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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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도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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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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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_1_4

DUMMY

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고객센터


(4)




『성지의 보호자』




『우르잣의 군주』




침통함에 떨리는 양손이 얼굴을 가린 가면을 덮었고 간절함에 노쇠한 마음이 기도를 올렸다.




“신이시여···.”




이뤄낸 업적과 일궈낸 가문에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볼품없는 모습이었지만, 회의실 안 그의 충성스러운 가신 중 그 누구도 주인의 위엄 떨어진 지적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들 모두가 모시는 주인과 함께 기도를 올리고 싶었고, 차마 그리하지 못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오랜 기간 함께한 왕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지만, 이 일이 그의 매우 인간적인 부분이었다.




“그녀가 돌아온 것인가? 어떻게?”




운명일지 불우한 굴레일지도 모를, 얽힌 실타래와도 같은 소식을 가져온 부하에게 설명을 요구한 왕은 이내 얼굴에서 손을 떼고는 명령을 거두었다.




“아니, 되었다. 이미 돌아온 거라면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힘겹게 벗어던진 멍에가 그의 결단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로 목에 씌워졌다.



왕은 힘겹게 창가로 다가가 기록상 가장 이른 시기에 세워진, 아마도 가장 오래된 궤도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았다.



대지에 우뚝 선 저 새하얀 기둥은 몇 번이고 주인을 바꾸었지만, 흔하디흔한 상흔 하나 없었고 그가 젊었을 적 마주했던 그 자태 그대로 온전한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피와 기름을 한껏 머금은 모래 바다를 딛고 선 그때와도 같이 기둥에 매달린 모든 승강기는 자리에서 멈춘 채 시체처럼 공중에 대롱거렸다.



유리에 비친 이마의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 시절로 착각했을···



아니, 아니지··· 그때는 자부심과 고양감으로 흘러넘쳤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거라고는 물먹은 듯 몸을 지독하게 내리누르는 패배감과 절망뿐이었다.



뼈를 부러뜨릴 뜻 짓누르는 무게에 무릎 꿇으려는 순간 지독하게 차가운 목소리가 삐걱거리는 관절을 그대로 굳혀버렸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하?”




유일하게 왕의 신하가 아닌 조언가인 그녀에게서는 회의실 안을 팽배하게 지배하는 무력감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고, 그녀는 모두가 공유하는 고통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듯했다.




그녀의 무감한 눈은 왕에게 허탈함만을 남기고는 다른 감정들을 모조리 도려냈다.




“일단··· 그녀를 다시 만나봐야지.”






***






“루 군, 마지막 날까지 수고했네.”




수고라고 할 것조차 없었다.



그 장난 전화가 그에게 걸려 온 마지막 전화였다.




“자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던가?”




“네, 운 좋게 직항으로 가는 표를 구했어요. 부장님도 나중에 한 번 오시죠. 적어도 여기보다 먹을 건 많거든요.”




바다스의 음식이 맛이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공업에 몰두한 행성답게 식단이 지나치게 단조롭고 기름졌다.




“참! 나가시고 뭐 해 먹고 살지는 결정하셨나요?”




부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작은 사업을 하나 해보려고 하네. 내 평생의 꿈이었거든.”




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이요? 멋지네요. 누님은요?”




“나?”




통신선과 이미 하나가 되어버린 전화기값을 물어주는 대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거라며 반쯤 사용한 접착제를 억지로 떠넘김 선임 설계사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말을 툭 뱉었다.




“나는 작은 철물점이나 정비소나 수리점이나 뭐 그런 거 하려고.”




“가게요!? 누님은 말아먹을 것 같아서 벌써 걱정이 드네요.”




“말아먹는 건 부장이겠지 아주 대차게 말아먹을걸?”




그녀의 말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 낄낄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들 성공하시면 저 잊지 마시고.”




루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파리처럼 비볐다.




“그래, 사업에 성공하면 꼭 자네를 부르도록 하지.”




“나도 자리 잡으면.”




선임 설계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루는 그녀와 손을 맞잡고 이어서 부장과 악수를 한 후 곧장 설계국을 빠져나왔다.



정문에서 멈춰선 루는 곧장 몸을 돌리고는 『코롤료프』가 멋지게 양각된 현판을 향해 삿대질했다.




“이딴 행성 다시는 내가 다시는 오나 봐라! 잘 때도 머리는 이쪽으로 안 둘 거다!”




설계국을 향해 저주를 마음껏 퍼부었지만, 감정이 가라앉자, 현실감이 그를 다시 엄습했다.




지하철? 아니면 버스?




흠···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지하철에 한 번···




아니, 아니지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볼 김에 버스에···




아무리 생각해도 통신비가 아까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갑작스레 그 앞에 멈춘 검은색 승합차가 그의 결정장애를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드르륵-




문이 열림과 동시에 장정 둘이 튀어나오더니 무자비하게 그를 짐칸으로 쑤셔 넣었다.




