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의 가치가 보인다 (1)
3월의 강원도 새벽 산속.
울퉁불퉁한 돌무더기를 밟는 타이어 소리가 요동쳤다.
"졸려 죽겠네."
하품과 함께 졸린 눈을 비벼본다.
이른 새벽 서울을 떠나는 일정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졸음을 깨기 위해 창문을 열자, 파드득 쏟아지는 산새 소리와 폐부를 가득 채우는 상쾌한 공기가 차 안으로 스몄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새벽.
푸르스름한 회색 소나무들 사이로 낀 안개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몸은 고단하지만,
정신은 맑아진다.
"이 좋은 걸 왜 다들 마다하나 몰라. 수당까지 주는데."
회사는 이동 거리에 따라 출장 수당을 차등 지급한다.
돈이 급한 내게는 단돈 몇 푼이라도 더 벌 기회.
동료들이 꺼리는 먼 출장을 내가 항상 자처하는 이유였다.
조금 더 산을 오르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트렁크 속 캠핑장비들 틈에 섞인 카메라를 챙겨, 뷰포인트로 향했다.
"경치 한번 끝내주네."
강원도 영월군 북면의 선돌(仙乭) 뒷산은 광활한 경치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신(神)이 조각낸듯한 모습.
거대한 바위 두 개가 깎아지른 듯 솟아 있다.
그 사이로 옅은 안개에 싸인 강물이 흐른다.
요즘들어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찰칵.
점점 밝아오는 선돌의 풍경을
카메라 화면에 담았다.
"잘 나왔네. 여기면 되겠다."
비포장도로를 이용해 뒷산 뷰포인트를 찾아낸 보람이 있었다. 포장도로 옆에 마련된 전망대 뷰도 좋지만, 촬영 구도로는 이곳이 적합하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오늘 답사 목표 하나가 끝났다.
아직 전화를 하기는 이른 시간.
팀장에게 잘 도착했다는 문자 하나 남기려 핸드폰을 켰다.
그때,
“...... 하아...”
무심코 누른 메시지 창에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난 그자리에서 굳어버렸다.
───────
2026년 3월 9일 (월)
힐링은행 110-345-******
이자 출금 : 867,656원 (금리 5.2%)
잔여 대출액 : 188,000,000원
계좌 잔액 : 217,144원
──────
빚.
애써 외면했던 현실을 마주하자, 조금 전의 상쾌했던 기분이 모조리 날아갔다.
머리와 가슴을 부여잡았다.
빚 얘기만 나오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하다.
"후우..."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과거를 떠올렸다.
몇년 전,
전세 사기를 당했다.
6년간 악착같이 모아,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고 마련한 5천만 원.
그 종잣돈과 은행 대출을 더해 2.5억짜리 빌라에 들어갔다.
더 이상 곰팡이와 햇빛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HUG 보증보험조차 안 되는 깡통 전세라는 사실을 안 뒤엔 이미 늦었다.
범인은 잡혔지만,
내게 돌아올 돈은 없었다.
내게 남은 건, 은행에 갚아야 하는 약 2억원의 빚이었다.
중소기업 9년 차 과장인 내 월급으로는 매달 이자를 간신히 막고, 매년 1천만 원 정도 갚는 것이 고작이다. 이대로라면 빚을 다 갚는 데 빨라야 10년이다.
'그럼... 그 뒤엔...?’
막막한 생각에 숨이 막혔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옥탑방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도 이런데, 몇십년간 어떻게, 어디서, 무얼 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로또, 주식, 코인.
남들이 말하는 방법들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만, 내겐 재능도 운도 없었다.
로또는 5,000원 조차 당첨되본 적 없었고, 주식과 코인은 내가 사면 떨어진다. 흔히 말하는 인간 지표였다.
이 막막한 상황을 타개할 쉬운 방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남들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일하는 수밖에.
먼 출장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비 7km/L 차량의 유류비를 회사에서 지원해 준다는 거다.
"쯧... 일단 차로 돌아가자."
무거운 발걸음을 돌리려다,
차를 보고 멈춰섰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조금 아쉽긴 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장 찍어줘야지."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2010년식 지프 랭글러
루비콘 디젤 4도어.
하얗고 검은 차체가 주변의 메마른 경치와 잘 어울린다.
아버지께 물려받은 이 차는 현장을 누비는 나의 든든한 발이다.
일반적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를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미래엔,
픽업트럭을 사는게 꿈이지만...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트렁크를 열어 카메라를 정리했다.
이녀석도 2018년 입사부터 함께한 전우 같은 존재다.
캐논 5D Mark IV,
일명 오막포.
묵직하고 단단한 바디감은
거친 현장 기록에 안성맞춤이다.
요즘 동료들은 스마트폰을 쓰지만, 나는 여전히 이 DSLR을 고집한다. 스마트 기기가 담을 수 없는 특유의 감성이 있다.
카메라 케이스는 골동품 보관함 옆에 두었다. 레트로 차량, 레트로 카메라가 취향인 나는 골동품 수집도 즐겼었다.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지만, 옛 것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하지 못하는, 꿈꿀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면 떠올릴 수록, 남는 건 씁쓸함 뿐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잠시 생각에 빠졌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하는데,
일을 해야 하는데,
조금 전의 메시지를 본 이후로, 도무지 손에 잡히질 않는다.
"하... 차라도 팔아야 하나... 아니야. 의미 없는 거 알잖아."
직업 특성상 개인 차량은 필수다.
