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운명의 계승자
세상은 과거 멸망까지 몰렸다.
차원을 넘어온 압도적인 적.
대륙의 모든 종족이 힘을 모아 싸웠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멸망이라는 단어가 눈에 닿을 무렵 기적이 등장했다. 바로 [성녀]와 [용사] 였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밀리는 전황을 뚫고 악을 봉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후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의 엔딩은 아니었다.
대륙 전역이 몰살당했고, 인류는 문명이 초기화 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 모든 인류의 병력을 집중하여 적의 우두머리만 날려버렸기 때문에 수많은 잔당이 대륙 곳곳으로 흩어져버렸다.
다행히 그들은 구심점과 힘의 원천이 사라져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대륙의 원주민보다는 강했기에 또 다시 싸움은 이어졌다. 수 백 년 간 인류는 그들을 추적하며 처단하기를 반복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활동이 뜸해지며 존재감이 옅어져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을 쫒는 단체는 검은교단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었다.
“정말 개 같은 일이 아닐까?”
한 사내가 한숨을 내쉰다.
“맨날 나한테만 너무 어려운 일을 시키는 것 같다니까. 어떨 때는 적진 한가운데 있는 마족의 목을 따오라고 하질 않나, 몬스터 들이 가득한 곳에 숨겨진 마법서를 가지고 오라질 않나. 너무하지 진짜?”
남자는 계속 투덜거리고 있었다.
남자의 뒤쪽으로는 발가벗겨진 채 매달린 사내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게다가 이번엔 뭐라드라 세상을 구할 사람을 찾아라?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매달린 사내는 입에 재갈이 물린 상태였으나 동조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동의와 더불어 관심의 표시 였겠지만 남자는 계속 눈앞의 불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이어 나갔다.
“심지어 그래서 세상을 구할 사람이 누구냐 니까 알지도 못해. 여러 명일 수도 있다는데, 그나마 기억나는 사람이 30대 전후의 사람이 있었고 매우 강한 투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정도라나? 그걸로 어떻게 사람을 찾느냐고 따졌더니. 하하 가능성 있어 보이는 떡잎을 찾으면 된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데 말이지. 확실한 건 내가 그의 옆에 있었다는 거야.”
사내는 말을 하며 쪼그려 앉아 불속에서 뭔가를 뒤적거린다.
“내 목소리가 들렸다나 뭐라나. 참 이상도 하지 그래서 그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했더니, 내가 만난, 혹은 만날 사람 중 하나이지 않겠냐고 하더라구.”
탁!
그는 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달궈진 인두였다.
“그래서 좀 생각을 해 보았거든. 내 옆에 있다는 것은 강한 것도 강한 것이겠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인정한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것 아니겠어? 내가 인생에서 누군가를 인정한 적이 많지 않은 사람이거든. 기준이 꽤 높아서 말이지.”
촤악
사내는 남자의 입에 물린 재갈을 뜯어버린다. 강하게 뜯었는지 입술이 터지며 매달린 사내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살려줘!”
사내가 소리친다.
남자는 그런 사내의 비명을 들으며 품에서 문서를 하나 꺼내 읽기 시작한다.
“이름 알프레도 폰 아를로체, 나이 26세, 검술 명문가 출신, 이른 나이에 상급 기사로 발탁. 뛰어난 재능을 가짐. 인기도 많고 부하들에게도 친절함. 이라고 전달받았는데 말이지.”
사내가 주변을 스윽 본다. 이곳은 아를로체가의 별관 지하실이었고, 또한 [고문실]이었다. 주변에는 약 에라도 취했는지 인사불성의 사람들과, 각종 고문도구와 피냄새로 가득했다.
“알고 봤더니, 외부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알프레도의 실상은 순찰을 돌며 노예나 부랑자들을 잡아 고문하기 좋아하는 기벽에 시체조차 태워서 소각해 버리는 주도면밀한 싸이코패스 였다는 거지. 심지어 검술 실력도 형편없었고 말이지. 가문의 힘으로 자리에 올라간 것이면 처신이라도 잘했어야지.”
“그건 내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
남자가 소리친다.
