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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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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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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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필의 의미

DUMMY

“뭐? 이 년이 금단현상이 와도 정도껏 와야지······ 좋은 말로 할 때 치워라.”


남자는 비웃음을 머금은 채 동작을 멈췄다.


“대장······ 이제 그만해. 주사기 내려놔······.”


“야. 좋은 말로 할 때 너나 총 내려놔.”


“대장······ 대장도 미쳐가고 있다고. 13호처럼 미쳐가고 있단 말이야! 흑흑······.”


여자의 울음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리볼버를 쥔 그녀의 손이 애처롭게 떨렸다.

팔꿈치를 구부린 채 한 손으로만 조준하는 자세로는 불과 10미터 거리에서도 명중시키기 어려웠다.


“야······ 총 내려놓으라고.”


“대장 눈빛이······ 13호가 14호를 덮쳤을 때랑 똑같단 말이야. 나 무서워. 제발 그만해. 이제 주사기 내려놓고, 우리 다시 강남역으로······.”


“이 년이!”


남자가 순간적으로 몸을 돌려 주사기로 여자의 가슴을 찌르려 했다.

나는 등 밑에 숨겨두었던 삽을 꺼내 남자의 발목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깡!


“아악! 이 병신이!”


실패였다.

내 팔 상태를 망각하고 과한 위력을 내려다보니 삽날이 바닥을 긁어버렸고, 남자의 발목에는 타격이 미미하게 전해졌을 뿐이었다.

곧바로 전신에 통증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이를 너무 꽉 깨문 탓에 턱관절까지 아려왔다.


“미······ 미친 새끼! 주사기로 날 찌르려고 했어······ 허억, 허억.”


남자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이내 살의를 다시 여자 쪽으로 옮겼다.


“야, 나비. 그만해라, 이제. 너 진짜 쏘겠다?”


“내가 못 쏠 줄 알아?”


“나도 총 있거든? 이제 그만해라.”


“손만 갖다 대봐. 대가리에 구멍을 내줄 테니까······ 손들어!”


남자가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 척하더니 옆에 있던 돌을 집으려 했다.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죽어!”


철컥!


여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총소리는 나지 않았다.

남자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철근이 튀어나온 시멘트 덩어리를 해머던지기 선수처럼 빙빙 돌리더니 여자에게 내던졌다.


“까악!”


남자가 던진 쇳덩이가 여자의 무릎을 강타했다.

여자는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고, 손에 쥐었던 총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여자가 다시 총을 잡으려 하자 남자가 달려들어 그것을 발로 차버렸다.

이어서 그는 넘어진 여자를 사정없이 짓밟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년아! 고장 난 총으로 협박을 해? 내가 왜 총을 안 쏘는지 알아?”


퍽! 퍽! 퍽!


여자는 고통에 신음하며 남자의 발을 붙잡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진작에 나도 쏴봤거든, 이 년아! 나가지도 않고, 나가봤자 공포탄이야, 이 년아!”


그가 발로 차낸 권총이 내 앞 2, 3미터 지점까지 굴러온 것을 발견했다.

남자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총은 고장 난 게 아니었다.

나는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낮은 포복 자세로 천천히 권총을 향해 기어갔다.


“너도 14호가 먹힌 것처럼 나한테 씹혀볼래?”


남자는 광기 어린 말을 내뱉으며 폭행을 이어갔다.


“아주 그냥, 계집이라고 지금까지 살려줬더니 감히 날 쏘려고 해?”


“으으으······.”


여자는 입안에 피가 흥건해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을 내뱉으며 일어서려 애썼다.

나는 마침내 권총을 손에 쥐고 몸을 일으켰다.

옆에 있던 화로에서 강렬하게 불똥이 튀었다.

여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숙여!”


여자가 다급히 몸을 숙였다.

남자는 내가 뭐라고 하든 별 관심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나를 죽이러 다가왔다.

총은 절대 발사되지 않을 거라는 오만이 그의 얼굴에 가득했다.

나는 쓸 수 없는 오른팔을 뒤로 뺀 채 몸을 측면으로 돌렸다.

왼팔과 몸통의 각도를 90도로 유지하고 가늠자를 남자에게 고정했다.

숨을 반쯤 들이마시고 멈췄다.


탕!


남자가 머리를 감싸 쥐며 뒤로 돌아섰다.

날카로운 총성만이 좁은 공동을 울렸을 뿐, 남자의 몸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시 후 남자가 긴장이 풀린 듯 낄낄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하하하하! 그거 안 나간다고, 이 병신 새끼야! 폼 잡기는, 씨발······.”


"이.건. 안. 나.가.지."


나는 그 느낌 그대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억?”


남자의 발 바로 앞 지면에 탄환이 박혔다.


"좀 더 위로 조준."


탕!


“아악!”


이어지는 총성이 남자의 왼쪽 허벅지를 관통했다.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탕!

“으아아악!”


주저앉은 남자의 오른쪽 어깨를 총알이 스치듯 찢어놓았다.

핏물과 알 수 없는 액체가 남자의 몸에서 튀어 나가 모닥불 속에서 치직거리며 기화되었다.

남자는 옆구리에 찬 자신의 권총을 꺼내려 발버둥 쳤지만, 덜렁거리는 오른팔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살려······ 살려줘.”


