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혼혈, 실험체에서 군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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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룡
작품등록일 :
2025.12.0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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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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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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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하층의 첫 밤

DUMMY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강현은 낡은 철문을 닫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선 채로 숨을 골랐다.


통로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냄새가 났다.


먼지, 썩은 물, 오래된 기름, 그리고 수많은 몸들이 오가며 남긴 체취의 잔향.


‘여기가··· 밖이구나.’


완전한 지상은 아니었다.


도시 하층, 도로와 건물들 사이로 구멍처럼 뚫린 반지하 구역.


위로 올려다보면 층층이 쌓인 구조물 사이로 네온 간판 불빛이 빗물처럼 떨어지고, 그 사이를 스치는 그림자들이 작고 검게 움직이고 있었다.


“······숨찬 것도, 이제 좀 가라앉았네.”


놀라운 건, 이 정도로 뛰고 긴장하고 부상을 입었는데도 고통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숨소리는 곧게 뻗었고, 가슴 깊숙이선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끓고 있었다.


‘이게··· 지금 내 몸인가.’


강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손등 아래로 힘줄이 스르륵 솟았다가, 조금만 힘을 빼면 다시 금세 가라앉았다.


조절만 잘하면, 이 힘은 함정이 아니라 무기가 된다.


문제는, 조절이 쉽지 않다는 거였다.


하층 골목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다.


좁은 통로 사이로 하수관이 노출된 구역이 보이고, 계단처럼 어긋난 구조물 사이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발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으··· 냄새 장난 아니네.”


코를 찌르는 악취는 연구소의 차가운 소독약 냄새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동시에, 그 속에서 섞여 나오는 수많은 정보가 강현의 감각을 자극했다.


어디선가 오래된 피 냄새, 썩은 음식물, 싸구려 술과 약 내음, 그리고 그 사이에 섞인 수인들의 체취.


심장이 또 한 번 쿵, 하고 울렸다.


—사냥.


어딘가에서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또 시작이냐.’


강현은 무의식중에 이를 악물었다.


혈관을 타고 오르는 ‘사냥’이라는 강박.


정말로 누군가를 향해 달려들어야만 이 열기가 가라앉을 것 같은 본능.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일부러 천천히, 발걸음을 조절하며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금 이 감각부터 익혀야 돼.’


정면에서 냄새가 하나 스쳤다.


뜨겁고, 철 냄새가 강했다.


막 싸움이 끝난 직후에 풍기는 피 냄새.


강현의 시선이 저절로 그 방향을 향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모퉁이에서 둘러앉은 그림자들이 보였다.


“빨리 숨겨! 포획조한테 걸린다니까.”


“에이, 하층까지 내려오는 놈들 없어. 윗동네 수인들만 잡아 가도 바쁠 거라니까.”


거친 숨소리, 비웃음 섞인 목소리.


한쪽에 널브러진 누군가의 손이 보였다.


손등엔 짐승의 털이 어설프게 돋아 있었고,


발톱이 반쯤 나온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수인···?’


강현은 숨을 죽이고 벽에 붙었다.


몸은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어했다.


피 냄새에 혀끝이 저릿저릿해졌다.


하지만 그는 일부러 눈을 감고 귀에만 집중했다.


심장 박동, 말소리, 작게 스치는 신발 밑창 소리.


머릿속에서 거리가 그려졌다.


‘저 거리, 지금 속도로 뛰어가면 두 걸음 만에 닿는다.’


‘먼저 쓰러뜨릴 수 있는 건, 오른쪽에 서 있는 녀석. 숨을 쉬는 박자가 가장 느리고, 경계도 가장 허술해.’


계산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하지만 강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도, 저놈들이랑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피 냄새에 이끌려 달려들고 싶어하는 자신.


그 욕망을 선명하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쯤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젠장.”


그는 벽에서 몸을 뗐다.


발걸음을 뒤로 돌려 다른 방향 골목으로 빠져나왔다.


본능은 계속해서 뒤를 잡아끌었다.


돌아서라, 씹어 뜯어라, 피를 마셔라.


하지만 강현은 한 번 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었다.


‘이것부터 이겨야 돼.’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아직 이 힘을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피 냄새를 좇다간 정말로 연구소에서 본 실패작들처럼 되어 버릴지 모른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버려진 화물창고 구역이 나타났다.


천장이 낮고, 상자와 컨테이너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는 공간.


지붕의 절반 정도는 뚫려 있어 비가 오면 그대로 쏟아지겠지만, 지금은 다행히도 건조했다.