“당! 당··· 으으읍!”




곰의 발바닥처럼 두꺼운 손이 입과 코를 틀어막았고, 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곧바로 테이프로 다시 입을 틀어막더니 그와 동시에 봉지가 머리에 씌워지며 눈앞에 캄캄해졌다.



그러고는 우악스럽게 팔을 뒤쪽으로 당기더니 밧줄인지 뭔지 모를 질긴 끈으로 손목을 단단하게 고정했다.




“읍! 읍읍! 읍!!!”






***






팍-




종이인지 천인지 모를 봉지가 벗겨짐과 동시에 갑자기 찔러오는 강렬한 빛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나나스 사업부 맞제?”




“코롤료프 설계국, 루 아닌가?”




두 번째 물음에서야 흐릿하게 보였던 윤곽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푸근한 인상을 가진 납치범은 동네 식료품점을 운영할 법한, 덩치 좀 있는 평범한 바다스 주민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피부는 구릿빛이었다.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납치범은 루에게 다가오더니 얼굴에 들러붙은 끈적한 테이프를 가차 없이 뜯었고 통증에 몸서리칠 새도 없었다.




“저, 저 통장에 있는 것도 거의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는 손에 든 테이프를 루의 가슴에 붙인 후 그 위를 탁탁 두드리더니 복면을 쓴 다른 납치범들과 함께 시시덕거렸다.




“아따~ 이 친구는 그래도 말이 좀 잘 통하네그려?”




이 친구는?




그 단어를 시작으로 머리는 그제야 몸 곳곳에서 보내오는 신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몸의 통증은 말할 것도 없었지만 조금 더 원초적인 감각들이 경종을 울렸다.



야릇하고 비릿한 쇠붙이 냄새가 루의 코를 간질였고, 납치범들의 농담 사이사이로 미약한 신음 소리가 귀에 흘러들어왔다.



루는 곧 꺼질 것만 같은 그 생명을 무시하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 고개를 푹 숙였다.



바닥을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는 전화와 곳곳에 찍혀있는 붉은 발자국만으로도 고개를 돌리고자 하는 호기심을 억누르기에 충분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는지 처음 그에게 말을 건 그 납치범이 껄껄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루, 그래서 너는 어디 출신이제?”




“노··· 노르···.”




“아따 안 들리네. 어디서 왔다고?”




“아치마에서 왔습니다···.”




“아치마? 거기는 또 어데래?”




납치범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다른 납치범이 아치마의 대략적인 위치를 말해주었다.




“아이고 외곽 멀리서도 왔네, 뭐가 좋다고 여기까지 왔냐?”




“돈··· 돈 벌려고요?”




“많이는 벌었고? 맞다, 통장에 한 푼도 없다 했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코롤료프 설계국 아나나스 사업부 루 맞제?”




“예···.”




“너 거기서 어떤 일 했니?”




두려움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루는 들릴 듯 말 듯 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화를 받았···.”




“뭘 했다고?”




“전화를 받는··· 업무를 했는데요.”




“전화? ‘띠링띠링’하는 그 전화?”




납치범은 그의 말을 듣고 하도 어이가 없었는지 후려칠 듯,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다른 납치범의 가벼운 외침에 동작을 멈췄다.




“아~ 조장 기억났어요!”




“기억?”




“얼굴을 본 게 아니라 목소리만 들었던 거라 긴가민가했는데 듣다 보니 확실히 그분이 맞는 것 같아요.”




조장은 말투가 가벼운 납치범을 향해 몸을 천천히 돌렸다.




“그분~?”




“왜 있잖아요··· 성함이 이반, 알렉산드로, 세르게이, 블라디미르, 드미트리, 빅토르, 표트르 그리고 ‘우리’ 니콜라이인 분이요.”




퍽-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중에서 잠깐 멈췄던 손이 루를 그대로 후려쳤고 루는 의자와 함께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이크.”




몸이 옆으로 넘어가며 얼굴이 땅에 부딪혔고, 미적지근한 액체가 볼을 적시며 그와 함께 강렬한 쇳내가 코를 자극했다.




니콜라이···




하루 전만 하더라도 안토노프 설계국에 취직했다고 기고만장했는데 지금은 손이며 발이며 어디라 할 것 없이, 입에서까지 피를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취직하기는 했네, 저 꼴이 되어버렸지만···



벽을 큼지막하게 차지하고 있는 안토노프 설계국의 로고를 등진 콜랴는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걸 제외하면 부검대 위의 시체보다 나을 게 없어 보였다.



루가 몸을 억지로 비틀자, 의자가 기울어지며 얼굴이 천장으로 향했다.




철퍼덕




루가 천장을 바라보자, 조장이라는 자는 의자를 밟아 다시 원래의 상태로 되돌렸다.




