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이제 속이 시원하냐?"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아니꼽다는 듯 남자를 노려봤다.
"나쁜 자식.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은혜를 이딴 식으로 갚아?"
차우진.
그는 어제까지 건축사사무소에서 일하던 설계 팀 직원이었다.
"그동안 독립투사라도 된 것 같아서 어깨에 힘 좀 들어갔겠어? 응?"
우진은 내부고발자였다.
"세상은 네 생각처럼 안 돌아가. 그 알량한 정의감으로 뭐가 바뀔 거 같아?"
철근 빼돌리기.
콘크리트 배합 비율 조작.
감리 팀을 따라 공사현장을 방문한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넌 앞으로 이쪽으론 얼씬도 못 할 거다. 그렇게 여기저기 들쑤셔놨으니 당연하지."
연루된 건설사.
눈감아준 감리 팀.
신도시 사업을 추진한 국회의원과 시의원, 승인을 내준 시장 얼굴에도 똥칠을 한 셈이었다.
"설계면 설계 일만 할 것이지. 왜 오지랖이야 오지랖은?"
"할 말은 다 하셨습니까?"
차분한 목소리에 순간 말문이 막힌 소장은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길 잠시.
그대로 돌아서서 나가려던 우진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떠날 사람이 이러니저러니 해도 귀에 안 들어올 것 같아 참았는데, 저도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옛정을 생각해서."
"뭐? 옛정?"
소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 말해봐."
"인생 그렇게 살지 마세요."
우진은 다시 소장과 마주 봤다.
"횡령을 하든 배임을 하든 떡값을 돌리든, 상관 안 합니다. 알아서 하세요. 그래도 사람 목숨 걸린 일로 장난질하면 안 되잖습니까?"
"야! 차우진!"
"실례하겠습니다."
소장실을 나왔다.
책상 위엔 소지품이 담긴 박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직원들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우진은 박스를 들고 사무소 빌딩을 뒤로했다.
"하아."
밖으로 나오자 참았던 한숨이 새어 나왔다.
후회하진 않았다.
하지만 더 좋은 해결 방법은 없었을까?
그런 생각은 지금도 들었다.
한직 발령. 업무 미지정. 퇴사 압박.
전형적인 내부고발자의 말로다.
더 버티려면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수록 피폐해지는 건 이쪽이다.
반면 상대는 로펌에 떠넘기면 그만이었다.
'결국 계란으로 바위를 쳐봤자 깨지는 건 계란이란 거지.'
애초에 사회정의 구현이라든지 그런 거창한 목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양심과 보신 사이에서 고민도 했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일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탓에 더 이상 자재를 빼돌리긴 힘들 테니.
그 대가로 잘려나간 게 자신의 밥줄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
한 시간 뒤.
우진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하하! 나 잡아봐라!"
"같이 가아!"
놀이기구 주변엔 꼬마아이들이 있었다.
신나서 뛰어노는 모습을 우진은 멍하니 바라봤다.
"평화롭다."
건축학과 5년.
학점 올 A이상.
나름 잘나간다는 건축사사무소에 취직해서 6년.
아등바등하며 정신 없이 달려왔다.
하지만 멈춰 서서 본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내가 1등!"
"야아아, 치사하게!"
"이쪽 이쪽!"
혼자만 남겨진 기분.
같은 공간에 있는데도 거기에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청춘이네."
길가로 눈길을 돌리자 교복을 입은 남녀가 지나가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을 흔들며 웃는 게 커플 같았다.
정작 저 나이에는 몰랐지만 꿈도 희망도 넘쳐나는 시기였다.
무엇보다 저 학생들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미래가 있었다.
'열다섯...열 걸음쯤?'
우진이 앉은 벤치에서 학생 커플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였다.
고작 열 걸음.
그게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하아아."
오늘은 유독 햇살이 눈부셨다.
우진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저기요. 선생님?"
누가 말을 걸어왔다.
고개를 들어 확인하자 경찰이었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확인차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경찰관 뒤에는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성들이 이쪽을 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분이 대낮부터 여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그러게요. 제가 뭐 하는 걸까요."
