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새출발
“······뭐? 응?”
박 대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야, 너 지금 나한테 반말했냐?”
“응.”
“이 새끼가 돌았나! 반말을 해? 하, 눈 안 깔아? 미쳐 가지고. 확! 유니폼 입고 빨리 교대 쳐 안 나가?”
박 대리가 씩씩 대며 손을 들어 올렸다.
평소의 습관이었다. 그동안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으니 처절하게 당해 주긴 했는데.
······흠, 이젠 그럴 필요가 없잖아.
나는 피하지 않았다.
저벅.
오히려 한 발자국 더 그에게 다가서서 내려다봤다.
180중반의 키, 관리받으며 자란 골격.
굽실거리지 않고 허리를 펴자, 170초반인 박 대리와 나의 체격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키 차이에서 나오는 위압감 때문일까. 박 대리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치게?”
“너, 너······!”
“어린 새끼가 직함 달았다고 사람 막 대하긴, 쯧. 인마, 너 그러다 큰일 나. 그런 머리로 이 호텔엔 어떻게 입사했대?”
나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박 대리는 부들부들 대며 나를 노려봤다.
박 대리가 유독 자신을 막 대하는 이유?
군대 놀이라고 해야 하나. 자신은 이 호텔의 정직원이니 나 같은 용역보다는 확실한 윗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거다.
“너, 이 새끼. 인마 이거 하극상이야. 징계 받아서 잘릴래? 회사가 우습지? 어?”
근데 그것도 더 이상 떨어질 낭떠러지가 없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협박이고.
지금의 나에겐 썩 그리 무서운 협박은 아니었다.
“응, 우스워. 이제 그만둘게.”
몸을 돌리며 자리를 뜨려 했다.
내 반응에 박 대리는 당황스러움을 표했다.
“야, 야! 너 여기가 니 맘대로 들어왔다 나갈 수 있는 덴 줄 알아? 근로계약서 안 봤어? 무단 퇴사하면 위약금 물어야 하는 거 몰라?”
박 대리가 순간 해결책이 떠올랐는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사실이긴 했다. 악독하기로 소문난 용역 업체 계약서에는 ‘무단 퇴사 시 유니폼 비용 및 업무 차질 위약금 50만 원을 배상한다’는 독소 조항이 있었다.
사실상 이 계약서를 쓰는 사람들은 이미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기에 사인할 수밖에 없다. 나도 그랬던 거고.
“위약금, 맞아. 위약금이 있었지.”
“그, 그래! 이제야 정신이 드냐? 너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놈들이 50만 원을 내면서 퇴사를 할 수나 있냐? 너, 사직서 수리해 달라고 싹싹 빌어도 내가 계속 컷할 거야 인마. 그럼 무단 퇴사로 50만 원 내야 할걸?”
약점을 잡았다 생각했는지 박 대리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근데 어쩌나.
네 뜻대로 해줄 생각은 없는데.
“계좌 번호 내놔. 어디로 입금하면 되지?”
“하······ 허세는! 그래 계좌 줄게. 줘도 못 보낼 거면서 자존심은 있나 보네? 웃긴 새끼네, 이거.”
박 대리가 계좌 번호를 들이밀었다.
50만 원쯤이야.
휴대폰을 꺼낸 나는 곧바로 입금했다.
[입금이 완료되었습니다.]
“보냈다. 확인해라.”
“이 새끼, 이거 허세 계속 부리네. 기다려봐 확인해 볼 테니. 네, 여보세요. 무단 퇴사하겠다는 사람이 하나 있어서요. 돈 입금······ 아, 됐다고요? 그럴 리가 없는데? 확실하다고요, 아 네네 미안합니다. 유니폼 받아서 보내 놓을게요.”
라커룸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낸 나는, 그대로 박 대리에게 던졌다.
전화를 받다 어정쩡하게 열쇠를 받아 든 박 대리.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확인됐으니까 간다. 수고. 유니폼은 라커룸 안에 있으니까 알아서 챙겨. 아, 그리고 새끼 새끼 거리지 마라. 너 그러다 다른 사람들한테 크게 당한다.”
