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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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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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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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_1_3

DUMMY

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


(3)




두 번 남은 퇴근길, 내일이 마지막 출근일 터였다.



설계국을 나선 루는 곧장 한숨부터 내쉬었다.




“기분 전환으로 지하철 대신 버스나 탈까?”




버스를 타면 통신망을 사용하지 못할 테지만, 통신망에 보고 싶은 이야기는 올라오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되는 내용에 심사가 뒤틀릴 정도였으며, 자신의 손가락질 한 번에 기자들의 뚱뚱한 배가 더욱 토실토실해진다는 사실조차 배가 아팠다.



바다스 통신망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신임 국장에 대한 칭찬을 넘은 칭송으로 가득했다.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해야만 했던 구조조정』




『부실 사업 일괄 정리, 코롤료프 설계국의 새로운 바람』




『늙어버린 설계국에 젊은 피를 수혈한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에체리 이바나 코롤료프, 오만함인가 자신감인가?』




『지배구조 강화를 위한 제 살 파먹기 - 에체리 이바나 코롤료프,』




숙련된 전문가의 유실, 기술 유출, 사업 구조 개편이 완료되기 전까지의 수익에 대한 우려 등, 루가 보기에는 날카로운 통찰이 뒷받침된 사설이었다.



하지만 이 객관적인 통찰이 담긴 기사 밑에 달린 글들은 가관이었다.




[철밥통 날아가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한데 무슨 소리임?.?]




[언니! 화끈해요! 몇 개만 더 날려요!]




[이렇게 안 했음 장담컨대 5년 안에 망했음]




니콜라이도 이런 글들을 읽다 정신이 홱 돌아버린 게 분명했다.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루는 국장과 바다스 주민들의 정신 상태에 대해 한탄하며 버스에 올라 빈자리로 향했다.



버스는 통신선이 설치되지 않기에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없어 항상 자리가 남아 거동이 불편한 늙은이들이나 이 낯선 행성의 풍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아주 가끔 사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루는 그대로 창에 기대어 바깥을 보았다.



네모 빤 듯한 도시, 중앙에 자리 잡은 고전적인 궤도 엘리베이터와 달리 주위에 세워진 각진 회색빛 건물들은 행성 날씨만큼이나 삭막하고 차가웠다.



도시에서 유일하게 제국적인 미를 갖춘 궤도 엘리베이터의 가장 큰 화물칸이 굼벵이보다도 더 느릿한 속도로 상승하고 있었다.



그 화물 중에 설계국 산하 지상 공장에서 만든 외기권용 함선 동체가 아마 하나쯤은 포함돼 있을 터였고, 며칠 후에는 자신도 저 화물칸에 몸을 실어야 할 터였다.



물론 궤도 엘리베이터는 함선의 동체를 실을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화물칸을 포함해 그보다 작은 크기의 화물칸도 여럿 가지고 있었지만, 작은 화물칸을 타기에는 통장 잔고가 넉넉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표부터 구하고··· 직항편, 남아 있겠지?”




니콜라이와 달리 헛된 희망을 품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않은 과거의 행동이 후회됐다.



정말 운이 없다면 커다란 짐을 질질 끌고 궤도 엘리베이터 올라간 다음 셔틀을 타고 다른 궤도 엘리베이터로 이동한 후에 거기서 다시 함선을 타고 다른 행성 두 개쯤을 거쳐야 고향 행성에 갈 수 있었고, 거기서 또 집으로 가려면···.




“아이고, 머리야.”




이 행성에 발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지만, 떨어트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행성의 마력에 매료돼 그 제안을 덥석 수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루는 조금은 왜소해진, 자멸한 제국이 남긴 기둥을 올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집을 정리하고 이삿짐부터 싸야 했다.




“작작 샀어야 했는데···.”






***






“집에 먼저 연락했어야 했나?”




어젯밤 한참을 정리했지만 채 정리가 마무리되지 못한 방을 둘러보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더 정확히는 여유가 생기자 애써 덮어놓은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온 생각이었다.




“출근할 시간이네.”




루는 직면하기 싫은 사실을 다시 한번 덮어버렸고, 통신망은 꼴도 보기 싫어 마지막 출근도 부러 버스에 몸을 실었다.



점점 더 거대해지는 제국의 유산을 바라보며 루는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제국과 자신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둘 다 작은 충격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있지 않나?



다만 제국은 가도, 궤도 엘리베이터, 외기권용 엔진, 통신망 기타 등등 여러 유산을 남겼다면 자기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텅 빈 통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표는 잡았잖아?”




셔틀에 타 다른 궤도 엘리베이터에 있는 정거장까지 한번 옮겨가기는 해야 했지만, 곧장 고향으로 향하는 몇 남지 않은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 단 하나 남아 있던 그 통신선처럼···



운수를 판가름할 때,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내려오는 화물칸, 아니 정확히는 ‘승객 전용’ 승강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야~ 부럽네. 복권은 도대체 언제 당첨되냐?”






