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이 결혼식 청첩장을 보냈다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환상호철
작품등록일 :
2025.12.13 00:57
최근연재일 :
2025.12.20 22:00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152
추천수 :
0
글자수 :
69,045

작성
25.12.13 01:18
조회
35
추천
0
글자
5쪽

청첩장

DUMMY

현관 문을 닫고 나서야 봉투가 보였다.


바닥 한쪽에 놓여 있었다. 일부러 두고 간 것처럼 가지런했다. 발에 차이지도,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애매한 위치였다.


광고지 같지는 않았다. 종이가 얇지 않았고, 봉투 모서리가 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깐 서서 내려다보다가, 몸을 숙여 집어 들었다.


봉투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받는 사람: 박도준.


인쇄가 아니었다. 손글씨였다. 반듯하려다 멈춘 글씨. 한 번 고쳐 쓴 흔적이 남아 있는 획. 누가 썼는지 단번에 알 것 같은 글씨였다.


주소까지 정확했다.


이 집으로 이사 온 뒤 손글씨로 된 우편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었다. 봉투를 들어 올리자 안에서 종이가 한 번 움직였다. 카드 같은 감촉이었다.


봉투를 뒤집었다.


발신인란에는 이름 하나만 적혀 있었다.


서유나.


순간 숨을 들이마시는 걸 잊었다. 놀랐다기보다는, 갑자기 현실이 끼어든 느낌이었다. 오늘 하루가 통째로 밀려나고, 그 이름만 남은 기분이었다.


봉투를 찢었다. 조심할 이유가 없었다. 종이는 생각보다 쉽게 갈라졌다. 안에서 하얀 카드가 미끄러져 나왔다.


결혼식 청첩장이었다.


카드 위에는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서유나. 그리고 그 옆에 낯선 이름 하나.


신랑 김도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더 나빴다. 설명할 필요도, 이유를 붙일 여지도 없었다. 그냥 유나는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만 남았다.


날짜를 확인했다.


다음 달 토요일.


장소는 강남의 웨딩홀. 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카드에 적힌 정보들은 단정했고, 틀릴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카드를 들고 거실로 들어갔다.


신발을 벗지 않은 채 테이블 앞에 섰다. TV는 꺼져 있었고, 창밖에서는 차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지나갔다. 평소와 다를 게 없는 저녁이었다.


카드 안쪽을 펼쳤다.


익숙한 문구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작, 축복, 함께 걸어갈 시간 같은 말들. 한 번쯤 읽고 지나치기 쉬운 문장들이었다.


그 아래에 얇은 종이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메모지였다.


도준아.

한 번만 와줘.

부탁이야.


글씨는 봉투에 적힌 것과 같았다. 급하게 쓴 흔적. 마지막 글자가 살짝 눌려 있었다.


메모지만 따로 들고 한참을 봤다. 부탁이라는 단어가 눈에 오래 남았다. 끝난 사이에게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말 같아서였다.


청첩장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이미 찢어진 입구 때문에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았다. 손으로 눌러도 종이 사이에 틈이 남았다.


그 틈으로 이름이 보였다.


서유나.


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가슴이 막힌 것처럼 답답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시계를 봤다. 아직 밤 아홉 시도 되지 않았다.


오늘 하루가 끝나기에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봉투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봉투를 테이블 위에 둔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은 계속 그쪽에 가 있었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지금 꺼내는 순간, 뭔가 결정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의자에서 일어났다.

계속 앉아 있는 게 더 이상했다.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더 엉키는 느낌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았다.

집 밖으로만 나가면 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봤다.

얼굴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놀란 흔적도, 무너진 기색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밖은 저녁답게 조용했다.

차 소리와 사람 발소리가 섞여 있었지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몇 블록쯤 지나자 발걸음이 느려졌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걷는 게 갑자기 우스워졌다.

길가에 멈춰 서서 숨을 한 번 고르고 나서야, 가방이 묘하게 무겁다는 걸 느꼈다.


봉투 하나뿐이었다.

그런데도 존재감이 분명했다.

꺼내 보지 않아도,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가방 끈을 고쳐 메고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생각이 따라올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청첩장에 적힌 날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음 달 토요일.

생각보다 멀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그냥 종이 한 장이 아니라는 걸.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내 손을 떠난 일도 아니라는 걸.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켠 채로 한참을 들여다봤다.

누구의 이름도 치지 않은 채로.


정말 가지 않을 수 있을지.

아니면, 한 번은 마주봐야 끝이 나는 건지.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 여친이 결혼식 청첩장을 보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5 다음날의 속도(완결) 25.12.20 8 0 13쪽
14 돌아온 밤 25.12.18 7 0 9쪽
13 당일의 공기 25.12.17 5 0 7쪽
12 준비라는 말 25.12.16 2 0 11쪽
11 가까워지는 날짜 25.12.15 2 0 7쪽
10 겹치지 않는 시간 25.12.15 3 0 9쪽
9 닿지 않는 선택 25.12.15 3 0 11쪽
8 누군가의 안부 25.12.15 6 0 10쪽
7 겹치는 이름 하나 25.12.15 7 0 12쪽
6 선택이 남긴 자리 25.12.15 7 0 12쪽
5 겹치지 않는 동선 25.12.15 12 0 11쪽
4 연락하지 않기로 한 날 25.12.15 14 0 15쪽
3 봉투를 여는 순서 25.12.15 14 0 16쪽
2 거리의 온도 25.12.13 27 0 6쪽
» 청첩장 25.12.13 36 0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