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레지스탕스의 첫 관심
통로는 끝이 없는 미로처럼 이어졌다.
강현은 그저 요원의 손목을 붙잡고 뛰었다.
발밑 철판이 출렁이고, 머리 위 배관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새어 나왔다.
몸 안에서 뜨거운 피가 펄펄 끓는 느낌이었지만, 숨은 이상하리만큼 곧게 이어졌다.
뒤쪽에서 쥐신의 기척은 점점 멀어졌다.
하지만 완전히 끊어졌다고 느끼기엔,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야.”
요원이 통로 옆, 아무 표식도 없는 벽을 향해 손목 장치를 들이밀었다.
짧은 진동과 함께 벽이 옆으로 미끄러지듯 열렸다.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
“빨리.”
두 사람은 동시에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문이 닫히는 순간, 바로 앞 복도가 붉은 빛에 잠겼다.
쾅——!
충격이 벽을 타고 그대로 전해졌다.
철판이 찢어지고,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소리.
강현은 본능적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숨을 죽였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기서 그대로 찌그러졌겠지.’
요원이 낮게 욕을 내뱉었다.
“진짜, 미친 쥐 새끼···.”
그는 잠시 벽에 기댔다가, 손목 장치를 또다시 조작했다.
《로컬 감시망 차단. 삼백 초간 추적 불능 구역 생성.》
기계 음성이 속삭이듯 울렸다.
요원이 헬멧을 살짝 들어 올리며 숨을 고른다.
“일단, 여기까진 따라오지 못해.”
강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여긴··· 어디야?”
“원래는 유지 보수 인력들이 쓰던 통로. 지금은 공식 기록에서 지워진 라인이지.”
요원이 어두운 통로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배관과 전선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낡은 공간.
연구소의 반듯한 복도와는 전혀 다른, 오래된 냄새가 났다.
그가 먼저 앉아 등받이 삼을 만한 배관을 골라 기대 앉았다.
“뛰느라 수고했다, W-17.”
“······그 이름, 마음에 안 들어.”
강현이 퉁명스레 말했다.
“실험체 번호 말고, 강현이라고 불러.”
요원이 짧게 웃었다.
“그래, 강현. 일단 상황 정리부터 할게. 가만히 듣기만 해도 좋으니까.”
그는 손목 장치를 눌러, 공중에 작은 입체 화면을 띄웠다.
푸른 원이 돌며 접속을 시도했다.
《채널 7, 연결 중—》
잠시 잡음이 지나갔다.
곧 익숙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 어디를 박살 낸 거야, 7번. 연구소 전체가 난리던데.》
“이번엔 내가 아니라 쥐신 쪽에서 판을 엎었어.”
요원이 짧게 대답했다.
“실험체 탈주. 그리고··· 변수 하나 더.”
그는 자연스럽게 시선을 강현 쪽으로 돌렸다.
“지신석 억제가 안 먹히는 수인이다.”
통신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농담하지 마. 그런 건 보고서에서도 본 적 없어.》
“나도 처음 봤어. 봉쇄 구역 전체가 지신석 장막으로 덮여 있었는데, 얘는 오히려 그 안에서 감각이 더 또렷해졌어. 기록된 수치도, 장비 기준으론 ‘무효’야.”
요원이 말하는 동안, 강현은 눈만 굴려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지신석.
여러 번 들어 본 단어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그 돌이 박힌 구역에 들어갈 때마다 몸이 무거워졌던 기억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아까는 달랐다.
오히려 심장이 더 강하게 뛰었다.
힘이 빠지는 게 아니라, 안쪽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
‘그래서··· 내가 이상한 건가.’
그가 인상을 찌푸리자, 통신기 쪽에서 새로운 목소리가 섞여 들렸다.
이번엔 여자의 목소리였다.
차분하면서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여우 울음처럼 길게 여운이 남는 소리.
《실험체 코드 W-17. 이름은 강현, 맞지?》
강현은 몸을 움찔했다.
“누구야?”
요원이 대신 대답했다.
“우릴 이끄는 사람. 레지스탕스 단장.”
그는 통신을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단장님, 제가 직접 봤습니다. 지신석 경보 구역 통과할 때 억제 반응 전혀 없었고, 오히려 쥐신의 기세가 내려앉은 구간에서 움직임이 더 빨라졌어요. 실제 전투에서도 병력 셋을 단독으로 제압했고요.”
잠시, 숨소리만 흐르는 정적.
《···재밌네.》
여자의 낮은 웃음이 흘렀다.
《영상 자료는?》
“헬멧 기록, 지금 전송 중입니다.”
잠시 뒤, 로딩 표시가 사라졌다.
《확인했어. 확실히, 지신석 반응이 비어 있네. 저 구간이면 보통 수인들은 몸을 일으키기도 버거울 텐데.》
누군가 혀를 차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위에서는 난리 나겠는걸. 쥐신이 그냥 넘길 리 없겠어.》
단장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좋아, 7번. 위치 좌표 보내.》
요원이 손목 장치를 조작했다.
“전송 완료.”
잠시 뒤, 통신기에서 짧은 알람이 울렸다.
《···그 라인이군. 연구소 아래쪽에서 도시 하층으로 이어지는 폐쇄 통로. 우리가 손 본 적 있는 곳이라, 추적망은 대충 피해갈 수 있겠어.》
단장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하지만, 아직은 본거지로 데려오지 마.》
“예?”
요원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지신석이 안 먹히는 수인이라면, 우리에겐 희망이자 위험 요소야. 잘못 데려가면 12지신이 역으로 우리 위치를 찾는 미끼가 될 수도 있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다시 물었다.
