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치지 않는 동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상하게 개운했다.
잠을 오래 잔 것도 아닌데 몸이 가벼웠다.
머릿속이 조용했다.
알람을 끄고 바로 일어났다.
침대에 더 누워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오늘은 하루가 길게 느껴질 것 같지 않았다.
부엌으로 가 물을 마셨다.
컵을 비우는 동안 창밖을 봤다.
날씨가 흐리지도 맑지도 않았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휴대폰을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다.
의식적인 행동은 아니었다.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가방을 챙기다 자연스럽게 봉투 위치를 확인했다.
안에 그대로 있었다.
그 사실만 확인하고 지퍼를 닫았다.
현관을 나서며 신발을 고쳐 신었다.
문을 닫는 소리가 또렷했다.
오늘은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지하철역까지 걷는 길이 평소보다 한산했다.
사람들이 조금 늦게 움직이는 날이었다.
걸음이 자연스럽게 맞춰졌다.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휴대폰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습관이 하나 줄어든 느낌이었다.
회사에 도착하자 아침 공기가 달랐다.
사무실 안이 분주했다.
회의 일정이 하나 추가됐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내 일정만 확인했다.
오늘은 외부 일정이 없었다.
그 사실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업무를 시작하자 생각이 줄어들었다.
해야 할 일은 단순했다.
정리하고 처리하면 끝이었다.
오전이 빠르게 지나갔다.
중간에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괜히 오래 앉아 있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동료들이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으로 이동하며 대화를 들었다.
주말 이야기, 회사 이야기.
내가 끼어들 필요 없는 말들이었다.
그래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그냥 있는 것도 괜찮았다.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동료가 물었다.
요즘 괜찮냐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괜찮다고 답했다.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오후 업무를 하다 메일 하나를 받았다.
외부 업체 관련 자료 요청이었다.
발신자 이름을 보고 시선이 잠깐 멈췄다.
유나와는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메일을 열었다.
괜히 긴장했던 걸 인정했다.
자료를 정리해 회신했다.
손이 익숙하게 움직였다.
이런 일은 흔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오늘 하루를 떠올려봤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그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안정감이 있었다.
계속 이렇게 흘러가도 될 것 같았다.
자리를 정리하며 가방을 들었다.
봉투는 여전히 안에 있었다.
오늘은 꺼낼 생각이 없었다.
회사 건물을 나서며 방향을 정했다.
어제와 다른 길이었다.
굳이 겹칠 필요는 없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그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정한 동선이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일정했다.
서두르지도, 망설이지도 않았다.
오늘은 이렇게 가도 괜찮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 해가 아직 완전히 지지 않았다.
현관 앞에 잠깐 서서 하늘을 봤다.
하루가 덜 닫힌 느낌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바로 소파에 앉았다.
잠깐만 쉬었다가 움직일 생각이었다.
가방 안에서 봉투를 꺼내지는 않았다.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게 편했다.
주방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저녁을 해 먹을지 말지 고민했다.
결국 있는 걸로 간단히 해결하기로 했다.
밥을 데우고 반찬을 꺼냈다.
전자레인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서 있었다.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식탁에 앉아 천천히 먹었다.
맛을 느끼면서 씹었다.
급하게 삼키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했다.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이런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혔다.
거실로 돌아와 창문을 조금 열었다.
저녁 공기가 들어왔다.
바람이 크지 않아 좋았다.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메시지 앱을 열었다가 닫았다.
굳이 볼 필요는 없었다.
소파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졸린 건 아니었다.
몸이 쉬고 싶어 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머릿속에 문득 떠올랐다.
오늘 하루, 유나를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는 사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어디쯤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완전히 벗어나진 않았지만 멀어지고 있었다.
일어나서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을 오래 틀지는 않았다.
필요한 만큼만 씻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거울을 봤다.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책을 펼칠까 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오늘은 글자가 필요 없는 날이었다.
불을 끄고 누운 채로 숨을 고르게 쉬었다.
생각이 다시 모이기 전에
잠이 먼저 왔다.
오늘은 꿈을 꾸지 않았다.
아니면 기억나지 않았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알람이 울리고 있었다.
한 번에 끄고 바로 일어났다.
몸이 덜 무거웠다.
부엌으로 가 물을 마셨다.
창밖을 보니 햇빛이 조금 더 강했다.
날이 바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출근 준비를 하며 라디오를 틀었다.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소리만 있는 게 좋았다.
가방을 챙길 때 봉투가 손에 스쳤다.
확인하지 않았다.
그대로 지퍼를 닫았다.
현관문을 나서며 잠시 멈췄다.
오늘은 주말이었다.
출근길과는 다른 리듬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괜히 층수를 한 번 더 봤다.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이 느긋했다.
평일과는 다른 얼굴들이었다.
그 속도가 나에게도 옮겨왔다.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다.
주문을 하고 앉았다.
커피가 나오기까지 잠시 기다렸다.
