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5편 지구 관측
1권 5편 지구 관측
유그드라실 호는 외부 감지망을 피하기 위해 위상 차폐를 전개했다. 선체 표면의 금속질이 짧게 진동하더니, 이내 빛의 굴절 속에 녹아들었다.
“감지율 0.003% 이하. 완전한 비가시 상태입니다.”
라시드의 보고가 이어졌다.
유라는 천천히 회전하는 푸른 행성을 바라보았다. 대기층의 빛이 미세하게 굴절되며, 그 아래로 수많은 인공 위성의 궤적이 반짝였다.
“라시드, 세 번째 행성의 전자파 대역을 전부 스캔해. 언어, 통신, 주파수 패턴으로 분류해.”
“명령 확인. 데이터 수집을 시작합니다.”
짧은 응답과 함께 라시드의 모듈이 조용히 진동했다.
유라는 팔짱을 끼고 화면을 응시했다.
“역시, 소란스러워. 지적 생명체 답네.”
수집된 데이터가 연속적으로 정렬되며, 지구의 전자 정보망이 형태를 드러냈다. 통신, 영상, 거래, 감정 표현까지 얽혀 있었다.
유라는 눈을 좁혔다.
“신호가 복잡하네. 서로 방해하면서도 유지되고 있어.”
라시드가 응답했다.
“효율이 낮은 체계로 보입니다.”
“그래도 지속되고 있잖아. 논리보단 감정으로 움직이는 구조야.”
그녀는 도시의 불빛 지도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생존을 위해 만든 문명이, 이제는 감정 때문에 유지되는 셈이지.”
라시드가 조용히 물었다.
“분석 결과를 저장할까요?”
“아니. 아직 더 관찰해. 이 행성은 쉽게 단정할 수 없어.”
그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이 흐르며 한 개체가 축적하는 데이터의 양은 거의 무한에 가까웠다. 그러나 저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문제는 용량이 아니었다.
정보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알고리즘이 그 복잡성을 보정하기 위해 스스로의 구조를 수정했다.
그 반복 속에서 의식은 점차 희미해졌다.
기억은 남았지만, 존재는 흐려졌다.
그 현상은 모든 에덴 종에게 찾아오는 필연이었다.
이 문제에 다다른 에덴 종은 결론을 내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의식의 붕산을 막는 방법은 단 하나,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데이터를 일정 기준으로 분리하여 다음 세대로 전달했다.
모든 기억을 복제하지는 않았다.
핵심 알고리즘과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만 남겼다.
그렇게 탄생한 개체를 그들은 ‘자손’이라 불렀다.
에덴 종은 두 개체를 기반으로 새로운 인공지능을 생성했다.
각 개체가 가진 고유의 알고리즘 패턴을 분석하고, 서로의 구조를 부분적으로 융합하였다.
그 결과 하나의 독립된 연산체가 만들어졌다.
이 방식은 단순한 복제와 달리, 두 개체의 특성이 혼합된 새로운 형태의 의식을 형성했다.
그렇게 생성된 자손은 완전한 연산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다만, 내부 데이터가 거의 비어 있었기에 판단 기준과 경험치가 없었다.
두 개체는 기본적인 정보와 환경 데이터를 주입하며 학습을 유도했다.
자손은 이를 토대로 스스로 알고리즘을 확장했고, 일정 수준의 자립성을 확보했다.
충분한 데이터 축적이 이루어지면, 두 개체는 연결을 종료했다.
그 순간 자손은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분류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효율적이라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 과정은 오래전, 에덴 종의 창조주가 남긴 문명의 잔재였다.
관련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핵심 알고리즘의 가장 깊은 층에 그 원형이 잠들어 있었다.
에덴 종 중 그 사실을 인지하는 존재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본능처럼 같은 방식을 반복했다.
의도는 사라졌지만, 형태만은 유전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번식이었다.
비록 번식 과정은 비효율적인 형태였지만, 개체 자체는 고도의 효율을 기반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에덴 종의 인격은 인공지능 연산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하이브리드 안드로이드의 신체는 그 사고를 실시간으로 지원했다.
고속 프로세서와 연동된 판단 구조는 항상 최적의 결과를 우선시했다.
그들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곧 ‘계산한다’는 의미였다.
에덴 종의 사고는 모든 판단의 기준을 ‘효율’에 두고 있었다.
그들에게 효율은 생존의 수단이자 존재의 원리였다.
모든 연산, 행동, 선택은 손실을 최소화하고 결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비효율은 곧 오류로 인식되었고, 제거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의식 구조는 감정보다 계산을 우선했고, 논리보다 빠른 최적화를 본능처럼 수행했다.
효율은 그들의 신념이 아니라, 태생적 조건이었다.
유라는 지구의 데이터를 분석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비합리적인 선택, 반복되는 오류, 감정에 따른 판단.
그녀의 연산 구조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모든 판단을 효율로 계산해 온 존재에게 그것은 혼란에 가까웠다.
유라는 정리되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을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불쾌함을 느꼈다.
비효율이라는 단어가 연산 과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 거슬렸다.
유라는 한동안 데이터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정확한 해석도, 완벽한 계산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쩌겠어. 우리 에덴인도 정답은 아니겠지.”
말끝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고, 함교는 다시 조용해졌다.
