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시애틀, 아마존 데이 원 타워.
"서준, 저번 주 EC2 인스턴스 지표 봤어? 레이턴시가 5ms 튀었던데."
시니어 프로젝트 매니저인 데이빗이 내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오전 10시. 주간 운영 회의 직후였다
."네, 확인했습니다. 레거시 코드 이슈였고, 수정 완료해서 모니터링까지 끝냈습니다. 고객 임팩트는 없었어요."
"그래도 딥 다이브해서 에러 보고서(COE) 써서 제출해. 내일까지."
데이빗은 미지근한 커피를 홀짝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기지개를 켜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화면에는 아마존 로고가 떠있었다.
전 세계 유통망과 클라우드 시장을 지배하는 제국, 아마존.
나는 이곳에서 4년 차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연봉 20만 불, 아낌없이 베스팅되는 RSU 주식 보상, 그리고 완벽하게 체계화된 시스템.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좀 지루했다.
에러 보고서(COE)만 이번 분기에 세 번째. 의자를 뒤로 젖히며 천장을 바라봤다.
남들은 신의 직장이라 부르는데, 나에게는 황금 수갑처럼 느껴졌다.
'그냥 이렇게 사는 거지 뭐.'
징-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
[LinkedIn]
엘리스 윤 님이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번 씩 헤드헌터의 스팸이 온다.
습관적으로 삭제 버튼을 누르려는데, 미리보기에 뜬 회사 이름이 묘하게 시선을 잡았다.
[OpenAI]
"오픈AI?"
손가락이 멈췄다.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며칠 전 모임에서 동료들이 떠들던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너네 달리(DALL-E) 써봤어? 키워드만 넣으면 그림을 그려주는데?'
'아, 그 OpenAI 에서 만든? 거긴 그냥 스타트업이잖아. 돈도 못벌고 있는'
'그래도 기술력은 진짜라더라. 이번에 구글 엔지니어들도 몇 명 넘어갔다고 들었어'
메시지를 열었다.
[앨리스 윤]
안녕하세요 서준님. OpenAI의 테크 리크루터 앨리스 윤입니다.
아마존 AWS에서 활약하시는 이력을 인상 깊게 봤습니다.
저희가 준비 중인 중요 프로젝트가 있는데, 서준님 같은 실전형 엔지니어가 꼭 합류해 주셨으면 합니다.
OpenAI는...
나는 피식 웃었다.
보통은 커피나 한잔하시죠 라며 간을 보는데, 대뜸 합류해달라니.
‘곧 주식도 베스팅되고 보너스도 들어올텐데 굳이 이직을..?’
화면 오른쪽 상단의 삭제 버튼으로 엄지손가락을 옮겼다.
이걸 포기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낯선 스타트업으로 간다?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계산기를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엄지손가락이 버튼을 누르려던 그 순간이었다.
찌릿-
뒷목에서부터 등줄기를 타고 기묘한 전율이 흘렀다.
마치 수만 줄의 코드 속에서 치명적인 버그를 발견했을 때의 그 느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날카롭고 강렬한 감각이었다.
'......?'
순간, 멍하니 보고 있던 핸드폰 화면의 회사 로고가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정지해 있던 육각형의 심볼이 내 눈에는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자석을 만난 것 같았다.
내 본능이 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기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지금 선택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막연하지만 확고한 느낌.
내 직관은 지금까지 틀린 적이 별로 없었다.
'그냥 한번 찔러나 볼까?.'
어차피 지원 절차가 복잡하면 귀찮아서 안 했다고 핑계 대면 그만이니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답장을 쳤다.
[최서준]
안녕하세요. 연락 감사합니다.
근데 제가 지금 업무가 바빠서 복잡한 서류 전형이나 과제는 좀 부담스러운데요.
전송.
거절당하면 말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10초 만에 답장이 왔다.
[앨리스 윤]
서류는 필요 없습니다.
이번 주 수요일 오후 2시 어떠세요? 줌으로 바로 면접 보시죠.
"......?"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경력개발서도 필요 없다고? 심지어 면접 보시죠 라니.
물어보는 게 아니라 통보잖아.
'엄청 급한가 보네.'
묘하게 승부욕이 생겼다.
어차피 면접 본다고 다 붙는 것도 아니고.
그냥 요즘 핫하다는 AI 회사 분위기나 한번 구경해 보지 뭐.
[최서준]
네, 그러시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여전히 사무실은 조용했고, 동료들은 기계처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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