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북진 (2) - 조지골 비련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과연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흑인 일까요?
26. 북진 (2) – 조지골 비련
“예? 생체인식 경보라고요? 뭐지? 아, 혹시 개나 돼지일지 모르니까 자세히 살펴보세요! 우선 속도부터 절반으로 줄일게요.”
문도가 드론 BB1의 속도조절 노브를 급히 돌려 비행속력을 시속 20Km로 낮추며 PC화면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휙휙 다가오는 어둑한 전방을 살핀다.
그들은 지금 북한 황해남도 멸악산 동굴을 떠나 시흥시 삼통사 본부로 귀대하는 중이다. 동굴 속 중계기지국에 오늘 밤 실어다 놓은 대기용 예비 드론 BB4 와 BB5를 정돈하여 제자리에 배치하고, 드론 BB1와 BB3를 출발시켜 시속 36Km로 순항하던 중에 생체인식기가 울린 것이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가는 한 밤중이라 험준한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오는 대신에, 이번에 늘 그랬듯 자정에 떠서 새벽에 지는 하현달빛을 받으며 평지를 따라오기로 했었다. 발각될 위험부담은 높아도 휑하게 트인 평지주변 시골 마을들을 끼고 오는 경로를 택하면 비행시간이 조금은 단축된다.
드론 조종실력이 한 수 위인 문도가 BB1으로 앞장서 속력을 내고, 지은은 BB3에 생체인식기를 가동시킨 채 방어자세로 주변을 살피며 문도의 뒤를 바짝 따라 내려왔다.
올라 갈 때는 대기용 드론을 한 대씩 들고 갔기 때문에 전체무게가 40Kg이었지만, 지금은 운반박스가 안 달리고 가제트 팔뚝만 있는 기본형태의 드론 본체라서 무게가 20Kg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40Kg일 때보다 속도를 두 배정도는 더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산등성이를 따라 공제선상 20m 높이의 상공을 비행하지 않고 마을에 인접한 산자락을 지나오다 보면 오히려 갑자기 나타나는 큰 나무 같은 위험물에 충돌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속도를 시속 36Km인 초속 10m로 맞추면 네 번째 와보는 길이니까 어느 정도 안전한 비행이 보장된다. 본부까지 120Km 거리를 중간에 두세 번 쉬었다 와도 새벽 5시경에는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겨우 30Km쯤 내려와서 돌발사태가 발생한 모양이다.
생체인식기는 적외선 야간 카메라가 생명체의 열 복사량을 감지해서 경보를 울려주는 장치인데, 인체인 경우 두꺼운 겨울 옷을 입은 사람도 전방 1km 정도부터 알려줄 만큼 민감하다.
“민가가 있는 마을 쪽이 아니고 왼쪽 야산중턱 근처에요. 한 개가 아니고 두 개로 보여요!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야간 정찰비행 경험이 없는 지은이 다급하게 소리를 지른다.
“두 개요? 알았어요. 일단 고도를 높이고 살펴봅시다. 거리는 얼마나 돼요?”
“약 500m 전방, 10시 방향이에요.”
“오케이. 아마 노루 같은 산 짐승일지도 모르니까 마을 쪽으로 우회하지 말고 계속 직진하면서 살펴봅시다.”
앞선 문도가 고도를 지상 20m 에서 40m로 높이면서 좌측전방을 주시한다.
현재의 항로위치는 직진하면 전방 2Km에서 우측으로 1Km 거리에 작은 집들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산골마을이 나온다.
생명체가 좌측 전방 500m 지점에 있다면 마을에서 2Km 이상 먼 산중턱이 된다.
이 한밤중에 그렇게 멀리 사람이 나와 있을 리는 없을 것이고, 그 정도 거리에서 감지기에 잡혔다면 경험상 덩치가 좀 큰 노루나 고라니일 확률이 높다.
“어? 저거 사람 맞는데요, 윤 차장!”
100m도 안 가서 경험 많은 문도가 다급히 말한다.
점점 다가가자 산중턱인데 앙상한 가지의 제법 큰 나무숲이 나타나고 그 숲의 끝자락 계곡 같은 짙은 어둠 속에 희미하지만 적황색 물체가 아른거린다.
“그래요?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 같은데요! 분명히 두 명이 맞죠?”
