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장. 배신자 처단
1.
북소리를 낸 주인공은 태사자의 휘하 병력이었다.
태사자의 근거지인 시상은 환구항에서 서쪽 방향 140km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동쪽 방향 240km 이상 떨어진 말릉에서 장강을 거슬러 올라오려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속력으로 2일이 걸리지만, 장강을 타고 내려오는 태사자의 병력은 시상에서 9시간 만에 환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태사자의 수군이 엄백호의 전서구를 받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평소 훈련이 잘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더해, 수춘에 주둔한 고순의 서신이 큰 역할을 했다.
장각의 사술은 지력이 높은 상대에게 취약하고, 동시에 무력에 극의를 개척한 인물에게도 잘 통하지 않았다. 고순은 연진대전의 장군전에서 원소군의 안량을 물리친 이후, 무력의 극의에 도달했다.
지난 3년간, 태사자가 엄백호의 방문에 맞춰 말릉을 방문한 것처럼, 고순도 엄백호의 방문에 맞춰 여강으로 이동했었다.
엄백호를 암습하기로 작정한 장각은 껄끄러운 고순이 여강을 방문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았다.
장각은 고순에게 ‘수춘으로 엄백호가 방문할 것이니 여강으로 오지 말고 대기하라’ 는 거짓 명령서를 띄웠다.
명령서를 받은 고순은, 엄백호의 이동구간 경호와 영접을 차질 없이 준비하기 위해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말릉의 장훈과 친우인 시상의 태사자에게 문의했다.
장훈은 엄백호가 수춘으로 간다는 내용을 우번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우번은 ‘금시초문’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우번이 엄백호의 수춘행을 모르고 있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장훈은 이 내용을 다시 고순과 태사자에게 알렸다.
고순의 서신에 의해 태사자와 장훈이 경계심을 가지게 됐던 것이다.
장훈은 엄백호의 전서구를 받는 즉시, 호림항에 구원 명령을 내렸고, 태사자는 직접 2만 명의 가용병력 전부를 동원해, 환구항으로 달려갔다.
태사자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이동 중 뒤처지는 배가 많아, 환구항 인근에 도달할 때, 60척의 군선만이 태사자의 기함 곁에 있었다.
나머지 340척의 군선은 시간을 두고 도착할 것이다. 그러나 태사자는 확보한 60척만으로도 충분히 배송의 수군을 격퇴할 자신이 있었다.
태사자 병력의 북소리를 들은 것은 엄백호 뿐만 아니었다. 엄백호의 군선을 포위하고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던 배송의 수군은, 후방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멀리 보이는 60척의 군선 선두에는 시상에 위치한 태사자의 장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태사자의 군선은 빠른 속도로 접근했고, 그 자세는 우호적인 것이 아닌 매우 호전적인 공격 성향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눈치 빠른 배송의 병사들은 무언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좀 더 예민한 사람들은, 배반했다는 경호병의 군선에서 터져 나오는 엄백호의 호통이, 가짜가 아닌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쉐에엑! 쾅!
- 슈슈슉! 쾅!
“으악!”
배송의 수군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사정거리 내로 진입한 태사자 휘하의 군선에서 다수의 벽력노가 발사됐다. 발사된 수십 발의 벽력노는 배송의 수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단 한 번의 일제 사격으로 배송의 수군은 지리멸렬한 오합지졸이 되고 말았다.
태사자의 병력에서 뿜어나 오는 흉흉한 기세에 배송의 수군은 변변한 저항도 못 해보고 길을 내줬다.
“주공, 제가 너무 늦게 도착했습니다.”
“평적장군, 그런 말 마시오. 그대가 와줘서 이 한목숨 살린 것이오,”
“주공······.”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저 반란군 놈들부터 처리합시다!”
“존명!”
자신이 존경하는 주공이며 뛰어난 군주로 알려진 엄백호가, 죽음에 몰리게 된 상황을 목격한 태사자의 병력은,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배송의 군대를 처단했다.
“반란군 놈들을 처단하라!”
“오! 오! 오! 오! 오!”