남들은 다 출근해서 일할 시간이다.
백수라도 굳이 정장을 입고 놀이터에 앉아 있진 않았을 거다.
"선생님, 농담하지 마시고요. 아이들을 계속 쳐다보는 남자가 있다고 해서요."
"예? 혹시 저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경찰관.
짧은 정적과 함께 우진은 그제서야 사태파악을 했다.
"아, 아뇨. 아닙니다 그런 거.”
지금 우진은 아이들을 노리는 유괴범, 아니면 변태로 의심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데 혼자 계시면 오해 사니까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선생님."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는 우진에게 경찰관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뭐 하고 계셨던 겁니까? 옆에 박스는요?"
"...오늘 회사에서 짤려서요."
"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서 이러고 있었습니다."
경찰관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친다.
우진은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전 어디로 가면 될까요 경찰관님?"
"그, 글쎄요...일단 집으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집이라.
맞는 말이었다.
"하긴, 가긴 가야겠네요. 방 빼야 돼서요."
회사와 가까워 들어간 원룸이었지만 계속 있기엔 월세가 부담스러웠다.
주말까진 비워주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저기, 기운 내시고요. 파이팅 하십쇼."
어깨를 떨구는 우진의 모습이 안돼 보였던 걸까.
경찰관은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 우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뭐야."
놀이터.
하늘은 어느새 노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잔 거야?'
평소라면 밖에서 잠들 만큼 신경이 굵지 못한 우진이었다.
다만 될 대로 되라는 심정 탓인지.
아니면 그동안의 심로 때문인지는 몰라도 깜빡 벤치에서 잠든 것 같았다.
'내가 뭐 하는 건지.'
이마에 손을 짚던 때였다.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진 시선이 사람을 발견했다.
"뭐, 뭐야 당신!?"
웬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우진의 가랑이 사이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아, 깼다."
여고생은 정확히는 벤치 아래쪽 공간을 들여다보던 중이었다.
우진이 내지른 소리 때문일까.
벤치 밑에서 고양이 세 마리가 튀어나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네. 어디 간 거야 진짜."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설명 좀 해주시죠."
방금 구도는 정말 경찰관이 와서 잡아가도 변명하기 곤란한 구도였다.
"나비, 고양이 찾고 있어서요."
"고양이?"
"이렇게 생겼는데, 본 적 있어요?"
"...못 봤습니다."
여고생이 폰으로 보여준 삼색냥이 사진에 우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우는 고양이예요?"
"네. 원랜 길고양이인데, 데려다 보호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밖으로 나가버려서요."
아무래도 이 여고생은 잃어버린 반려묘를 찾느라 방금 전 기행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자다 깨서 처음 눈에 들어온 비주얼치고는 충격과 공포였다.
"아저씨, 시간 되세요?"
"예?"
"괜찮으면 고양이 찾는 거 도와주면 안 돼요? 원래 이 근처에서 지내던 고양이거든요."
지금 얘는 뭐라고 하는 거지?
우진은 내심 어이없어하며 여고생을 쳐다봤다.
"싫습니다."
"에이 왜요? 아저씨 계속 여기서 졸고 있었잖아요."
"...봤습니까?"
"네. 아까부터요."
왠지 쪽팔렸다.
"낮부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면 딱히 할 일도 없는 거 같은데."
여고생은 정장 차림의 우진을 위아래로 훑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니면 회사에서 짤렸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집엔 출근한 척하고 밖에서 시간 때우는."
우진은 아무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설마, 진짜예요? 우와 미안해요. 그냥 해본 말인데."
민망해하던 여고생은 손가락을 튕겼다.
"찾는 거 도와주면 나도 아저씨 필요한 거 있으면 도와줄게요. 기브 앤 테이크, 어때요?"
"제가 그쪽한테 도움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고딩이 우진의 일자리를 알선해줄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늦었으니까 학생도 너무 늦기 전에 돌아가세요."
이미 주변은 꽤 어둑해져 있었다.
우진은 옆에 뒀던 박스를 무릎 위에 올렸다.