거의 포개져 있는 것 같은 흐릿한 열 화상이지만 주변이 하도 캄캄하고 어두우니까 가물거리며 조금씩 변하는 형상이 두 사람의 형체임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맞네요. 두 사람인데, 뭔가 좀 이상하죠? 잠시 서행하면서 지켜봅시다.”
두 명이 확실한데 이 추운 한밤중에 마을에서 동떨어진 산중턱에는 왜 나와있는 걸까?
여름철이라면 개울에 목욕하러 올 수도 있겠지만, 칼 바람이 매서운 오밤중에 무슨 볼일이 있어 저기에 있는지 궁금하다.
드론 두 대는 지상 30m로 고도를 낮추면서 50m 정도의 거리로 근접해 가서 정지비행 모드로 물체를 살폈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까 하얀 빛으로 반짝거리는 산골짝 얼음 덮인 깊은 계곡물가에 한 명은 비스듬히 누워있고 한 명은 앉아있다.
“남녀 같지 않아요? 남자 같은 좀 큰 사람은 누워있고, 여자는 옆에 앉아 있는 것 같은데요.”
화면에서 제일 뚜렷하고 크게 나오는 얼굴부분만 봐도 남자와 여자가 분명하다.
누워있는 남자는 움직임이 거의 없고 곁에 앉아있는 체구가 아주 작은 여자는 팔을 약간씩 움직이며 남자의 상체를 감싸 안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 도대체 살얼음판 위에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체온 외에는 별도의 열화상이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불을 지폈거나 무슨 플래시 같은 것도 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혹시 계곡을 따라 가다가 미끄러져 다친 게 아닐까요?”
영리한 지은이 반짝 떠오른 영감이 있나 보다.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하현달빛에 비치는 하얀 얼음을 조명 삼아 손전등도 없이 계곡을 따라 이동하다가 미끄러져 사고를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게요. 상황을 봐서는 윤 차장 얘기가 맞는 것 같은데, 대관절 저기는 뭐 하러 왔을까요?”
마침 하현달이 동쪽에 떠있고 표면이 흑색인 드론 BB (Black Bird)는 두 사람의 서쪽에 위치해서 상공 20m로 접근해가도 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화면에 GPS 지도를 올려보니 그 산골마을은 봉천군 고운산 자락의 조장골 마을이다. 서남쪽으로 3Km 거리에 꽤 큰 마을인 오현골이 있다.
후미진 조장골에서 산을 타고 남쪽으로 곧장 20Km, 50리만 내려오면 임진강 하구의 강화도 건너편이 된다.
만약 서남쪽 오현골을 지날 수만 있다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도로를 따라 내려와 `강화 평화 전망대` 맞은편에 다다를 수 있겠다.
“탈북하려는 사람들 같지 않아요? 강화도를 목적지로 삼으면 북쪽 평양이나 사리원에서 남하해도 그렇고, 동쪽 개성이나 서쪽 해주에서 와도 이 조장골을 지나오면 제일 안전할 것 같은데요.
지은이 소설을 쓰는데 문도도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예, 그런 것 같네요. 아무리 봐도 윤 차장 시나리오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걸 어째야 좋지요? 탈북자가 아니더라도 다쳐서 저러고 있다면 그냥 지나쳐버려서는 안되겠는데. 좀 더 확인부터 해봅시다.”
설령 저 사람들한테 들켜도 재빨리 날아올라 도망치면 되니까, 드론을 그 들로부터 10m 거리에 있는 바위 위에 올려놓고 음성 마이크로 그 들의 대화를 도청했다.
“내래 혼자 조장골에 가서라도 사람들 한티 도움을 청해야 하디 않겠씀?”
가냘픈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기런 말 말기요! 기랬다가는 당장 보위부에 잡혀 가스리 둘 다 죽을 것 이우다!”
역시 젊은데 남자의 목소리다.
보위부는 북한의 방첩부서로 사상범을 색출하고 탈북자를 잡아내는 국가안전보위부의 약자이다. 그렇다면 이 들은 분명히 북한 내에서 남한의 선교단체나 인권단체와 연관되어 있거나 남쪽으로 탈북을 시도하려는 자유사상주의자 임에 틀림없다.
“기라면 어쩌잔 말이우까? 덕배씨는 다리가 부러져스리 옴짝도 못 하구, 여그서 가만히 있다가는 얼어 죽지 않겠슴메? 우리가 안 가도 내일 밤에는 조지골 덕배씨 삼촌 내외는 자기들끼리 남쪽으로 떠날 거인디!”
