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등장!
다음 날 아침, 5평 남짓한 좁은 원룸.
경주에서 서울로 상경하며 구한 좁은 방이지만, 고시원 살 때보단 훨씬 더 윤택했다.
적어도 최악의 방음은 아니었으니.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최고급 노트북과 32인치 듀얼 모니터를 바라봤다. 사이즈를 고민하지 않고 대충 오이마켓에서 올라온 미개봉 상품들을 조금 저렴하게 구해왔는데, 좁은 책상 위에 억지로 구겨 넣으니 용케 들어갔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고시원 살면서 생긴 습관 중 하나였다. 만 원이라도 아낄 수 있으면 아끼자. 그럴 때마다 만 원 한 푼 아끼지 않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지만 애써 머릿속을 비웠다.
“어디 보자.”
모니터 화면에는 [BH투자증권 - 제5회 실전 투자 대회]의 HTS가 켜져 있었다.
오전 8시 50분.
장 시작 10분 전.
[참가자 수: 3,214명] [나의 순위: -]
화면 우측에 띄워 둔 [주식 갤러리]는 이미 시끌벅적했다.
-이번 우승 누구 예상함?
-매년 상위권 하던 애들이 또 하지 않겠음?
-킹개미 아니겠음? 이번 대회 상금 1억이라 네임드들 총출동이라던데.
-물장단타왕도 나왔다던데?
-저도 참여하는데요?
└님이 누군데요; 올해부터 눈에 띌 초신예요.
└매년 이런 염병은 나옵니다. 처맞기 전까지ㅋㅋ
대회가 시작하기 전임에도 벌써 자기들끼리 우승 후보를 점치느라 바빴다. 쟁쟁한 전업 투자자들과 재야의 고수들. 평소보다도 더 많은 이들이 이 대회에 참여한다고 했다.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딱히 두렵진 않았다. 밤새 차트를 분석하고 수급, 뉴스 등을 분석하고 있을 때 난 정답지를 보고 거래하고 있을 테니까.
원룸에 새롭게 구비한 믹스커피를 한 잔 홀짝이며, 또 다른 주식 계좌를 켰다. 대회 참여도 참여지만 내 시드를 동시에 증가시키는 게 목적이니까.
왼쪽 모니터엔 대회용 HTS. 오른쪽 모니터엔 모든 시드 7500만 원을 옮겨 놓은 내 개인 계좌를.
띠링!
9시.
장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앱을 실행했다.
[Money Copy 실행.]
[System: 오늘의 첫 번째 정보를 수신합니다.]
검은 화면 위로 흰색 글자들이 타자 치듯 나타났다.
[Target: 코스닥 - 셀트란 제약]
[속보: FDA 임상 3상 조기 성공 발표 예정 (엠바고 09:10분 해제)]
[기대 효과: 상한가]
[타임 리밋: 10분]
“임상 3상 성공?”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바이오 주식에서 이보다 더 강력한 호재는 없다. 게다가 10분 뒤 엠바고 해제라니. 지금 사두면 10분 뒤에 뉴스가 터지면서 전국의 개미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들 거란 소리다.
나는 곧바로 HTS 검색창에 [셀트란 제약]을 검색했다. 현재가 85,000원. 보합세. 거래량도 잠잠했다. 차트는 위아래 잔잔한 파동을 그리며 옆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이 대형 호재를 알 리가 없으니 그럴 만했다.
나는······
“몰빵이지.”
따닥-!
망설임 없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왼쪽 모니터에 대회용 계좌 [시장가 전액 매수], 오른쪽 모니터에 개인 계좌 [시장가 전액 매수].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수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전액 매수여도 걱정은 없었다. 어차피 국내장에서 청산이란 개념은 없기 때문에 약간의 등락에도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총 1억 7,800만 원어치의 매수 물량이 한번에 체결되자, 잠잠하던 호가창이 순간 꿀렁였다. 주식 갤러리에 빠른 반응이 올라왔다.