“여기가, 오늘 잘 곳이겠네.”


강현은 주변을 한 바퀴 둘러봤다.


누군가 한때는 머물렀던 흔적이 있었다.


모서리에는 젖은 담요 뭉치와 빈 통조림 캔들이 쌓여 있었고, 벽에는 불을 지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적어도 실험실 침대보다는 낫지.”


그는 가장 구석진 컨테이너 뒤쪽을 골라 기댈 자리를 만들었다.


허기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는 감각이 마치 늦게 색을 입는 잿빛 사진처럼 서서히 선명해졌다.


‘그래, 그렇지. 먹어야 살지.’


문제는, 지금 당장 먹을 게 없다는 거였다.


이 구역에 내려오기 전에 무언가 챙겨 나온 것도 아니다.


강현은 무릎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이마를 짚었다.


“레지스탕스 쪽에서 물자 준다고 했으니까···진짜로 줄까?”


그 말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왔다.


실험실에서 깨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됐다.


그 전까지는 자신이 수인인지조차 몰랐다.


그런데 이제는 정체를 알수없는 집단의 도움을 받으며 도시 하층을 헤매고 있다.


“인생이 참, 기가 막히네.”


같은 시각, 화물창고 위쪽 고철 더미 속.


헬멧을 눌러쓴 요원이 작은 드론 화면을 내렸다.


“심박, 호흡 안정. 지신석 공명 구간에서 신체 반응 변화 없음. 본능에 휩쓸릴 듯하다가도 자기 의지로 방향을 바꿀 줄 안다···.”


옆에 앉아 있던 고양이 계열 여성 수인이 입에 물고 있던 막대를 툭 발치에 떨어뜨렸다.


“생각보다 멀쩡한데요, 그 애. 실험실에서 갓 나온 애치고는, 머리도 잘 돌아가고.”


“눈빛도 안 죽었고.”


요원, ‘7번’이 짧게 말했다.


그는 헬멧 화면을 확대해 컨테이너 뒤에 웅크려 앉은 강현의 모습을 바라봤다.


쓰러질 것처럼 보이다가도 기댈 곳을 찾아 앉고,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피는 눈.


단순히 공포에 젖어 떨기만 하는 실험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물자 떨어뜨린다.”


7번이 허리에 찬 작은 캡슐을 꺼냈다.


버튼을 한 번 누르자 캡슐이 조용히 떨렸다.


《위치 입력. 드롭 포인트 지정.》


드론이 천천히 떠올랐다.


지붕이 찢어진 틈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미끄러져 들어갔다.


고양이 수인이 물었다.


“바로 옆에 떨어뜨릴까요? 아님 조금 떨어진 데?”


“조금 떨어진 곳.”


“왜요? 바로 옆에 두면 편하잖아요.”


7번이 어깨를 으쓱했다.


“살아남은 건 본인 능력이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 해냈다’고 느끼게 해줘야지.”


“멘탈 관리까지 해주네, 요원님.”


“나도 예전에 그렇게 받았거든.”


그는 짧게 웃었다.


캡슐이 화물창고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그늘 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안에는 물, 열량 높은 바, 간단한 구급약과 얇은 담요, 그리고 낡았지만 아직 쓸 만한 후드 하나.


“배가 고파야, 더 빨리 움직이기도 하니까.”


고양이 수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굶겨 죽이지 않을 정도로만 채워주고. 레지스탕스는 참 친절하네요.”


“우린 신이 아니니까.”


7번이 헬멧 안에서 작게 웃으며 말했다.


“선택지를 들이밀고, 그걸 강요하는 건 위에 앉아 있는 놈들이 하는 짓이지.”


“······뭐야, 이거.”


한참 뒤, 강현은 희미한 쇠부딪치는 소리에 눈을 떴다.


피곤해서 잠깐 눈만 감는다는 게 어느새 깜빡 잠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귀를 기울였다.


바람소리, 먼지 굴러가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에 섞인, 금속이 바닥에 살짝 닿는 듯한 소리.


‘누가 여기까지 온 건가?’


강현은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근육을 쭉 펴도, 아까 얻어맞은 통증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회복도 이상하리만큼 빠르네.’


몸을 낮게 숙이고, 소리가 난 방향까지 바닥을 짚으며 다가갔다.


컨테이너 사이, 어둠이 더 짙은 곳 한가운데 작은 캡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장난은 아니겠지.”


그는 일단 냄새부터 맡았다.


곡물, 견과, 약간의 꿀 냄새.


