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화. 세상 밖으로 (1)
001화. 세상 밖으로 (1)
사천성 석탄현 기암괴석이 하늘을 찌르고 절곡 사이로 격류가 흐르는 곳.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으리만치 외지고 전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전답은커녕 한 걸음만 삐끗하면 천장 절애 아래로 떨어질 것 같은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있었다.
아스라한 절곡을 돌아들면 자그마한 분지가 나오고 그 분지 안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는 산왕이라 하고 누구는 화적떼라 부르지만 오가는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멀리 나가 도적질을 하는 무리들이니 화적떼가 맞았다.
이름도 없는 분지에 숨어지내며 때때로 화적질에 나서는 이들을 인근 지역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이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피해를 입은 현에서 토벌대를 꾸려 이들을 토벌하려고 나섰지만 토벌은 관장의 생각처럼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사내들이 화적질을 나가고 나면 마을에 남아 있는 여인들의 수다 떠는 소리와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작은 분지 곳곳에서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게 들려왔다.
열 살 아래 아이들은 여인들의 수다 소리를 들으며 여인들의 곁에 머물렀고, 열다섯을 넘긴 사내아이들은 어른들을 따라 화적질을 나섰다.
열 살과 열다섯 살 그 중간에 있는 아이들만이 분지가 좁은 것을 탓하며 절곡을 싸고도는 봉우리들을 놀이터 삼았다.
열세 살 검치.
화적떼의 두령을 아비로 둔 아이로 산중 제왕 호랑이를 닮으라고 호랑이의 송곳니인 검치라 이름 지어진 아이.
열세 살 은호.
산골 계집아이치고는 어찌 이리 고울 수 있을까 싶으리만치 반반하게 생겨 마을 사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노리고 있는 아이.
생긴 것은 천상 계집일진대 검치 무리와 함께하는 짓거리는 사내아이 못지않게 천방지축인 아이다.
열세 살 홍원.
얼굴이 붉어 붉은 원숭이라 이름 지은 아이.
제 나이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검치와 어울려 지내려니, 스스로 열세 살이라 단정 짓고 무리에 든 아이로 손재주가 뛰어난 아이다.
열두 살 거웅.
사실 거웅의 나이도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덩치를 보면 이미 성년이라 여겨도 될 만큼 컸지만, 거웅의 어미가 열둘이라 하니 열둘로 알고 검치와 어울려 지내는 아이다.
열두 살 청서.
청서는 거웅과 반대로 몸집만 보면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으리만치 작고 가냘픈 아이였지만, 역시 어미가 열둘이라고 해 검치 무리에 든 아이다.
사내아이고 계집아이고 산중에서 자란 아이들이었으니, 험준한 절곡을 내달리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갖고 있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열다섯을 넘긴 마을 사내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화적질을 나가고 나면 돌아오기까지는 며칠씩 걸리곤 했다.
어린 동생들은 어미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천방지축 부산한 아이들은 좁고 답답한 분지에 남아 있으려 들지 않았다.
아비들은 아이들이 산중을 돌아다니는 것을 힘을 기르는 일이라 여겼고, 어미들도 인근에는 맹수조차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며칠씩 산중을 헤매고 다녀도 상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산중을 헤메고 돌아오면 작은 짐승을 잡아 오기도 하고 먹을 만한 풀뿌리도 갖고 돌아오기에, 어른들이 일을 나가고 나면 으레 아이들도 아이들의 일을 하러 돌아다닌다고 여겼던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른들이 화적질을 하러 나가고 나자, 절곡을 내려온 아이들은 온몸을 적신 땀을 씻으려 탄천의 거센 격류가 돌아가다 만들어 낸 소(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으~ 시원하다.”
가장 먼저 소로 뛰어들어 소 바닥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며 검치가 소리치자, 청서가 검치의 말을 받아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이 너무 차가워 불알이 다 쪼그라들었다.”
청서가 불알이 쪼그라들었다고 하자 홍원이 청서를 향해 놀리듯 말했다.
“뭐라는 거냐? 네놈 불알은 원래 대추보다도 조끄만데 거기서 더 쪼그라들 것이 있겠느냐?”
홍원의 말에 청서는 은호를 보며 발끈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네 것보다는 내 고추가 더 크다.”
사내놈들 아니랄까 봐 고추 크기는 밀리고 싶지 않았는지 서로 눈을 부릅뜨고 마주 보며 소리쳐 대면서도, 이미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모두 알고들 있었으니 검치나 거웅이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계집의 몸인 은호 역시 두 놈이 고추 타령을 읊어대도 얼굴을 붉히기는커녕 눈도 깜박이지 않았다.
이 소에서 벌거벗고 물놀이를 한 것만도 수백 번이 넘었으니, 은호가 계집의 몸이지만 사내 놈들의 몸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제 몸도 사내 놈들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땀을 씻고 바위 위로 올라와 젖은 옷을 훌훌 벗어 물기를 털어냈다.
