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1-Ugly love] 가스라이팅 하는 사랑(1)
비몽사몽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의식은 분명 또렷한데, 정신은 껍데기를 벗겨낸 듯 허공을 떠돌았다.
재영이는 저항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희미한 의식 속에서, 구렁이가 몸을 칭칭 감아 죄어오는 듯한 압박감이 재영을 짓눌렀다.
형체조차 없는 무언가가 기분을 더럽힐 때마다, 목덜미에서 등골로 소름이 번지고, 억눌린 숨결이 비명처럼 끊어져 나왔다.
재영의 신경은 마치 불길에 달궈진 듯 타들어갔고, 머릿속은 수치스러운 절정에 내몰렸다.
왜 이런 감각에 빠져드는 건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눈을 꼭 감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던 재영이 슬며시 눈을 떠봤다.
눈꺼풀을 스치듯 기묘한 기운에 휩싸여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너머로 낯선 그림자가 얹혀 있었다.
그가 한쪽 입가를 비열하게 올리자 반짝 드러난 송곳니가 핏빛으로 빛났다.
목소리를 내지르려 했으나 목은 굳어 있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만 목구멍에서 메아리쳤다.
*
창밖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해가 저물고 밤이 다가왔다.
재영은 이불을 끌어안은 채 한숨도 자지 못한 채로 저녁을 허비했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매니저인 전태성 실장이 화면에 떴다.
재영은 부스스한 몸을 이끌고 급히 씻은 뒤, 간단히 옷을 걸쳤다.
얼마 안 지나 곧 승합차가 집 앞에 멈췄고, 전태성 실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얼굴이 영 아니다. 잠 못 잤어?”
“네, 거의 못 잤어요.”
말을 아끼며 승합차에 오른 재영은 창밖으로 스치는 네온사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네가 활동을 안 해도 명색이 가수인데, 관리는 좀 하자, 응?”
그녀는 솔로 여가수였다. 걸그룹 오디션에서 간신히 최종까지 살아남아 데뷔를 할 수 있었다.
다만 외모만 예쁠 뿐, 가창력도 안무도 부족해 위험부담이 큰 노래는 피하고 안전한 무대만 주어졌다.
회사는 이를 ‘시티팝’이라 포장했다.
하늘하늘한 청량감, 그것이 전부였다. MR이 받쳐주니 굳이 고음을 찢어 올릴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무대는 자주 오르지 못 했다. 재영의 무대는 늘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은 일정이 어떻게 돼요?”
“연예일보 김현진 기자 만나는 날이야.”
“김현진 기자는 왜요?”
“그 자식이 이번에 우리 회사 애가 산부인과 갔다온 거 알아버렸어. 안 뿌리고 광고로 막아주기로 했는데 덤으로 너랑 저녁 술자리도 잡아달라네.”
바로 술자리였다. 협약 상 터치는 할 수 없지만, 술잔이 오가고 대화가 이어지면 작부로 내몰린 듯한 수치심은 어쩔 수 없었다.
단가를 꽤 높이 쳐주는 재영은 그 자리에서 그저 웃음을 지어야만 했다.
노래할 때는 청량의 얼굴, 술자리에서는 웃음의 얼굴.
그게 아니면 7년짜리 계약을 버텨낼 도리가 없었다.
*
“미쳤어? 누가 이따위로 분칠하래!”
“오늘은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헛소리 집어쳐. 김현진 그 놈이 원하는 건 무대 위 네 콘셉트야! 들어가서 당장 고쳐!”
전태성 실장의 고함이 칼날처럼 공기를 가르며 메이크업실 문짝을 후려쳤다.
재영이가 접대를 해야 하는 김현진이 원하는 콘셉트로 화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태성 실장이 김현진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명백했다. 그 기자는 연예계 대부분의 뒷골목 정보를 쥐고 있었다.
강남 일대 산부인과, 성형외과, 여성의원, 비뇨기과의 내역을 꿰차고, 누가 임신 검사를 했는지, 누가 성병 검사를 받았는지까지 손금 보듯 알고 있었다.