***






“좋은 아침입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기는 했지만 놀랍게도 사무실에 있는 사람이라고는 과장과 선임 설계사뿐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날은 꼴찌를 면했네요. 어차피 니콜라이가 안 나온다고 했으니, 꼴찌는 아니었으려나?”




루가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자, 부장이 다른 직원들의 행방에 대해 알려주었다.




“인수인계는 어제 다 얼추 마무리돼서 오늘은 다들 나오지 말라고 했네.”




“또 저만 전달 못 받았군요? 저만 쏙 빼놓고 안 알려주시는 건 좀 가슴 아픈데, 저도 이사를 마무리해야 해서 들어가 봐도 괜찮을까요?”




허락을 받기도 전에 내려놓은 가방을 다시 들어 올렸고 어깨에 두를 찰나에 선임 설계사가 그를 제지했다.




“동생, 무슨 소리야 너는 남아서 전화 받아야지?”




“전화선 뽑을게요.”




신속한 결단을 내린 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 사무실에 놓인 단 하나뿐인 전화기를 뒤집었다.




“야, 야! 어제도 그렇고 너 자꾸 그렇게 삐딱하게 하다가는 정말 설계국에서 사람 보낸다니까?”




루는 그녀의 충고를 깔끔하게 무시했다.




“한참 후에나 알아차릴 텐데 그때쯤이면 저는 이미 고향에 있을걸요? 외곽이기는 한데 치안도 좋고 외부와 왕래도 별로 없어서 바로 잡힐 거고요.”




가만히 듣고 있던 부장은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고향 사람을 국장이 매수할 수도 있지 않은가?”




“두 다리 걸치면 다 아는 사람들이고, 서로 숟가락 개수까지도 알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하겠어요? 이사 다니기 쉬운 행성도 아니고···.”




“원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는 법일세.”




“완전 깡촌이라 그런 게 그렇게 매력 있지 않다니까요··· 이거 왜 안 빠지는 거지?”




루가 계속해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렸지만, 통신선은 마치 접착제라도 칠해놓은 것처럼 빠지지 않았고, 루는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나머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이거 원래 한번 끼면 안 빠지는 거예요?”




통신선을 빼보는 건 처음이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설계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구심에 둘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선임 설계사가 멋쩍게 웃었다.




“내가 어제 퇴근하기 전에 고정했거든.”




그녀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루는 서랍을 열어 안에 든 가위를 꺼냈다.




“동생! 동생! 그 선 자르면 시설관리부에서 바로 알아차릴 거라고!”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 루는 통신선을 파고드는 가윗날을 멈춰 세웠다.




“진짜예요?”




“정말일세, 자네도 잘 알다시피 통신선은 설계국의 시설관리부에서만 관리하는 게 아닐세.”




“사무실 통신선인데요?”




“그냥 평범한 사무실 통신선이 아니라 바다스 자치행성 정부에서 협약에 따라 설계국에 제공하는 ‘통신선’이지.”




부장의 말에 가위를 내려놓고는 선임 설계사를 향해 전화기를 들이밀었다.




“빼줘요.”




“동생~ 그, 그게 말이지···.”






***






그녀의 길고 전문적이고 쓸데없이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분리 불가였다.




“옆 부서에서 개발한 접착제를 발랐다고요? 이거 제 사비로 산 전화라고요!”




루가 홧김에 통신선을 뜯어버릴 듯이 잡아당기자, 선임 설계사는 급하게 그를 멈춰 세웠다.




“야! 그렇게 세게 잡아당기면! 잘못하면 끊어진다고!”




“그냥 설비팀 오라고 해요!”




“설비팀이 문제가 아니라니까!”




옥신각신했지만 그녀는 루를 막을 수 없었고, 있는 힘껏 통신선을 당겨 선을 끊어먹을 찰나 벨소리가 울렸다.




띠링띠링~ 띠링띠링~




선임 설계사는 루가 당황한 틈을 타 다음 벨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재빨리 수화기를 잡아들고는 그대로 루를 향해 던졌다.




[···]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붙잡은 루는 인상을 구긴 채 선임 설계사를 노려보았다.




[여보세요?]




“뭐해? 받아야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녀의 재촉과 통신선 너머에서 전해져오는 다급한 음성에 루는 얼굴을 찌푸린 채 수화기를 귀에 가져갔다.




“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다행이다! 연결이 안 될 줄 알았어요!]




어린 소녀로 추정되는 앳된 목소리에 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고객님, 아나나스 사업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 제가! 지금 쫓기고 있거든요!]




“아··· 고객님, 지금 쫓기고 계시는군요. 경찰에 신고하면 될까요? 현재 계신 위치를 말씀해···.”




[저! 저! 지금 우주에요!]




“고객님, 지금 우! 주··· 에? 계시는군요.”