“······.”
나는 녀석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조금 전까지 조잘거리던 박 대리는 조용해졌다.
끼이이익.
문을 열고 나오자, 호텔 통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쏟아졌다.
라커룸의 습한 곰팡이 냄새 대신 호텔 로비의 고급스러운 디퓨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늘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유니폼이 아닌 수트를 입고 걷는 로비는 전혀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저벅저벅.
지배인과 마주쳤다.
평소였다면 ‘고생이 많네’라며 혀를 차거나 못 본 척 지나갔던 사람.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그가 나를 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못 알아보네.’
깔끔한 수트 핏,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나를 투숙객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재밌네.”
이게 모두 단 하루.
[Money Copy] 앱을 만나고 벌어진 일이었다.
***
호텔 근처 조용한 카페.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들이켜며 휴대전화를 켰다.
통장 잔고 7650만 원.
빚을 다 갚고, 어머니의 병원비를 해결하고, 퇴사 비용을 지급하고 남은 돈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
일반 직장인이 모으려면 몇 년이 걸릴 돈이다. 하지만 내 목표는 일반 직장인 정도가 아니었다. 오성그룹. 그리고 우리 가족을 바닥으로 내몬 작은아버지. 그들이 쥐고 있는 수십 조의 자산과 맞붙으려면 이 정도론 어림없었다.
“앱은 하루에 3번밖에 못 쓰는 상황이고.”
그래도 다행인 건 이 앱은 사기 앱은 아니었다.
어떻게 되어 먹은 건지 미래의 정보를 가져다준다.
투자 시장에 이런 괴물 같은 게 있다는 게 밝혀지면 너도나도 천금을 들고 나를 찾아올 거다.
아, 칼을 들고 찾아올 수도 있겠네.
어쨌든.
“골드 레벨은 한참 남았군······.”
골드 레벨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10억이 필요하다.
실버는 3천만 원, 골드는 10억.
그 갭이 상당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실버 레벨도 30일 제한이라 매달 유지하는 데 돈이 들어가고 말이다.
복리로 돈을 굴리면 언젠가는 큰돈이 되겠지만, 시드가 작으면 불어나는 속도에 한계가 있다. 1000만 원으로 10%를 먹으면 100만 원이지만 100억으로 10%를 먹으면 10억이다.
“덩치를 키워야 하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시간을 들여 천천히 불린다.
둘째, 타인의 자본을 이용한다.
“답은 정해져 있네.”
복수를 위해 1분 1초가 아까운 나에게 천천히란 단어는 사치였다.
순간 예전 아버지가 오성 그룹을 운영하던 때, 투자 그룹을 맡았던 사촌 백장원 놈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프랍 트레이딩이라고 개미들 이용해서 코 묻은 돈 쌓는 방법인데, 이것도 꽤 쏠쏠하단 말이지. 형도 사업체 운영해 볼래? 이거 한국대, SKY, 해외 MBA 출신 애들만 뽑아서 시켜 놓으니까 꽤나 잘해.]
프랍 트레이딩.
회사의 고유 자금을 운용하여 수익을 내는 트레이더다. 내 돈이 아닌 회사의 수십, 수백 억 자금을 굴리고 수익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가져가는 직업. 지금의 내 능력과 앱의 정보를 가장 극대화할 수 있는 곳이었다.
뭐, 처음에는 수십, 수백 억이 아니라 수천 만원 정도로 시작하겠지만.
“흐음, 이거 휴학 중이어도 되는 건가. 하필 마지막 학년에 걸쳐선.”
아버지가 오성그룹을 한창 운영하던 때 대학을 들어갔던 나는, 1년간 아버지의 사업체가 망한 후 휴학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돈이 없었으니까.
“일단은 보자.”
나는 검색창에 [프랍 트레이더 채용]을 검색했다.
수많은 공고가 떴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국대, SKY 졸업생 우대, 해외 MBA 우대 같은 스펙 타령뿐이었다. 졸업은 필수조건이었다.
