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요새의 불청객과 낙제 성녀
학원 요새 칼텍
해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붉은 노을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성 전체가 불타는 것처럼 보였다.
한 남녀가 서로를 보고 있다. 일단 확실한 건 사랑의 눈빛은 아니었다. 경멸과 뻔뻔함.
그 두 감정이 정확히 반씩 섞여 있었다.
“그래서 졸업을 도와 달라?”
“네.”
이프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왜?”
“레인님이니까요.”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군. ”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다. 짧은 시간, 고속연산을 돌린다. 이프가 과거 내 손에 죽지 않은 용사 후보라는 건 중요했다. 하지만 돕는다고 해서 그녀가 용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물론 다른 확인 방법도 없다.
내가 한 발 떼려는 순간.
“레인님은 레인님이 아니시잖아요.”
순간 사고가 멈춘다.
고속연산이 다시 돌아간다.
눈치챈 건가?
질러본 건가?
짧게 본 이프의 눈은 단호했지만, 어딘가 미묘했다.
이럴 때는
우선 뻔뻔하게 나가보아야 했다.
“헛소리.”
“쳇.”
“알아서 잘 해결하는 게 학생의 도리야. 그리고 뻥을 칠 거면 그럴듯하게 쳐야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하지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쪽에서는 프로였다.
“이상하다. 검은 머리··· 날카로운 인상이 보였는데.”
멈추어 선다.
성녀가 가진 이능 중 하나
[진실의 눈]
넘겨짚은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일 수도 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
“도와주지.”
“진짜요?”
이프의 눈이 반짝인다. 방금 전 감정은 진짜였던 듯, 눈망울은 눈물로 번져 있었다.
"그래. 다만, 뭘 도와 줘야 하지? 알겠지만 공부를 시켜주고 그런건 어려워."
“참고로 대련도 힘들어, 보는 눈이 많으니까.”
나는 먼저 안 될 만한 것부터 잘라냈다.
“교수 암살도 어려워.”
“성적 위변조도 그렇고.”
“크큭. 그럴리가 없잖아요!”
뭔가 서러움이 복받쳤는지 이프가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는 곧이어 손으로 훔쳐낸다.
"저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에요! 어떤 것을 생각하시는 지는 알겠는데요. 큰 무언가를 원하지는 않아요. 그저 이번에 있을 특별 졸업 시험만 통과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건 애초에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 조건까지 있다구요!”
“도움을 받아도 된다라.”
“대단한 양심이죠?”
“뭐 그 정도라면 내 말만 잘 들으면 합격이지. 잘 들을 수 있나?”
우선 질러놓고 상황을 파악해 본다.
"물론이죠."
이프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며 방긋 웃는다. 감정적으로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이프의 손.
엄청나게 노력한 손이었다.
손바닥 전체가 까져 있었고 상처투성이였다.
고귀한 성녀의 손이라고 하기엔 너무 엉망이었다.
아마 죽어라 무구를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노력만으로는 마력도 신성력도 없는 인간은
결코 벽을 넘지 못한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일단 졸업 시험 설명을 좀 부탁해도 될까? 내가 친 시험은 '특별'이 붙진 않았거든."
이상했다. 도움을 받아도 되는 특별 시험?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맞아요. 저처럼 아슬아슬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방식이에요. 실전임무를 줘서 문제도 해결하면서 걸러내는 방법이죠. 저 같은 경우엔 칼텍 성 밖의 이상 현상의 조사 및 원인 제거에요."
"이상 현상?"
"최근 하층민 거주구역에서 실종자들이 대량으로 발생했어요. 대부분 몸의 일부만 발견되었거든요."
자료를 받고 확인해 본다.
문서 위변조 흔적 없음.
직인 정상.
문체도 정상.
그리고.
문서에서 짙게 나는 냄새.
대륙 남부, 성국의 향기. 지독하게도 성스럽고, 지독하게도 잔혹한 방식이 느껴졌다.
“냄새도 맡으시나요? 먹는 건 아닌데요.”
딱!
일단 쥐어 박는다.
다음은 사건 내용
발생지는 칼텍의 하층민 거주구역.
