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세상이 흑백으로 변하는 기분.
나를 향해 쏟아지던 시선이 찬사가 한 순간에 강시우에게 빨려 들어갔다.
강시우가 공을 던질 때마다 터져 나오는 감탄사.
그 녀석의 완벽한 폼을 칭찬하는 선배들의 목소리.
나를 구경하러 왔던 지훈이와 동호마저 멍한 얼굴로 시우를 바라보던 그 표정.
숨이 막혔다.
내게로 향하는 관심이 통째로 증발해버린 공간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선발 투수는 강시우다.'
감독님의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선발 투수를 뺏겼다는 건 친선 대회에 온다는 200 여 명의 관중 즉 400개의 눈동자를 모조리 저 재수 없는 강시우 자식에게 빼앗겼다는 뜻이었다.
참을 수가 없다.
***
그날 훈련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텅 빈 그라운드에 나 홀로 남아있을 때 감독님이 다가왔다.
"윤서진."
나는 흙바닥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었다.
"네 투구 폼 말이다."
감독님이 내 옆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네 폼은 확실히 역동적이고 돋보여. 하체 유연성도 좋고 어깨도 부드러워서 그 큰 와인드업을 감당할 수는 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0구, 20구 이내일 때의 이야기다."
"······."
"그렇게 온몸을 비틀어 짜내듯 던지면 체력 소모가 극심해. 오늘 30구 만에 퍼진 게 그 증거야. 선발 투수가 되려면 적어도 80구 이상은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감독님은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선을 긋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 해결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 일단 정석적인 폼으로 시작하는거다."
“폼을 줄이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쓸데없이 크게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 팔을 등 뒤로 한참 빼서 원을 그리는 동작. 전부 버려. 콤팩트하게, 작고 효율적으로 수정해라. 그러면 힘을 덜 들이고도 구속을 유지하면서 이닝을 길게 끌고 갈 수 있어. 네 신체 능력이라면 금방 적응할 거다."
감독님은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짐을 챙겨 야구부실로 향했다.
나는 홀로 마운드에 남아 감독님이 한 말을 곱씹었다.
작고 효율적인 폼.
콤팩트한 동작.
머릿속으로 그 폼을 상상해 보았다.
다리를 살짝만 들고, 팔은 짧게 끊어서 던지는 모습.
현대 야구에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유튜브 전문가들이 떠들어대던 그 폼.
"웃기고 있네."
입술을 깨물었다.
효율?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
작고 효율적인 폼은 눈에 띄지 않는다!
강시우처럼 정석적이고 완벽한 폼조차 내 기준에서는 너무 심심했다.
그런데 거기서 폼을 더 줄이라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너튜브 알고리즘이 나에게 가르쳐준 진리가 있다.
사람들은 평범한 것에 열광하지 않는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투수들 이를테면 린스컴이나 놀란 라이언 같은 투수들이 왜 아직도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겠는가?
온몸이 부서져라 뿜어내는 그 압도적이고 화려하고 미친듯한 역동성 때문이다!
크고 아름답고 화려해야 한다.
그래야 시선을 사로잡는다.
폼을 수정하라는 감독님의 조언?
조언은 감사하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절대 내 시그니처가 될 이 크고 화려한 와인드업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체력 소모가 심해서 30구 만에 퍼지는 게 문제라고? 그럼 이 미친 폼으로 100구를 던질 수 있는 무식한 체력을 만들면 되잖아.'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무슨 수로 체력을 기른단 말인가.
투타겸업의 훈련량만으로도 이미 방과 후 시간이 꽉 차 있었다.
방법을 찾기 위해 밤 10시 나는 인적 끊긴 학교 운동장으로 다시 숨어들었다.
달리기라도 미친 듯이 해볼 심산이었다.
그런데 텅 비어있어야 할 학교 뒷산 산책로 입구 쪽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르륵, 큭, 헉··· 스르륵···
거친 숨소리와 무언가 무거운 것이 흙바닥을 긁으며 끌려가는 소리.
귀신인가 싶어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고 조심스레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을 발견했다.
"서진이···?"
달빛 아래, 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사내아이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우리와 같은 1학년이자, 야구부 백업 포수 겸 내야수.