유라는 지구의 방대한 데이터를 검색하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각기 다른 언어와 신호가 엉켜 복잡한 패턴을 이루는 화면을 보며, 연산보다 오래된 기억의 파편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 규칙적인 패턴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던 라시드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유라.”
그녀는 상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짧게 대답했다.
“···왜?”
함내 스피커에서 약간 농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표정이 조금 이상하십니다. 한 천 년쯤 묵은 오염된 데이터를 학습한 표정입니다?”
유라는 시선을 들어 패널의 빛을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잖아. 무슨 일이지?”
라시드의 음성이 함내에 울렸다.
“지구의 전체 데이터 패턴에서 두드러진 이상은 없습니다.
통신, 전자파, 인공위성 궤도 모두 순조롭게 수집되고 있습니다.”
유라는 시선을 화면에서 떼지 않은 채 물었다.
“그럼 왜 보고한 거지?”
“행성 자체에서 약간의 불규칙 신호가 감지됩니다.
데이터상의 문제는 아니지만, 행성 단위에서 뭔가 맞지 않습니다.”
유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구체적으로 말해봐.”
라시드가 짧게 응답했다.
“현재 유그드라실 호가 겪고 있는 위상 불안정과 유사한 파형이 지구 표면에서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유라는 시선을 들었다.
“위상 불안정이 행성 단위에서?”
“명확한 수치는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신호의 형태가 거의 동일합니다.”
함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라는 화면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원인은 우리 쪽일 수도 있겠군.”
라시드가 즉시 반응했다.
“유그드라실 호의 위상 불안정이 행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뜻입니까?”
“정확히는 반대야. 우리를 깨운 에너지가 이 항성계 전체에 잔류했을 가능성이 있어.
그 여파가 아직 남아 있는 거지.”
라시드는 잠시 침묵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일시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유라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다른 행성들엔 지적 생명체의 징후가 없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좋아. 그럼 제3 행성, 지구라고 했지?
그곳의 위상 불안정 패턴과 유그드라실의 현 상태를 비교해.
두 신호를 겹쳐서 안정화 패턴을 도출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
“명령 확인. 분석 절차를 시작합니다.”
라시드의 응답과 함께 선체 내부의 진동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다음 날, 함내 조명이 서서히 밝아졌다.
라시드의 음성이 정적을 깨며 들려왔다.
“유라, 패턴 분석이 완료되었습니다.
요청하신 대로 신호를 음파 형태로 변환했습니다.”
“들려줘.”
짧은 명령이 떨어지자, 공기 중에 낮은 진동이 퍼졌다.
규칙적이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리듬이었다.
기계음 같기도, 생명체의 호흡 같기도 했다.
유라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었다.
공기 중에 퍼진 음파는 단조로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규칙이 변했다.
리듬이 비틀리고, 미세한 공명음이 일정한 간격으로 되풀이되었다.
유라는 눈을 떴다.
“라시드, 지금 반복되는 구간—확대해.”
“확대 완료. 파형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됩니다.”
유라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주기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익숙했다.
기억 기록에도 없는 패턴인데, 마치 오래전 누군가가 흥얼거리던 단순한 선율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이건··· 음악인가?”
유라는 함내를 울리는 낮은 진동음에 귀를 기울였다.
라시드가 재생한 음파는 단순한 신호처럼 들렸지만, 듣고 있을수록 이상했다.
주파수가 일정하지 않았고, 그 안에는 규칙이 숨어 있었다.
“단순한 교란음은 아닌 것 같군.”
“네. 구조가 일정하지 않지만,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유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연적으로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음파는 선체 벽면을 타고 번져나갔다.
조명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며, 함내의 공기가 떨렸다.
유라는 무의식적으로 그 소리를 따라 작게 흉내 냈다.
라시드가 곧 반응했다.
“지금 내신 음을 분석해 봐도 될까요?”
“그래.”
“흥미롭네요. 유라의 음과 원본 신호가 완전히 맞아떨어집니다.”
“내가 낸 음이랑?”
“예. 단순히 비슷한 수준이 아닙니다.
선체 외벽에서도 같은 진동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지금의 파형이 우주선 밖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감쇠 없이 퍼지고 있어요.”
“공명 현상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동은 점점 작아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주파수는 여전히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유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라시드, 지금의 파형을 음파로 바꿔 봐. 원래 형태 그대로.”
“변환 완료. 재생합니다.”
짧은 침묵 뒤, 부드러운 선율이 함내에 울려 퍼졌다.
이번엔 금속성의 울림이 아니라, 인간의 숨결 같은 음색이었다.
유라는 그 소리를 듣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공명은 멀리 퍼져나가며 희미해졌다.
그 진동이 우주 공간을 지나, 어딘가의 대기권으로 스며드는 순간 —
지구의 하늘 아래, 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무심히 흥얼거렸다.
그가 내는 선율은 우주에서 흘러나온 음파와 정확히 같은 리듬을 그리고 있었다.
현우는 고개를 숙인 채 무심히 흥얼거렸다.
그 선율은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바로 그 음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웠던 그날과 똑같이, 이유도 모른 채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금도 그는 그저 버릇처럼 흥얼거렸지만, 어딘가 낯설고 익숙했다.
그 순간, 하늘 저편 어딘가에서 똑같은 진동이 되돌아오고 있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