반사적으로 그녀의 말을 반복했지만 루는 자기가 따라 해놓고도 그가 내뱉은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소화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상사들을 바라봤지만, 그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였다.



루는 마이크 부분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예요? 끊을까요?”




현장감이 느껴지는 수화기 너머의 사실적 연기와 집중된 이목에 루는 조심스레 둘의 의견을 물었다.




[저기요!? 저기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린 부장은 루에게 계속해 보라는 듯 다급하게 손짓했지만, 루의 손은 여전히 전화를 틀어막고 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제는 간절함마저 느껴지는 소녀의 간곡한 외침에 선임 설계사마저 빠르게 손을 흔들었다.




“고객님··· 지금 우주에서··· 쫓기고 있다는··· 말씀이죠···?”




[흑··· 맞아요···.]




물기마저 느껴지기 시작한 이름 모를 고객의 말에 루는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지금 타고 계시는 기체가···?”




[죽음의 십자가에요···.]




그녀의 대답에 루는 자유로운 다른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KL-47를 조종하고 계시는군요. 혹시 지금 뭐에 쫓기고 계시는가요? 함선일까요?”




[망취박쥐에 쫓기고 있어요.]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그녀는 더 이상 말끝을 흐리지 않았고, 루도 그녀의 연기를 인정하고는 그녀가 만들어 낸 참신한 설정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설계국에서 탄생한 요격기에 추격당하는 다목적 전술기라니···




스파이라도 되는 건가?




타 사업부에서 계발한 망취박쥐, 그러니까 KL-25가 언급되자, 부장과 선임 설계사는 손으로 재촉하는 것을 넘어 횟대 치듯 양팔을 휘둘렀고, 루는 하는 수 없이 이 엉뚱한 연극 무대에 올랐다.



다목적으로 계발된 KL-47이 요격용으로 개발된 KL-25보다 둔한 게 당연했지만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고객님, 혹시 출발하실 때 연료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셨을까요?”




[연? 연료요? 아마도요···.]




이 부분은 미처 생각 못 했는지 그녀의 말투에서 자신감이 다시 뚝 떨어졌다.




“고객님, 계기판 왼쪽 중간에 있는 게 연료계인데 바늘이 어디에 있을까요?”




[위! 위쪽이요!]




“전부 말씀일까요?”




[네! 두 개 전부 위쪽에 있어요!]




“고객님, 우선 오른쪽 무릎 옆쪽에 있는 노란색 덮개를 열고 스위치를 아래로 내려보실까요?”




[···]




[내렸어요!]




“잘하셨어요, 고객님. 이제 스로틀 아래쪽을 보시면 스위치가 4개가 보이실 텐데 전부 위쪽으로 올려주세요.”




[했어요!]




“이제 스로틀을 중간까지 내렸다 다시 앞으로 쭉 밀어보실까요?”




[그, 그러면···.]




“잠깐 느려져도 그렇게 안 하시면 어차피 잡히는 건 똑같습니다, 고객님”




[알겠어요···.]




꿀꺽-




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묘한 진동음의 수화기를 통해 전해졌다.




우우웅-




“고객님, 무사히 추격을 뿌리치기를 바랍니다. 이상 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의 루였습니다.”




[네? 루? 갑자기 그게 무슨?]




그녀의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으아아앗!!!]




띠- 띠- 띠- 띠-




비명과 함께 통신이 그대로 두절되었고 전화에서는 통신이 끊어졌다는 음성만이 반복되어 출력되었다.




딸깍-




“정말 진짜 같지 않아요? 누가 보면 영화인 줄 알겠어요.”




특히 대미를 장식한 대기권용 엔진 구동음과 그녀의 고성은 영화의 효과음으로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처음에 행성 밖이라고 안 했으면 누구라도 깜빡 속았을걸요? 우주에서 통신이라니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온갖 오만상을 썼지만 나름 유쾌한 장난 전화를 받은 것 같아 기분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았다.




이 마당에 더 나빠질 리도 없고···




“우주에서 실시간 통신··· 꿈만 같은 얘기겠죠?




“꿈이 아니라 허황한 얘기지, 나는 그런 기계를 만들려고 시도해 본 적조차 없다네.”




“부장님이면 한 번쯤 시도해 봤을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 누님은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선임 설계사는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나! 나 말이야?! 나는 그쪽 전공도 아니고 애초에 통신 쪽은 교황청이 워낙 꽉 잡고 있어서 찔러보기도 쉽지 않을걸?”




교황청···




“그나저나 이 동네 꼬마들의 주먹다짐 같아 보이는 전쟁은 도대체 언제 끝낸대요?”




갑작스러운 화제전환에도 선임 설계사는 질문을 능숙하게 흘려넘겼다.




“글쎄다? 애써 되찾은 성지도 다시 빼앗기게 생겼다는데 넘어가면 어떻게든 끝나지 않을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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