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을 강호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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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때
작품등록일 :
2026.01.09 23:18
최근연재일 :
2026.03.1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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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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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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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0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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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근데, 이곳은···도대체 어디야?

DUMMY

전신 마취를 한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흐릿한 의식이 서서히 각성되었다.


지금 자신이 꿈 속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어서 알지 못하는 그 어떤 세상으로 떨어진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멍하니 누워있던 시후는 지금의 상황이 꿈도 사후의 세계도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불안감이 진정 되자 육체의 감각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기억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크레바스!’


캠프1 설치를 끝내고 캠프2로 향하던 중 히든 크래바스에 발이 빠졌다.


단 한번의 기우뚱.


그리고 추락.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낙하하는 과정에서 어디까지 의식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만이 전부였다.


온 몸에 전해지는 압력과 공포감.


그것이 기억해낸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이 곳은 크래바스 틈이란 말인데······.,’


협소한 공간은 아닌 듯했다.

숨을 쉬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산소도 충분히 공급되는 장소이다.


다른 감각도 서서히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뜨거운 욕조에 몸을 뉘였을 때 일어나는 오한이 느껴졌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따뜻한 액체 속에 있다는 사실.


시후는 오감으로 전해지는 정보들을 모았다.


이곳은 온천과 같은 물 속이고 가슴 언저리 아래는 잠겨있다는 상황까지가 이해되었다.


그리고 등에 짊어진 배낭은 돌출된 무언가에 걸려 있는 상태였다.


자세만 본다면 노천탕에 등산복 차림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은 몸 상태에 덜컥 두려움이 밀려왔다.


‘고통이 없다? 그럴리가···제대로 잘못된 것인가?’


사실 그런 깊은 크레바스에서 떨어졌다면 사지가 절단 났거나 전신이 마비 되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인 것이다.


만일 지금의 상태가 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깨어나지 못했던 편이 좋았을 것이다.


밀려드는 불길한 생각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는 것에 두려움이 느껴졌다.


떨리는 마음으로 살며시 손 끝과 발가락을 움직여보았다.


‘아, 움직인다!’


한순간 온 몸에 힘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근데, 이곳은···.도대체 어디야?”


형오에게서 등반대 참여 제의을 받은 건 작년 여름이었다.


형오는 시후가 U**에서 데뷔 후 2승을 거두고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던 시절에 만났다.


오 년 전의 일이다.


형오는 당시 아이거북벽 등반을 앞두고 하체 근력 훈련을 목적으로 시후가 다니던 체육관을 찾아왔다.


둘 모두 사교적인 편이 아니어서 오가며 마주 칠 때 가벼운 목례를 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기초 체력 훈련에 있어서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시후가 우연한 기회에 형오를 코칭해 주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후 시후는 U** 미들급에서 동양인 최초로 파죽의 13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 한다.


그리고 마침내 챔피언 타이틀 도전권 획득에 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시합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음주 상태의 상대차 과실로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이때 입은 다리 부상은 심각했다.


결국, 도전권은 포기하게 되었다.


13전 13승, 12TKO, 1라운드 10승 이라는 영광의 수식어를 뒤로하고 재활에 전념하지만, 복귀전은 아직 치루지 못했다.


형오는 대학 산악부 시절부터 히말라야 원정대 대원으로 참여한 이후 8,000미터급 14좌 중 9좌를 무산소로 등정했다.


세계 산악계에서도 젊은 기재로 인정 받으며 메이저급 스폰서도 그에게 관심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대규모 원정대를 통한 14좌 완등을 뒤로하고, 신루트 개척과 미답봉 등정에 주력하는 소규모 알파인 스타일로 전향했다.


시후가 등반을 시작한 건, 부상의 재활 과정에서 형오의 권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다리 재활 트레이닝의 일환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둘레길을 시작으로 서울과 인근의 완만한 산을 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 산 자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점차로 고산과 암벽 등반도 도전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열의에 있어서 형오 못지 않은 시후였다.


형오의 이번 미답봉 등반 제의는 복귀전이 미뤄지며 실의에 빠져있는 친구를 격려하고자 한 이유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시후의 능력과 의지를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네팔 카트만두에서 시작하는 에베레스트산 등반은 전세계에서 무려 5천명 이상이 등정에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관광 상품화된 히말라야 등반 방식이 성행한 결과이다.


매년 4,5월 등반 시즌이 시작되면 전세계에서 몰려든 등반팀들로 베이스 캠프는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로 북적인다.