다섯 아이들은 부끄러운 곳을 가려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지 아니면 이미 서로의 몸에 익숙해서인지는 모르나, 벌거숭이가 되어서도 어느 한 곳 가리려 들지 않았다.
거웅이 배가 고픈지 검치를 보며 말했다.
“검치야. 배고프다. 칡뿌리라도 캐 먹으려면 어서 가자.”
검치의 아비가 화적떼의 두령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일찌감치 무수히 다툰 결과 서열이 정해졌기에 거웅이 검치에게 말한 것이었다.
“그래 옷은 가다 보면 마르겠지. 먼저 놓친 토끼가 아직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오늘은 여우골로 가자.”
아이들이 걸친 옷이라고 해야 바지 하나에 윗도리 하나였으니, 젖은 신발을 바위에 털어내고 순식간에 옷을 걸치고 움직였다.
아이들은 길이라 여겨지지도 않는 곳으로 익숙한 듯 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얼마 안 들어가니 그토록 앞을 가로막던 덩굴들이 사라지고 계곡이 나왔다.
홍원이 대감도를 흔들며 앞서가자 검치와 거웅이 따랐고 은호와 청서가 함께 움직이는데 청서의 몸이 약해서인지 조금씩 거리가 벌어졌다.
앞서가던 검치가 뒤를 돌아보며 은호에게 소리쳤다.
“은호야 청서와 천천히 와라. 조금 가면 칡뿌리가 있는 곳이니 서둘 것 없다.”
“응~.”
홍원이 어느새 칡덩굴을 잡고 서서 말했다.
“덩굴이 제법 굵은 것이 뿌리가 실하지 싶다.”
검치와 거웅은 대답도 없이 홍원이 잡고 있는 칡덩굴을 당겨 보고는 덩굴 아래 바윗돌들을 치워갔다.
제법 커 보이는 돌들도 검치와 거웅은 마치 풀뿌리를 뽑아내듯 거침없이 들어냈다.
덩굴을 덮고 있던 바윗돌 아래로 흙이 나오자 이번에는 제 차례라는 듯 홍원이 달려들어 대감도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굵은 칡뿌리가 모습을 드러내자 아이들은 칡뿌리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 보이는 부분을 잘라냈다.
제법 칡뿌리가 굵었기에 아래까지 모두 캐낸다고 한들 힘만 들지 모두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먹을 만큼 잘라내 토막 치고 한 덩어리씩 나눠 들고는 이빨로 껍질을 벗겨내고는 속살을 뜯어내 입안 가득 우물거렸다.
연신 칡뿌리를 씹어 삼키고 뱉어내다 보니 손에 든 칡뿌리가 사라질 즈음에는 어느 정도 허기가 가셔왔다.
검치는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칡뿌리가 어느새 검게 변해 버린 것을 보며 말했다.
“남은 것은 그대로 두고 가자. 돌아올 때 먹어도 되고 누가 아냐? 재수가 좋으면 멧돼지들이라도 보게 될지.”
아이들은 멧돼지가 칡뿌리를 먹으러 올지 모른다는 검치의 말에 마치 멧돼지를 잡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들이 밝아졌다.
다른 마을 아이들이라면 멧돼지가 나올까 두려워했을 것이지만 아이들은 이미 수차에 걸쳐 멧돼지를 잡았다.
멧돼지를 잡아 마을로 가져가면 마을 잔치를 벌일 수 있었으니 은근히 멧돼지가 칡뿌리를 먹으러 오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오늘은 재수가 없으려는지 다른 날 같으면 흔히 보였을 토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이라고는 칡뿌리가 전부였으니 다시 배가 고파오자 모두의 눈이 검치에게 모였다.
산에서 지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 누구도 굶는다는 것은 생각지 않았다.
검치는 아이들이 바라보자 마치 답을 아는 것처럼 빠르게 말했다.
“거웅이가 은호하고 청서를 데리고 가재를 잡아라. 한동안 안 잡았으니 잡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나는 홍원이 하고 먹을 만한 풀뿌리나 열매가 있는지 조금 더 위로 올라가 뒤져 봐야겠다.”
아이들은 검치의 말에 즉시 계곡의 돌을 들춰 가재를 찾았고 검치는 홍원이와 계곡 위로 올라갔다.
언제나 길이 없는 숲 덩굴을 헤치며 오를 때 아이들 앞에서 움직이는 것은 대감도를 든 홍원이였다.
덩굴이 우거진 곳을 뚫고 지나가려면 덩굴을 대감도로 쳐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힘은 검치나 거웅이가 더 세지만 대감도의 주인이 홍원이였다.
홍원이는 대감도를 누구에게도 내주려 하지 않았기에 언제나 숲을 헤치고 나갈 때는 홍원이가 앞장섰던 것이다.
툭툭 덩굴을 잘라가며 앞으로 나가던 홍원이 멈춰 서더니 조심스럽게 검치를 돌아봤다.
