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편의점 운영을 끝내고, 밤이 찾아왔다.
“후우, 끝났다.”
수한은 카운터에 털썩 주저앉았다.
텅 비었던 매장은 어느새 오픈하기 전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상품이 빈틈없이 꽉꽉 들어찬 진열대.
먼지 한 톨 없이 반짝거리는 바닥.
진열장을 넘어서 매대 옆에 쌓아둔 담배.
게다가 창고엔 언제든 진열 가능한 물건이 가득 채워져 있다.
다 수한이 혼자서 정리한 것이다.
그가 편의점에서 일한 것 중에 가장 힘들었다.
완전히 비어버린 진열대를 처음부터 다시 채우는 건 물론.
창고 정리에 담배, 음료 냉장고 채우기 등등.
몇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하니, 일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골드를 많이 번 건 좋은데, 이런 건 힘드네.’
시스템에 자동 정리 기능은 없었다.
아직 해금이 안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쉬운 일이었다.
그래도 이건 그에게 기회였다.
그가 힘든 만큼 벌어들이는 골드는 많을 테니 말이다.
“여기서 뭘 추가하면 좋을까.”
수한은 고민했다.
오늘 그가 벌어들인 순수익은 꽤 많았다.
하지만 그건 홍보의 영향 중 하나일 뿐.
지속적인 수익을 내기 위해선 무언가 다른 게 필요하다.
그래서 수한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단골이다.
단골은 매출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주변에 소문도 더해준다.
괴물이 출현하며 사람까지 무서운 세상이 됐다.
그럼에도 생존자들끼리 교류는 있는 법.
그중에는 홍보를 의심하고 오지 않은 자들도 꽤 있을 터다.
수한이 노리는 건 그들이다.
문제는 단골을 확보하는 건 꽤 어려운 문제라는 거다.
그때 수한의 시선에 몇 가지 목록이 걸렸다.
〈시설목록〉
―오븐 (100G)
―보온 진열대 (20G)
―호빵기계 (30G)
지난번에는 그냥 있는가 보다, 싶어서 넘겼던 품목들.
‘설마?’
수한은 서둘러 발주로 들어가 목록을 뒤졌다.
〈발주 목록〉
―꿀고구마 1kg (10G)
―팥 호빵 (1G)
―야채 호빵 (1G)
―냉동 피자 (6G)
“···있다.”
그는 확신했다.
이거라면 충분히 기존 고객들을 잡을 수 있다고.
* *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편의점 밖에서는 한 남자가 꼭두새벽부터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제 가장 먼저 편의점에 와서 컵라면을 먹고 간 손님이었다.
‘먼저 배를 채우지 말고, 필요한 물건부터 샀어야 했는데.’
그는 어제를 회상하며 내심 후회 중이었다.
손님이 갑자기 몰려 원하는 물건이 금세 동났다.
뒤늦게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대부분의 물건이 쓸려서 텅 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전 8시에 오픈한다고 했으니, 슬슬 문을 열겠지.’
남자는 오늘을 위해 근처에서 노숙했다.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필요한 걸 잔뜩 쓸어 담을 생각이었다.
바깥이라 좀 춥긴 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안전했다.
[현재 ‘소음차단’ 기능이 활성화된 지역입니다.]
[편의점을 기준으로 50m 내에서 발생한 소음은 괴물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곳, 편의점 근처에선 소음이 차단된다.
사람들이 어떠한 소리를 내도 괴물에겐 들리지 않았다.
즉, 접촉만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이것도 점주의 능력인가?’
남자도 각성을 하긴 했다.
다만 능력이 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수한의 능력이 부러웠다.
편의점이라는 안락한 건물에 안전까지 보장되어있으니.
‘부럽다, 부러워.’
인생은 운빨이라더니.
아포칼립스 세상에서도 그건 진리인 듯했다.
그래도 남자는 수한에게 감사했다.
이런 능력을 각성했으니 컵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달칵.
그때, 편의점 문이 열렸다.
시계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 8시가 된 모양이다.
그 소리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문가로 모였다.
남자처럼 하룻밤 노숙한 자들이었다.
‘어림도 없지. 내가 먼저 들어갈 거야.’
끼이익.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응?”
“이게 무슨 냄새지?”
매장 안에서 달큰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낯설지 않은, 어딘가 익숙한 향.
카운터로 시선을 돌린 남자는 그제야 냄새의 정체를 깨달았다.
‘군고구마다!’