엄백호의 서릿발과 같은 명령에 태사자의 병력들이 호응했다. 졸지에 공격하는 입장에서 공격받는 입장으로 전락한 배송의 병력은, 자신이 역적이 되어 죽어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이 흐르고 태사자의 병력들이 속속 도착하자, 배송의 병력에 대한 공격이 마무리됐다. 엄백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죽어간 경호병과 수부의 시신을 모두 수습했다.
배 두 척에서 경호병과 수부까지 합쳐 110명 중 95명이 사망한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살아남은 15명 중에도 부상 없이 멀쩡한 사람은 엄백호 혼자에 불과했다. 경호병들과 수부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바쳐 엄백호를 지켜냈던 것이다.
태사자의 병력 2만 명은 엄백호의 명령에 따라, 포박된 배송의 수군과 함께 죽은 시체도 함께 건져 환구항으로 진입했다. 환구항의 관련자들도 열외 한 명 없이 태사자의 병력에 의해 포박됐다.
환구항을 장악한 엄백호는, 자신을 공격한 반란군의 우두머리 삼천인장 배송을 심문했다.
“배송 네 이놈! 내가 너를 아껴 환구항의 책임자로 임명했거늘, 나를 배반하고 목숨을 노려!?”
“주공, 소장은 정동장군의 명령을 따랐을 뿐입니다.”
“무어라? 내 동생이 나를 죽이라고 명령을 했다는 것이냐?”
“정동장군은 명령서에서, ‘주공과 목부인을 시해한 반란군 경호병을 처단하라’고 했습니다. 소장은 명에 따랐을 뿐입니다.”
“그래? 네놈은 대장군인 나의 목소리를 알지 못했고, 내가 너에게 공격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냐?”
“그것은······.”
전투가 치열해 지면서 배송이 군사는 엄백호와 접근하게 됐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엄백호의 목소리를 많은 병사가 들을 수 있었다. 그 속에는 배송도 포함돼 있었다.
“주공! 저런 파렴치한 자의 변명을 더 들으실 필요 없습니다. 저자를 참하여 군율을 세우소서!”
태사자는 진중한 성격으로 주공의 비위를 맞추려고 무고한 사람을 처형하라, 부추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태사자는 준엄한 목소리로 배송의 처단을 간언했다. 태사자의 입장에서 배송은 살려둘 수 없는 반역자였다.
이에 배송은 비굴한 자세로 목숨을 애걸했다.
“억울합니다! 억울합니다! 소장은 죄가 없습니다. 제발 헤아려 주십시오!”
“무엇이 억울하다는 것이냐? 네가 진정 충의를 안다면 설령 모르고 주공을 공격했더라도, 추후 진상을 안 뒤 부끄러워서라도 자결을 택했을 것이다. 하극상의 죄를 짓고도 뻔뻔하게 변명으로 일관하는 바로 그것이, 네가 지은 죄를 더 무겁게 하는 것이다!”
태사자의 일갈은 장수로써 갖추어야 할 기본적이 덕목이었다. 엄백호는 당시 매우 흥분한 상태였지만, 지력과 판단력이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만약 배송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엄백호에게 처분을 맡겼다면,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배송은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생명의 기회를 놓쳤다.
구명의 기회를 놓친 것은 배송뿐만 아니었다. 엄백호는 환구항의 모든 병사와 수부를 참살했다. 여기에는 잘못된 명령을 전달한 전서구 담당자와 파발 담당자도 포함됐다.
그리고 이미 죽은 시신의 목을 잘라, 죽어서도 저승으로 편히 가지 못하도록 처벌했다. 엄백호의 조치는 매우 잔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태사자는 엄백호를 말리지 않았다.
‘주공을 죽이려 한 병사를 살려둘 수 없다’
그들이 억울한 면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그대로 용서할 경우, 65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통솔할 령이 제대로 서지 않을 것이다. 전형적인 무부인 태사자는 배송의 병사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만약 그 자리에, 우번이 있었다면, 상당수 병사가 구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잘못된 명령이기는 하지만, 병사들은 명에 따랐던 것이다. 결과가 잘못됐다 하여 명령에 따른 병사들을 참한다면, 추 후, 유사한 상황에서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으려 할 것이다.
