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공격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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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리
작품등록일 :
2025.12.09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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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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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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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힐러 풀

DUMMY

“자, 그럼 브리핑 시작합시다. 지금 이 세계의 상태가 어떻다구요?”


내 말에 대현자 아르해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지팡이를 들어 허공에 복잡한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자 빛의 입자들이 뭉치며 거대한 지도를 만들어냈다.


“보십시오. 이것이 아르카디아 대륙입니다.”


지도 중앙에는 거대한 산맥이 가로지르고 있었고,

북쪽 끝자락은 시커먼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게임 맵에서 ‘미해금 구역’이나 ‘오염된 지역’을 표시하는 듯한 불길한 색채였다.


“천 년 전, 이 대륙은 멸망 직전까지 갔습니다. ‘악룡(惡龍) 칼리고’의 폭주 때문이었지요.”

“칼리고? 이름부터가 최종 보스 느낌인데요.”


옆에서 일호가 눈을 반짝이며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용사님. 당시 이 나라를 세우셨던 초대 국왕 카이저 님이 그 악룡을 봉인했지만··· 최근 그 봉인이 약해지고 있습니다.

북부의 ‘죽음의 계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가 대륙을 잠식하고 있지요.”


아르해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왕국에서는 수차례 정예 기사단과 마법사 부대를 파견했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곳은 이미 산 자가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형적인 레이드 스토리네. 선발대 전멸하고, 결국 외부 용병(플레이어) 부르는 패턴.’


나는 팔짱을 낀 채 지도를 분석했다. 독기, 봉인, 악룡. 키워드만 봐도 아주 잘 만든 레이드 같았다.


“그래서 저희를 부르신 거군요. 그 악룡을 잡으라고.”

“그렇습니다. 고서에 적힌 예언에 따르면, ‘차원을 넘어온 이계의 용사만이 악룡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크으··· 역시! 심장을 꿰뚫는다! 이거 완전 나를 위한 퀘스트잖아?”


일호는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허공에 주먹질을 해댔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레이드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용사 스펙이 좋아도(지금 일호는 그것도 아니지만), 탱커 없는 딜러는 3초 컷이고, 힐러 없는 파티는 있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 말씀 끊어서 죄송한데. 설마 저희 둘이서 가서 잡으라는 건 아니죠?”

“물론입니다! 예언에는 용사가 동료들을 모아 ‘빛의 원정대’를 결성해야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동료요? 여기서 구해야 하나요?”

“그렇습니다만··· 사실 지금 왕국의, 아니 대륙 전체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쓸만한 기사들은 이미 북부 원정에서 전사했습니다.

오러를 사용하는 기사는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결국 인력난이란 소리다. 역시 쉽지 않다. ‘정공(정규 공격대)이 없어지고, 막공(대충꾸린 공격대)으로 대체’하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그때였다. 닫혀 있던 서재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 또각, 또각. 가벼우면서도 기품 있는 발소리가 정적을 깼다.


“아르해스 님, 차를 가져왔습니다.”


맑은 은쟁반을 든 여인이 들어왔다. 순간, 촐싹대던 일호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나 역시 무심코 숨을 삼켰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 머리칼, 투명할 정도로 하얀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머리카락 사이로 삐쭉 솟은 뾰족한 귀.

엘프(Elf)였다. 그것도 그냥 엘프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 표지 일러스트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압도적인 미모의 엘프.


“어··· 어버버···.”


일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여인은 우리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용사님. 저는 아르해스 님을 모시는 사제, ‘세렌’이라고 합니다.”


목소리마저 청아했다. 그녀가 차를 따르는 동작 하나하나는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내 눈은 그녀의 외모보다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공격대 시스템 가동] - 이름: 세렌 (종족: 하이 엘프) - 직업: 신관 (추정) - 특이사항: 높은 신성력 보유


‘찾았다. 메인 힐러.’


공대장의 촉이 발동했다. 저 정도 신성력이면 광역 힐은 기본이고, 버프 주문까지 가능할지도 모른다. 일호가 옆에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형··· 형··· 대박이에요. 히로인이에요. 이건 무조건 히로인 각이에요.”

“조용히 해라. 히로인이 아니라 ‘힐러’다. 귀하신 몸이야.”


나는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세렌은 차를 내려놓은 뒤, 아르해스의 뒤편에 조신하게 섰다.

하지만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정확히는 일호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래, 용사니까 신기하겠지. 나는 짐꾼이고.


“세렌은 아르케아 교단에서 파견 나온 성녀이자, 제 수제자입니다. 앞으로 용사님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서, 성녀님이요? 저랑 같이 여행을? 텐트에서 같이 자고?”