-셀트란 제약 방금 시장가 긁은 놈 뭐냐 ㅋㅋㅋㅋ
└바이오 요새 장 안 좋은데, 개빡통 아님;;; 시초가가 고점이 될 수도 있는데;; 솔직히 나였으면 30분은 관망하다 진입했음
-킹개미 형님 방송 중인데, 조금 전에 반도체 탐ㅋㅋㅋ 저도 메이저 타러 갑니다
-바이오 ㅅㄱㅇ 누군진 몰라도 계좌 녹겠누 ㅠㅠ
조롱 섞인 반응들이 줄을 이었다.
섹터의 장도 안 좋은 데다, 호재도 없는 종목에 시작하자마자 거액을 태웠으니. 저들 입장에선 자살행위로 보였을 터.
하지만 나는 팔짱을 낀 채 모니터를 응시했다.
“몇 분 남았지?”
9시 9분 20초.
40초가 남았다. 이제 40초 뒤면 저들과 내 입장이 바뀌지 않을까.
“······갑자기 오늘 안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시간이 다가오자 괜한 생각이 들었다. 앱이 오늘은 제대로 작동 안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잡생각이 이어지던 와중, 9시 10분이 됐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떨리는 심장으로 모니터를 쳐다봤다.
아직은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10초쯤 지났을까.
띠링!
HTS 뉴스창에 [속보]가 붉은색으로 떴다.
[바이오] 셀트란 제약, 신약 FDA 임상 3상 조기 성공 소식에...
[속보] 셀트란 제약, 기적의 항암제 승인 임박... 제약 업계 술렁
그리고 이 뉴스가 뜨자마자······
잠잠하던 호가창에 거대한 붉은 기둥이 솟구쳤다.
“됐다.”
매도 물량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86,000원
92,000원
98,000원
호가창의 숫자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 나를 비웃던 주식 갤러리에도 글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ㅁㅊ 아까 이거 긁은 사람 있지 않음???
└ㅇㅇㅇㅇㅇㅇ
-이걸 어케 알고 함;;;;
└정보 들은 거 아닐까?
-이거 내부자 거래 아님? 아까 시초가로 긁은 사람 이거 알고 있던 거잖아. ㅅㅂ
└ㅅㅂ 진짜 세상 더럽네. 정보 알고 있으면 누가 주식 못 함;
-ㅈ같다, ㅈ같아. 와; 반도체는 횡보 쳐하는데 바이오가 개터졌네
-10만 원 정찰대 보냈는데 치킨 값 벌었다;;; 와;;;; 1000만 원 태울걸..ㅋ
반응들이 재밌었다. 아까는 멍청한 선택이라더니, 이제는 내부자란다.
흠, 오를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내부자라 봐도 되는 건가.
홀로 피식 웃었다.
그 순간, 화면이 깜빡거렸다.
[VI 발동]
[거래가 잠시 중단됩니다.]
너무 급격하게 올라 변동성 완화 장치(VI)에 의해 거래가 일시 정지된 상태. 2분간의 강제 휴식 시간이었다. 주식 갤러리는 ‘상한가 간다’와 ‘설거지다’로 싸우는 개미들로 난장판이 돼 있었지만 나는 느긋하게 믹스커피의 남은 한 모금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직이지.”
이윽고 2분이 지났다.
[VI 해제]
족쇄가 풀리는 순간.
VI가 걸리기 전 쌓여 있던 두꺼운 매도 벽이 해제와 동시에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차트는 어떤 시간 프레임으로 봐도 90도 각도로 꺾여 하늘로 치솟았다.
105,000원
108,000원
110,000원
단 3초. 눈을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에 가격 제한폭까지 닿았다.
[현재가: 110,500원 (상한가)]
호가창의 매도 잔량이 0이 되고, 반대로 매수 대기 물량만 수백만 주가 쌓였다.
-와, 미쳤다;;;;;ㄷㄷㄷ 점상 실화냐;;;
-오늘 문 닫음 ㄷㄷㄷ 아무도 못 탄다 이제
-이모 문 좀 열어 보이소, 여 못 탔다 아임니꺼
└저도예 이모
-주포 행님들 개지리네;;;
-이런 상황이면 내일도 점상각 아님?
채팅창은 오랜만에 보는 광경에 환호로 도배됐다. 상한가에 강하게 잠긴 종목은 보통 다음 날 갭상승을 위해 홀딩하기에 다들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띠링-!
허나 많은 이들의 생각관 달리, [Money Copy] 앱이 청아한 알림음을 울렸다.
[Target Price 도달.]