휴대폰을 꺼냈다가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오늘은 굳이 만지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각자의 목적이 분명해 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쓸지.
아직 정해진 건 없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빈 일정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선택지가 많다는 뜻이었다.
가방을 열어 봉투를 꺼낼까 하다 말았다.
카페라는 공간이 맞지 않았다.
지금은 혼자 있는 느낌이 더 중요했다.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햇빛이 얼굴에 닿았다.
눈을 살짝 찌푸렸다.
걷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걸었다.
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큰길로 나왔다.
발이 먼저 움직였다.
문득 휴대폰이 울렸다.
메시지 하나였다.
회사 단체방 알림이었다.
확인만 하고 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굳이 반응하지 않아도 됐다.
그 선택이 자연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웨딩홀 방향 표지판이 보였다.
시선을 오래 두지 않았다.
보았다는 사실만 인정했다.
그 이상으로 가지 않았다.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봉투를 꺼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 앉았다.
조금 숨을 골랐다.
열지는 않았다.
하지만 피하지도 않았다.
그 사이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겹치지 않는 동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봉투를 테이블 위에 둔 채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손을 올려두지도, 떼어내지도 않았다.
시간이 먼저 흘렀다.
창밖에서 차 소리가 지나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간격이 길었다.
그 소리들이 방 안까지 들어왔다.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봉투는 그대로 두었다.
오늘은 이 상태가 맞다고 느꼈다.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가방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봉투도 두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오후 초반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햇빛이 더 강해져 있었다.
주말의 낮은 평일과 달랐다.
사람들의 표정도 느슨했다.
걷다 보니 시장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부러 정한 방향은 아니었다.
발이 기억하는 길이었다.
채소 가게 앞에서 잠시 멈췄다.
사야 할 게 떠오르지 않았는데도.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상인이 말을 걸었지만
대답은 짧게 했다.
굳이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시장 끝을 지나 큰길로 나왔다.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그 변화가 마음에 들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옆에 서 있었다.
누구도 나를 보지 않았다.
초록불이 켜지자 함께 건넜다.
보폭이 비슷해졌다.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건너편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벤치 몇 개와 나무 몇 그루.
잠시 쉬기에 적당해 보였다.
벤치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들, 산책 나온 사람들, 혼자 앉은 사람들.
그중 누군가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들 자기 자리에 있었다.
그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생각이 흐트러졌다가 다시 모였다.
유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의식적으로 막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오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
괜히 웃음이 났다.
이런 날도 있다는 게.
얼마나 앉아 있었는지 모른다.
시계를 보지 않았다.
일어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 나왔을 때보다 짧게 느껴졌다.
몸이 익숙해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
방 안이 한꺼번에 밝아졌다.
테이블 위에 봉투가 그대로 있었다.
아까보다 더 또렷해 보였다.
하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손을 뻗어 봉투를 집었다.
이번에는 열었다.
조심스럽게, 서두르지 않고.
카드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이름과 날짜, 장소.
이미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 아래 적힌 문장을 다시 읽었다.
정중하고 단정한 글씨였다.
감정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카드를 다시 내려놓았다.
펜을 찾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봉투와 카드를 나란히 정리했다.
책장 위에 올려두었다.
눈에 보이는 자리에.
피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늘 하루를 그렇게 마무리했다.
카드를 책장 위에 올려두고 한 발 물러섰다.
정리된 느낌이 들었다.
버려둔 것도, 붙잡은 것도 아니었다.
의자에 앉아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손에 아무것도 쥐지 않았다.
생각이 먼저 움직이지 않게 두었다.
해가 기울어 방 안에 그림자가 길어졌다.
시간이 분명히 흘렀다.
그 변화가 불편하지 않았다.
주방으로 가 물을 한 컵 더 마셨다.
컵을 내려놓으며 숨을 고르게 쉬었다.
몸이 조금 느슨해졌다.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켰다.
연락처 앱은 열지 않았다.
메시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캘린더를 훑었다.
다음 달 토요일에 시선이 잠깐 머물렀다.
아직은 비어 있었다.
일정을 추가하지 않았다.
지우지도 않았다.
그대로 두었다.
그 선택이 마음에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지금은 하지 않겠다고 정한 쪽이었다.
창문을 조금 더 열었다.
저녁 공기가 들어왔다.
낮과 밤의 경계가 느껴졌다.
밖에서 아이들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주말이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은 다시 평일이었다.
가방을 정리하며 봉투를 다시 확인했다.
책장 위에 있는 걸 보고 멈췄다.
굳이 다시 옮기지 않았다.
샤워를 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
거울 속 얼굴을 봤다.
예전보다 표정이 단순해 보였다.
침대에 누워 불을 껐다.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그 어둠이 가볍게 느껴졌다.
눈을 감고 오늘 하루를 떠올렸다.
밖에 나갔고, 돌아왔고, 열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결정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미루는 방식은
이제 조금 달라져 있었다.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겹치지 않게 살아가는 것도
분명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을
지금은 내가 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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