《7번. 네 눈으로 봤을 때, 저 아이는 어때?》
요원은 잠시 고개를 돌려 강현을 바라봤다.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아직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무작정 죽이고 부수는 본능에 휩쓸리느니, 그 힘을 억누르려고 이를 악무는 눈.
“······쉽게 꺾일 타입은 아닙니다.”
조금 생각한 후, 요원이 덧붙였다.
“그리고··· 악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럼 됐어.》
단장이 짧게 말했다.
《지금부터 네 임무는 단순해. 관찰, 보호, 추적. 우리가 ‘합류’ 결정 내리기 전까지는, 직접 접촉을 최소화해.》
요원이 순간 당황한 듯했다.
“지금도, 겨우 살아남은 상태입니다. 혼자 두기엔—”
《12지신은 선택지를 강요하면서 시작했어. 우린, 거기서부터 다르게 가야지.》
침착한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깊게 베인 분노가 묻어 있었다.
《살고 싶으면 도망쳐라, 라고 말했지?》
단장이 물었다.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그 다음은 저 아이가 정해. 레지스탕스를 택하든, 혼자 버티든, 아니면 12지신에 붙든. 우리 역할은 그 선택지가 사라지지 않게 지켜 주는 거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다만, 12지신 손에만 안 들어가면 돼. 특히, 쥐신에게는 절대로.》
통신이 끊겼다.
요원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단장님 성격, 안 바뀌었네···.”
강현이 눈썹을 찌푸렸다.
“지금 무슨 얘기야? 날 도와줄 거면 끝까지 도와주는 게 맞는 거 아니야?”
요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끝까지 도울 거야. 다만 네가 모르는 곳에서.”
“무슨 말이야, 그게.”
“말 그대로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었다.
“우린 12지신이 싫어하는 부류고, 그쪽은 우릴 ‘테러 집단’이라고 부르지. 네가 지금 당장 우리 본거지로 따라오면, 선택지가 하나 줄어드는 거야. 너한테는 아직, 네 손으로 방향을 정할 시간이 남아 있어.”
강현은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왠지 버려진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건데.”
“살아남으면 돼.”
요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야 우리가 널 다시 찾을 수 있지. 죽으면, 거기서 끝이고.”
그는 통로 끝을 가리켰다.
“이 라인을 따라가면 연구소 밖, 도시 하층으로 나가는 갈림길이 있어. 우린 그 주변에 지신석을 최대한 걷어냈어. 숨기는 데엔 괜찮은 곳이지.”
“나 혼자서?”
“레지스탕스 요원은 원래 그림자 속에서 일해.”
그는 헬멧을 툭툭 두드렸다.
“우린 네 위를 지나다닐 거고, 네 근처에 물자도 떨어뜨릴 거야. 대신, 누가 준 건지 모르는 것처럼 써.”
“······진짜 수상한 말만 골라 하는구나.”
강현이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멀쩡한 일은 아니었어. 실험실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이미 수상쩍었잖아.”
요원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이건 해두자. 레지스탕스 요원 7번. 그리고 강현.”
잠시 망설이다가, 강현은 그 손을 잡았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감촉.
얼마 전까지 그를 이 실험실로 끌고 오던 차가운 손들과는 전혀 다른 온기였다.
“살아남아라. 그게 첫 번째 조건이자, 우리 쪽으로 오고 싶을 때 필요한 유일한 자격이야.”
요원이 손을 놓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네 몫이야, 강현.”
말을 마치자, 그의 몸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장치가 작동하며, 실루엣이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흐려졌다.
눈을 깜박이는 사이, 요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남겨진 건, 철 냄새와 땀 냄새,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심장 박동뿐.
강현은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선택.’
웃기지 않나.
실험실에 끌려올 때도, 수술대에 묶일 때도 그에겐 어떤 선택지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숨을 고르고, 한 번 더 심장 박동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뒤, 그는 통로 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이 점점 안정됐다.
어딘가에서 기어 나오는 본능의 목소리가 “사냥해라, 찢어라” 속삭였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속도를 조절했다.
“조용히 해.”
근육이 꿈틀거릴 때마다, 철벽이 부서질 것 같은 힘이 실렸다.
한 번만 잘못 움직이면 이 통로부터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천천히, 더 억누르면서 걸었다.
‘이 힘을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똑같아진다.’
연구소의 괴물들.
붉은 눈으로 아무나 찢어 죽이던 실패작들.
그들과 자신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있는 건 지금 이 순간의 선택뿐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 끝에서 습한 바람이 스며들어 왔다.
곧 낡은 철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현은 손잡이를 잡았다가, 한 번 더 심호흡을 했다.
심장이 차분히 박동하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문을 밀어 올렸다.
끼익—
눈앞에 펼쳐진 건, 연구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높지 않은 천장, 얽힌 배관, 여기저기 깨진 네온 간판.
도시 하층의 뒷골목이었다.
먼 곳에서 웅웅거리는 소음과, 지상에서 내려오는 전광판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익숙한 떨림.
지신석 공명이었다.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보이지 않는 압력이 한 번씩 파도를 일으키듯 흔들렸다. 보통 수인이라면 몸이 굳어지고 숨이 막혔을 감각.
그러나 강현의 몸은,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떨림을 타고 혈관 속의 열기가 한 번 더 타오르는 듯했다.
‘역시··· 뭔가 달라졌다.’
그는 밤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지독한 먼지 냄새와 썩은 냄새, 식어 버린 기름 냄새까지 섞여 있었지만,
연구소의 냄새보다는 천 배는 나았다.
“살아남고··· 강해진다.”
입 안에서 새어나온 말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오늘 처음으로, 그는 스스로에게 약속을 걸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괴물보다 더 강해지겠다고.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