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비시민 구역
비시민 구역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왜냐하면 시민권 신청을 하는 관청이 시민 구역과 비시민 구역의 접경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비시민 구역으로 들어서자 이전에 보았던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반듯한 빌딩들이 즐비해 있던 도심과는 달리, 비시민 구역은 누덕진 건물들이 미로처럼 늘어서 있었다.
나는 로봇이 알려준 주소를 찾아 잿빛 거리를 헤맸다.
하지만 목적지를 찾기는커녕,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길을 묻기 위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피하거나 아니면 무시했다.
유일하게 나를 피하지 않은 것은 회색 런닝 셔츠를 걸친 까까머리 소년뿐이었다.
“길을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니?”
내가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면서 물었다.
그러나 그는 가만히 서서 나에게 질문했다.
“얼마 줄 건데요?”
“얼마 줄 거냐고?”
나는 당황했다.
까까머리 소년의 당돌함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완전히 빈털터리였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지금 돈이 없는데...”
“돈 없으면 꺼져요.”
소년이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불쾌함을 느끼면서도 어린 소년에게 굳이 화를 낼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엄청 화났는데 애써 꾹 참았다...
“그래. 돈 생기면 다시 올게.”
“그러던가.”
끝까지 귀염성이라고는 없는 녀석이었다.
이에 나는 속으로 욕지거릴 내뱉으며 다시 길을 떠났다.
***
한참을 헤매던 와중,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어이, 아까부터 계속 왔다갔다 하는데 길이라도 잃은 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누군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비니를 뒤집어쓰고 진회색 재킷을 입은 청년이었다.
검정색 비니 아래로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다소 가벼워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에 나는 경계하면서도 그가 묻는 말에 대답했다.
“맞아. 어떤 곳을 찾고 있는데...”
나는 청년에게 보여주기 위해 환자복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냈다.
그런데 순간 팔에 난 털이 곤두서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리 줘봐. 이 근처라면 빠삭하니까.”
이유 없는 불안감.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뭔가가 이상했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는 법.
모두가 나를 피하는 와중 먼저 다가오는 청년이 왠지 수상하게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줄 돈은 없어.”
내가 말했다.
그러자 청년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돈 달라고 안 할 테니까. 그보다 어디 한 번 보여줘 봐. 어디에 가려고 그러는 건데?”
그 말에 나는 하마터면 쪽지를 줘버릴 뻔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목적지를 찾을 기미가 안 보였으니까.
하지만 묘한 불안감이 나를 붙잡았다.
이에 나는 청년에게 건네려던 쪽지를 구기면서 다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고맙지만 괜찮아. 스스로 찾아볼게.”
“그러셔? 그럼 행운을 빌게.”
청년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에 나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러면서 나는 후회할 짓을 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다시 홀로 헤매기를 한참, 골목을 걷던 와중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누군가 내 뒤를 밟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후드를 걸치고 캡 모자를 푹 눌러쓴 남성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우연이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우연이 계속되자 이제는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슴 언저리가 내려앉는 듯한 서늘한 감각.
그 감각이 계속해서 나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나는 잰걸음으로 상대와 거리를 벌린 후, 담장 뒤에 숨어서 상대를 엿봤다.
그러자 아까의 남성이 교차로에 서서 내가 어디로 갔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하긴.
하얀 환자복 차림으로 온 동네를 사방팔방 헤매고 다녔으니까.
그야말로 타겟이 되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나는 상대와 멀어지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상대를 겨우 따돌렸나 싶었을 때쯤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숨어서 앞쪽을 살폈다.
그러자 이내 그곳에 수상해 보이는 인물이 나타났다.
피해망상일지도 모르지만 주변을 살피는 것이 영락없이 나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시발...”
상대는 최소 두 명 이상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주변 지리에 익숙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 반해 나는 이곳이 초행길이었기에 술래잡기를 하면 누가 유리할 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도망쳤다.
그런데 또다시 이상한 느낌이 들어 확인해보니 그쪽 길에서도 추적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녀석들에게 포위된 모양이었다.
빠져나갈 길을 찾던 와중, 나는 높이가 낮은 담장을 발견했다.
이에 나는 도움닫기를 해서 겨우 담장을 뛰어넘었다.
반대편 바닥에 무사히 착지한 나는 곧바로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서늘한 감각이 목 뒤를 스쳐지나갔다.
“여어.”
돌아보자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그는 친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아직도 헤매고 있는 모양이지? 그러니까 도와준다고 할 때 들을 것이지.”
아까의 그 청년이었다.
“조용! 지금 어떤 놈들한테 쫓기고 있어.”
“알고 있어.”
청년이 씨익 웃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가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의 꺼림칙한 느낌, 그 느낌은 기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청년의 얼굴에서 한순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러더니 그는 큰 소리로 주변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있다!”
내가 청년과 마주한 채로 망설이는 사이, 나를 쫓던 일당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상대는 청년을 포함해서 총 다섯 명.
나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찬 숫자였다.
청년은 주머니칼을 꺼내들었다.
그러더니 이내 그걸로 나를 겨눴다.
“뭘 원하는 거야? 돈 없다고 했잖아.”
“돈 될 만한 것들은 있잖아?”
청년이 칼끝으로 내 몸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놈들은 내 장기를 털어갈 속셈인 모양이었다.
저항 없이 당할 수는 없지.
