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
좋아하는 게임이 하나 있다.
그 게임의 이름은 ‘더 라스트 쉘터’.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멸망한 세상 속 쉘터에서 살아남는 게임이다. 다른 생존자들과 경쟁하고 재앙 속에서 버텨나가는 게 목표였다.
워낙 취향에 맞는 게임이라 거의 8년 내내 이 게임을 손에 놓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슬슬 끝나가는 것 같다.
“⋯⋯아, 할 게 없네.”
게임을 플레이한 지도 꽤 됐다.
어지간한 컨셉 플레이도 다 해봤다.
워낙 게임을 오래 플레이했다 보니 기본적인 것들은 다 꿰뚫었다. 가장 높은 난이도인 슈퍼 울트라 하드 모드─ 줄여서 슈울하 난이도도 어렵지 않게 클리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다 보니 게임이 슬슬 큰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도 이 게임을 손에 놓지 못할 것 같아서 더 문제였다.
[게임을 클리어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회차도 마무리가 됐다.
이번에는 어떤 컨셉을 잡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다음 플레이 컨셉을 잡을 겸 새 게임 버튼을 눌렀을 때─ 눈을 의심케 만드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 리얼리티 난이도? 이건 또 뭐야.’
완전히 새로운 난이도가 나타났다.
설마 내가 신규 업데이트 내용을 놓친 걸까?
나온 지 꽤 된 게임에서 갑자기 업데이트됐단 것도 어이가 없다. 그러나 그런 당황스러움보단 뭔가 새로운 게 나왔다는 기쁨이 더 컸다.
‘현실 난이도라니까⋯⋯ 아마 슈울하 난이도처럼 플레이어 캐릭터가 죽으면 거기서 끝이겠지.’
설레는 감정과 함께 한번 새 컨텐츠를 맛볼 생각으로 캐릭터부터 만들었다. 첫 회차니 일단 뒤에서 지원 해주는 생산직으로 만든다.
한 번 죽으면 끝인 울트라 난이도 이상부턴 전투직이나 수색꾼은 위험이 크다.
반면 본부에 남은 생산직과 전문직은 위험요소도 적고 능력도 쓸모가 많은 편이다.
[잔여 포인트: 37630]
게임을 끝내면 주는 포인트도 남아돈다.
최근에는 일부러 안 쓰고 모아놓았으니까.
────────
[재능 구매]
제작 (LV.4) - 3000point
약학 (LV.4) - 2500point
생태 지식(LV.4) - 2500point
금속 가공(LV.4) - 2500point
⋯⋯
────────
“⋯⋯좋아. 일단 제작 쪽은 필수고 의학 관련도 넣으면 좋겠고.”
하나하나 넣다 보니 귀찮아 보조 관련 특성은 거의 다 넣었다. 일단 넣어놓고 난이도부터 감을 잡은 뒤에 알아서 자체 조정해보자.
이런저런 재능을 구매하나 거의 30000point가 소비됐다. 남은 7000point가량은 일단 게임을 한 뒤에 어디다 쓸지 고민해봐야겠다.
대충 캐릭터 생성은 마치자─
갑자기 낯선 알림이 나타났다
[게임 속에서 가장 없었으면 하는 캐릭터는 누구셨나요?]
그 알림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놀리려고 넣은 문구인가 싶다.
‘없애고 싶은 캐릭터? 그걸 몰라서 물어보냐?’
가장 쓰레기 같은 등장인물.
아마 유저들이 떠올릴 인물은 단 하나다.
‘프랑, 그 빌어먹을 새끼.’
아버지가 쉘터의 마스터라는 인맥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 일을 시키는 것도 막혀있고 생산적인 도움은 줄 수도 없는 인력이었다.
그냥 제작자가 대놓고 만든 혐오 캐릭터.
난이도 높은 걸 선호해도 좋아할 수 없었다.
자원 좀 빼먹는 건 참아도 보상 없는 강제 퀘스트는 못 참는다. 순정을 선호해서 설치는 안 했지만, 괜히 프랑만 없애는 모드가 나오는 게 아니지.
당연히 나도 프랑이라 적은 뒤에 넘어갔다.
그러면 이번 회차에서 프랑을 없애주는 걸까?
뭐가 됐든 게임을 해봐야 알겠지.
“좋아. 이 정도면 됐겠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상태다.
당장 엔터 버튼으로 손을 옮겼다.
-딸칵.
그렇게 엔터를 누르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
귀찮다. 너무나도 귀찮다.
숨을 쉬는 것조차 귀찮을 지경이다.