“해봐”
“나는 이 세상의 쓰레기들을 처리해주고 있던거야! 내가 이 내가 말이지”
.
“개소리네.”
치이익!!
살타는 소리가 진동을 한다. 허벅지에 인두가 지져지고 있었다.
“내가!! 내가!!! 나를 건드리면 아를로체 가문이 가만두지 않을거다!!!”
“흠”
사내가 지지던 인두를 떼어낸다.
“씨발 그래 지금이라도 나를 놓아준다면 내가 너를 용서하지.”
“뭐래. 아직 덜 달궈 진 것 같아서 뗀건데.”
사내는 다시금 인두를 불 속에 넣었다.
“뭐하는 거야?? 방금 내가 말했잖아 나는 아를로체가의 적자라니까?”
“뭐하긴, 네가 했던 짓의 반복이랄까?”
“내 말 못들었어? 우리 가문이 두렵지 않나? 내 조부님은 무려 기사단장님이거든!”
“그건 네 조부님이고 너는 아니잖아. 그리고 이 꼬라지면 조부님도 너를 용서하긴 쉽지 않을테고 말이지. 나를 멈추고 싶다면 좀 더 흥미로운 말을 하는 게 좋을거야.”
권력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남자가 말을 바꾸어 본다. 사람에게 맞는 말을 하는 재능정도는 남자에게도 있었다.
“혹시 돈이 필요한가? 내가 미리 받아놓은 재산이 좀 있는데 말이지. 이정도면 평생 놀고 먹을 정도는 될 거야. 하루만 주면 내가 가져다 줄게.”
“엘스워드 왕성을 준다면 생각해볼게.”
남자는 사내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건 말이 안 되잖아.”
“그렇지 말이 안되지. 너도 말이 안되는 짓을 했잖아?”
치이익!!
이번엔 가슴팍에 인두가 지져진다.
엄청난 고통, 차라리 기절해 버리면 나으련만, 사내는 미묘하게 그 선을 조절하는지 그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엄청난 고통만 느낄 뿐이었다.
“그렇지 여자? 내가 아는 창관이 있는데 vip거든.”
“잘하네 진짜.”
“아니라면 내 약혼녀도 주지. 눈을 가리고 하면 모를거야.”
“하아 여자라.”
남자가 약혼녀의 말에 잠시 시선을 하늘로 올린다. 반응 한 것 처럼 보였다.
사내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때 괜찮지??”
돌아온 대답은
치이익!
이번엔 손등이었다.
“참고로 네 약혼녀에겐 창관 출입기록이랑 초야권 행사한 내용까지 해서 보냈어. 그쪽 가문에서 너를 달가워 하진 않을거야.”
“미친놈아 그걸 보내면 어떻해 할아버님이 겨우 잡은 혼사인데.”
“그러게. 내가 배려가 좀 부족했네. 뭐 근데 약혼녀를 대주겠다는 너도 배려는 없는 거니 쌤쌤으로 해두자.”
일절 반응하지 않는 사내의 모습에 다급해진 알프레도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어떻게든 한번만 살아나가면 저자식을 죽여버릴 수 있을 것이었다. 단 한 번이었다.
평소라면 잘 굴러가지 않았겠지만 지금상황에서는 매섭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 알프레도였다. 결국 무언가 방법을 생각하고는 입을 연다.
“내..내가 만약 그 세상을 구할 사람일수도 있는 거 잖아!!”
결국 생각해낸 것은 혼잣말을 하던 사내의 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알프레도는 듣고 있었던 것이었다.
탁!
처음으로 사내가 인두에서 손을 놓고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의자를 하나 가져와 사내 옆에 조용히 앉는다.
“했던 말 중에 가장 흥미로운데. 계속해 봐.”
“비록 내가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이번일을 계기로 깨달음을 얻고 개과천선 하고 검술 또한 성장해서 엄청난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 잖아!”
“계속해봐.”
남자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다시 너를 만나고 세상을 구하는 거지 미래는 무궁무진하고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그렇지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 예측불가의 일이지. 내가 너무 싫어하는 일이기도 하지. 불확실한 일들 말이지.”
“미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기도 하니까.”
