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화. 시민권
미래에서 눈을 뜨자마자 감옥에 갇히게 생긴 나.
불행 중 다행인 건 재판을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재판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게 진행됐다.
“판결을 발표하겠습니다.”
“벌써요?”
내가 놀라서 토끼눈을 뜨고 물었다.
나는 1평도 안 되는 공중 화장실만한 부스에 앉아서 재판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었다는 말조차 없이 판결을 발표하겠다는 말에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 잠깐! 얘기할 기회도 없는 건가요?”
내가 다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 질문은 가볍게 묵살되었다.
“피고인 이연우가 73년 동안 냉동 상태에 있었기에, 현 사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경관 폭행죄에 대해 무죄를 판결한다.”
판사가 말했다.
물론 부스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책상도, 망치도 없었고 내가 앉을 좌석과 벽에 붙은 스크린이 전부였다.
판사, 검사, 그리고 변호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애초에 그들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라 컴퓨터 속의 AI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개입할 여지도 없이 일사천리로 재판과정을 모두 처리한 모양이었다.
무죄!
내 기준으로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기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흑표범의 불길한 예언이 보기 좋게 빗나간 순간이었다.
“...허나.”
갑자기 판결이 이어졌다.
이에 나는 당황해서 스크린에 뜨는 판결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마찬가지 이유로 피고 이연우는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 걸맞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지녔다고 보기에 무리가 있다. 경찰관에 대한 폭력 행사와 취조 중의 로봇차별 발언이 이를 증명한다.”
로봇차별발언?
나는 취조 중에 로봇 경찰에게 ‘진짜 경찰’을 불러달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설마 그때 했던 말까지 재판에 반영될 줄이야...
“따라서 피고 이연우의 대한민국 시민권을 말소하며, 비시민 신분으로 돌아가 시민권 취득 심사를 거쳐야 할 것을 명시한다.”
판결이 끝나자마자 화면에 둥그스름한 외형을 지닌 초록색 캐릭터가 표시되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 캐릭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으로 재판이 종료되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법원 도우미에게 질문하세요!”
시민권 말소라고...?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다.
누구 맘대로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한 내 시민권을 뺏는단 말인가?
그런데 나는 사실 이 시대의 시민권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시민권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설마 재입대해야 한다는 얘기는 안하겠지.
“저... 시민권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내가 질문했다.
그러자 곧바로 화면에 답변이 떠올랐다.
-시민 거주 지역에서의 거주 자유 박탈.
-UBI 지급 중지.
“UBI라는 게 뭐지요?”
“UBI는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을 말합니다.”
법원 도우미가 설명했다.
아무래도 2099년의 대한민국 시민들은 기본소득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나는 지금 그 기본소득을 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건가...?
잘 모르겠지만 뭔가 굉장히 큰 손해를 본 듯한 기분이었다.
뭐 그래도 최악의 신세는 면하지 않았는가?
미래에 오자마자 감방부터 체험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걸 면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 볼 수 있을지도.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대한민국 시민권은 심사과정을 거쳐서 다시 획득하실 수 있으니까요!”
법원 도우미가 빙긋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적어도 세상이 끝난 건 아니지 않은가?
트럭에 치여서 죽었다고 생각했더니 목숨을 건졌고,
경찰관을 때리고도 감방에 가지 않았다.
게다가 2099년까지 살아있을 정도면 아마 내 또래에서는 가장 장수하는 편에 속하지 않을까.
나는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스스로 기운을 북돋았다.
그런데 그때 법원 도우미가 내게 말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다면 부스를 나가주세요! 다음 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
“다음.”
로봇이 말했다.
그러자 다음 대기자가 창구를 향해서 걸어갔다.
나는 시민권을 신청하러 가서 대기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대기번호는 931번.
그리고 현재 창구에 표시되어 있는 번호는 126번이었다.
창구 앞은 자신의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거리에서 봤던 깔끔한 복장의 행인들과는 정반대의 부류들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초라한 행색.
그들 중에 일부는 불량하고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호랑이 머리를 한 수인 한 명이 창구 앞의 사람을 향해 씩씩거리며 다가갔다.
“이봐! 내 순서야! 내가 125번이라고!”
호랑이 수인이 으르렁댔다.
유치장에서 본 흑표범 덕분에 이제는 수인을 봐도 그때처럼 까무러치지 않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그 흑표범이 나에게 예방주사를 놔준 셈이었다.
“어쩌라고? 부를 때 오던가.”
“여기서 3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내 알 바야?”
그 순간 호랑이 수인이 상대방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이내 투닥거리면서 서로 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대기 중이던 경비 드론들이 그들을 말리러 달려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미친놈들아! 싸울 거면 나와! 순번 밀리잖아!”