그러나 무거운 혀와 입술을 어떻게든 움직여서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상태창.”
본능적으로 외친 한 마디.
그리고 푸른 창이 눈앞에 나타난다.
푸른 창에 쓰여 있는 수많은 글자 중에서 딱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 글자들을 하나하나 읽지 않아도 된다는 게 지금은 천운이었다.
[게으름(LV. 5)]
게임 ‘더 라스트 쉘터’에서 특성이 5레벨이면 거의 신화적인 수준이다. 캐릭터 생성 단계에선 5레벨을 달성하지도 못하게 할 정도였다.
문제는 저게 디버프나 마찬가지인 마이너스 특성이란 거다.
이를 악물고 거의 손가락을 끌다시피 해서 어떻게든 상태창을 눌렀다.
[추가 포인트를 사용해서 특성 ‘게으름’을 완화하시겠습니까?]
[‘게으름(LV.5)’가 7000포인트를 사용하여 ‘게으름(LV.1)’로 완화되었습니다.]
가진 포인트 거의 전부를 사용해서 완화한다.
어마어마한 양의 포인트가 전부 소진되었다.
그러나 그 포인트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몸이, 몸이 움직여진다.’
어기적어기적.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밥을 먹는다.
귀찮음이 없어지자마자 허기에 대한 욕망이 더 강해졌고, 주어진 밥을 전부 씹어먹은 후에 같이 온 물을 마시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푸우, 하아아아⋯⋯.”
그제야 정신이 좀 든다.
사람이 된 것 같다 해야 할까.
주변을 둘러보니 방은 어둡고 돼지우리가 따로 없는 공간이다. 유일한 빛은 깨진 모니터에서 나오는 푸른 불빛이 전부였다.
“⋯⋯제기랄. 이게 무슨 일이야?”
귀찮음이 완화돼서 그런지 몸이 조금씩 뜻대로 움직여진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니 몇 번 점등되던 불이 완전히 켜졌다.
환하니까 더 가관이네⋯⋯.
이게 정말 사람이 사는 방이라고?
쓰레기들로 가득한 엉망진창인 방은 일단 뒤로하고, 깨진 전신 거울로 다가가니 처음 보는 사람이 나 대신 서 있었다.
덥수룩한 머리에 비쩍 마른 몸.
해진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상태창.”
말하기가 무섭게 푸른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
이름 : 프랑
나이 : 23
성별 : 남
[스탯]
체력(HP): 6 / 6 스태미나(SP): 10 /10
힘(STR): 2 민첩(AGI): 3
지능(INT): 13 의지(WILL): 1
[특성]
게으름(LV.1), 히키코모리(LV.5), 대인기피증(LV.5)
[재능]
의학 지식(LV.4), 요리(LV.4), 분석(LV.4), 손재주(LV.4), 프로그래밍(LV.4), 기계 이해(LV.4), 기억력(LV.4), 언어 감각(LV.4), 금속 가공(LV.4), 생태 지식(LV.4), 약학 (LV.4), 제작 (LV.4)
[상태]
영양 결핍 : 체력 회복 속도 -50%
불면증 : 휴식 효율 -70%
사회적 고립 : 협력형 퀘스트 불가
감정 둔화 : 공포 내성 +20%, 감정 표현 -80%
────────
하나하나 극단적인 상태창.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이름이었다.
아까 전의 게으름에서부터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확실하게 실감이 되는 것 같았다.
[더 라스트 쉘터] 속에 들어왔다.
심지어 프랑이라는 최악의 캐릭터가 됐다.
게임 안에 들어왔다는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머리를 굴렸다. 세계관과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일까?
단언하겠는데 그건 지금 내가 프랑이라는 사실이었다.
‘프랑, 쉘터 마스터의 외동아들. 그러나 언젠가 쉘터 마스터가 죽게 되면 그 유일한 인맥도 사라지게 된다.’
대부분의 세션에선 주인공이 마스터가 되고 다른 이가 된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프랑이란 캐릭터는 가지고 있는 게 손해니까.
수많은 시간을 플레이했지만 나 역시도 거의 모든 회차에서 프랑을 갖다버렸다.
지금은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서 대우가 달라질 것 같진 않았다.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는 무쓸모 역시도 죄가 되는 법이지.’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혹시 몰라 보조 관련 특성은 전부 다 찍어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니, 게으름을 완화할 포인트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단순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상황이지 않을 수 없었다.
‘중요한 건 일단 상황 파악이야.’
