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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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겨울
작품등록일 :
2026.03.02 20:12
최근연재일 :
2026.05.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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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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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_1_1

DUMMY

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


(1)




『가도를 통제하는 자, 모든 것을 지배한다.』






***






아무리 시궁창 같은 삶을 살아도 그럴듯한 계획 세 개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아니, 나만 그런가?




복권에 당첨돼 직장을 때려치운다던가,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져 그 또는 그녀 그리고 수십 명의 손주들과 함께하는 백년해로를 꿈꾼다는지, 그것도 아니라면 하얀 갑옷에 오른 기사님에게 선택받는 그럴듯한 인생 계획 말이다.




누구나 일탈을 꿈꾸지 않는가?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데 인류가 가진 그 수백억, 아니 수천억 가지 꿈 중에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방식을 꿈꾼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거라 신께 맹세코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장담컨대 나는 평범한 노동자로 이런 일을 당할 만큼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중요한 일에 종사하지도 않았으며, 선량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음 깊이 감추어 둔 속내를 어디 가서 이야기하거나 글로 남길 정도로 멍청한 사람 또한 아니었다.




“읍읍!”




납치 같은 방법으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이 넓은 우주 어디에 있냔 말이다!




“읍! 읍읍! 읍!!!”




입은 테이프로 꽉 막혀있었고, 등 뒤로 고정된 손은 얼마나 단단히 묶었는지 꼼지락거릴 때마다 손톱 끝이 저릿저릿했다.




퍽!




“얌전히 있어.”




“읍···.”




눈물이 핑 돌 정도의 강렬한 통증에 정신이 아찔했고, 눈에 고인 뜨거운 액체는 코를 따라 그대로 흘러내렸다.



지금 흐르는 눈물은 절대로 아파서 나온 게 아니며 머리에 씌워진 검은 봉지 때문에 불의의 일격을 피할 수 없어서 흐르는 억울함이다.




아니, 맞잖아?




아무런 잘못 없이 교사에게 얻어터지는 아이들도 억울함에 눈물을 터트리지 않던가?




나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잘리고, 마지막 근무 날, 심지어 출근 시간도 아닌 퇴근 시간에 대로 한복판에서 납치당했다.



납치범들은 조용히 하라고 경고하기는커녕 시끄럽다며 대뜸 뒤통수부터 후려갈겼다.



그러니까 지금 흐르는 건 그동안 쌓여있었던 내 억울함이 분명했다.




‘읍···.’




침울한 마음에 흥분과 분노가 가라앉자, 문득 한가지가 떠오르기는 했다.



퇴근 직전, 그러니까 정확히 17시 59분쯤 나는 사내 통신망에 신임 국장을 향한 아주 쪼끔 긴 글을 게시하기는 했다.




내용을 되짚어 보자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년이!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내가 해도 너보다는 잘하겠다!』




『원숭이가 운영해도 네가 운영하는 것보다 빨리 망하지 않을걸!』




정도인데···




아니 국장이라는 사람이 고작 몇 자 끄적였다고 자기 손으로 자른 직원을 납치한다고?




덜컹!




차가 갑자기 멈추면서 생각이 그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도시의 뜨거운 열풍이 차 안쪽으로 밀려들어 왔다.




“아나나스 사업부 맞제?”




“읍!”




“사장이 보냈다.”




“읍!!!”




정말 5,700자 때문이라고?!






***






[행성 바다스]



[4일 전]




쉬이익-




막 도착한 지하철이 뿜어내는 탁한 열기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지하철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기점도 아닌데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고, 단지 이 지루한 출근길에서 그를 구원해 줄 동아줄을 잡아챌 요량이었다.



침착하게 위를 살폈고 주인 없이 대롱거리는 전선이 보이자, 거침없이 사람을 해치고 나아가, 딱 하나 남은 통신선을 잡아채 곧장 자신의 휴대단말에 연결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는 덜컹거리는 지하철과 온몸을 짜부라뜨리는 승객들 사이에서 기도하듯 아주 경건한 태도로 휴대단말을 두드렸다.




『환영···』




『환영합니다. 무료···』




휴~




화면에 무료라는 글자가 보이자, 아주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버튼을 아주 빠르게 연타했다.




“개 같은 놈들 돈은 따박따박 받아 가면서 선은 절대 안 늘리지···.”




주위를 둘러보자,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로 지하철 천장에서 내려오는 선을 하나씩 차지하고 휴대단말에 연결한 채 손바닥만 한 화면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었다.



통신선은 한여름의 장맛비처럼 빽빽해 지하철 천장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 수는 언제나 승객보다 모자랐고 고장인 것도 많았다.



그래서 멀쩡한 선이 딱 하나 남아 있는 오늘은 아주 운 좋은 날에 속했다.




콰광!!!




갑작스러운 소음에 볼륨 키를 재빠르게 연타했지만, 힐끗힐끗거리는 눈초리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승객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다가 모른 척 곧바로 이어폰으로 귀를 막았다.




“아니, 광고는···.”




그는 자신이 탓이 아니라는 듯 한탄을 토로하고는 화면에 다시 집중했다.