일호의 망상이 폭주하기 전에 차단해야 했다.


“감사합니다. 힐러··· 아니, 신관님은 필수죠. 그런데 대현자님, 아까 하던 얘기 계속합시다.”


나는 찻잔을 들며 화제를 돌렸다.


“동료를 모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이 대륙에는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셨죠?”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각 종족의 영웅들도 은거하거나 전사해서··· 옆 대륙 상황은 모르겠지만, 그곳은 몇백 년 전 교류가 끊겨서···.”

“그럼 저희가 직접 스카우트해와야겠네요.”

“스카우트라니요? 어디서···.”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고 있었다. 이 오합지졸 파티로 악룡을 잡는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까 우리가 스쳐 지나갔던 그곳. 그 살벌했던 숲의 괴물들을 데려온다면?


“대현자님, 아까 저희가 여기 오기 전에 이상한 숲에 떨어졌었죠. 중국··· 아니, 무림인들이 날아다니던 곳.”

“아, 네. 그렇습니다. 소환 좌표가 튕기면서 잠시 다른 차원에 불시착했었지요.”

“거기가 정확히 어딥니까?”


아르해스는 곤란하다는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저희는 그곳을 ‘무의 차원(Dimension of Martial Arts)’이라 부릅니다.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투귀(鬪鬼)들이 사는 야만적인 곳이지요. 마법 문명과는 거리가 먼 곳이라 교류는 없습니다만···.”


야만적이라. 내 눈엔 그들이야말로 1티어 딜러들로 보였는데.


“그럼 질문 하나 더. 거기로 다시 가는 건 가능합니까?”


내 질문에 일호와 세렌, 아르해스의 시선이 동시에 집중됐다.


“형? 거길 왜 가요? 아까 목 잘릴 뻔했잖아요!”


일호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르해스 역시 의아한 표정이었다.


“가···능은 합니다. 사실 그 차원은 용사님이 오신 지구라는 곳보다 물리적 거리가 훨씬 가깝습니다.

차원의 벽이 얇아서, 제 마력으로도 충분히 게이트를 열 수 있지요. 하지만 굳이 그 위험한 곳을···.”

“위험하니까 가는 겁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를 짚었다.


“생각해 보세요. 악룡인지 뭔지 잡으려면 딜··· 아니, 강력한 화력이 필요합니다.

근데 이 동네 기사들은 다 죽었다면서요. 그럼 방법은 하나죠. 외부 용병을 영입하는 것.”

“외부 용병이라니··· 설마 그 무인들을?”

“네. 아까 보니까 칼 한 번 휘두르는데 나무가 숭숭 썰리던데요. 그런 놈들 한 파티··· 아니, 대여섯 명만 데려와도 악룡이고 뭐고 다 썰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말에 아르해스의 눈이 커졌다. 그는 마법사다. 상식적으로 ‘마법’이나 ‘신성력’으로 해결하려 하지, 깡패 같은 무인들을 데려온다는 발상은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공대장이다. 공략이 막히면 ‘사기 클래스’를 데려오면 된다. 지금 이 세계의 메타(Meta)에서 부족한 건 물리 딜러다.

그럼 딜러가 넘쳐나는 곳으로 가서 쇼핑을 해오는 게 정답 아닌가.


“물론, 말은 잘 안 통하겠지만··· 그건 대현자님이 걸어주신 통역 마법이면 해결될 거고. 일호 네가 용사랍시고 폼 좀 잡으면 꼬실 수 있지 않겠냐?”

“저··· 전 자신 없는데요. 아까 그 아저씨 눈빛 봤잖아요. 사람 여럿 죽여본 눈빛이었다고요.”


일호가 울상을 지었다. 확실히 그건 문제다. 무림인들은 자존심이 세고 호전적이다. 말로 해서 안 되면 맞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 전력으로는 3초도 못 버틴다.


‘뭔가 떡밥이 필요해.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아르해스를 보며 물었다.


“혹시, 여기 창고에 뭐 남는 거 없습니까? 영약이라든가, 비급이라든가. 무림인들이 환장할 만한 아이템.”

“음··· 글쎄요. 고대 드래곤의 부산물이나 마나석 같은 건 좀 있습니다만···.”

“드래곤의 부산물? 뼈나 가죽 같은 거요?”

“네. 아주 단단해서 가공하기 힘들지만요.”


빙고. 무림인들에게 ‘용의 뼈(용골)’나 ‘용의 비늘(용린)’은 전설의 아이템이다.

그걸로 무기를 만든다? 눈이 뒤집힐 거다. 거기에 악룡을 잡으면 그 부산물을 독점하게 해주겠다고 꼬드긴다면?


“됐네요. 협상 카드는 충분합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일호의 어깨를 쳤다.


