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똥겜인 줄 알았는데.
경주의 한 특급 호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습기 때문일까. 평소보다도 매연 냄새가 더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부우우우웅!
고급차가 한 대 들어온다.
조금 전, 선배가 주차하러 들어갔으니 이번엔 내 차례다.
“어서 오십쇼, 발렛 파킹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습기로 인해 땀에 젖은 장갑을 낀 채로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눈앞에 선 차는 국내 10대 한정판 슈퍼카. 배기음만 들어도 알 수 있다.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나도 살까말까 고민했던 차니까.
위이이잉!
순간 운전석 창문이 내려왔다.
차주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위로 들어올리며 나를 쳐다봤다.
“백승원?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너 여기서 일하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HJ그룹의 장남 정한빈.
아버지의 회사를 뺏기고 작은아버지에게 버려진 뒤에 연락처를 다 지워버렸던 한때 친구였던 녀석이다. 사실 친구라고 하기도 뭐 하지.
망하고 나니까 거들떠도 안 봤으니.
어쨌든 녀석을 이렇게 마주치고 싶진 않았다.
“······키 두고 내리시면 됩니다, 고객님.”
최대한 모른 척하며 고개를 숙인 채로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녀석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조수석에 앉은 여자에게 킬킬거리며 떠들었다.
“야, 인사해. 쟤가 그 유명했던 오성그룹에서 쫓겨난 회장의 아들이야. 내 불알친구였던.”
“···헐 진짜? 오빠, 근데 대기업 총수였으면 망해도 먹고살 수 있지 않아?”
“흠, 뭐랄까. 저놈 작은아버지가 독종이라 싹 틀어막고 아파트 한 채 주고 끝냈을걸? 쟤 아버지는 횡령으로 감옥 갔고. 그래서 저놈 이제 돈 없어, 거지야.”
“······허얼.”
여자의 안타깝다는 듯한 목소리가 귀에 박혀왔다.
‘······X발. 하필.’
정한빈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녀석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하기사. 이놈, 예전에 모임을 할 때면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는 티를 팍팍 내곤 했었으니.
지금 상황이 본인에겐 너무나도 즐거울 거다.
“야, 승원아. 꼴이 이게 뭐냐, 짠하게. 파킹 하는 거면 팁 받아도 되지? 자, 여기 형이 크게 쏜다. 수표!”
녀석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차키와 돈을 건넸다.
이가 갈렸지만 이제 돈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더 고개를 숙이고 저 VVIP 고객이 주는 팁을 받는 것뿐.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렇게 차키를 먼저 받고 돈을 받으려 하자,
툭!
녀석은 실수인 척 수표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아이고, 실수. 난 그럼 이제 들어간다? 그 주차 잘 해놓고. 차문 살살 닫는 거 잊지 말고? 기스 나면 알지?”
“······오빠, 팁도 많이 줬네?”
“안쓰럽잖아. 그래도 친구였으니까 좀 챙겨줬지. 어때, 나 좀 멋진가?”
“푸하하, 그게 뭐야.”
회전문 안에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나는 덩그러니 서서 젖은 바닥에 달라붙은 수표를 쳐다봤다.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보다 괴로운 건 비참함이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수표를 주웠다.
비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수표. 그 수표를 꾸깃꾸깃 접어서 주머니에 넣은 채로 운전석에 올랐다.
핸들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났다. 저놈, 그리고 자신과 부모님을 이런 상황으로 내몬 작은아버지를 부숴 버리고 싶었다.
나는 거칠게 엑셀을 밟으려다 멈칫했다.
그 와중에도 저놈의 ‘기스 나면 알지?’라는 목소리가 떠올랐기에.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속으로만 토해내는 수밖엔······.
결국 나는 얌전하게 차를 몰아 VIP 구역에 주차했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주머니 속에 넣어뒀던 구겨진 수표가 손끝에 걸렸다.
“······하.”
구겨진 수표를 펴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10만 원. 이 돈이면 병원에 계신 어머니께 특식을 넣어드릴 수 있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당장 이딴 돈 찢어발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내 현실이.
“어디서 돈 다발 안 떨어지나.”
***
교대 시간.
교대를 마치자마자 나는 휴식하기 위해 호텔 뒤편 직원용 흡연 구역으로 향했다.
기와지붕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았지만 들이치는 비를 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치이익!
라이터를 켰다.