쾅! 챙! 쾅!




신화 속의 키메라처럼 가문의 문양이란 문양은 다 가져다 그린 깃발을 어깨에 꽂은, 누가 봐도 정의로워 보이는 백기사와 부모가 보더라도 왜! 색 배합을 그따구로 했냐고 나무랄 복장을 갖춘 악의 기사가 서로를 향해 거대한 쇳덩이를 겨누고 있었다.




“광고 하나 없는 것 봐···.”




평소라면 출력장치 겸 패널을 뒤덮어 한 땀 한 땀 꺼야 할 광고창은 어디 갔나 하나 보이지 않았고, 대신 역동적인 영상이 그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도둑놈들, 적자라서 광고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니···.”




통신사를 향해 한 차례 욕설을 더 내뱉고는 넘길 수 없는 광고의 재생 시간을 확인했다.




09:59···




숨이 막힐 정도의 길이였다.




어떤 망할 배급사의 영화 광고인가?




아무리 A급 영화사라도 감당하지 못할 광고비였고 이런 품질로 10분이면 영화 주요 장면을 다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화면 속의 두 머저리는 아직도 칼을 맞대고 있었고 서로를 향해 위협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조금씩 밀리던 촌스러운 악의 기사가 회심의 찌르기를 사용했지만, 백기사는 찔러 들어오는 칼을 빗겨내고는 이어지는 동작으로 깔끔하게 내리쳐 상대편의 팔을 끊어냈다.




쿵!




거대한 팔이 땅에 떨어지며 모레 먼지가 휘날렸고 균형을 잃은 악의 기사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지만, 백기사는 바로 달려들지 않고 아주 정의롭게도 상대가 다시 자세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백기사는 상대에게 다시 검을 들라는 듯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잘린 팔을 가리켰고, 악의 기사가 검을 잡으려는 찰나 아주 당연하게도 손이 갑자기 분리되며 손목에 숨겨져 있던 함포가 나타났다.




쾅!




악의 기사는 곧장 함포를 발사했지만, 백기사는 자세를 낮춰 아주 손쉽게 쇳덩이를 피해내고는 육중한 칼을 가로로 휘둘러 악의 기사의 머리를 뜯어내 하늘로 날려 보냈다.




“끝인가···?”




B급 연출에 튀어나오는 욕을 참아가며 화면 아래쪽을 살폈지만, 불행히도 광고는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었다.




04:17···




“여기서 뭘 더 보여주겠다고···.”




백기사의 일격에 떨어져 나간 악의 기사의 머리는 하늘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해를 가렸고 화면이 그대로 어두워지더니 전장은 어느새 드넓은 우주로 옮겨갔다.




“···.”




아주 멋지게 일렬로 도열한 외기권용 함선들, 함선들은 엔진에 의해 붉게 달궈진 포탄을 일제히 쏘아냈다.




투콰콰콰쾅!




포탄은 길게 늘어진 붉은 꼬리를 늘어트리며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가로질렀고, 붉은 빗줄기는 아무리 봐도 이교도들이 설계한 것으로 보이는 함선에 내리꽂혔다.




끼이익- 쾅!




포탄에 직격당한 함선들은 종잇장처럼 찌그러지며 내서면 안 될 소리를 내뿜으며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그 참담한 광경에 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내 눈···.”




외기권용 함선을 함포로 쏴 맞추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고, 맞췄다고 하더라도 폭발하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우주에서 들리는 거라고는 본인의 숨소리가 전부였다.



이 싸구려 프로파간다에 ‘F!’ 낙제점을 날리고는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성지를 수호하라!』




『십자군에 당신이 필요하다!』




『부름에 답하라!』




웃는 얼굴로 엄지를 치켜든 기사와 함선 대원들을 끝으로 십자군, 교황청 등등의 다양한 로고가 차례차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개 같이 털리나 보네···.”




겁먹은 개가 요란한 법이었고 이런 광고만 아니라면 ‘성전’은 그의 삶과 아주 멀고도 먼, 저 우주 너머의 일로 그가 전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저 멀리 떨어진 세계에서 일어난 일보다 당장 자기 집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이 훨씬 중요한 법이었다.




“바다스··· 바다스··· 바다··· 찾았다.”




그는 화면을 한참 동안 스크롤 하다 그가 원하는 지역뉴스를 찾아 클릭했다.



오늘은 어떤 사건 사고가 그를 반겨줄까?



흥분에 들뜬 마음도 아주 잠시,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 그를 반겼다.




“어?!”




혼잣말하는 동안에도 같이 탄 승객들이 힐끗힐끗 그를 쳐다봤지만, 이번만큼은 모두가 약속했다는 듯이 얼빠진 소리를 낸 그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코롤료프 설계국 국장, 교황령 체류 중 별세』




“에이~ 거짓말이지, 이런 게 바로 주가 조작을 위한 선동이고 가짜뉴스지···.”




재빠르게 뉴스를 훑었다.