꿩 한 쌍이 아이들의 발소리를 들었는지 대가리만 풀숲에 박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조금 더 다가서면 바로 날아갈 것이 분명했으니 홍원이 숨소리마저 죽이고 검치를 바라봤던 것인데, 검치도 봤는지 조용히 엎드려 주먹만 한 돌을 집어 들고는 꿩을 향해 던져냈다.
한 마리가 검치가 던진 돌에 맞아 푸드덕거리자 남은 놈은 그대로 날아올랐다. 홍원이 얼른 달려가 푸드덕거리는 놈을 잡아들고 소리쳤다.
“장끼가 제법 토실토실한 것이 살이 많겠다.”
검치는 한 마리마저 잡았어야 했는데 싶었지만, 이미 날아간 놈을 잡을 방도는 없었으니 홍원의 말에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
“그거라도 어디냐? 다래가 익었을 것이니 조금 더 찾아보고 내려가자.”
검치는 날아가 버린 한 마리가 아쉬워서 한 말이었다.
북사면인 이쪽에서는 다래 덩굴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먹기에는 꿩 한 마리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홍원은 꿩의 목을 비틀어 덩굴로 묶어 허리에 차고 다시 앞서갔다.
초꾼들이 하는 말로는 산에는 먹을 것이 지천이라고 했는데, 정작 먹을 것을 찾으려 들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한 식경을 더 뒤지다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찾지 못한 두 아이들은 길을 돌아갔다.
가재를 잡으라 했던 곳으로 돌아와 보니 그 사이 남아 있던 아이들이 가재를 제법 많이 잡아놨다.
거웅이 목에 매달고 있던 작은 주머니에서 화섭자를 꺼내 불을 피우자, 홍원이는 꿩 털을 대충 뽑고는 불 위에 올려 남은 털들을 태웠다.
청서와 은호는 잡아 놓은 가재들을 나뭇가지에 꿰어 불 가장자리에 세워 놨다. 가재를 얼마나 많이 잡았는지 가재를 꿴 나뭇가지가 화톳불을 감싸고 돌았다.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 가재가 붉게 익어가자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씩 들고 입에 몇 마리씩 한꺼번에 밀어 넣고 씹었다.
가제로 어느 정도 허기가 가셔지자 그제서야 홍원이 꿩고기를 잘게 잘라 가재를 끼웠던 가지에 꿩고기 조각들을 끼워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각자 소신껏 알아서 먹으라는 뜻이었고 아이들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꼬치를 들고 불에 가까이 대고 고기가 익기를 기다렸다.
고기가 익자 입에 넣고 씹으며 은호가 검치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일 나가는지 들었니?”
“그건 왜 묻냐?”
그동안 어른들의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은호가 갑자기 어른들이 어디로 일을 나갔느냐고 묻자, 검치는 자신도 그렇지만 마을 아이 누구도 어른들의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터라 은호에게 되물은 것이었다.
“아비가 나가면서 이번에 계집이 어쩌고 하는 것 같아서···.”
“그야 언제는 일 나가서 계집을 잡으면 놔두고 왔냐? 네 엄마가 배가 불러 밤일을 안 해 주는가 보지.”
“울 엄마가 만삭인데 그럼 밤일을 할 수 있겠니.”
“식구로 들이지 않은 여자들도 많은데 굳이 일터에서까지 구하려 드는지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계집이 있으면 잡아 오겠지.”
“사내들은 그 짓이 그리 좋을까?”
“글쎄. 안 해 봐서 모르겠네.”
안 해 봐서 모른다는 검치의 말에 청서가 씹던 고기를 얼른 삼키고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은호 알몸을 봤냐기에 그렇다고 하니까? 나더러는 아직 어려서 그렇다 하더라도 검치하고 거웅이는 고자가 분명하다며 웃더라.”
검치와 거웅이가 은호를 바라보자 은호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는 것 같았지만, 검치도 거웅이도 손에 든 고기를 입에 털어 넣고 우적거릴 뿐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움막 같은 집들이 나뉘어 있기는 했어도 움막 안은 나뉜 것이 아니었으니, 일을 나갔던 어른들이 돌아오면 잡아 온 계집과 관계를 하든지, 아니면 기다리던 부인들과 관계를 갖든지 하는 일이 일상이었으니 아이들에게 새로울 것은 없었다.
더구나 검치와 거웅의 몸은 어른들에 비해 모자람도 없었고, 아마 모르기는 해도 마을 아낙들 가운데 여기 아이들의 아랫도리를 보지 못한 아낙은 없었으니, 나날이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며 농을 주고받는 일은 일상이었던 것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마을 여인들의 수다가 대부분 음담패설인 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마을 여인들 모두가 사내들에게 잡혀 와 이놈 저놈 거치고서야 자신들의 뜻과는 상관도 없이 사내들이 자신의 거처에 들인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연유로 마을 아이들의 아비도 누구인지 분명하게 드러난 경우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일찍 잡혀 와 마을에서 지낸 지 오래된 나이 많은 여인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이놈 저놈 돌아가며 건드리는 일이 많아서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