그리고 모두가 좋은 날씨를 기다렸다 일제히 등정을 시도하다 보니, 한날 한시에 정상 등반이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인해 정상 직전 마의 구간으로, 데스존이라 불리는 사우스콜과 힐러리 스텝에선 혼잡으로 인해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정체가 빚어진다.


이 과정에서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은 산소 부족과 체력 고갈로 사망하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곤 한다.


이러한 등반 방식은 고소 적응을 위한 트레킹 시점에서부터 베이스 캠프와 정상에 도달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전문 포터와 세르파가 모든 준비를 대신해 준다.


때문에 정작 등반가 자신은 그져 간단한 배낭에 산소통만 챙기면 되는 것이다.


시후가 보기에도 쓴웃음이 지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형오가 보기에는 어떠했겠는가.


​링 위에서 쏟아내지 못하는 열정을 산에서 대신 풀고 있던 시후에게 형오의 뜻밖의 제안은 그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우린 순수한 알파인 스타일로 도전할 거야. 포터도 세르파도 없다. 그것도 신루트로. 아마 엄청 고생하겠지. 그래도 마음이 내키면 함께하자.”


시후는 형오의 말에 그동안 쌓였던 무언가를 풀 수 있는 출구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시후는 홀린 듯 그 자리에서 제의를 받아들였다.


얼마 후 형오가 소집한 대원들과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슬슬 걱정도 되었다.


물론, 정상 정복조는 아닐테지만, 설산과 빙벽 등반 경험이 많지 않은 그에게 미답봉 등정은 정말 모험이었다.


거친 무투의 세계에서도 두려움을 모르던 그에게도 거대한 자연을 상대로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던 것이다.


몇 개월의 훈련과 준비 과정을 거쳐 형오를 등반 대장으로 하는 여섯 명의 소규모 등반대가 히말라야를 향해 출정했다.

시후는 현지 통역과 보급 담당을 맡게 되었다.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티베트로 향하는 비행기 안.


전날 흥분과 기대감으로 한 잠도 자지 못해 피곤한 상태였던 시후였다.


시후는 앞좌석 등받이에 삐죽 튀어나온 내셔널지오그래픽 책자를 꺼내 들었다.


그때 한 기획 스토리가 눈에 들어 왔다.


1953년 에베레스트 초등자들로 알려진 텐징 노르게이와 에드먼 힐러리에 앞서,

1924년 영국 에베레스트 3차 원정대의 대원으로 참여한 조지 맬러리와 앤드류 어빈에 관한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이들은 정상을 200여 미터 앞둔 지점에서 마지막으로 확인 되었지만, 그 얼마 후 실종되었다.


그러던 것이 1999년 BBC의 다큐멘터리 팀에 의해 조지 맬러리의 시신이 발견 되고,


곧 그들의 정상 정복 여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명확한 증거는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앤드류 어빈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첨단 드론까지 동원해 그가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을 이잡듯 뒤졌지만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만일 그가 발견되어 카메라 속에 정상 등정 장면이 찍혔다면, 에베레스트 초등의 역사는 30년이나 앞당겨 지는 것이다.


‘과연 그들은 정상을 올랐을까? 그리고 앤드류 어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시후는 앤드류 어빈이 어딘가에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시후는 마치 오래전 추억처럼 아득히 느껴지는 그간의 일들을 떠올리며 멍하니 누워있었다.


그러다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을 대원들과 형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시후는 몸을 일으키려했다.


하지만 캠프 설치를 위해 식량과 장비로 가득찬 배낭을 벗어 내기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 엉킨 것인지 안전 로프도 몸을 휘감고 있었다.

고전을 거듭하며 가까스로 팔을 비틀어 등에서 배낭을 벗겨내고 일어섰다.


먼저 헤드랜턴을 찾아 확인해 보니 다행히 망가지지 않았다.


불빛에 의지해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지만 더운 열기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웅덩이 형태였다.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보았다.


자신이 떨어졌을 위치를 확인해 보았지만 천정 어디에도 틈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어떻게 여기 있게 된 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넓은 실내 체육관만한 동굴에 자신이 누워있던 웅덩이는 마치 커다란 욕조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십여 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물이 흐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 보니 온기가 느껴지지 않은 물이었다.


시후는 자신이 어떻게 저 웅덩이에 누워있었던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혼란스런 머리로 두 곳을 교차해 바라보지만 해답이 나올리가 없다.


시후는 머리를 흔들었다.


