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불렛(Silver Bu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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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탄(銀彈)
작품등록일 :
2025.12.03 21:56
최근연재일 :
2025.12.0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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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03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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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Ugly love] 가스라이팅 하는 사랑(2)

DUMMY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한 전태성 실장이 휴대폰을 확인하곤 한숨을 쉬었다.


“너 내일 다시 나와야겠다. 김현진이 또 부르네.”

“저는 이런 일정밖에 없어요?”

“음방도 음원 밀려서 안 불러주지, 예능감은 없지, 영상도 못 건져내지. 네가 뭐로 회사에 돈 벌어다 줄 건데?”

“그럼 전 앞으로도 이 짓거리만 해요?”

“누가 너더러 뭐 몸 팔라고 했어? 그냥 옆에서 대화만 하는 거잖아. 넌 대화만 하고 한 시간에 오백만 원을 버는 거야. 네가 초기 계약기간 동안 쓰고 날려먹은 돈을 생각하라고.”

“그건.”

“할 말 없지? 나 내일 일정 정리해야 하니 이제 연습실 가서 노래나 연습해. 더러운 꼴 안 보려면 실력파라도 되든가.”


억울해도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던 재영은 대답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가는 것으로 시위를 대신했다.

화장실로 직행한 재영은 세면대에 물을 콸콸 틀어 흐윽 새는 신음을 감췄다.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퍽퍽 세면을 거칠게 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운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노래 실력을 키우든, 김현진의 입맛에 맞춰 빨리 만족시켜주고 벗어나든, 뭐든 해야했다.

하는 수 없이 재영은 가창력이 단기간에 좋아질 리는 만무하니 머리나 자르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 단발로 잘라도 나는 예쁘니까.


자타공인 객관적으로 맞는 말이고, 재영이도 알고 있기에 쉽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결심이 설 무렵, 머리가 핑 돌았다.

어지러움이 몰려오더니 그녀의 몸이 바닥에 스르르 주저앉았다.

분명 앉아 있는 것 같은데, 감각은 허공에 떠 있는 듯 낯설었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에 자연스레 시선이 끌렸다.

이상하다.

맑아야 할 물빛이 서서히 흐려지더니, 손으로 붙잡을 수 없는 기묘한 점성을 띠며 변해갔다.

탁해진 물은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형상을 닮아 있었다.

순간, 세면대에 고여 있던 물이 분수처럼 치솟아 그녀의 얼굴을 뒤덮었다.


“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끈적한 물의 감촉이 피부에 달라붙더니, 마치 숨통을 막듯 입안으로 스며들었다.

굴욕적인 공포가 전신을 짓눌렀다. 얼굴을 덮친 낯선 물질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녀를 공격했고, 그 압력에 몸은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 떨렸다.

그 고통은 순식간에 정수리까지 치솟아, 재영의 눈동자는 뒤집히듯 흰자위만 드러냈다.

이내 몸이 풀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번쩍 눈을 떴다.

눈뜨는 순간, 세상이 하얗게 번졌다가 다시 제 색을 되찾았다.

헐떡이며 주변을 살폈다.

두 손으로 얼굴을 더듬었으나, 끈적한 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꿈이었을까. 방금 전의 일이 현실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오히려 너무 생생해서, 차라리 꿈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이는 귀접이 분명했다.


*


재영은 다음 날 다시 김현진과 같은 룸에서 마주했다.


“너, 올해 스물다섯이라며. 그런데 가수를 왜 하니? 그 정도 외모면 차라리 연기를 하지 그랬어.”

“연기는 자신이 없어서요.”

“노래는 자신 있고?”


순간 재영은 입을 다물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그녀는 가장 나이가 많았고, 실력으로도 늘 간신히 턱걸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기는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김현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무심히 말을 이었다.


“내가 널 처음 봤을 때는 그나마 눈빛 속에 열정이 있었어. 그래서 기대했어. 그런데 지금은 노력조차 보이지 않아.”


진심처럼 느껴지는 어투였다.

마치 따끔한 훈계가 아니라, 정말로 그녀의 가능성을 아쉬워하는 듯 들렸다.

그 순간, 재영의 마음이 찰나에 누그러졌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정신을 다잡았다.

흔들리면 안 됐다.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정한다. 남이 정해놓은 무대에 나를 맞추지 않으리.

재영은 허리를 곧게 세우고, 눈빛을 단단히 붙잡아 김현진을 마주했다.


“전 제 자주성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분명 저만의 색깔이 있다고 믿었거든요. 억지로 바꾸지 않아도 빛날 수 있는, 저만의 색. 그래서인지 회사가 요구하는 대로 흘러가는 게 자꾸만 거부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김현진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네 색깔을 부정한 건 아니야. 오히려 그 색을 더 뚜렷하게 살리라는 말이지. 그게 네가 가진 무기니까. 집에 가서 스스로 부족한 게 뭔지 생각해. 그럼 난 간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의 손길이 재영의 어깨를 툭 스쳤다. 그게 전부였다.