비 때문인지, 젖은 담배 끝은 타들어 가다 말았다.
“X발,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내동댕이친 뒤 벽에 기댔다. 담배꽁초는 빗물 웅덩이에 박혀서 힘없이 가라앉았다. 마치 지금 내 인생같이.
대한민국 재계 4위 오성그룹.
순간, 그곳의 후계자였던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의 모의 작당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순간, 가지고 있던 재산 대부분을 몰수 당했던 순간,
다시 한번 정신이 아찔해졌다.
“······두고 보라고 말도 못 하겠네. 일어날 수나 있을까.”
아니지, 어떻게든 일어나 봐야지.
수도 없이 다짐했던 말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공허하게 흩어졌다.
하나,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VIP 발레파킹이나 하며 월급쟁이나 되는 수밖에.
나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성그룹에 관한 뉴스들을 보며 복수심을 다지려는 마음으로.
“어? 왜 안 돼.”
근데 빗물이 들어갔는지 화면이 깜빡거렸다.
4년 쓰긴 했다만, 그동안은 잘됐었는데.
지지직, 지직!
이러다간 오늘 받은 10만 원도 날릴지도 모른다.
먹통이 된 스마트폰의 화면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하씨, 수리로 쓸 돈 없는데.
그 순간.
콰르르르릉!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번개가 호텔의 피뢰침으로 내리꽂혔다.
고막이 터질 듯한 굉음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짜릿한 전류가 흘러나왔다.
“앗, 따거!”
나도 모르게 폰을 떨어트렸다. 바닥에 떨어진 폰이 제멋대로 깜빡거렸다. 단순한 고장이 아닌 듯했다.
깨진 액정 위로 알 수 없는 코드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치 3D 화면처럼.
[System Error······]
[Rebooting System······]
귀신 들린 것처럼 혼자 난리를 쳐대는 스마트폰.
그걸 보곤 겁이 덜컥 났지만 버릴 수는 없었다. 출퇴근 인증을 찍으려면 스마트폰이 있어야 하니까.
결국 생존 본능이 공포를 눌렀다. 나는 조심스럽게 폰을 집어 들었다.
손에 올라오자마자 화면의 노이즈가 잦아들더니 한번도 본 적 없는 설치 창이 떴다.
[App: Money Copy (Beta)] [설치 완료]
머니 카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어플리케이션 이름이었다. 이름이 말도 안 됐다. 돈 복사? 그런 게 있었으면 지금 이 수표를 수천 개로 복사했을 거다.
분명 스미싱, 피싱 같은 사기 수법일 거다. 앱에 들어가면 개인정보를 다 털어가는 그런 거겠지.
백승원이 어플리케이션 삭제 버튼을 꾹 눌렀다.
[삭제할 수 없는 어플리케이션입니다.]
“뭐야, 이거.”
그 순간.
제멋대로 어플이 실행됐다. 검은색 바탕화면에 투박한 흰색 테스트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문구가 찍혔다.
띠링-!
[속보] 202X년 8월 12일 22시. Dodge 코인, 유명인(E.M.) 언급 예정.
[기대 효과] 3,000% 폭등
[타임 리밋] 10분
갑자기?
Dodge 코인? 듣도 보도 못한 종목이었다.
나는 멍하니 화면을 응시했다. 이거, 스미싱이 아니라 작전 세력들의 앱 같았다.
전형적인 작전 세력들의 수법이다. 사람들에게 가짜 뉴스를 전파한 뒤 폭등시키는 그런 방식.
문득 시간을 봤다.
현재 시각 21시 50분.
알림에 적힌 시간까지 정확히 10분 남았다.
‘설마.’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런 초자연적인 거 안 믿는데, 이성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본능은 다르게 반응했다. 3,000% 폭등이라는 단어가 주는 유혹. 그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다.
나는 홀린 듯이 코인 거래소 어플을 찾았다. 다행히 어플은 깔려 있었다. 1년 전에 불장이니 뭐니 할 때 혹하는 마음에 자신도 가입을 해뒀던 터.
현실이 주는 금전 압박에 실제로 코인을 구매해 본 적은 없었다. 버는 족족 다 생활비로 나갔으니까.
처음이라 그런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Dodge 코인 / 현재가: 2원]
거래량 바닥에 상장 폐지 직전의 쓰레기 코인. 게시판만 봐도 욕설밖에 없는 망한 코인이었다.