알프레도가 소리친다. 남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설득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나가기만 한다면 이런 놈을 족쳐 죽여버릴 수 있었다. 여태껏 자기가 행한 최대치의 고문 기술을 사용하여 죽여달라 소리치게 만들 것이었다. 우선 두 눈을 뽑고...
“그런데 말이지. 나는 불확실한 게 싫어. 미래에 어쩌구저쩌구 맞는 말이고 한데. 그렇거든. 지금 내가 기분이 개같은데 왜 미래니 내일이니 타령이지.”
“불확실한 미래는 점점 밝아지니 말이지. 희망! 뭐 그런거잖아.”
알프레도는 흥분한 사내를 설득하려했다. 아니 해야만 했다.
“내 결론은 그거야. 확실한걸 하자.”
사내는 다시금 인두를 들어올렸다.
“진정해! 내가 만약 진정한 그 선택받은 자라면 나중에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사내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하하하 하고 크게 웃어 버린다.
너무나 큰 웃음 소리에 알프레도가 말을 멈춘다. 한참을 웃던 사내가 입을 연다.
“네 덕분에 나도 좋은 생각이 났어. 계속 애매했었거든. 세상을 구하는 자는 정확하게 누구인가? 그 혹은 그녀를 찾아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이 멸망하기 직전까지 지켜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동행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애초에 찾아내라 라는 명령은 너무 애매한 거 잖아. 애초에 그 리스트 후보가 100명을 넘고 있기도 하고 말이지.”
꿀꺽
알프레도는 사내의 말에서 무언가 이상함이 느꼈다.
“운명이라고 했잖아. 강력한 적과 싸운다고 했지 이겼다는 결론을 듣지도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사실 네가 그 세상을 구할 자라고 해도, 네가 오늘 이후 회개하거나 기연을 얻어 강해진다고 해도 더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
“그렇지!”
“하지만, 애초에 기연이 생긴다면 반병신을 만들어 놔도 적용되지 않겠어? 죽이지만 않으면 말이지. 아니 죽여도 될지도?.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나는 경우도 있잖아?”
“그건 종교 서적 이야기라고!.”
알프레도는 상대방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자신을 아주 불구로 만들 각이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었다. 결국 마지막 수단을 사용한다.
혀로 이 끝을 강하게 누른다.
툭
하는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신체가 변하기 시작한다.
묶여 있던 신체가 풀려나오며 다친 몸이 회복되다 못해 부풀어 오른다. 이내 건물을 부수며 5m에 이르는 거대한 가고일처럼 변해버렸다.
압도적인 위용이었지만 사내는 크게 신장하지 않아 보였다.
“네 부하들을 처리할 때 미리 변신 했으면 좀 어려웠을 것 같긴 한데. 너도 아쉽네. 혼자니까.”
“[대공]님에게 받은 이 힘으로 너를 뭉게주마!!”
괴물이 된 알프레도가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남자는 옆에 둔 자신의 가방을 발로 차 알프레도에게 보낸다.
“이 까짓!”
탈칵!
기계음과 함께 순간 수백개의 무기가 마치 꽃이 피듯 펼쳐지며 달려드는 알프레도를 막아선다.
알프레도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사내의 얼굴 앞에서 멈추어 선다. 수백의 칼날에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이내 회복하며 2타를 준비하는 알프레도 였다.
그 찰나의 순간, 사내가 단검을 알프레도의 머리에 가져다 댄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나, 그는 수 미터로 커진 알프레도의 머리위에 올라서 있었다.
“아웃이야.”
쾅!!!
그대로 머리가 터져 나간다.
“후우 이 지랄을 도대체 얼마나 해 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툭
짐을 정리하는 사이 팬던트향 시계가 떨어지며 열린다.
[다난] 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시 회수된다.
이미 거대화가 되면서 부숴진 건물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번 더 큰 폭발이 발생했다. 몰려온 이들이 발견한 것은 알프레드의 목이 날아간 시체와 고문당해 죽은 사람들 뿐이었다.
이렇게 만든 누군가는 발견할 수 없었다.
- 작가의말
기존 1화를 수정하였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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