나는 사격 자세를 유지한 채 남자의 머리를 겨냥했다.


"준비된 사수... 쏴."


탕!


총알이 그의 이마 정중앙에 박혔다.

뇌수가 튀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한 채 기괴하게 멈춰 섰다.

사람을 죽였다는 공포가 뒤늦게 해일처럼 밀려왔다.

나는 살인에 대한 정당성을 필사적으로 찾으며, 널브러진 남자의 시신에서 리볼버를 꺼내 다 쓴 총과 맞바꾼 뒤 여자에게 다가갔다.


“으으으으······.”


여자의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코와 입에서 끊임없이 선혈이 솟구치고 있었다.

나는 일단 그녀가 총을 뺏을 수 없도록 바지춤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리고 여자의 상체를 일으켜 세운 뒤, 다시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가 다시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근원적인 공포가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꿈틀.


“으아아아아악!”


시체가 살짝 움직였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남자의 고개가 쓰러지는 팽이처럼 천천히 돌아 내 쪽을 향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약 10초간,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기나긴 대치가 이어졌다.

나는 시선을 회피하며 서둘러 짐을 챙겼다.


여자는 자기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초점 없는 눈으로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땔감이 다 타버렸는지 주변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는 남자가 들고 있던 두 개의 007 가방—약품 가방과 잠겨 있던 가방—을 챙겨 여자 곁으로 옮겼다.


여자에게 마약 주사를 놓아야 할까, 아니면 이 고통을 끝내줘야 할까.

그녀는 나를 살리려 했다.

죽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거부하던 약을 내가 강제로 주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저기······.”


여자가 내 쪽을 보며 힘겹게 손짓했다.


“69······ 69.”


“뭐?”


“가방 비번······ 6969라고.”


나는 잠겨 있던 가방의 번호를 맞추고 버튼을 당겼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다.


“뭐······ 뭐야, 이건?”


일렁이는 화톳불 때문에 노랗게 보였는 줄 알았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가방 안에는 오만 원권 지폐가 빈틈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줘봐.”


여자는 내가 건네준 지폐 뭉치로 피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냈다.

약해진 모닥불 빛에 그녀의 얼굴이 흐릿하게 일렁였다.


“불 좀 피워.”


“어? 어······.”


나는 오만 원권 뭉치 두 개를 망설임 없이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영웅본색 주윤발은 우리에 비하면 흙수저였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섞인 혼잣말이 나왔다.

여자는 힘없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총은······ 어떻게 쏜 거야?”


여전히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게 거슬렸지만, 나는 내가 세운 치밀한 계획을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어졌다.


“경찰용 리볼버는 보통 6발이 장전돼. 첫 발은 공실, 두 번째는 공포탄, 그리고 세 번째부터 여섯 번째까지가 실탄이지. 네 '대장'은 아마 예전에 두 발을 쏘고 나서 총이 안 나가니까 고장 났다고 믿었을 거야. 군대를 안 갔다 왔으니까 그런 상식도 없었겠지.”


“맞아······ 빵에 몇 번 들락거려서 군대 안 갔어. 근데 그건 어떻게 알았어?”


“군필자라면 '연병장'이라고 하지, '운동장'이라는 말은 안 쓰거든. 그가 말실수를 했지.”


여자는 묘한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이제······ 난 어떻게 할 거야?”


불똥이 튀어 오르며 여자의 얼굴이 또렷이 다가왔다.


생각보다, 어리지 않은 얼굴. 성인 여자였다.

죽음에서 살아돌아왔다는 기쁨이 묘한 흥분으로 다가오면서 나는 여자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너... 여자구나?"


"...뭐?"


"너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죽어. 나한테 죽든, 과다출혈로 죽든."


여자는 동요하는 게 보일 정도로 심하게 흔들렸다.


"그래서... 뭐... 뭘 어떻게 할 건데?"


여자는 두 손으로 자신의 몸을 천천히 감싸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여자에게 뚜벅뚜벅 천천히 걸어갔다.

이상하게 몸이 아프게 느껴지지 않았고, 심장소리만 귓가에 계속해서 들려왔다.


“뭘?”


나는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는 내 손에 든 총을 의식하며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을 직접 쏴 죽이는 광경을 목격한 것, 그리고 폐쇄된 공간을 울리던 실탄의 굉음.

그 모든 경험이 그녀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리라.


“쏠 거냐고?”


여자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어둠으로 시각이 제한된 곳이 아니었다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아주 가느다란 떨림이었다.

갑과 을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뀐 상황에 잠시 멍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녀를 죽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건 내 인생에 없던 일이었고, 방금 전 남자를 맞춘 것이 생애 첫 사람에게 쏜 사격이었다.

손끝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내 앞의 여자가 한없이 약해 보였다.

내가 그녀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군림하고 있다는 기묘한 정복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 총으로 널 쏠 수도 있지.”


나는 여자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여자는 째려보는 듯하면서도 겁에 질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화로의 불길이 잦아들어 주변은 아주 어두웠다.

한 발, 한 발 거리를 좁혔다. 열 걸음, 아홉 걸음······. 총구를 그녀 쪽으로 슬며시 향했다.


“······살, 살려주세요.”

여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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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이지 않는 곳 26.01.18 28 0 16쪽
1 2016년 여름의 오후 날 26.01.18 4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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