2.
엄백호는 환구항에 머물면서 장훈의 지원 병력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는 동시에 장각의 처단과 사태수습을 위해, 우번과 전서구로 서신을 주고받았다.
우번은 환구항의 병력을 모두 처단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현 상황에서 불가피한 점도 있다 생각하여 거론을 삼갔다.
우번은 장각의 암습이 혼자만이 힘이 아닌, 모종의 외부세력과 결탁한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고순이 여강으로 이동하기를 강력히 원했지만, 수춘에서 태세를 정비하며, 방어에 집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장강의 방비 강화를 위해, 곡아에 있던 5만 명의 병력 중 4만 명을 시상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엄백호의 명령에 따라, 회계와 오에 주둔 중인 병사 중, 10만 명을 차출해, 회계태수이자 안중장군인 구승의 지휘하에 두고, 여강으로 이동시켰다.
엄백호의 직할대 용호군 역시, 과기청장 유엽과 함께 여강으로 이동시켰다.
환구항 접수 다음 날 저녁, 장훈은 1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환구항에 도착했다. 장훈 역시, 최대한의 속도로 오는 것이라, 도중에 뒤처지는 군선들이 많았고, 그 병력이 7만 명에 달했다.
“소장이 무능하여, 주공을 위험에 빠트렸습니다.”
“도료장군, 내가 어리석어 군사와 그대들 충신들의 말을 듣지 않아 벌어진 일이오. 내 어찌 그대를 탓하겠소?”
“주공······.”
장훈은, 엄백호가 며칠 사이에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며칠은 엄백호가 평생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처절하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장훈은 엄백호가 암습당한 정확한 진상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엄백호는 장각이 사술을 이용해서 부인인 이교와 동생인 엄여를 조종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장훈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으로 목련이 죽었는지 몰랐다. 그리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세미녀인 대교와 소교를 여강에 남기고 온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장훈은 한 가지를 정확히 알게 됐다. 이제 엄백호는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길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엄백호는 장훈에게 새로운 삶을 준 은인이며, 전 주공인 원술의 목숨을 구명해준 의인이었다. 이런 엄백호가 헤어나기 힘든 고통에 빠져 있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장훈은 분노했다.
장훈을 더 분노하게 했던 것은, 자신이 호림항 주둔군에게 내렸던, 출동명령이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훈은 호림항의 책임자인 삼천인장 우광에게 전령을 보내, 목숨을 걸고 출정명령서 미전달의 진상을 파악하라 명령했다.
장훈의 추상과 같은 명령을 받은 우광은, 즉시 누구의 농간으로 출정명령서가 전달되지 않은 것인지 파악에 나섰다. 우광은 이것이 자신은 물론이고 수하들의 목숨도 달린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바로 옆 항구인 환구항의 책임자 삼천인장 배송은, 우광이 인간 됨됨이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배송이 뛰어난 장수라 할 수 없지만, 주공인 대장군 엄백호를 배신하고 공격할 배짱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배송은 엄백호를 공격했고 그 죄의 대가로 자신뿐만 아니라 수하들 모두 처형당했다. 배송에게 무언가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었다. 우광이 출정명령 불이행의 진상을 규명하지 못하면, 그도 배송이 겪은 참형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우광은 평소 잔인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초연한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무리한 취조 방법을 동원해, 누가 중간에 출정 명령서를 빼돌렸는지 관련자들을 심문했다.
정황 상 의심이 가는 10명을 집중 취조 했는데, 가혹한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3명이 사망할 정도로 문초 강도가 높았다.
그리고 우광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취조한 10인 모두 장각과 연결된 끄나풀이라는 것과 자신이 믿었던 부관도 한통속이라는 것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사하니, 장각과 관련된 간자의 수가 47명에 이르렀다.
우광은 엄백호의 환구항 병사 집단 처형이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왔다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Comment '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