게다가, 주행거리도 많고 16년이나 지난 이 차는 똥값에 가까웠다. 팔고 다른 차를 다시 사는 건 소모적인 짓이었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멀쩡히 직장 다니는 서른넷 아들이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도움을 청할 염치가 없었다.
“하아... 그놈의 대출금... 거지 같네, 정말!”
머리를 핸들에 찧었다.
생각할 수록 답답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치지직.
[여기는 Zero Zero Zero Golf Oscar Delta. 무슨 일 있으십니까? Over.]
난데없는 무전기 소리.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가 애용하시던 천장의 무전기에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뭐지? 머리를 박은 것 때문인가.'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신비한 목소리에 이끌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 음... 여기는 델타 시에라 원 찰리 델타 호텔. 아무 일 아닙니다. 오버."
무의식 속에 새겨진 콜 사인이 튀어나왔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무전을 나누던 오랜 습관 덕이었다.
[목소리가 좋지 않습니다. Over.]
“...가슴이 좀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버.”
나를 걱정해주는 목소리에
속마음이 무심코 전달됐다.
'나 참...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전원을 끄기 위해
무전기기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성실히 살아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론 당신의 여정에 축복이 있을 겁니다. Over and Out.]
마지막 목소리가 들리고 교신이 끊겼다.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야. 요즘도 이런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네.”
어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 무전기 전원을 내렸다.
그리곤 스마트폰에 다음 행선지를 입력하고 시동을 걸었다.
정체 모를 이의 알 수 없는 축복.
그 덕일까.
마음도 몸도
아까 전보다 편안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월읍에 위치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덜컹.
차 문을 닫고,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향해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건물을 바라봤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기와집.
주변의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그곳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 흘렀다.
시나리오가 요구한 비밀스러운 분위기, '왕의 밀실' 장면에 어울리는 완벽한 후보지였다.
‘로케이션 매니저’
촬영에 어울리는 장소를 찾아내는 내 직업이다.
일반적인 회사원과 크게 다를 건 없다.
남들처럼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촬영 장소를 찾아 현장 답사를 나올 뿐이다.
열려있는 기와집의 대문으로 들어섰다.
월월─!
대문을 지나자 돌담옆에 메여있는 진돗개 한마리가 보였다.
윤기나는 검은털과 뾰족한 귀를 가진 녀석은, 하늘로 솟은 꼬리를 좌우로 신나게 흔들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마당을 쓸고있던 개량한복을 입은 사람이 내게 물었다.
“오늘 촬영 현장 방문키로 했던 스튜디오타이거 직원입니다. 주인분 되시나요?”
“아, 차정우 과장님이시군요? 이쪽으로 오시죠. 제가 여기 주인입니다. 먼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집주인분은 나를 이끌고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외관처럼, 내부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사장님, 저희가 생각했던, 바로 그 모습이네요."
"좋게 봐주시니 기쁘네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다른 촬영팀도 만족해하며 돌아갔습니다."
"곧 유명한 촬영지가 되겠네요. 아마 위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여기로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주인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대여료는 어느 정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저희가 이번에 '퓨전 사극'을 찍는데, 말씀드렸듯이 2주 정도 장기간 사용해야 합니다. 당연히 유지 보수도 저희가 책임지고요. 이 정도 훌륭한 고택은 시세가 있어서... 회사 기준으로는 일당 50만 원, 총 700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흠. 일당 50만 원에 2주... 나쁘지 않네요. 주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주시나요?"
"주변 비포장 공터를 임대하여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이웃 어르신들께는 소정의 협조금을 미리 드릴 계획입니다."
촬영팀 차량이 워낙 많아, 주차 문제는 필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었다.
"이미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좋습니다. 그럼 그 조건으로 진행하시죠."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 다른 스태프와 함께 계약서를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집주인과 나는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월월!
“저녀석, 차 과장님이 맘에 들었나봐요.”
“그러게요. 인사나 해야겠네요.”
흑구에게 다가갔다.
“잘 있어라, 다음에 또 보자.”
허리를 숙여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격하게 쓰다듬었다.
만족스러웠는지, 혀를 내밀고 눈을 반달모양으로 만들어 보였다.
허리를 펴려는데, 강아지의 사료가 담긴 그릇과 물이 담긴 그릇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중, 물 그릇에서 특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뭐지...? 이게 왜...’
─쿵
일반적인 그릇처럼 생겼지만, 강렬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홀린듯이 손을 뻗었다.
──쿵쿵
도자기에 손이 가까워질 수록 심장의 고동소리가 크게 들렸다.
강아지가 짖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주변의 소리는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물이 담긴 그릇의 모습만이 내 감각에 들어왔다.
───쿵쿵쿵
그릇 끝자락의 실금,
살짝 떨어져 나간 부위,
모래들에 긁힌 기스들...
세세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내,
손이 그릇에 닿자,
──파지직
──────
예상 가격 : 5,000,000원
현재 상태 : 나쁨
수요 상태 : 많음
──────
온몸에 전율이 돋으며,
눈앞에 푸른 화면이 떠올랐다.
‘대체 뭐야 이게’
예상 가격, 현재 상태, 수요 상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그릇에 대한 정보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화면에 손을 뻗었지만 허공만 갈랐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능력이 사실이라면,
그릇치고 이런 비싼 가격이 매겨지는 것은 골동품 밖에 없었다.
골동품 수집을 손 놓은지 좀 됐지만,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사장님, 혹시 이 그릇, 파실 생각 없으신가요?”
난 떨리는 마음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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