거기에 호빵까지 있었다.
남자의 눈이 돌아갔다.
세상이 망한 뒤에 저런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나, 나 먼저!”
“앗! 뭐야!”
“순서 지키세요!”
냄새에 홀린 손님들이 거의 동시에 카운터로 달려들었다.
그건 남자도 포함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냉동 피자 – 15G」
「주문 시, 오븐에 구워드리며 15분 후에 나옵니다.」
“···!”
카운터에 어제는 없던 가격표가 걸려있었다.
“혹시 피자도 주문되나요?”
손님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러자 수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대신 15분 정도 걸리세요.”
“······!!”
그 말 한마디에 매장이 다시 술렁거렸다.
다시는 먹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음식들.
냉동이어도 상관없었다.
“저, 저 냉동 피자 하나랑 군고구마 3개요!”
“저도요, 저도!”
순식간에 아까보다 세 배는 시끄러워진 매장.
남자 역시 질세라 크게 외쳤다.
“냉동 피자 하나에 군고구마 주세요!”
편의점 2일 차 영업도 성공적으로 순항 되었다.
* * *
띵!
수한은 오븐 소리를 듣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장갑을 끼고 오븐을 열자 안에서 잘 익은 군고구마가 나왔다.
덤으로 피자까지.
“주문하신 피자랑 군고구마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님이 피자와 군고구마를 받아들며 환하게 웃었다.
수한은 카운터 옆에 설치해둔 보온기를 열었다.
착, 착, 착.
그 안에 집게로 든 군고구마를 차례대로 정렬.
다시 고구마를 트레이에 펼쳐 오븐에 넣은 뒤, 호빵을 채워 넣는다.
“혹시 호빵···.”
“아, 조금 기다리셔야 해요. 아직 데워지질 않아서.”
“그냥 주시면 안 돼요?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어도 되는데.”
“저는 군고구마 하나만 더 주세요!”
“지금도 피자 주문되나요?”
미친 듯이 몰려오는 주문들.
수한은 하나씩 차분히 응대하며 진땀을 흘렸다.
‘미치겠네.’
생각보다 훨씬 바쁘다.
그가 역 근처의 편의점에서 일했을 때보다 더 할 일이 많았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군고구마는 굽자마자 재고가 거의 나가고, 피자는 계속 주문이 들어왔다.
거기에 수시로 물건을 대량으로 구매해서 계산하는 건 물론.
빠진 재고를 틈틈이 채워 넣어야 했다.
‘그래도 어떻게 쳐낼 수는 있는 수준이야.’
수한이 처음으로 일을 배운 점장님은 매우 꼼꼼한 성격이었다.
정리 정돈에 진열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수한의 일 능률도 올라갔다.
수한은 그 당시를 떠올렸다.
오븐에 군고구마와 냉동 피자를 굽고 팔았던 일.
심지어는 냉동 빵 생지까지 구워서 포장까지 했다.
‘그때는 정말로 하기 싫었는데, 내가 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이걸 왜 하는지 알겠어.’
원래 편의점 장사는 손님도 손님이지만, 단골도 중요한 법.
그걸 위해선 특별한 무언가가 더 있어야 한다.
그중 가장 좋은 건, 이런 시즌제 먹거리다.
특히 겨울. 호빵과 군고구마는 냄새로 손님을 홀린다.
이걸 사러 오는 손님도 생기고, 미끼로 다른 물품도 사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하게도 수한은 더 귀찮아지긴 하지만.
“뭐야, 피자를 파네?”
“미친. 대박이다. 군고구마야!”
매출이 상당히 좋았다.
군고구마 1개에 5골드.
냉동 피자는 오븐에 구워서 주는 대신, 1판에 15골드다.
원가를 생각하면 가히 파격적인 이득이었다.
결국 어마어마한 인기에 고구마와 피자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오전이 지나기도 전에 완판됐다.
[현재 보유 금액 : 1,717G]
불과 하루 사이에 소지금이 뻥튀기됐다.
아직 물건 재고가 남아있는데도 말이다.
“피자랑 군고구마···.”
“오늘 준비한 재고가 끝나서요. 내일 오전에 찾아오시면 드실 수 있습니다!”
“아··· 아쉽네요.”
거기에 더해, 손님들에 대한 영업까지.
수한의 원래 목적인 단골 만들기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편의점 재고가 바닥나 영업 종료를 내린 이후.
[현재 보유 금액 : 2,017G]
최종적으로 찍힌 금액은 자그마치 2천 골드.
