 50초.
마강석의 공격이 시작되자
옥상 위에서는 연달아 각성 성공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입에 성공해 스킬 잠금이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은 시간 40초.
각성에 성공한 플레이어들이 시전 시간이 가장 빠른 스킬들을
그야말로 있는 대로 드래곤에게 퍼부었다.
불꽃, 전격, 얼음, 돌덩이, 바람.
각양각색의 마법들이 하늘을 뒤엉켜 터져 나갔다.
드래곤의 몸 곳곳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두 개의 머리가 힘없이 축 늘어졌다.
그러나-
아직 두 개의 머리는 남아 있었다.
남은 시간 30초.
퍼퍼펑!!
콰앙!!
파지직!!
다급한 스킬 시전과 폭발이 연이어 터졌다.
모두가 마지막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남은 시간 20초
하지만-
강시온은 아직도 각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몰입하려 했지만,
억지로 하려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질 뿐이었다.
남은 시간 10초
드래곤이 거대한 숨을 들이켰다.
남아 있는 두 개의 머리가 도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브레스 준비 완료.
지상 전체가 푸르스름하게 물들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 5초.
강시온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결정했다.
스킬 개방?
몰입?
각성?
모두 잊었다.
"... 지금은 뭘 따질 때가 아니지."
콰앙!!
강시온이 옥상을 강하게 박차는 순간-
그 충격으로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콰르르릉...
그는 폭발적인 속도로 하늘로 튀어 올랐다.
남은 시간 1초.
혼종 드래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도시를 향해 브레스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빛이 모이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모든 플레이어의 시야를 하얗게 가르는 잔광과 함께-
하늘을 가르는 한 남자.
혜성처럼 빠르게 모든 사람들 머리 위를 스쳐 지나
곧장 드래곤의 브레스 속으로 뛰어 들었다.
사람은 몰입하기에 행동하는가?
아니면 이미 행동했기에 몰입하게 되는 것일까?
강시온은 후자였다.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 몸.
그 행동이 스킬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섬짓-
순간, 혼종 드래곤은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음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터져 나온 것은 폭발적인 마나가 아니었다.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숨막히는 기백(氣魄).
곧 목덜미를 물어 뜯길것만 같은 본능적 공포가
드래곤의 모든 감각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
번뜩-!
2차 전직 카운터,
레벨 50때 습득하는 고유 스킬.
브레스로 뒤덮인 하늘 속-
불빛 너머에서 타오르는 듯한 눈빛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형체는 브레스를 정면으로 뚫고 나와
순식간에 드래곤의 복부 바로 아래까지 도달했다.
강시온이 내뱉었다.
"카운터 펀치"
[카운터 펀치: 상대의 공격을 무시하는 일격을 가합니다.]
퍼억!!
콰아앙!!!
순간-
한 번의 일격으로 드래곤의 복부가 안쪽에서부터 터져 나갔고,
남아 있던 두 개의 머리는 동시에 산산조각 나며 흩어졌다.
쐐애애액-!!
굉음과 함꼐 드래곤의 거대한 몸체는
공중에서 뒤틀리며 떨어졌다.
강시온은 드래곤을 관통한 채 도시 외곽까지 그대로 날아가
땅 위에 폭발적인 충격과 함께 착지했다.
콰득-!
그리고 적막.
그 짧은 순간,
드래곤을 쓰러뜨린 그 남자를 직접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단지-
레벨이 높은 몇몇 무투계열 유저들만이 그가 지나간 방향에서
잠깐 스쳐 간 그 그림자와 기백을 느꼈을 뿐이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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