『콘스탄치야 코롤료프 항년 78세···』



『계약을 위해 교황청 방문 중···』



『사인은···』



『···아들 부부 전쟁에 휘말려 사망···』




전쟁 반대론자인 아들 부부와 현··· 아니, 이제는 전국장이 돼버린 콘스탄치야 코롤료프와의 불화는 바다스 거주민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고, 분쟁 행성에서 부부의 미스터리한 죽음은 소문을 한층 더 부추겼다.




비운의 가족사, 전쟁상 어머니와 평화주의자 아들···




슬픈 이야기기는 하지만 당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혈육으로는 그녀의 하나뿐인 손녀··· 코롤료프가 유일한 가운데···』



『콘스탄치야 코롤료프가 생전에 남긴 유언장에 다른 지시 사항이 없는 이상 후계자가 그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을 빠르게 훑은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콘스탄치야 코롤료프의 손녀에 대해 검색했다.




“빨리, 빨리···.”




오늘따라 로딩이 유난히 느리게 느껴졌지만, 그는 로딩이 마저 끝나기도 전에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골 행성 처녀처럼 머리를 목뒤로 질끈 동여맨 그녀의 가느다란 팔에 거대한 배너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전쟁 이제 그만』




『전쟁을 끝내자』




배너에 쓰인 내용만 봐도 밑에 딸린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동문 ···코롤료프···』




『···코롤료프 반전운동을 주도하다 경찰 당국에 체포···』




“망했네···.”






***






프리츠는 노심초사한 마음에 입이 타들어 갔지만, 앓는 소리 따위는 감히 머금지도 못한 채 서류 더미를 넘기고 있는 신임 국장을 근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찌이익-




그녀의 손에 들린 펜이 그저 종이 위로 미끄러지며 가느다란 선 하나가 생겨난 것뿐이었지만, 그의 귀에는 함선의 외부 장갑이 찌그러지는 소리보다도 더 무시무시했다.



작은 손짓 한 번으로 또 하나의 부서가 정리됐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그녀를 지켜본 프리츠는 그녀의 이러한 폭정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부서의 역할을 역설해도 서류를 저 붉은 펜으로 난도질해 가며 본인의 의견을 관철할 게 불 보듯 뻔했고, 도리어 심기가 불편해진 그녀가 그녀만의 평가 기준에 겨우 턱걸이한 부서들마저 날려버리는 불상사로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했다.



그래서 프리츠는 묻는 말에만 답하며 그녀의 옆에서 마른침만 쥐어 삼키고 있었다.




사락~




무사히 넘어갔구···




사락-




안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서류가 다시 앞쪽으로 넘겨졌다.




탁- 탁- 탁-




그녀는 펜 끝으로 탁자를 두드리더니 이내 눈을 가늘 게 뜨고는 서류를 검토했다.




“아나나스 사업부? 뭘 하는 부서길래 인원이 이렇게 적은데 예산을 이렇게 많이 배정받은 거죠?”




안 들킬 줄 알았지만 결국 그녀에게 걸리고 말았고, 프리츠는 이미 말라붙은 입을 억지로 쥐어짜 최후의 침을 꿀꺽 삼켰다.




“아나나스 사업부는 그게··· 그러니까···.”




탁.탁.탁.탁.탁.




“불가능에··· 도전하는 사업부입니다.”




“도전? 힘들게 따온 예산을 허공에 뿌린다는 말로 들리는데 제가 맞게 이해했나요?”




프리츠는 그녀의 반응에 아차 싶었다, 요새 젊은 사람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지만 신임 국장은 그녀의 조모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도전, 열정, 노력, 패기 이런 단어들이야말로 젊은이의 특권이 아니었던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그들이 많은 실패를 거듭했지만 그만큼 많은 성공을 거두었···.”




그녀는 쓸데없는 사족은 치우라는 듯 손을 휘휘 젓고는 곧장 결론부터 물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개발한 것 중에 가장 유명한 거로는 KL-47이 있지요. 외기권과 대기권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아나나스 사업부의 역작입니다.”




“대기권 진입과 탈출을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궤도 엘리베이터나 매스 드라이버의 도움 없이?”




“바로 그렇습니다.”




프릿츠의 대답에 신임 국장은 흥미롭다는 그를 바라봤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주 뛰어난 설계로 지상뿐만 아니라 함선에도 착륙시킬 수 있으며 거의 모든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도는?”




“안타깝게도 관성 감쇠 장치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가도를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그녀는 오히려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형이라는 건데···, 그런데 왜 저는 들어본 적이 없죠?”




누그러진 표정을 확인한 프리츠는 신이 나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KL-47라는 이름보다는 다른 이름으로 더 잘 불리니까요. 파이어플라이, 비단털쥐, 흑효, 죽음의 십자···.”




프리츠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신임 국장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는 고개를 기울였다.




“죽음의··· 십자가?”




“그게 아니라 그, 그건···.”




프리츠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신임 국장은 통신망에 ‘죽음의 십자가’를 검색했다.



국장실에 설치된 통신망은 그 가격에 걸맞게 잠깐의 기다림도 없이 고객에게 그녀가 원하는 결과물을 곧장 보여주었다.




찌이익-




결과를 확인한 그녀는 아나나스 사업부 위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빨간 줄을 그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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