“아, 아직 한 시간 지나려면 많이 남았는데 벌써 가세요?”


재영은 서둘러 물었다.

이번에도 만족하지 못했을 터였다.

다음에 또다시 자신을 불러낼 게 뻔했다. 그래서 미리 막고 싶었다.

그러나 김현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고는, 단호히 뒷걸음을 옮겼다.

룸 안엔 덩그러니 재영만이 남았다. 시간은 고작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도대체 저 사람의 속마음은 뭘까.


불러놓고선 훈계만 하고, 콘셉트 타령만 하고. 소문으로 들었던 기괴한 성벽이나 변태적 행각은 보이지 않았다.

나이가 쉰이면 국장 자리에 올라 있을 법한데도 여전히 현장을 떠돌며 기자로 뛰는 이유.

혹시 그저 아이돌들을 음흉하게 이용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소문 자체가 잘못된 건지도 모른다.


그럴 무렵, 번쩍 전등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금세 모든 불빛이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삽시간에 룸을 삼켰다.

재영은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문을 찾아 나아가려 했지만, 발끝은 땅에 붙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움직이라고 절규했으나, 몸은 납덩이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척추를 따라 기어올랐다.

곧 오한이 몰려왔고, 몸은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부르르 떨렸다.


“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재영은 허공을 마구 휘저었지만, 손아귀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촉감만이 남았다. 피부 위를 더듬는 불결한 감각, 그러나 눈앞에는 아무런 형상도 보이지 않았다.

몸은 곧 허수아비처럼 뻣뻣해졌다.

어둠이 길어지자, 서서히 눈이 적응을 시작했다.

까마득한 암흑의 장막 속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형태가 떠올랐다.

그러나 여전히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영(靈)처럼 흐릿한, 그러나 틀림없이 이곳에 존재하는 무언가였다.

그럼에도 실체는 분명했다.

붉게 타오르는 눈빛,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흰 송곳니.


흡혈귀?


정체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자, 찰나의 순간 물체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 재영은 마침내 그 얼굴을 보았다.

더 이상 흐릿하지 않았다. 완연한 형체, 낯익은 얼굴.

바로 김현진이었다.


“헉!”


숨이 목구멍을 찢고 나왔다.

재영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소파 위, 숨이 가빠와 한 손으로 이마를 덮었다.


또 꿈인가.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단순한 꿈이라 치부하기엔, 모든 감각이 너무나 선명했다.

손끝의 차가움, 목덜미를 파고들던 송곳니의 그림자, 충혈된 눈동자의 섬뜩한 광채.

그것은 분명 김현진의 얼굴을 한 괴물이었다.

재영은 기진맥진한 채 고개를 떨궜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이제는 무속에라도 매달려야 한다.

굿이라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 괴이한 그림자가 평생을 따라붙을 것이었다.


**


“귀접을 했다고?”


며칠 지나 재영은 바로 압구정동 향구보살 신당에 갔다.

귀접하는 귀신을 가장 잘 잡는 무당이라는 소문이 있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향 냄새가 방안을 짙게 채우고 있었다.

노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40대 중반의 무당, 향구보살은 재영의 얼굴을 잠시 훑어보더니 단시점(短時占)을 펼쳤다.

단시점은 그날의 시각과 태어난 연지(年支), 점을 치는 날의 일간(日干)과 시지(時支)를 합산해 길흉을 판단하는 법이다.

이 점은 숫자를 뽑아내고, 그 수에 해당하는 형상을 풀이하는 방식이다.

13은 뱀(사괘), 14는 지렁이(인괘), 15는 거미(주괘)···.

각각 곤충과 짐승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향구보살이 사인펜으로 계산을 마친 순간, 종이에 24라는 숫자가 선명히 드러났다.


“편복괘(蝙蝠卦)로구먼.”


향구보살이 낮게 읊조렸다.


“풀이하면 이렇지. 험한 길에 독사를 만나, 맹인이 짚던 지팡이를 잃은 꼴이다.”


재영은 그 말에 온몸이 굳어들었다.


“귀접이라는 건가요?”


보살이 고개를 저었다.


“보통 귀접은 잠결에 일어나지. 피곤할 때, 기가 허해질 때, 생리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그런데 자넨 세면을 하다가도 느꼈고, 멀쩡히 앉아있을 때도 체험했다고 했지? 이는 단순한 귀접이라 볼 수 없어.”

“그럼 환각인가요?”


재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송곳니가 보였다면 물리력이 있는 귀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는 짓을 보면 령인 것 같기도 하고. 령이면서도 물리력이 있는 존재라. 혹시 흡혈귀같은 건가.”

“네? 흡혈귀요? 뭐, 뱀파이어 같은 거 말하나요? 그런 게 진짜 있어요?”


보살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다만 그것이 육신을 가진 실체인지, 아니면 정신을 잠식하는 사령(邪靈)인지, 그건 알 수 없네.”


재영은 실소를 흘렸지만, 속으로는 등골이 오싹하게 얼어붙었다.


“말도 안 돼.”

“자네 편복이 뭔지 아나?”