시설과 재료에 투자한 금액을 메꾸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 * *
수한은 카운터에 앉아 금액을 바라봤다.
4천 골드. 불과 이틀 만에 첫 자금을 두 배로 불렸다.
“몸을 갈아 넣은 보람이 있네.”
솔직히 수한은 오전까지는 조금 후회했다.
군고구마 세팅하랴, 피자 꺼내서 포장하랴.
무슨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결과가 좋으니 앞으로 쭉 할 생각이었다.
띠링!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업적 : 이 지역의 편의점 핫플레이스!]
[달성조건 : 보유 금액이 지원금의 두 배로 증가.]
[업적 달성 보상이 지급됩니다.]
[체력이 3포인트 상승합니다.]
[시스템에 ‘자동 진열’ 기능이 추가됩니다.]
[제품이 판매될 시, 설정해둔 상품이 창고에서 자동으로 진열됩니다.]
“오.”
마침 업적 달성과 함께 새로운 기능이 해금됐다.
“안 그래도 진열까진 하기 힘들어서 고민이었는데, 좋은걸.”
즉, 창고에 물건만 쌓아두면 알아서 진열된다는 거였다.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란 수한에게는 매우 훌륭한 보상.
실제로 그가 시스템에 들어가서 진열대과 채울 물건을 선택하자.
투두두두둑!
1초 만에 텅 빈 진열대에 물건이 소환되며 정렬됐다.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하게 시간이 단축됐다.
거기에 체력 스탯의 증가로 몸에서 반응이 왔다.
스와아악.
기절할 것처럼 피곤했던 수한의 몸에 활력이 감돈다.
눈은 번쩍 뜨이고, 쇠했던 기력이 차올랐다.
카페인을 섭취했을 때와는 다르다.
몸이 더 건강하고 활기가 넘치는 듯한 쾌적함.
“대단한데.”
고작 체력이 3포인트 오른 것만으로 효과가 극적이다.
수한은 남은 포인트를 체력에 다 투자할까 했다가 참았다.
‘다른 포인트는 아껴두자.’
그가 가지고 있는 스탯 분배 포인트는 5다.
자유롭게 스탯을 올릴 수 있는 만큼, 나중을 위해 아낄 심산이었다.
어쨌든.
“이거면 더 많은 물건을 창고에 넣어놔도 되겠어.”
그동안 바빠서 근무 도중에는 발주도 못 했는데.
자동 진열로 인해 수한의 시간 관리가 더 편해졌다.
* * *
한편, 수한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들른 생존자들은 알음알음 소문을 퍼뜨렸다.
“···그 광고가 진짜였다고?”
“그렇다니까.”
가족 단위로 생존하는 사람들은 물론.
“피자랑 군고구마도 팔고 있다고요?”
“네. 여기 가져왔는데 좀 먹어보시죠.”
“와아, 대박···!”
서로 살기 위해서 뭉친 생존자 집단 등.
광고를 의심해 가지 않은 자들에게 진실이 퍼져나갔다.
“거기가 어디라고요?”
“전에 저장해둔 약도가 시스템에 아직 있는데···.”
“혹시 공유 좀 해주실 수 있나요? 한번 가보고 싶어서. 엇?”
“다시 광고가 떴다!”
“상비약도 있는 것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이 가서 다 사가기 전에 저희가 좀 구매해두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이런 반응은 아니었다.
“그냥 약탈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거기 주인을 죽이거나 협박해서 공짜로 뱉어내게 하면 그만인걸.”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집단에서 주된 의견이 되진 못했다.
“아뇨, 그건 안 하는 게 좋겠어요. 굳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필요는 없잖아요?”
“혹시 주인이 죽었다가 편의점이 그대로 증발해버리면 어떡하려고?”
“지금도 그냥 거래만 하면 물건을 가져갈 수 있는데, 그래야 하나?”
“편의점 사라지면 군고구마랑 냉동 피자도 못 먹잖아요. 너희가 구워줄 겁니까?”
“그런 사람들도 있었는데, 점주가 추방해서 다시는 편의점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어요. 좋은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
편의점을 다녀와 호의를 가진 이들의 질타.
그것들이 섞이며 어느새 수한의 입지는 뚜렷해지고 있었다.
- 작가의말
*스탯 분배 포인트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 수정하였습니다.
3포인트 -> 5포인트
꼼꼼히 확인했어야 하는데,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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