이도윤이었다.
도윤이는 평소 야구부 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녀석이었다.
강시우처럼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나처럼 튀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훈련을 소화하고 선배들이 흘린 공을 줍는 게 전부인 녀석.
그런 도윤이의 허리에는 두꺼운 밧줄이 매달려 있었고 그 밧줄 끝에는 거대한 폐타이어 두 개가 연결되어 있었다.
"도윤아 너··· 지금 뭐 해?"
내가 당황해서 묻자 도윤이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들켰네. 개인 훈련 중이었어. 타이어 끌고 구보."
타이어 끌기?
순간 내 머릿속에 예전에 너튜브에서 스쳐 지나가듯 봤던 80년대 한국 프로야구 지옥 훈련 다큐멘터리 영상이 떠올랐다.
무식하게 타이어를 끌며 산을 오르던 선배 야구인들의 모습. 하체와 코어 근육, 그리고 심폐지구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고전적이고 원초적인 훈련법.
"나는 너나 시우같은 재능이 없어."
도윤이가 타이어 밧줄을 다시 고쳐 매며 말했다.
"오늘 시우랑 던질 때 봤어. 네 공, 솔직히 진짜 무섭더라. 근데 네가 30구 만에 무너지는 걸 보고 생각했지. 아, 나는 재능은 없지만 체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는데 남들이 쉴 때 나도 쉬면 나는 점점 뒤처지겠구나 하고. 그래서 매일 밤 여기서 이러고 있었어. 이걸 들키네···"
타이어 끌기. 하체 단련. 극한의 체력.
확실히 도윤이가 나보다 체력이 좋긴했다.
사실 야구부의 그 누구보다도 체력이 좋아보여서 타고난 줄 알았는데 이런 비밀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이 녀석 남몰래 이런 훈련을 하고 있었다고? 이대로라면 나중에 경기장 나갔을 때 이 녀석이 나보다 체력이 좋아서 카메라 앵글에 더 오래 잡히는 거 아냐?'
절대 안 된다.
야구장에서 나보다 돋보이는 녀석은 강시우 하나로 족하다.
아니, 강시우도 조만간 끌어내릴 거다.
"야, 이도윤."
"어?"
"타이어 남는 거 있냐?"
"···뭐?"
나는 교복 재킷을 벗어 던지고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쳤다.
"나도 한다. 그 훈련."
“오··· 이거 생각보다 힘든데 괜찮겠어?”
“네말대로 확실히 남들이 쉴 때 같이 쉬면 영원히 앞서나가지 못하겠지. 늦게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뒤에서 출발하는 거기도 하고.”
“뭐··· 나야 같이해준다면 안심심하고 좋긴한데···”
그렇게 자정의 학교 뒷산에서 미친 짓이 시작되었다.
도윤이가 창고에서 꺼내준 폐타이어를 허리에 매달았다.
그냥 눈으로 볼 때와 허리에 묶고 한 걸음 떼었을 때의 무게감은 천지 차이였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내 허리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았다.
"서진아, 처음이면 무리하지 마. 이거 경사로 올라갈 때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이야."
도윤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를 향한 시선.
오랜만에 오롯이 나에게 꽂히는 온전한 시선이었다.
게다가 내 행동을 걱정하고 경악하는 시선이라니...
관심을 받자 다시 아드레날린이 폭발했다.
"웃기지 마. 난 주인공이야. 마운드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모든 관심을 받아야 한다고. 엑스트라처럼 중간에 퍼질 순 없어."
"···뭐? 엑스트라? 플래시?"
도윤이는 내 관종력 넘치는 발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더 길게 설명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타이어를 끌며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스르륵, 헉, 스르륵.
5분 만에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10분 만에 입에서 단내가 났고 15분 만에 폐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유튜브 영상에서 볼 때는 그냥 '와, 힘들겠다' 하고 넘겼는데, 실제로 해보니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어두워서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길을 30kg에 육박하는 타이어를 끌고 가다니.
"헉··· 헉··· 서진아, 그만해! 너 얼굴이 새하얘!"