“이게 오른다고?”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에 잡힌 건 아까 정한빈이 던져줬던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
통장에는 전 재산 50만 원이 있었다.
합쳐서 60만 원. 가지고 있는 전부였다.
하지만 60만 원 전부를 사용할 용기가 나진 않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순간 정한빈이 짓던 그 역겨운 미소가 떠올랐다.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래, 다는 아니더라도 그 새끼가 준 10만 원이라도 넣어보자. 더러운 돈이니 없다고 치자고, 까짓거.
통장에서 10만 원을 빼 입금했다.
코인 거래소에 10만 원이 찍혔다.
또 한 번 고민이 됐지만.
어차피 더 내려갈 곳도 없었다. 없던 돈 사라져도 괜찮으니 그냥 해보자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시장가 전액 매수’ 버튼을 눌렀다.
딸깍!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다는 진동이 손끝에 울렸다. 나는 숨을 참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노려봤다.
[매수가 체결되었습니다.]
[보유 자산: 100,000 KRW] [평가 손익: 0 KRW (0.00%)]
‘저질러 버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고작 10만 원. 누군가에겐 술값도 안 되는 돈이지만, 지금 내게는 피 같은 돈이었다. 물론 더러운 돈이지만. 그 돈을 어플리케이션에 나오는 말 하나만을 보고 투자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괜히 후회감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더했다.
21시 58분
째깍.
정한빈 그 새끼가 더러운 미소만 안 지었어도 이 10만 원으로 병원에 계신 어머니한테 맛있는 걸 사드렸을 텐데.
21시 59분.
째깍.
더러워도 자존심을 챙길 때가 아니었나? 아직도 그 시절의 자존심으로 살아갔나 내가?
빗줄기가 점점 거세져 처마 밑으로 들이쳤다. 몸이 덜덜 떨렸다. 불안감 때문인지, 비에 젖은 몸 때문인지 몰랐다. 거래소 차트는 여전히 심정지 환자의 심전도처럼 일직선이었다.
스마트폰 상단의 시계 숫자가 바뀌었다.
22시.
그와 동시에.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이잉-!
알림과 함께 거래소 화면이 멈췄다. 렉이 걸린 것처럼 호가창이 깜빡거리더니.
퍼어어어엉-!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붉은색 기둥이 화면을 뚫고 솟구쳤다.
“······어?”
눈을 비비고 봐도 헛것이 아니었다. 2원이었던 가격이 눈 깜짝할 새 15원이 됐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숫자가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현재가: 28원 (+1,300%)]
[현재가: 45원 (+2,150%)]
호가창의 매도 물량이 순식간에 잡아먹혔다. 전 세계의 개미들이 다 달려들고 있는 것마냥.
그래프는 이제 곡선이 아니었다. 90도로 꺾인 수직 절벽이었다.
계좌의 평가금액 앞자리가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30만 원······ 80만 원······ 150만 원······
“미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한 달 내내 비 맞아가며 발렛파킹 하고, 진상 고객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버텨야 겨우 손에 쥘 수 있는 크기의 돈이었다. 그게 단 1분 만에 내 눈앞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팔까?”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분명 아까 어플리케이션에선 3000%라 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순간 3,250%에 다다랐다.
그 순간, 어플리케이션에서 알림이 날아왔다.
[Target Price 도달.]
[System: 매도 추천. 폭락 10초 전.]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시장가 전량 매도] 버튼을 연타했다.
두두두두.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차트가 곤두박질쳤다. 60원을 찍었던 가격이 10초 만에 다시 5원대로 추락했다. 거래소 게시판은 비명과 곡소리로 도배가 됐다.
다행히 어플리케이션의 알람 덕분에 나는 저 무리에 들지 않을 수 있었다.
“후······.”
나는 떨리는 손으로 ‘자산 현황’ 탭을 눌렀다.
[보유 현금: 3,250,000 KRW]
325만 원. 정한빈이 던져준 10만 원이, 정확히 32.5배가 되어 돌아왔다.
단 10분 만에.
“하······ 하하하.”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차가운 빗물이 느껴졌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백승원이 중얼거렸다.
“사기가 아니라 진짜잖아.”
하늘이 날 버리진 않았나 보다.
돈 복사하라고 앱을 주는 걸 보면.
그나저나.
돈 다 넣을걸.
-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신인 작가입니다!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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