그 더러운 정보를 덮는 대가로 여색을 탐한다는 것은 업계에서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결국 재영은 가볍게 숨을 몰아쉬고 다시 메이크업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직원들이 대기 인원이 많아 시간이 걸린다고 했지만, 전태성 실장이 소파를 전복시킬 기세로 성을 내자 금세 자리가 마련됐다.
*
한참 뒤 재영은 청담 R&V의 불빛 아래로 걸어 들어갔다.
그곳은 예정된 김현진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였다.
가는 길에 들려온 소문이 귓가를 때렸다.
김현진 기자는 접대의 협약대로 손끝 하나 대지는 않지만, 기묘한 취향을 드러낸다고 했다.
담배 연기를 얼굴에 뿜어달라거나, 자기 잔에 남은 술을 건네받아 마시라거나, 노래를 시킬 때도 무대 위의 당당한 모습 대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부르라 강요한다는, 변태적 성벽에 가까운 주문이었다.
재영은 큰 봉변을 피하려면 그가 원하는 콘셉트를 절대 드러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하지만 지정된 룸에서 김현진 기자를 처음으로 제대로 본 재영은 순간 숨이 멎을 듯했다.
멀리서 보거나 매스컴에서 봤던 것보다 그가 훨씬 잘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저 찢어진 눈이 그렇게 야하게 보였다.
데뷔하는 연예인들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듯 그에게 팔려갔다지만, 한편으론 50세 나이가 무색하게 잘생긴 그에게 진정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항간에는 그를 늙지 않는 뱀파이어 외모라고 칭하기도 했다.
재영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아무리 그가 겉보기에 멋있어 보인다 한들, 그는 펜대로 여러 연예인을 농락하는 기레기일 뿐이다.
사랑 없이 몸을 취하는 권력형 성범죄자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됐다.
양다리를 곱게 모은 재영은 떨리는 양손을 깍지 끼워 꼭 붙들어 맨 채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김현진은 본인이 즐겨 마시는 싱글몰트 스카치위스키 글렌파클라스 40년산을 재영의 잔에 가득 따랐고 이내 본인 잔에도 따랐다.
손짓으로 마셔보라고 권했는데, 유재영이 멈칫멈칫 행동을 주저했다.
“왜 안 마셔?”
“이 비싼 위스키를 제가 마셔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겁먹지 말고 자연스럽게 마셔. 넌 무대에서처럼 청량하면서도 고귀해야 하고 신념이 있어 보여야 돼.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당당해야 하지.”
김현진이 먼저 스트레이트 잔에 담긴 글렌파클라스 40년산을 목구멍에 슬며시 밀어 넣었다.
진한 풍미와 은은한 스모키향이 입가에 알싸하게 퍼지자 김현진은 한쪽 눈가 밑을 살며시 구겼다.
잔을 톡 내려놓은 김현진은 재영에게 앞에 놓인 잔을 마셔보라고 재차 손짓으로 권했다.
재영은 김현진 눈치를 살살 보면서 천천히 양손으로 잔을 들어 올렸다.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는 조미료 낸 국물을 테이스팅 하듯 후룩 소리와 함께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순간 목구멍이 탈 듯한 고통을 느낀 유재영은 사레들려 컥 소리와 함께 콜록거렸다.
곧 옆에 놓인 물잔을 벌컥벌컥 밀어 넣어 한껏 달궈진 식도를 식혔다.
김현진이 테이블을 툭 치자 흠칫 놀란 유재영이 어깨를 들썩였다.
어설픈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한심하게 느껴진 김현진은 절로 한숨을 입술 새에서 뱉었다.
“멍청한 표정에 어수룩한 행동까지. 아직도 넌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순결 청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너에게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재영은 본래 소속사 내에서 청순함의 대명사로 꼽혔다.
청순이란 무엇인가. 대체로 긴 흑발 생머리, 가녀린 자태, 잡티 없는 백옥 같은 피부, 노출 없는 다소 느슨하고 긴 의상, 큰 눈동자, 화장하지 않은 듯한 얼굴, 곁들어 창백한 톤이 남성의 보호본능을 이끌어 낼 때를 청순이라고 할 수 있다.