“일호야, 짐 싸라. 우리 중국 출장 좀 가야겠다.”

“네에?! 싫어요! 나 여기서 세렌 님이랑 놀 거야!”

“세렌 님도 같이 가면 되겠네. 힐러 없으면 우리 죽어.”


나는 자연스럽게 세렌을 물고 늘어졌다. 세렌이 놀란 토끼 눈을 하며 아르해스를 쳐다봤다.


“저, 저도 가나요 대현자님?”

“흠··· 확실히 용사님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자네가 동행하는 게 맞네만··· 그곳은 너무 험악한 곳이라.”


아르해스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쐐기를 박았다.


“성녀님, 예언에 동료를 모으라고 되어 있다면서요. 이게 바로 그 신성한 의무입니다. 용사 혼자 보냈다가 저기서 객사하면, 이 세계는 누가 구합니까?”


내 논리에 아르해스와 세렌은 반박하지 못했다. 결국 아르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현수 님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차원 게이트를 준비해 드리지요.”



출발은 이틀 뒤로 정해졌다. 차원 이동 마법진을 재설정하고, 필요한 물자를 챙기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사이 우리는 아르해스의 탑에 머물며 이세계에 적응할 시간을 가졌다.


“와···.”


저녁 식사 시간. 식당에 들어선 일호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긴 테이블 위에는 윤기가 흐르는 통구이 요리와, 갓 구운 빵, 그리고 색색의 과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많이 드십시오, 용사님. 마왕군의 위협이 있긴 하나, 아르카디아는 본래 대지의 축복을 받은 풍요로운 땅입니다.”


세렌이 웃으며 빵을 잘라주었다. 일호는 잠시 머뭇거렸다. 으리으리한 식탁이 낯선 눈치였다.


“이거··· 다 먹어도 돼요?”

“물론입니다. 부족하면 말씀만 하십시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호는 포크를 들었다.

아니, 포크질도 답답했는지 손으로 빵을 집어 입에 구겨 넣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혹은 누가 뺏어먹기라도 할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으읍, 컥! 마이써요(맛있어요)···.”


일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단순히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고아에, 학폭 피해자.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제대로 된 끼니 한번 챙겨 먹기 힘들었을 녀석이다.

편의점 폐기 도시락이나 급식으로 배를 채우던 놈에게, 이런 호의와 풍요는 난생처음 겪는 충격이겠지.

나는 조용히 물잔을 일호 앞으로 밀어주었다.


“천천히 먹어. 체한다.”

“형··· 저 진짜 이런 고기 처음 먹어봐요. 맨날 삼각김밥만 먹었는데··· 여기 천국인가 봐요.”


녀석은 울면서 고기를 씹었다. 짠했다. 하지만 나는 공대장의 시선을 유지했다.


‘식량 사정은 좋네. 보급 걱정은 없겠어.’


풍요로운 식탁은 곧 국력을 의미한다. 비록 기사단은 전멸했다지만, 기반 시설과 자원은 아직 튼튼하다는 증거다.

레이드를 뛰기에 나쁜 조건은 아니다. 나는 부드러운 빵을 씹으며 생각했다.


‘그래, 많이 먹어둬라. 앞으로 굴러야 할 테니까.’


일호의 빈 그릇이 다시 채워졌다. 녀석의 볼이 다람쥐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여기선 배고파서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그날 밤. 나는 탑의 테라스에 앉아 두 개의 달을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물론 진짜 담배는 아니다. 아르해스에게 부탁해서 비슷한 향이 나는 약초를 말아 만든 대용품이었다.


“후우···.”


니코틴이 없어서 그런가, 뇌가 맑아지긴커녕 복잡해지기만 한다. 무림이라. 다시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하지만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이대로 있다간 개죽음뿐이다.


“······형?”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호였다. 잠옷 바람의 녀석은 테라스 난간을 잡고 멍하니 서 있었다.

낮에 그 명랑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녀석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안 자냐? 배불러서 잠이 안 와?”


내가 가볍게 농담을 던졌지만, 일호는 웃지 않았다. 녀석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서워요.”

“뭐가? 무림 가는 거? 걱정 마. 형이 있잖아.”

“아니요. 그냥··· 다요.”


일호가 고개를 떨궜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까 밥 먹을 때, 너무 행복했거든요? 근데 갑자기 무서운 거예요. 이게 다 꿈이면 어떡하지?

눈 뜨면 다시 그 옥상이고, 일진들이 나 때리고 있고··· 엄마도 아빠도 없는 그 지옥이면 어떡하지?”


녀석의 목소리가 물기를 머금었다.