“잘 모르겠어요.”

“박쥐일세.”


순간 재영의 몸이 옹송그리고 털끝이 쭈뼛 곤두섰다.

박쥐라니.

피를 빠는 흡혈박쥐가 떠올랐다.

낮에는 동굴에 숨고, 밤이면 어둠 속으로 날아올라 짐승의 피를 빨아먹는 존재.

흡혈귀와 뗄 수 없는 징표였다.


“자네가 말한 그 독사, 그것이 곧 박쥐의 형상일 수도 있네. 어둠 속에서 자네를 짓누르고, 살갗을 유린하고, 혼을 빼앗는 것. 그게 편복괘의 뜻이지.”


보살은 작은 상자에서 붉은 끈으로 묶인 부적 몇 장을 꺼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 무구(巫具)를 준비해두마. 부적과 방울, 축문을 올려 단시에 끝내야 할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놈은 계속 네 혼백을 따라붙을 거다.”


재영은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신이라며 웃어넘길 수도 있었지만, 어젯밤 자신을 덮친 공포는 너무도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


며칠 뒤.

향구보살의 신당 안은 매캐한 향 연기에 잠식돼 있었다.

제단 위 흰 삼베에는 돼지머리와 막걸리, 시루떡과 사과·배, 포와 북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붉은 종이에 쓴 부적과 청동거울이 번뜩이며 빛을 흩뿌렸다.

병풍 뒤에는 붉은 봉투와 향초, 방울이 차곡히 준비돼 있었다.

마룻바닥 앞에는 장구와 북, 징이 늘어서 있었다.

굿패가 장단을 치자 둥둥, 꽝 쇳빛 울림이 신당 벽을 울렸다.

향구보살은 방울채를 높이 들어 흔들며 목청을 터뜨렸다.


“동서남북 사방신장님 모시옵고, 삼불제석님, 칠성님 모시옵니다. 에헤야!”


쇠방울이 연기를 쪼개며 울리자, 제단 위 불꽃이 튀듯 부적이 타올랐다.

붉은 연기와 향내가 뒤엉켜 피안(彼岸)의 문을 여는 듯 신당 공기가 뒤흔들렸다.

재영은 무릎을 꿇은 채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입술이 갈라진 채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신령님, 제 몸에 붙은 잡귀를 걷어 주십시오! 제발 떼어내 주십시오.”


향구보살은 붉은 먹을 찍은 붓으로 부적을 휘갈기며 외쳤다.


“삼태성의 빛이여, 잡귀를 몰아내소서! 천왕님의 화살이여, 이 몸을 꿰뚫어 지켜주소서!”


북이 둥, 하고 울리고, 징이 쾅, 터지자 재영의 어깨가 휘청였다.

몸속 어딘가에서 낯선 무언가가 몸부림쳤다.

눈동자가 흘러내리듯 흔들리고, 입술 사이로 낮고 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잡귀야, 정체를 드러내라! 이 자리에서 꿇어라!”


향구보살은 제단 옆 동이에서 정화수를 떠 재영의 머리와 어깨 위로 뿌렸다.

차가운 물방울이 흘러내리며 등줄기를 타고 내려갔다.

이어 말총 빗자루를 휘둘러 어깨와 가슴, 등줄기를 훑으며 외쳤다.


“붙은 것은 내려가고, 묶인 것은 풀어져라! 여기 머물지 말고 길을 찾아 떠나라!”


마지막으로 방울이 사납게 울리며 쇳소리가 신당 공기를 갈랐다.

곧 북과 징이 멎자, 제단 앞은 눅진한 정적에 휩싸였다.


*


굿이 끝났다.

곧 향구보살은 방울을 거두고 제물을 정리한 뒤, 재영을 신당 안쪽으로 이끌었다.

어둑한 내부는 굿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신령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보살은 작은 함을 열어 노란 한지와 붓, 붉은 주사(辰砂·황화수은을 갈아 만든 전통 안료)를 꺼냈다.

짧은 주문을 읊조리며 붓끝을 적신 보살의 손놀림은 빠르면서도 묵직했다.

곡선과 직선, 알 수 없는 기호가 종이 위에서 얽히며 글자와 그림의 경계가 무너졌다.

마치 송곳니를 드러낸 짐승의 형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거렸다.


“이건 내가 직접 쓰는 부적이네. 선대 어르신께서 남긴 도안과 법맥을 전해받은 거지. 옛날 소록도에서 나병 환자들이 알 수 없는 변이 역병에 휩싸였을 때, 송곳니 달린 잡귀를 물러나게 했다는 부적일세.”


보살은 종이를 접어 재영의 손에 올려주며 낮게 말했다.


“품에 지니고 다니게. 절대 떨어뜨리지 말고, 잘 간수해야 하네. 아직 떨어져 나갔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만약 다음 귀접이 또 오거든, 그때는 반드시 다시 찾아와야 하네.”


재영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부적을 움켜쥐었다. 종이에서 배어 나오는 붉은 기운이 손바닥에 스며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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