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대화

달에서 지내는 동안 성인이 된 테오. 외견은 제법 괜찮은 남자로 성장했지만 성격은 기대와 어긋난 방향으로 성장했다. 예의바른 어린이였던 시절도 있었지만, 적은 인원으로 대규모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인지 아니면 전생의 기억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탓인지 성격이 조금씩 삐뚤어졌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본성이 드러났다.
이 문제에 티나가 우려를 표했으나 시온은 본성이 변질된 것이 아니므로 괜찮다며 방치했다. 걱정돼서 어쩔 줄 모르겠다면 아예 결혼해서 위로해주면 된다고 등을 밀어준 일도 있었는데 분위기를 형성하고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해줬음에도 연애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테오는 그런 식의 배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훗날 있을 싸움이 끝난 후에 청혼하는 거로 일을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몇몇 사람들이 좋지 않은 징조가 된다고 만류해서 그만두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아이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고 때는 봉신진 구축작업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을 무렵. 테오는 신을 봉인하는 기도문에 대해 의논할 것이 있어서 시온의 방을 찾아갔다. 평소의 관계를 생각하면 찾아올 일이 없는 곳이지만 앞으로의 작업을 의논하려면 싫어도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오늘은 방에서 얌전히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므로 문에 노크한 후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잠깐 실례하지.”
시온은 갑작스레 들이닥친 테오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것처럼 보였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고 펜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돌렸다.
“할당량은 벌써 끝냈어?”
“내 할당량은 사흘 전에 끝냈다. 충분히 쉬기도 했는데 네가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다음 작업에 쓸 기도문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려고 왔다.”
“예문으로 적어둔 게 어디 있었을 텐데··· 잠깐만 기다려.”
미리 적어두었던 기도문을 찾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책상 위에 쌓여있던 책들이 무너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시온은 지쳐 보이는 표정을 하고는 책장으로 향했고 테오가 바닥에 떨어진 책들을 정리하며 기다렸다.
“기도문은 이거니까 한번 봐봐. 부적절하면 수정할 테니 의견이 있으면 들어줄게.”
“바빠 보이는군.”
“몸이 부족하면 분신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머리가 부족한 거는 어쩔 수가 없단 말이지. 고등 지성체를 양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기도문이 적힌 수첩을 건네받은 후 무너진 책의 정리를 끝내면서 마지막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책을 내려놓으려던 순간에 무심코 표지를 살펴봤더니 흑마나와 백마나의 연구기록을 정리한 책이었다. 백마나의 수련은 일전에 배운 바가 있지만 무언가 숨겨진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져서 무심코 책을 펼쳐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는 처음 보는 내용이 가득했다.
“이런 걸 하고 있었나?”
“그건 이미 끝난 연구. 기초는 세워놨으니까, 이후는 세상 사람들의 몫이겠지.”
“백마나는 비밀로 할 줄 알았는데. 전생에 나를 막아서던 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왜 내가 퍼뜨리는 게 전제인데? 그거 나만 알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왜 이런 연구를 한 거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봉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신성을 모방한 힘을 인간이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야. 흑마나는 어떨지 몰라도 백마나를 불쾌하게 여기는 신은 반드시 있을 테니 적어도 백마나는 신성과 다르다는 걸 분명히 해둬야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시각이군.”
“사람마다 마나 속성이 달라서 항마력이 작용하고 위력이 제각각이잖아? 이 점을 응용하면 마나의 잔재만으로도 누구의 마나인지 특정할 수 있게 되고.
그런데 백마나는 신성과 공통된 성질이 많아. 신성은 마나와 달리 속성이 다르다는 개념이 없고 항마력 같은 작용도 없어. 즉, 어느 신의 신성인지 특정 짓지 못한다는 뜻이야. 만약 신성과 백마나를 구분하지 않으면 인간이 계약을 맺지 않고 마음대로 신성을 쓸 수 있게 된다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되지.
이게 뭐가 문제냐 하면 인간이 계약 없이 함부로 신성을 남발하면 어딘가에서 반드시 심각한 수준의 신성모독이 일어나. 의도하지 않아도 말이지. 더욱이 반신반인이 저지른 죄를 기억하는 신들이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할 거란 말이야.”