나는 용기를 내서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딱히 대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청년의 부하들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 순간 계속해서 나에게 경고를 보내던 감각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느려졌다.
경찰 드론과 대치했을 때의 이상 현상.
아무래도 그때의 감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빠르게 달려오던 상대가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상대의 이동 궤적을 예상해 미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첫 번째 적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다시 주변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아무래도 그 현상은 내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발동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두 번째 적이 다가오자 다시 시간이 느려졌다.
이에 나는 자세를 낮춰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반대로 적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적은 입에서 침을 내뿜었다.
그러자 침방울이 천천히 공중을 날아갔다.
그런데 아직 사물이 느리게 움직이는 현상이 끝나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 나는 다음 공격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주변의 모든 물체들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속도가 느려진 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따라서 속도에서 우위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나에게는 분명한 이점이 있었다.
그것은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나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저번에 이어 두 번째로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먼저 행동하고, 상대가 그에 대해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정리하면 나에게는 선제적으로 행동할 여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미루어 볼 때, 적들에게는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게 분명했다.
상대가 느려지는 게 아니다.
내가 빨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짧은 순간을 천천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나는 드디어 그 이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다가오는 적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적을 처치한 순간,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너, 너 뭐야...”
청년은 자신이 휘두른 칼을 붙잡은 나를 향해 말했다.
나 자신도 놀랐다.
보지 않고도 청년이 칼로 내 뒤를 노릴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다니.
순간 나는 이것이 단순히 시간을 천천히 경험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일종의 육감이었다.
향상된 반사 신경.
시신경 밖의 공격까지 감지 가능한 육감.
그런데 대체 왜 나한테 이런 능력이 생긴 거지...?
의문이 샘솟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기에 적절한 순간이 아니었다.
나는 청년의 손목을 그대로 꺾어버렸다.
그러자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악! 잠깐! 잠깐! 말로! 말로 하자고!”
“말로?”
“그래! 말로! 말로 하자고!”
청년이 소리 질렀다.
이에 나는 그의 손목을 꺾은 채로 말했다.
“너 돈 있냐?”
***
한참 후, 나는 다시 길을 헤매고 있었다.
청년과 그 일당에게 길 안내를 부탁할 생각은 없었다.
또다시 함정에 빠지지 않는단 보장도 없거니와 누나의 손녀가 사는 곳을 노출하기는 싫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나는 또다시 미아가 되어 빈민가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까의 소년이 눈에 뛰었다.
그 귀염성 없는 녀석.
이에 나는 그 소년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갔다.
“야!”
소년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에 나는 곧바로 용건을 꺼냈다.
“여기로 안내해줘. 돈이라면 줄 테니까.”
소년은 의심어린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내가 재킷 주머니에서 칩을 꺼내자 그는 곧바로 눈빛이 달라졌다.
소년은 자신의 칩을 꺼냈다.
그러자 나는 어설픈 조작으로 내 칩에 들어있던 UBI를 소년에게 일부 전송했다.
청년은 그 칩을 ‘펄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이 작은 칩은 UBI를 저장, 보관하는 데 쓰이며 다른 펄스와 상호작용하며 거래도 가능한 모양이었다.
“옷이 바뀌었네.”
소년이 내가 걸친 재킷을 보면서 말했다.
나는 당황하며 그에게 둘러댔다.
“아, 이거?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누가 줬어. 심지어 돈까지 주더라고. 너무 친절하지 않냐?”
“바지랑 티셔츠까지 벗어 준 거야?”
소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순간 나는 그의 시선이 재킷 카라에 묻은 핏방울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나는 카라를 올려서 그 핏방울을 숨겼다.
“맞아. 진짜 친절하지?”
“뭐, 상관없어. 나는 돈만 받으면 되니까. 따라와.”
소년이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돌아서서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엄청 쿨하네.
덕분에 나는 설명할 수고를 덜었다.
그렇게 나는 소년을 따라서 목적지로 향했다.
***
콘크리트로 된 칙칙한 건물.
건물 뒤편에 있는 문에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옅은 갈색 머리를 뒤로 묶고, 국방색 야전상의를 걸친 여성이었다.
외견상으로 보이는 나이는 20대 초반.
갸름한 턱선에 눈매는 다소 매서운 느낌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여자는 커다란 쓰레기통에 쓰레기봉투를 던져 넣었다.
하지만 쓰레기통은 이미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던진 봉투는 굴러 떨어져서 그 옆에 있는 쓰레기봉투 더미에 합류했다.
그리고 손을 탁탁 털며 다시 문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나는 그녀를 불렀다.
“저기요.”
여자는 말없이 나를 돌아봤다.
그러더니 그녀는 이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물어보고 싶은 게 좀 있어서요.”
여자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용건을 꺼내들었다.
“저기 혹시 김승희씨 되세요?”
그 말을 들은 여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부정하지 않는 걸로 보아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 눈.
그 매서운 눈초리는 누나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미 속으로 그녀가 누나의 증손녀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도저히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당신 외증조할머니의 남동생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놈이 할법한 소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갑자기 손을 야전상의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대체 뭘 꺼내려는 거지?
그런데 순간 아까의 서늘한 감각이 나를 찾아왔다.
“누가 보냈어?”
여자가 말했다.
그녀는 자켓 안쪽에서 꺼낸 권총으로 나를 겨누고 있었다.
시발.
위험인물이라더니.
그 말이 맞았다.
여자는 내 이마를 향해 똑바로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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