오성그룹 후계자 시절의 나였다면 프리패스였지만, 지금의 나는 아직 대학교 졸업장 타이틀도 없는 갓 신용불량자에서 회복한 상태. 아무래도 서류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더군다나 아직까지 가족이란 탈을 쓴 쓰레기 새끼가 자신을 계속 눈여겨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분명 자신의 대출 상환 소식까지도 들었을 것.
“학벌, 스펙 다 빼고, 출근 안 해도 되는 곳은 없나.”
커피를 한잔 홀짝이며 스크롤을 내리던 내 손가락이 멈췄다.
[BH투자증권 - 제5회 실전 투자 대회 및 특별 채용]
[우승 상금: 1억 원]
[특전: BH 프랍 트레이딩 팀 입사 기회 부여(학력/경력 무관)(재택 보장)]
BH투자증권. 업계 1위는 아니지만, 파생상품 시장에서만큼은 공격적인 운영으로 악명 높은 곳.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BH투자증권의 이미지는 그랬다.
“학력 무관에 실전 투자 대회, 그리고 재택 보장이라.”
좋은데?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기간은 2주일. 지급된 모의 자금 1억으로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자가 우승한다. 그리고 그 우승자는 BH의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다.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걸까.
때마침 필요한 공고가 눈앞에 나온 걸 보면.
나는 망설임 없이 [참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참가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대회 시작: 내일 오전 9:00]
대회 타이밍도 완벽했다. 당장 내일 모레부터였다.
심지어 앱의 횟수가 초기화되는 아침 9시.
“후우.”
휴대전화 화면을 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격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려면 휴대전화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을 터.
“······모니터랑 노트북 한 대. 그리고 어머니가 계신 서울로.”
준비부터 해야 했다.
“가볼까.”
***
같은 시각.
서울 강남 테헤란로. 오성그룹 본사 25층 회장실.
“회장님 보고드릴 게 있어 왔습니다.”
탁-!
고급스러운 책상 위에 서류가 하나 올라왔다.
창밖을 내려다보던 중년의 남자가 의자를 돌려 앉았다.
백승원의 작은아버지이자, 형을 몰아내고 오성그룹의 주인이 된 백창수였다.
“보고해.”
“네, 회장님. 방금 대부업체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승원 군이······ 채무를 전액 상환했다고 합니다.”
백창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의자에 푹 기댄 채로 되물었다.
“상환? 그게 얼마였지?”
“회장님 형님께서 회생 신청하시고 남은 돈이라 5천만 원 정도 됐던 걸로 파악됐습니다. 일시불로 처리했다고 합니다.”
“호오.”
백창수의 입가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발렛파킹이나 하면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놈 아니었나? 저 돈도 쉬이 못 갚을 거 같아서 내버려둔 줄 알았는데.”
“그게······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대부업체 말로는 오늘 오전 11시 경에 돈이 입금됐다고 합니다. 혹시, 회장님 형님께서 남겨두신 비자금이 있었던 건 아닐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비자금, 그 단어가 나오자 백창수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는 형을 감옥으로 보내고 회사를 집어삼킬 때 형의 모든 재산을 탈탈 털었다고 자부했다. 십 원 하나 안 남기고 몰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새끼가 숨겨둔 돈이 있었다······.”
백창수 손가락이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5천만 원. 자신에게는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돈이다. 하지만 그 돈이 백승원의 손에서 나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죽은 줄 알았던 불씨가 저놈의 손에서 켜질 수도 있는 거니까. 일말의 가능성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백창수가 고개를 까닥이며 말했다.
“감시해. 코 묻은 돈이라도 전부 다.”
“알겠습니다.”
“어디서 난 돈인지, 그 돈으로 뭘 하고 다니는지 하나하나 다 보고하라고 해. 싹 트기 전에 밟아야지. 그게 내 방식인 거 알잖아? 조카여도 말이야.”
백창수가 서늘하게 웃었다.
“재밌겠군. 요새 심심했는데 잘됐어.”
- 작가의말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