“니 눈으로 똑똑히 보고 묻는 말에 똑띡이 대답해라 안 그라믄 너도 저거랑 똑같이 만들어삔다. 알았응겨?”




루가 눈을 질끈 감자 조장은 두꺼운 손으로 그의 얼굴을 탁탁 때렸다.




“알겠으만 고개 끄덕여라.”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조장은 그를 의자와 함께 아주 가뿐하게 일으켜 세웠다.




“전화를 받을 때 왜 가명을 사용했지?”




“그, 그게! 그러니까···!”




루의 구차한 설명을 듣던 조장의 얼굴은 점차 구겨졌고, 다른 납치범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깔깔거렸다.




“니 말은 홧김에 우리에게 그런 장난을 쳤다는 말이제?”




“그게 아니라 갑자기 해고당해서! 국장에게 너무 화가 나···!”




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장은 루의 가슴을 걷어찼고, 충격에 뒤로 넘어가다 바닥에 나뒹굴던 전화에 날갯죽지를 찍히자, 루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조장 끝장내시더라도 필요한 건 확인하고 끝장내셔야죠.”




“막지 마라. 저런 새끼들만 보면 배알이 뒤틀려.”




조장은 바닥에서 연신 꿈틀거리고 있는 루를 쏘아보았다.




“좋은 일 좀 하겠다는데 돈부터 내놓으라고 하지 않나, 돈만 된다 싶으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그 족속들은 피가 더럽다지만, 저건 어떤 의미에서 그 새끼들보다 더 더러운 놈이라고.”




동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장은 루에게 다가가 그가 생각하는 안 죽을 정도의 세기로 그를 걷어찼다.




퍽-




“친구라는 놈은 그래도 반항이라도 했는데 이 새끼는 아주···!”




퍽- 퍽-




퍽!!!




연신 걷어차다 힘 조절을 실수했는지 루는 전화기와 함께 설계국의 로고가 그려진 벽에 매다 꽂혔다.




“어휴~”




조장은 개운하다는 듯 어깨를 몇 바퀴 돌리고는 벽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루에게로 다가갔다.




“야! 너 그 노인네 알지?”




“노, 노. 콜록콜록?”




기침을 연신 콜록거리자, 조장은 답답하다는 벽을 후려쳤다.




“왜? 몰라? 그 머리가 반쯤 센 그 노인!”




“아···, 부장···님···?”




“그래! 그 부장이라는 놈! 그 새끼 어디로 간다고 했어?!”




카악~ 퉷!




루는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냈다.




“고작··· 그런 거 물어보려고 사람을 족친 거야···? 그냥 처음부터 물어보지 그랬어?”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주춤거렸지만, 그 주춤거림은 흠칫했다기보다는 의아함으로 인한 주춤거림에 가까웠다.




퍽-




“미쳤나? 곱게 죽고 싶으면 빨리 말하기나 하지 그래?”




퍽-




“부장은···.”




조장은 못 참고 재촉했다.




“부장은?!”




“부장은··· 사업을 하러 간다고 했어.”




“어디로!!!”




“···”




입만 뻐끔거리자, 조장은 곧장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 새끼 지금 뭐라는 거야! 말해! 빨리 말 못해?!”




“그걸···.”




루는 돌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한테 그냥 사업하겠다고만 말했는데.”




큭! 크큭! 큭큭큭!




루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하자 조장은 뒤로 힘껏 끌어당긴 팔을 휘두르지 못했다.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루는 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짜잔!”




어느새 자유롭게 된 루의 손에는 전화기와 통신선이 들려있었다.




“손! 누가 묶었어!”




“조장!!!”




뒷말은 없었다.




철퍽-




눈을 포함한 오른쪽 부위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사라졌고, 땅에 쓰러지고 나서야 피가 사라진 틈을 천천히 채웠다.




“이···!”




거기에 그치지 않고 조장의 눈썹 윗부분이 사라졌으며, 다른 납치범들도 턱이라든지, 목이라든지 얼굴의 어느 한 부위의 뼈와 살이 동시에 날카로운 숟가락으로 파낸 것처럼 깨끗하게 녹아내렸고




철퍼덕- 퍼덕-




연이어- 거의 동시에 땅에 쓰러졌다.




.

.

.




벽에 생긴 구멍으로 바깥 공기가 흘러들며 피 냄새를 밀어냄과 동시에 고요함이 곧장 그 틈을 차지했지만, 고요함도 곧바로 들이닥친 구둣발 소리에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팀장님, 여기 아직 살아있는 자가 있습니다.”




그 말에 주변을 한가로의 둘러보던 키 큰 여인은 팔로 머리를 감싼 채 엎어져 있는 남성 앞에 쪼그려 앉았다.




“바다스광역경찰청 공공질서보안국 9팀 팀장 루드비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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