탈칵.
하지만 아직 잠이 덜 깬 걸까?
중심을 못 잡고 기울어진 박스에서 카드 케이스가 밖으로 굴러 떨어졌다.
"여기요."
그걸 여고생이 주워서 건네줬다.
"고맙습니다."
"뭐예요 그거? 타로 카드?"
"예."
"아저씨, 타로점 볼 줄 알아요?"
"방법은 압니다."
예전에 여자친구가 타로점을 좋아해서 사둔 덱이었다.
보여주기도 전에 여자친구와는 헤어졌지만.
"그럼 나비 어딨는지 점 봐줄 수 있어요?"
"...죄송한데, 다른 데 가주면 안 됩니까? 혼자 있고 싶어서요."
"에이 한 번만 봐줘요. 그럼 갈게요."
뭔데 초면의 남자한테 이렇게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지.
친화력 갑인지는 몰라도 부담스러웠다.
"알겠습니다. 대신 결과랑 상관없이 가주는 겁니다."
"네!"
얼른 쫓아낼 요량으로 우진은 여고생의 제안을 승낙했다.
"제가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이런 점 같은 거 믿어요 학생은?"
"아뇨. 전혀."
"그럼 왜요?"
케이스에서 타로 카드를 꺼냈다.
얼마 쓰지도 않은 카드는 신품이나 다름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찾으러 다녔거든요. 점심 때 학교 째고 나왔는데...그런 말도 있잖아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차라리 지푸라기가 나을 것 같습니다만."
쌩초보나 다름없는 우진의 타로점보다는 지푸라기 쪽이 믿음직스러웠다.
"알고 싶은 게 고양이가 어디 있는지죠?"
"네."
우진은 카드를 셔플하며 질문했다.
하지만 셔플이 미숙한 탓에 카드 한 장이 벤치에 떨어졌다.
"떨어졌어요."
"그걸로 하죠."
"이걸로요?"
"예. 그게 점괘입니다."
여고생이 피식하고 뿜었다.
"그런 게 어딨어요? 이거 방금 우연히 떨어진 거잖아요."
"이렇게도 합니다. 아마도."
원 카드 스프레드.
가장 간단한 타로점으로, 한 장의 카드만으로 점을 보는 방법이었다.
"무슨 카드예요?"
"은둔자 카드네요."
"아, 이거 본 적 있어요 나도."
떨어진 카드는 [IX:The Hermit].
메이저 아르카나 9번.
은둔자였다.
"무슨 뜻이에요?"
"잠시만요. 지금 기억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위치는 정방향.
사려 깊음이나 성찰, 고독과 은둔의 의미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해석법은 카드를 읽는 사람, 리더의 재량이다.
우진은 의식의 흐름대로 읊었다.
"고양이는 9시 방향에 숨어 있을 겁니다."
"9시 방향?"
"그러니까 저쪽입니다."
카드는 9번.
9시 방향.
우진은 왼쪽을 가리켰다.
"정말요? 뭔가 엉터리 같은데."
"점은 봐드렸으니까 그만 가보세요."
"...네."
쉿쉿하며 손을 젓는 우진의 모습에 여고생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인지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
하지만 금방 돌아서서 말했다.
"찾으면 나중에 사례할게요!"
멀어지는 여고생을 바라보며 우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례? 어떻게 할 건데?"
전번은커녕 이름도 모르는데.
정황상 근처에 사는 것 같았지만 우진은 주말이면 이사 갈 예정이었다.
"하, 진짜 내가 뭐 하는 건지 모르겠네."
가로등이 켜진 놀이터는 한산했다.
뛰어놀던 아이들도 진작 집으로 돌아가고 없었다.
"가서 짐이나 챙기자."
여기서 더 죽치고 있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우진이 벤치에서 몸을 일으키던 그때.
"아저씨!"
"...학생?"
조금 전 여고생이 다시 돌아왔다.
"아저씨, 찾았어요!"
그녀의 품에는 삼색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 작가의말
등장하는 인물, 지명, 사건, 제품 및 단체는 실제와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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