“맞아!”
이게 비시민들인가.
나는 내가 그들과 같은 신분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아연하게 느껴졌다.
한바탕 싸움을 벌이던 두 사람은 순식간에 드론들에게 제압당해 끌려갔다.
그리고 이내 업무가 다시 재개되었지만 순번이 줄어드는 속도는 여전히 굼벵이와 같았다.
나는 내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2099년에 떨어졌기에 지루함을 달랠 핸드폰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설마 2099년에는 핸드폰이 없는 것일까?
그때 누군가가 갑자기 크게 웃어젖혔다.
이에 그곳을 바라보자 기계 팔을 단 모히칸 머리 사내가 팔짱을 낀 채 껄껄거리고 있었다.
우와 사이보그.
로봇에 이어서 사이보그라니.
SF 속 클리셰 아닌가.
그나마 수인은 좀 참신한 편에 속했는데 말이다.
그 사이보그는 스테로이드에 절은 듯한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문인지 몰라도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한 모양이었다.
대화상대도 없는데 허공을 보면서 혼자 킬킬거리는 게 아닌가?
아니, 어쩌면 무선 이어폰이라도 끼고 있는 건가?
사이보그의 귀에서 보이지 않는 이어폰을 찾고 있는 사이, 갑자기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어이,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나는 당황해서 뭐라고 얼버무려야 할지 고민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상대는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뭘 보냐고 묻고 있잖아. 임마.”
사이보그가 가까이 다가와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때 갑자기 번호가 바뀌는 알림 소리가 들렸다.
이에 사이보그는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나에게 말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는 그대로 창구를 향해 걸어 가버렸다.
아무래도 자신의 차례였던 모양이었다.
저렇게 험악하게 생긴 녀석도 자기 차례가 날아가는 건 아까운 모양이지.
만약 녀석과 시비가 붙었다면, 나 역시 드론에게 끌려가 수 시간의 기다림이 허사가 되었을지 몰랐다.
물론 녀석의 주먹 한 방에 비명횡사하지 않았을 때의 얘기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나는 녀석과 주먹다짐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이보그가 나를 위협하는 동안 계속 온 몸의 촉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온 몸의 신경이 나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건 단순한 공포심이었을까?
아니 조금 달랐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아직 그걸 구분할 능력이 없었다.
***
기다리고 기다려서 내 순번이 온 것은 그로부터 5시간 후의 일이었다.
나는 지친 얼굴로 창구로 걸어갔다.
내가 온 목적을 설명하고 신원을 조회하자, 창구 건너편에 앉은 로봇이 내게 말했다.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사람은 있습니까?”
“아까 설명했잖아요. 73년 동안 잠들어 있어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요.”
내가 답답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로봇이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방계혈족이 한 명 있는 걸로 나오는군요.”
“방계혈족이요?”
“네. 이연우씨 누이분의 자제분의 자제분의 자제분입니다. 현재 비시민 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걸로 나오고요.”
로봇의 말에 나는 아연실색했다.
그러니까 누나의 자식의 자식의 자식이라고?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간호사는 내게 가족들은 모두 죽었다고 했다.
아니, 잘 생각해보니 조금 달랐다.
친인척을 찾아봤지만 연락이 닿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 사람이 그 연락이 닿지 않는 친인척이었을 수도.
“그럼 저랑은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죠?”
“그냥 누나의 증손녀라고 하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누나의 증손녀.
어쩐지 어색한 호칭이었다.
그런데 이 낯선 세상에 내 유일한 혈육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럼 이... 그러니까 누나의 증손녀가 제 신원을 보증해줄 수 있는 건가요?”
“그 분도 비시민 신분이기 때문에 이연우씨의 신원을 보증해주기는 어렵습니다.”
로봇의 말이 청천벽력처럼 떨어졌다.
이에 나는 곧바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신원보증이 왜 필요한 거죠? 제가 이연우 본인이 맞다고 밝혀진 거 아닌가요?”
“신원 보증인은 절차상 꼭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왜...”
나는 한참동안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때 나는 슬슬 뒤쪽에서 날아오는 날카로운 시선들에 눈치챘다.
“그럼 하다못해 누나의 손녀... 그 사람의 주소라도 알려줄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주소는...”
그렇게 5시간을 기다린 시민권 신청 절차는 헛수고로 돌아갔다.
하지만 적어도 빈손으로 떠난 것은 아니었다.
내 손에는 누나의 증손녀의 주소가 적힌 종이가 쥐어져 있었으니까.
그녀의 이름은 김승희.
이름마저 낯설었지만 지금 내게는 그녀가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로봇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하지만 접촉은 권장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위험인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위험인물...?
누나의 증손녀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내 핏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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