앞서가던 도윤이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진짜 죽을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허리의 밧줄을 풀고 흙바닥에 대자로 뻗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지금 밧줄을 풀면 나는 영원히 패배자로 남을 것 같았다.
지금 포기하면 그저 평범한 조연 1로 전락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를 경악스럽게 쳐다보는 도윤이의 저 시선!
저 관심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나는 괴성을 지르며 밧줄을 움켜쥐고 다리를 억지로 앞으로 내뻗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쇠맛이 맴돌았다. 피를 토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나는 광기 어린 눈으로 도윤이를 노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기어 올라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윤이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미쳤다··· 저런 상태로도 훈련을 계속한다고?'
도윤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평소에 입만 열면 주인공이니, 플래시니, 카메라니 하며 장난스럽게 말해서 그냥 겉멋 든 녀석인 줄 알았어. 그런데···.'
악착같이 타이어를 끌며 올라오는 서진의 모습을 보니 자신이 잘못생각한 모양이다.
'내가 오해했어. 저 녀석의 말투는 가벼울지 몰라도 야구를 향한 투지와 집념 하나만큼은 진짜다. 시우를 이기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어···!'
도윤이는 주먹을 꽉 쥐었다.
사실 오늘은 적당히만 하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서진 덕분에 자신의 나태함을 반성하게 되었다.
"좋아, 서진아! 나도 안 진다! 끝까지 가보자!"
도윤이가 갑자기 감동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치며 타이어를 미친 듯이 끌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욕을 뱉었다.
'아, 저 미친놈이 왜 갑자기 속도를 높이고 지랄이야! 나 혼자 스포트라이트 받아야 하는데!'
"야, 이도윤! 거기 안 서?! 내가 먼저 올라갈 거라고!"
나는 최대한 빠르게 타이어를 끌며 그 뒤를 쫓았다.
서로를 이기기 위한처절하고도 지독한 야간 훈련.
그 지옥 같은 밤이 하루, 이틀, 사흘··· 친선 대회 전날까지 꼬박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지역 친선 대회 개막일.
주말 오후, 우리 학교 야구장.
나는 라커룸에서 방금 지급받은 새 유니폼을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섰다.
내 등번호 11번.
가슴에 새겨진 학교 로고.
거울 속 내 눈빛은 일주일 전보다 훨씬 독기가 서려 있었다.
매일 밤 타이어를 끌며 다져진 하체는 교복을 입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탄탄해져 있었다.
"서진아."
옆에서 포수 장비를 챙기던 도윤이가 나를 불렀다.
도윤이의 눈빛에는 이제 나를 향한 깊은 신뢰와 전우애가 담겨 있었다.
"오늘 시우가 선발이지만 너한테도 분명히 마운드에 올라갈 기회 올 거야. 우리가 일주일 동안 밤마다 열심히 준비한 거 오늘 제대로 보여주자."
나는 씨익 웃으며 도윤이의 어깨를 쳤다.
"당연하지. 마무리는 주인공의 몫이니까."
도윤이는 내 말을 듣고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나란히 라커룸을 나서서 그라운드로 연결된 계단을 올라갔다.
햇살이 쏟아지는 그라운드.
그리고 귓가를 때리는 거대한 함성.
"와아아아-!"
"강시우! 강시우 화이팅!"
관중석을 올려다보았다.
감독님의 말대로였다.
지역 라이벌 학교 학생들, 동문 선배들, 학부모, 동네 주민들까지.
못해도 200명은 훌쩍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관중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지금 마운드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발 투수 강시우를 향해 있었다.
지훈이와 동호마저 1루 측 관중석 맨 앞에서 시우의 이름을 부르며 열광하고 있었다.
질투심? 아니.
분노? 아니.
내 심장은 전과는 다른 이유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강렬한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200명의 시선. 400개의 눈동자. 그리고 이 열기.
나는 심호흡을 하며 흙바닥을 밟았다.
허벅지에 힘을 주자 일주일간 타이어를 끌며 단련된 근육이 터질 듯 팽팽하게 반응했다.
이제 폼이 무너질 일도 체력이 퍼져서 벤치로 쫓겨날 일도 없다.
전광판에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이 뜨고, 심판의 플레이 볼! 외침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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