포장을 벗기지 않아도 느껴지는 열량바 특유의 단내.


물 냄새도 났다.


플라스틱과 약간의 소독제 향이 섞인 깨끗한 물.


‘독 같은 건···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수고를 들여 독을 먹일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연구소에서 그대로 죽였을 것이다.


“레지스탕스, 그쪽이겠지.”


강현은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한 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달고 짠 맛이 퍼졌다.


한참을 씹고 나서야, 그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살 것 같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물이, 식어가는 몸의 열기를 적당히 식혀 주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 꿈틀거리던 공격적인 충동이 눌리는 기분도 들었다.


‘먹고 나니까 정신이 좀 더 돌아온다.’


강현은 텅 빈 캡슐을 굴려보았다.


표면은 매끈했고, 특별한 표식은 없었다.


다만, 정면에 아주 작은 흠집 하나.


— 7.


볼펜 같은 걸로 급히 그은 듯한 얇은 숫자.


‘······설마, 우연은 아니겠지.’


그는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쉬고 캡슐을 주머니에 넣었다.


“좋아. 먹을 것도 생겼고···그럼, 할 일은 뻔하네.”


여기서 죽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하나 뿐이었다.


‘이 힘을 몸에 익히는 것.’


화물창고 안쪽은 훈련장으로 쓰기 좋았다.


컨테이너를 발판 삼아 뛰어오르고, 철제 빔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달렸다.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면 순간적으로 시야가 확 열렸다.


위쪽, 도시 하층의 구조.


어느 건물에 지신석이 박혀 있는지, 어떤 구역에서 억제 파동이 더 강하게 울리는지, 그 떨림이 발바닥을 타고 정확히 전달됐다.


“저기··· 그리고 저기. 저긴 가지 말아야 할 곳.”


보통 수인이라면 그 근처에만 가도 숨이 턱 막히고 몸이 굳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강현은, 그 가장자리를 일부러 밟고 지나갔다.


몸 안에 열기가 한 번씩 튀어 오르긴 했지만 움직임이 막히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온몸의 감각이 더 예리해지는 기분.


‘지신석이 날 억누르지 못한다···오히려 자극하는 건가?’


발걸음이 점점 빠르게 이어졌다.


컨테이너 모서리를 딛고, 벽면을 타고, 철골 위를 미끄러지듯 달렸다.


귀에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옅은 심장 박동만이 또렷했다.


이따금 발목이 삐끗하고, 팔꿈치를 철제 모서리에 부딪혀 피가 맺혔다.


하지만 그 상처는 눈에 띄게 빠른 속도로 아물었다.


‘정말··· 인간의 몸이 아니네.’


기분 나쁠 정도로 완벽한 회복력.


그러나 이 정도가 아니었다면 실험실에서도, 지금 이곳에서도 벌써 죽었을 것이다.


생존과 위화감 사이.


그 어정쩡한 경계에 걸터앉아 있다는 느낌.


그래서 더더욱, 이 힘을 제대로 이해해야 했다.


“하나, 둘—”


그는 호흡에 맞춰 동작을 끊어서 반복했다.


최대한 힘을 빼고, 필요한 구간에서만 폭발적으로 힘을 쓴다.


머릿속에서 요원 7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숨고, 배우고, 익혀.’


숨는 건 대충 성공했다.


이제 배우고 익힐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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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손을 놓지 않는 이유 25.12.20 2 0 8쪽
14 14화. 발을 딛는 쪽으로 25.12.17 3 0 8쪽
13 13화. 발을 딛지 못한 이유 25.12.16 6 0 8쪽
12 12화. 물 위로 떠오르는 그림자 25.12.15 5 0 7쪽
11 11화. 왕의 인자 25.12.14 5 0 7쪽
10 10화. 각성의 조짐 25.12.13 7 0 10쪽
9 9화. 흔들리는 파동 25.12.12 8 0 7쪽
8 8화. 원본과의 조우 25.12.12 5 0 10쪽
7 7화. 닫혀가는 도시 25.12.11 7 1 7쪽
6 6화. 물 위의 그림자들 25.12.11 9 1 14쪽
5 5화. 찾아오는 추적자들 25.12.10 14 1 10쪽
» 4화. 하층의 첫 밤 25.12.10 20 2 11쪽
3 3화. 레지스탕스의 첫 관심 25.12.10 23 1 11쪽
2 2화. 연구소의 비상경보 25.12.10 25 1 7쪽
1 1화. 실험체 W-17 25.12.09 33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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