흉기는 일반적인 검에 의한 상처가 아닌 강렬한 무언가에 의해 찢어진 걸로 보이는 흔적.
남은 증거는 시신의 일부분.
인간이 벌인 일은 아니었다.
사건이야 조사하면 되겠지만,
이상했다.
학원요새 칼텍은 단일 성으로는 각국의 수도에 맞먹는 전투력을 가진 곳이었다. 일반적인 몬스터들이 들어올 만한 곳이 아니었다. 물론 하층민 구역이니 방어가 약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실력의 인물, 혹은 마족,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마족을 추종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추종자.
인간 주제에 마족 흉내 내는 놈들.
영혼을 팔고 힘을 빌려온다.
한마디로 매우 위험한 일.
그런 위험한 일을 맡긴 칼텍의 교수진의 결정도 이해가 어려웠다.
이프는 이능조차 깨우치지 못했고, 신성력 조차 전무한 성녀 후보생이니까 말이다. 사실상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제가 성녀의 이능을 각성하면 해결되요. 치외법권 같은거니까요."
"네가 몇 살이지?"
"16세인데요?"
"16년동안 안되는 일이 갑자기 해결 될 리가 없다."
"...그래도 혹시나 인생의 대박이."
"그런 게 있었으면 이미 터졌다."
"쳇."
나도 성녀의 이능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검은 교단 역시 거기서 떨어져 나온 분파니까 말이다
분명히
[진실의 눈]
[미래 예측]
[절대 치유]
[성역 결계]
일 것이었다. 하나하나가 모여서 성녀를 하나의 강력한 탱커로 만드는 장치였다. 과거 초기 성녀는 4개를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초기 성녀가 마왕과 소멸하면서 능력이 쪼개지며 지금은 1-2개만 가진다고 알고 있었다.
"성녀의 이능이 진실의 눈, 절대 치유, 성역 결계, 미래 예지도 포함되어 있었나?"
"미래예지 그 능력은 소실되어서 요즘엔 예측 이라고 하더라구요. 들리는 소문엔 다른 분파에서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댔는데 정확하진 않다고 하더라구요.”
뭐 아무래도 좋았다. 결국 선택할 만한 것은 1번. 죽으라는 방법뿐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무언가의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한다.
"이프 짐 챙겨라 바로 이동한다."
"지금요?"
"수도원 짐을 싸고 싶지 않다면 빨리 준비하는게 좋을거야."
"히익!"
애초에 문서에서 짙게 나던 성국의 냄새. 아마 이 모든 것은 성녀 후보로써의 시련일 가능성이 컸다. 잔혹하지만 죽어도 상관없다의 마인드이자 능력이 없다면 성녀 후보조차 미끼로 써서 악을 처리하겠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가혹하다는 것은 이 시험이 성녀의 이능을 깨울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었다.
아마 조력자의 목숨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시험이지만.
칼텍의 외곽 하층민 거주구역
전쟁이 끝난 뒤 흩어져 모인 이들
살육의 공포 속에서 자유민의 이상을 꿈꾸며 모여든 곳이었다.
모여든 이들 중 일부는 시간이 지나며 하층민 신분에서 벗어나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의지의 부족, 노력의 부족 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겠지만, 사실은 환경적 방치였다.
최고의 교육기관 옆임에도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치안도 좋지 않았다. 작금에 이르러서는 교육기관에서 할 수 없는 음지의 일을 하는 곳으로 굳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도 가장 높은 ‘최후의 희망’은 보였다.
역설적이었다.
"여기가 가장 최근 발생한 사건 현장이에요."
이프의 말 대로 아직 피냄새와 핏자국마져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이곳의 시체는 허벅다리 쪽이 3등분 난 채 방치되어 있었다고 되어 있었다.
벽에 남은 흔적을 확인한다. 무언가 찢어 발긴 자국, 하지만 일반적인 검의 힘이 아니었다. 마력을 쓴다고 해도 대퇴골을 3갈래로 가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뭔가 찾으셨나요?"
"글세 적이 나르시즘이 좀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들었고 말이지."