“그러니께 영순씨 혼자라도 기냥 가란 말이오! 여그서 조지골까지는 20리 밖에 안 되니께 이 후라시 불 애껴 쓰면 오늘 밤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이오.”
“내는 그리는 못 하우다. 덕배씨만 죽으라고 남겨두고 내 혼자는 못 갑네다. 그대 없이 내 혼자 남조선 가서 무신 부귀영화를 누리갔시요? 죽어도 당신 곁에서 죽을 거이오. 흑흑.”
아, 무슨 사연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목소리로 보아 젊은 연인 같은데, 사상범으로 노출될 위험에 처해서 남한으로 탈출을 하려는 것이다.
조지골에서 삼촌 내외와 만나 남한의 어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함께 내일 밤에 강화도 쪽으로 월남할 계획인가 보다. 북쪽 어딘가에서 내려와 조지골로 가다가 얼음 위에 미끄러져 낙상을 당해서 다리가 부러진 것이다.
얼른 지도를 살펴보니 조장골 서남쪽 3Km에 있는 큰 마을 오현골에서 3Km쯤 더 가면 조지골이라는 작은 산골마을이 있다. 여기서 조장골까지 2Km니까, 전부 합하면 8Km, 그 들이 말하는 20리가 맞다. 평탄한 길이라면 건장한 사람은 두어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아, 저런 큰 일이네요. 어떡하면 좋죠? 여자가 혼자 얼른 조지골 삼촌한테 가서 연락만 취할 수 있다면 날이 새기 전에 삼촌이 와서 함께 데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날이 새려면 아직 6시간 정도는 남았겠죠?”
지은이 안타까워서 예쁜 눈매에 이슬이 맺히려고 한다.
“그러게요. 이것 참 난감하네요. 그냥 두면 두 사람 다 얼마 안 가서 얼어 죽거나, 살아있어도 날이 밝으면 언젠가는 발각되어 잡혀갈 텐데. 저 여자는 체격도 작고 저기까지 오느라 많이 지쳤을 텐데 이 밤중에 저 플래시 하나 들고 길도 낯선 산골짜기를 어떻게 걸어가겠어요? 차라리 평지로 나와서 이판사판 운명에 맡기고 큰 길로 가도, 8Km나 되는 추운 밤길을 3시간 이내로는 못 가지 않겠어요?”
덩치만 컸지 순간적인 두뇌회전은 썩 좋지가 않은 정의파 문도가 눈살을 찌푸리며 깍두기 머리를 긁적거리고 뇌세포를 자극시켜본다. 밤새 문질러 봤자 비듬밖에 더 떨어지겠나 마는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없어 잘 생긴 미간에 갈매기만 생긴다.
“고 사장님! 우리가 한 번 나서볼까요?”
그때 지은이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생긋 웃는 눈동자로 문도를 쳐다 본다.
“예? 우리가 나서요? 뭘 어떻게 하려고요?”
지은의 갑작스런 제안에 문도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지은을 바라본다.
“저 여자 몸무게가 얼마나 나갈 것 같아 보여요? 저보다 한 80% 정도밖에 안 돼 보이죠?”
지은이 날씬한 자기 아랫배를 내려다 보면서 문도에게 매혹적인 미소를 보낸다.
“예? 갑자기 무슨 몸무게요? 윤 차장이 몸 무게가 뭐 있다고.. 크흐.”
문도가 지은의 S라인을 감상하면서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른다.
이것들이 진짜 혼 좀 나봐야 되겠네!
추운 북쪽에서는 두 연인들이 생사를 논하고 있는데, 따뜻한 남쪽에 앉아서 무슨 몸매자랑 연애 질이야?
“우리가 저 여자를 드론으로 실어 날라서 삼촌 집에 데려다 주자고요! 어때요, 가능하겠죠?”
지은이 섹시한 눈매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문도를 쳐다본다.
못 할 일이라도 한다고 안 할 수 없는 매혹적인 지은의 모습에 문도는 앞뒤 가릴 제정신을 잃었다.
“예, 그래요. 우리가 나릅시다! 헤헤. 예? 뭘 어디로 날라요?”
이 소설은 판타지가 아닙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닥쳐 올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는 겁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미래를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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