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개
“세상을 구하겠다.” “정의를 보여주마.” 영웅들의 가슴 뜨거운 명대사다. 하지만 제국 예산처 실장인 내게는 뒷목 잡게 만드는 소음일 뿐이다. 그놈들의 ‘미스릴 검’ 값은 누가 내줬나? 정의 구현하느라 박살 낸 도로 보수비는? 영웅의 사전에는 ‘승리’만 있고 ‘감가상각’은 없다. 그들이 폼 잡고 떠난 자리엔, 영수증 더미를 치우며 피눈물 흘리는 나 같은 공무원만 남는다.
내 이름은 제이든. 제국의 유일무이한 ‘돈 사냥개’이자, 장차 대륙 최강자 루카스 대공(장인어른)의 뒤를 이을 ‘종신 노예 2호’다. 전생에 ‘역덕’ 대학생이었던 나는 알았다. 난세엔 가늘고 길게 살아남는 게 진리라는 걸. 지방 행정관이나 하며 연금이나 타 먹으려 했건만, 이 빌어먹게 유능한 머리가 내 발목을 잡았다.
“제이든, 결재 아직이야?” ‘피의 황녀’ 마틸다. 내 퇴직금을 볼모로 잡은 악덕 상사이자, 나를 재무제표의 ‘부채’ 항목에 영원히 박아버린 여자다. 나는 마왕군이 쳐들어왔을 때도 멸망보다 ‘예산 초과’가 더 무서웠던 놈이다. 단돈 3골드, 폐타르로 마왕군을 소각해버렸을 때 느낀 건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예산 절감’의 짜릿함이었다.
평화는 개뿔. 마왕은 튀겨져 치킨 프랜차이즈가 됐고, 드래곤은 택배 기사가 됐으며, 황녀는 나를 남편으로 삼아 평생 부려 먹으려 한다. 유능한 놈들아, 명심해라. 유능함은 독이고, 잘난 상사는 재앙이다.
“너희는 절대 나처럼 되지 마라.” 오늘도 결재 도장을 찍는 내 손이 떨린다. 아, 빌어먹을 제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