[금일 목표가: 110,500 KRW (상한가)]
[System: 전량 매도 추천. 뉴스 소재 이슈로 09:30분 폭락 예정.]
“매도?”
나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강하게 문을 닫았는데 팔라니. 보통은 내일까지 들고 가는 게 맞을 텐데.
하지만 나는 내 얄팍한 상식보다 앱을 더 믿었다. 지금까지 틀린 적이 없었으니까. 다 이유가 있겠지.
“팔라니 팔아야지.”
나는 주저 없이 매도 주문 창을 켰다. 상한가 매수 잔량이 수백만 주나 쌓여 있었기에, 내가 던지는 물량은 던지는 족족 팔릴 터였다.
[시장가 전량 매도]
[시장가 전량 매도]
딸깍-!
딸깍-!
마우스를 두 번 연달아 클릭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보유하고 있던 모든 물량을 최고가인 상한가에 다 털어버렸다.
[대회 계좌 손익: 30,000,000원]
[개인 계좌 손익: 22,500,000원]
합쳐서 5,250만 원. 단 15분. 클릭 몇 번으로 번 돈이었다.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리고 때마침 갱신된 실시간 랭킹 보드판. 내 닉네임 [돈복사]가 로켓처럼 순위를 뚫고 올라가 가장 높은 곳에 박혔다.
[현재 1위: 돈복사 (수익률 +30.0%)]
다시금 앱을 켜 봤지만 당장은 추가 정보는 없었다.
아무래도 첫 정보인 셀트란 제약의 건이 끝나지 않아서 그런 듯했다. 실제로 해당 건이 끝나려면 1시간 45분 정도 남은 상황.
“시간이 비네. 일단 커피나 하나 사오자.”
***
같은 시각.
여의도 BH투자증권 본사. 프랍 트레이딩 팀 사무실.
모니터 6개를 앞에 두고 앉아있던 팀장, 강민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번 실전 투자 대회의 총괄 책임자였다.
“팀장님, 이것 좀 보셔야겠습니다.”
팀원의 다급한 목소리에 강민재가 고개를 돌렸다. 대회 시작한 지 고작 15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문제가 생긴 건가?
“뭔데, 왜. 서버 터졌어?”
“아니요. 방금 랭킹 1위로 올라온 이 사람이 좀 특이해서요.”
팀원이 가리킨 모니터에는 [돈복사]라는 촌스러운 닉네임의 거래 내역이 떠 있었다.
“수익률 30%? 셀트란 제약 상한가 먹었네. 이야, 이거 호재 덕분에 큰 건 했네. 운 좋은 놈이구만.”
“그게 아닙니다. 매수 타점을 봐주십쇼.”
강민재의 눈이 매수 시각으로 향했다.
[매수 체결 시작: 09:00:35]
거의 장이 시작하자마자 매수한 모습. 그것도 1억을 풀 배팅으로. 상당히 의심스러운 정황이었다.
“······뉴스 보도는 몇 시였지?”
“9시 10분이었습니다.”
강민재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10분 전?”
뉴스가 뜨기 정확히 10분 전. 그것도 장 시작과 동시에 시장가로 긁었다?
이건 내부자 정보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매매였다. 워낙 확신에 찬 매매였으니까.
“정보매매인가?”
“······그것도 애매합니다. 셀트란 제약 측 임원이나 관계자 명단도 대조해 봤는데, 이 ‘백승원’이라는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냥 일반 개인이었습니다.”
“일반 개인이, 엠바고 걸린 뉴스를 미리 알고 풀매수를 때렸다······ 만약, 관계자도 없이 셀트란 제약이란 곳에 대해 추론을 해서 접근한 거라면, 흐음.”
강민재가 턱을 쓰다듬었다. 트레이더로서 꽤 오랜 시간을 살아남으며 봐 왔던 바론, 이런 경우는 둘 중 하나다. 운이든가 실력이든가.
“일단은 계속 주시해.”
“네, 알겠습니다!”
“운이라면 한 번으로 끝나겠지. 하지만 만약 다음 매매에서도 이런 모습이 반복된다면······.”
강민재가 화면 속 [돈복사]라는 닉네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진짜 괴물이 나타난 걸 수도 있으니까.”
- 작가의말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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