게임과 시스템이 비슷하다면 분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일단 현재 시점을 파악하고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문을 열었을 때─
─폐가 조여지는 듯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커헉! 케흑⋯⋯ 꺼억⋯⋯.”
바깥 공기가 나를 짓누른다.
숨이 막히고 몸에는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히키코모리! 또 다른 마이너스 특성!’
지금 상황에서 이유라면 그것밖에 없다!
황급히 문을 닫고 숨을 거칠게 골랐다.
“허억! 우웩⋯⋯ 우욱⋯⋯.”
몇 번이고 헛구역질을 한 이후에 흘러나오는 침을 닦는다. 시간이 흘러도 충격의 여파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다.
‘⋯⋯미친, 이 정도였다고? 단 한순간을 나가는 것도 힘들단 말이야?’
그러고 보면 게으름 특성 때도 마찬가지였지.
정신력 같은 것으로 극복할 수준이 아니었다.
히키코모리가 이런 식이라면 대인공포증은 어떨지 감이 안 온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만 느껴도 숨이 막힐 정도이지 않을까?
이런 식이라면 보조 능력이고 뭐고 내 능력을 어필할 수가 없다. 방을 나가는 것도 무리인데 도대체 뭘 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런 내 마음에 게임 시스템은 관심이 없는지 갑작스럽게 알림이 떠올랐다.
[Quest: ‘양호’ 등급 이상의 무기를 만드세요!]’
[퀘스트 조건: 양호 등급 이상의 무기 (0/1)]
[보상: 100point]
보상이고 뭐고 기쁨보다 화가 느껴진다.
지금 내 상황에서 그런 게 가능할 것 같나?
“퀘스트는 지랄⋯⋯.”
이 빌어먹을 방에서도 못 나가는데 뭔가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제작이 4레벨이어도 재료가 있어야 뭔가를 만들기나 할 텐데!
‘제기랄! 하필이면 지금 나는 프랑⋯⋯ 잠깐만, 프랑이라고?’
그 순간 머리가 번뜩인다.
지금 나는 주인공이 아닌 프랑이었다.
프랑의 가장 거지 같은 요소는 자원을 뽑아먹고 일을 못 시키는 게 아니다. 가장 거지 같은 점은 강제 퀘스트를 시킨다는 거지!
만약, 만약에 그 빌어먹을 시스템이 현실에서도 적용된다면?
‘⋯⋯게임에서 강제 퀘스트를 시키는 방법은─’
다 먹은 쟁반과 쓰레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펜과 남는 종이를 집어 들었다.
*****
세계가 거의 멸망하고 사람들은 쉘터에 모여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각자 여러 방면의 사람들이 일하며 어떻게든 쉘터를 유지했다.
그러나─ 유독 열리지 않는 방이 하나 있다.
그 홀로 떨어진 방에서부터 한 남성이 짜증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왔다. 한 손에는 쟁반이 들려있고 한 손에는 쓰레기가 들려있었다.
“씨발,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번 쓰레기가 좀 많냐?”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죠! 이 미친 새끼가 또 종이를 써 보냈다니까요!”
그 목소리에 쉘터 내부 사람들이 표정을 찡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있던 적이 아니라 더 곤란하고 짜증이 났다.
“⋯⋯이번에는 어떤 물건인데? 나한테도 보여 줘봐. 고철 덩어리? 본드에 강력 테이프에─ 별의별 물건을 다 적어놨네? 이 새끼가 미쳤나?”
“그래도 흔한 물건이긴 해서 다행이네요.”
“흔해도 지랄이지! 하는 거라고 밥 처먹는 것밖에 없는 새끼인데!”
쉘터에서 자기 역할을 못 하면서 요구가 많은 사람이 좋을 리가 없다.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프랑은 당장 내쫓겨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자식은 개새끼여도 아버지가 호랑이인 게 현실이니, 이런 어이없는 요구도 양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 와중 주황색 머리에 희미한 주근깨가 있는 소녀가 손에 들린 종이를 훔쳐봤다.
“⋯⋯진짜 그게 다예요?”
“그게 다라니? 요구하는 물건 종류만 세도 양손을 다 써야 하는데.”
“아니, 평소에 구해달라는 물건들은 게임이나 만화책 같은 거였잖아요? 하다못해 이상한 장난감이었는데⋯⋯. 이건 마치─”
그녀는 장난스럽게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험악해진 쉘터의 분위기를 풀려는 태도였다.
“⋯⋯무슨 요리할 재료를 장 보고 오라는 것 같지 않아요?”
그 말이 가장 정답에 가깝다는 걸─
말하는 본인도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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