‘중요한 건 살아 있다는 것이고, 우선은 여길 빠져나갈 생각만 하자.’


복잡한 생각들을 강제 봉인하고 우선 옷부터 갈아 입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물에 젖은 두꺼운 우모복과 여전히 몸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감겨져 있는 로프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동굴 안 기온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상하가 연결된 두꺼운 우모복을 벗고 안에 겹겹으로 껴입은 옷들도 전부 벗었다.


오랫동안 물에 잠겨 있어서 인지 온 몸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그때, 시후의 시선이 벗어둔 옷에 머물렀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우모복을 비롯해 속에 껴입은 방한복 여기저기가 날카롭게 찢겨 있고,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분명 핏자국처럼 보였다.


한참을 바라보다 자신의 몸을 훑어 보았다.


진득한 진액 같은 노폐물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엉킨 핏덩어리인지 물에 불린 때인지는 모르겠지만, 피부 어디에도 상흔은 없었다.


시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정신을 잃고 있던 사이 일어난 일들은 그리 추리력의 한계 너머에 있었다.


시후는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둘 모두 망가져는지 검은 액정만 보였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쉬웠다.


날짜와 시간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짧게 한숨을 내쉰 그는 몸을 씻기 위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웅덩이에 다시 들어갔다.


'온천수인가?'


적당한 자리를 찾아 가슴까지 몸을 담그고 있으니 물의 따뜻함에 긴장이 풀리며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첨단 과학이 세상의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이 세상에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은 수없이 존재한다.


흔히들 불가사의 라는 말로 불리며.


시후가 위치한 이곳, 정확히는 이 물도 그런 기준에서 불가사의란 범주에 속한 물질일 것이다.


시후가 지금 흔한 온천이라 여기며 몸을 담그고 있는 물은 결코 흔하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액체였다.


그가 깨어났을 때 찢겨진 옷에 외상이 없었던 것도,

옷을 벗었을 때의 온 몸에서 났던 악취도 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던 탓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83 하무린
    작성일
    26.01.31 09:10
    No. 1

    작가님 잘보고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순치
    작성일
    26.03.04 12:48
    No. 2

    1화 단숨에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ㅎㅎ
    추천 박고 갑니다!
    앞으로도 시간날때 찾아와서 정독 할게요 ㅎㅎ
    제 서재에도 한번 놀러 오세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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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양양에서의 하루. 혁련성과 제갈영 26.03.06 15 0 11쪽
64 제가 자꾸 욕심을 내더라구요 26.03.05 19 0 12쪽
63 난 너무 아는 것이 없잖아 26.03.04 1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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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그의 입술이 그녀의 서늘하고 부드러운 붉은 꽃잎을 포갰다 26.03.01 22 0 12쪽
60 그녀들이 알고 싶었던 것에 대한 답이 담겨져 있었다. 26.02.27 20 1 12쪽
59 같이 보낸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26.02.26 20 1 12쪽
58 저, 혹시 무림맹에서 일하십니까? 26.02.25 24 0 11쪽
57 제갈휘와 황보철후 26.02.24 27 1 14쪽
56 걱정마. 죽이지 않았어. 26.02.23 28 1 14쪽
55 수적은 수적, 군자일 리가 없다. 26.02.22 32 1 13쪽
54 내게 호위가 필요하다 생각하나? 26.02.21 48 1 10쪽
53 태어나 처음으로 질투란 걸 하고 있네 26.02.20 33 0 13쪽
52 낭제 사일제의 제자라면 호림이다! 26.02.19 36 0 12쪽
51 굳이 표현하자면 천공의 마을? 26.02.18 41 0 17쪽
50 백부님을 뵈옵니다 26.02.17 40 0 11쪽
49 그들이 판단할 수 없는 고수 26.02.16 39 1 11쪽
48 작은 추억이라도 함께 만드셔야죠. 26.02.15 40 1 11쪽
47 두 분의 뒤를 쫓게 된 사람입니다. 26.02.14 42 2 14쪽
46 이렇게 하는 게 맞나? 26.02.13 45 3 9쪽
45 그런데...적 대주는 나이가 어떻게 되시오? 26.02.12 43 3 12쪽
44 적인하 대주는 천송희의 행동에 눈이 커졌다. 26.02.11 48 3 11쪽
43 나, 혁련성이라합니다. 숭무전 사람이오. 26.02.10 50 2 12쪽
42 부러진 검과 같으니까 26.02.09 45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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