재영은 나열한 청순의 이미지를 완벽히 구현하고 있다. 그런 무기를 본능적으로 지닌 유재영에게 청량한 콘셉트는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었다.
결국, 청량이라는 핑계로 한 번 가져보겠다는 심산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나니 재영은 가슴께 손을 올려 옷고름을 꼬옥 붙들어 맸다.
김현진은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는 유재영을 눈치채고 이내 히죽 웃더니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런 자세로 청량함을 대표하는 가수가 될 수 있겠어? 머리부터 발까지 치장만 바꿀 게 아니라 뇌 구조부터 마음가짐까지 다 바꿔야겠네.”
김현진의 손끝이 재영 머리칼을 스쳤다. 움찔, 경련 일어나는 몸을 애써 바로 세운 재영이 시선을 반대로 두고 눈을 꼭 감고 입술도 꽉 깨물었다.
그사이 김현진의 스킨십은 더 과감해졌다. 머리 한 올을 손가락으로 빙 둘러 잡고는 가볍게 본인 쪽으로 당겼다.
“이 머리도 잘라야겠어. 긴 머리가 청량 콘셉트에 제일 걸림돌이야. 단발로 가자.”
태어나 단 한 번도 가위를 어깨까지 대지 않은 긴 머리였기에, 그녀에게 단발은 조선 말 고종의 단발령보다 더 모진 칙령처럼 다가왔다.
단발령을 내리니 재영의 이맛살이 심히 구겨졌다.
재영의 불쾌감을 본 김현진이 김샌 표정을 짓고는 묵직하게 한 마디 전했다.
“됐다. 꺼져버려. 오늘은 재미가 없네. 나중에 콘셉트 맞춰서 다시 나와.”
기묘하게도 그 말은 차분했으나, 방 안 공기는 한순간 얼어붙었다.
“저 진짜 가요?”
“가라고.”
뭔지는 몰라도 어쨌든 청량함이 보이지 않았던 재영의 이날 밤은 다행히 정조를 지킨 밤이 됐다.
재영은 가방을 챙겨 룸을 나섰다. 복도를 걸으며 어깨가 축 늘어졌다. 높은 힐이 또각또각 우아한 소리를 내야 하는데, 발걸음은 무겁게 질질 끌리며 터벅터벅 울려 퍼졌다.
밖은 이미 네온사인과 어둠이 뒤섞여 있었다. 대기하던 전 실장은 담배를 바닥에 내던지고 구둣발로 비벼 끄더니 재영에게 성큼 다가왔다. 표정만 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까였군, 까였어. 그러곤 전태성 실장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승합차 문을 열어 그녀를 태우고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룸미러 너머로 고개를 푹 숙인 재영이 보였다. 기가 한껏 꺾여 있는 모습이, 이날 따라 더 애처롭게 다가왔다.
“너, 너무 고집 부리지 마라. 너보다 훨씬 잘 나가는 애들이나 이미 톱에 오른 애들도 술자리는 무조건 나가. 생각해 봐라. 그동안 무일푼인 너희들에게 하루하루 쓴 돈이 얼만지. 다 회수하려면 10년은 더 걸려. 회사조차 회수 못 하는데 너희들에게 갈 돈이 있을 것 같아? 그러니 손님들 잘 상대하고, 그러다가 거기서 스폰서도 잡고. 그리고 무대도 더 잡고. 어쩔 수가 없어.”
재영은 대답 대신 침묵을 택했다. 비웃듯 피식 웃은 전 실장이 신호 대기 중 고개를 돌렸다.
“너만 고귀하다고 생각하지 마. 이 바닥은 이게 기본이야. 그게 싫으면 떠나.”
재영은 스스로 무언가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래도 중간 이상은 했다고 생각하고, 그 열정에 대한 서사를 팬들이 알아봐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온라인 실시간 영상에서 간혹 회자될 뿐이고, 알고리즘도 자주 뜨지 않았다.
댓글에는 그저 아직 못 떠 안타깝다거나, 왜 못 알아보냐는 몇 개의 위로만 있을 뿐이다.
얼굴만으로는 이 업계에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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