“사실 저··· 죽으려고 했잖아요. 도망친 거잖아요, 비겁하게. 근데 여기서 용사래요.

나 같은 놈한테 세상을 구하래요. 말이 안 되잖아요. 난 그냥··· 찐따인데.”


그동안 억눌러왔던 어두운 감정이 터져 나왔다. 웹소설 주인공이 된 것 같다며 좋아하던 건, 사실 불안함을 감추기 위한 연기였을지도 모른다.

녀석은 여전히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피우던 약초를 비벼 껐다. 그리고 녀석의 옆으로 다가갔다.


“야, 조일호.”

“······네.”

“너 게임 안 해봤지? 원래 쪼렙 때는 다 무서워. 보스 몹만 봐도 손 떨리고, 죽으면 템 떨굴까 봐 도망다니고. 누구나 그래.”


나는 난간에 기대어 녀석을 바라봤다.


“도망친 거 아니야. 넌 그냥 서버를 옮긴 거야. ‘대한민국’이라는 헬 난이도 서버에서, 여기 ‘아르카디아’ 서버로. 로그아웃은 없어. 그럼 어떡해야겠냐?”

“······.”

“여기서 새로 키워야지. 다행히 이번 서버에선 네가 ‘히든 클래스’네? 용사라며.”

“하지만 전 싸울 줄도 모르고··· 힘도 없는데···.”


일호가 주먹을 쥐었다. 그때였다.


우드득-!


일호가 무심코 쥐고 있던 테라스의 석조 난간 귀퉁이가, 마치 과자 부스러기처럼 바스라졌다. 돌가루가 후두둑 떨어졌다.


“어?”


일호가 놀라서 자기 손을 쳐다봤다. 힘을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먹을 쥐었을 뿐인데 단단한 화강암이 으스러진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심 혀를 찼다.

‘와··· 미친 재능충. 난간을 두부 으깨듯 하네. 벌써부터 용사의 재능을 각성하고있는건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내 말라비틀어진 팔뚝을 걷어 보였다.


“이거 봐라. 형은 이거 하라고 해도 못 해. 손목 나간다.”


나는 일호의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바위처럼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이곳에 오기전 그저 마르기만한 일호의 몸이 아니였다.


“보이지? 넌 이미 달라졌어. 옥상에서 떨던 조일호는 죽었고, 넌 다시 태어난 거야. 힘은 네가 가졌어. 피지컬은 이미 완성됐다고.”

“하지만··· 전 싸워본 적도 없는걸요. 겁도 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내가 있잖아.”


나는 씨익 웃으며 내 머리를 톡톡 쳤다.


“몸 쓰는 건 네가 해. 머리 쓰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그냥 내가 찍어주는 놈 패고, 피하라고 할 때 피하면 돼. 생각하지 마. 생각은 공대장이 한다.”

“······형 근데 공대장이 대체 뭔데요?”

“너 세계 최고의 게임 ‘월드 오브 워해머’ 몰라? 줄여서 ‘와우’.”

“그거 고전 게임 아니에요?”

“······물론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안 하겠지···. 그 레이드라고, 몇십 명이 한 번에 보스 잡고 하는 게 있는데 그 대장이야.”

“······뭔가 병신같지만 멋있네요.”

“넌 웹소설만 보고 게임은 아예 안 하는구나? 그럼 안 되지 이 녀석아.”

“전 ‘리그 오브 크래프트’ 밖에 안 해요.”

“님 티어가?”

“그마(그랜드 마스터)요.”


‘세상은 진짜 불합리하다···.’


내가 생각에 잠겨 울분을 토하고 있을 때 일호가 말했다.


“알겠어요. 형만 믿을게요. 대신··· 저 버리면 안 돼요?”

“당연하지. 공대원 버리고 튀는 공대장 봤냐? 우린 한 파티야.”


나는 바스러진 난간 가루를 털어내며 녀석의 등을 세게 쳤다.


“들어가서 자라. 내일부턴 진짜 실전이다. 무림 가서 기죽지 마. 네 주먹이면 걔네 칼도 부러뜨릴 수 있어.”

“네! 안녕히 주무세요, 대장님!”


일호가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대장님이라. 듣기 나쁘지 않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된 테라스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두 개의 달이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주먹으로 돌을 으깨는 용사라···.’


일호는 강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문제는 저 힘을 제어하고, 올바른 곳에 꽂아 넣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전적으로 내 몫이다.


‘자, 그럼 딜러들 면접 보러 가볼까.’


나는 씩 웃으며 방으로 향했다. 이제 무림으로 떠날 시간이다.



‘근데, 탱커는 누가 하지? 용을 버틸 수 있으려나···.’



작가의말

벌써 수요일입니다. 이틀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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