"나르시즘이요?"
"아무리 마력을 써도 일부러 허벅다리 쪽을 3등분 내는 건 어렵거든. 근데 자랑스럽게 걸려있었지."
"그렇죠."
"보통 그렇자면 2가지지. 나르시즘의 싸이코 패스던가. 마족관련 인원이던가."
"마족이요?"
이프가 놀라워 한다. 몬스터 정도로만 생각한듯, 마족이란 단어에 반응한다.
“맞아. 그리고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뼈가 뭔가 톱날 같은 걸로 찢어버린 느낌이잖아. 저건 뭔가 공간을 가르는 느낌으로 하되 미숙해서 공간을 찢는 느낌으로본다면.”
"설마 4재앙의 차원마검인가요?"
“차원마검이면 베어서 없앴겠지. 저건 미숙 그 자체라니까.
“네?”
차원마검과 싸원다는 이야기를 말할 뻔 하다가 참아낸다. 확실히 가까이서 보니 알 수 있었다. 공간베기의 힘이었다. 마족의 이능.
“그리고 전반적인 상황을 보아하니. 아직 근처에 있는 것 같군.”
공기가 얇아졌다.
마치 누군가가 공간을 손톱으로 긁는 느낌.
시야 끝이 찢어진 듯 흔들렸다.
“이프 엎드려!
말과 동시에 공간이 찢어지며 벽을 베어 버린다.
동시에 그 공간에서 인영이 튀어 나온다. 인영은 세 갈래 형태의 검을 낀 채 레인과 이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담담한 레인과 달리 이프는 사색으로 바뀐다.
"감히 차원마검님을 운운하다니."
"그쪽이었나."
아무래도 상대방은 차원마검의 추종자. 생각해보니 검은교단을 멸망시키고 칼텍을 멸망시킨다고 말하던 차원마검이었다. 역사에서 보다 뭔가 빠른 느낌은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차원마검은 레인과의 싸움으로 사라져 버린 상황. 그의 부하들은 행동을 취하거나 차원마검을 찾으러 갔거나 대기하거나의 액션을 취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대는 행동한 이로 보였다.
검은 교단 쪽으로 이동한 이도 있을 법했지만.. 그것은 그쪽의 마스터들이 막아줄 것이었다.
이프가 사색에 질려 뒤로 물러선다.
“마족이에요!!”
그리고는 도망치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었다.
이해는 되었다. 이프는 능력이 없다.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도망치는 것이 좋은 선택지일 것이었다.
“돌아오는 게 좋을 건데.”
나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미 멀어진 이프는 내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동료도 없어졌군.”
“동료는 아니니까. 좀 안타깝긴 한데 어쩔 수 없지.”
"그래도 바로 나와서 다행이야. 찾으러 다닐 뻔 했잖아.”
"내 실력을 봤다면 그렇게 여유 부릴 수 없을 텐데?"
말이 끝나자 사내의 검이 꿈틀거렸다.
휘두른다.
공간이 갈렸다.
나는 갈리는 영역을 피해 들어가며, 검을 마주치지 않고 상대를 베었다.
치이익!
가볍게 살갗을 베며 피가 튄다.
“마력을 써라! 나를 우습게 보는 거냐!!!”
“어.”
“뭐!!”
“실력에 자신이 있었으면 하층민 구역이 아니라 1급 시민 구역으로 왔겠지.”
나는 칼끝을 천천히 돌렸다.
“애초에 살인이나 하려고 온 주제에 실력을 운운하지 마.”
“차원마검님에게서 받은 이 힘으로 보여주겠다!”
“차원마검?”
나는 웃었다.
“뭐가 우습지?”
추종자가 소리친다.
타타탁!!
발소리가 커지며 이프가 돌아온다.
눈은 젖어 있었고, 겁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지팡이를 꽉 쥔 손에서는 의지가 느껴졌다. 무언가라도 보고 온 것일까?
“그저 놀라서 몸을 달구고 온 거 에요. 정말이에요!”
“걔는 이 세상엔 없거든.
입꼬리가 올라간다.
순간 뒤에서 또 한 번 공간이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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