“그래,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다.”
연구기록을 내려놓고 기도문이 적힌 수첩을 펼쳐보니 알 수 없는 문자가 한 페이지 가득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 그것을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내용이 실려 있었는데 짧게 요약하자면 신이 편안히 잠들기를 염원한다는 내용이지만 수첩에는 말을 너무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장문이었다.
“마치 자장가 같은 글인걸? 잠이 오지 않을 때 들으면 금방 잠들 수 있겠어.”
“자장가라니, 말이 심하네. 나는 그런 생각으로 쓴 게 아닌데. 불만 있으면 네가 쓸래? 나는 누가 더 잘 쓰는지 비교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건 하기 싫었던 모양인지 수첩을 덮어버리며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기억나는군. 네가 세상에 마법을 퍼뜨린 장본인이라고 했던가? 전생에선 네 상태가 이상해져서 대화가 끊겼는데 지금은 어떨까?”
“뭐, 대화 정도야 얼마든지. 구체적으로 뭐가 궁금한데?”
“마법이란 무엇··· 아니, 마나의··· 흠,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렵군. 기원을 자처한 네가 눈치껏 내 욕구를 충족시킬 만한 지식을 보여봐라.”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시온. 테오가 품은 의문은 어떤 것이며 거기에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지식이라기보단 깨달음에 가까운 것이었으므로 몇 마디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대에 조금이나마 응하고자 생각을 정리하면서 환영술을 사용하니 아무것도 없던 벽에 칠판과 분필을 생성했다.
“이게 만족스러운 대답일지 모르겠는데 마법의 기원이 되는 자로서 너의 전생에 충분히 답하지 못했던 것을, 마법이 왜 존재하는지를 알려줄게.”
설명이 시작되면서 분필이 허공에 떠올라 스스로 칠판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거기에 적힌 것은 신성, 마기, 영력.
“중간계에 있는 초자연적 힘은 크게 3가지가 있어. 이것은 전부 질서에 속하는 힘이고 반대되는 힘이 혼돈이야.”
“마기가 질서의 힘이라고?”
“마기와 신성은 서로 다른 질서일 뿐이야. 예를 들면 인간과 물고기의 호흡 방식이 다른 것처럼,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의 식성이 다른 것처럼 말이지.”
“그렇군. 이해했다. 계속해라.”
“이 3가지에서 파생되는 다른 힘이 있는데 신성에서 파생된 주력(呪力), 마기를 정제해서 파생된 정기, 영력··· 즉, 마나에서 파생된 게 이번에 연구한 흑마나와 백마나지.”
칠판 글씨에는 파생된 힘이 화살표와 함께 추가되었고 설명은 이어진다.
“따지고 보면 백마나 연구의 시작은 신화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은 정기와 마나뿐이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쓰는 자가 없었지.
그 상황에서 신들은 인간이 신성해지기를 기다렸지만 본래 신성이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인간이 신격을 얻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으니 나는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신성마법을 개발하고 마나의 사용법을 가르쳤어.”
“마나마법이 아니라 신성마법을?”
“신성마법은 많이 어렵거든. 인간의 마법은 신성마법을 보고 흉내 낸 것을 시작으로 자기들 수준에 맞게 독자적으로 발전했어. 전생의 너처럼. 과거에 존재했던 마법은 내가 개발한 게 아니라 인류가 개발한 게 많아.
그런 느낌으로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신성마법에 도달하고 신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발생하는 건 필연이니, 현대 마법사들은 그걸 이렇게 표현하지. 진리를 탐구한다고. 그 탐구의 끝에 기다리는 건 인간성의 상실인 것도 모르고 말이야.”
“인간성의 상실이라?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아직은 모르겠군. 그런데 조금 다른 질문을 해도 괜찮겠나?”
“물론.”
“마법을 가르친 목적이 인간을 신성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아까 인간이 신성을 쓰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던 건 뭐지?”
“신성은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어. 단적으로 말하자면 해로워. 질서가 다르거든. 신과의 계약은 그런 위험성을 최소화하는 장치이기도 한데 만약 인간이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성을 남발하게 되면 악신과 비슷한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올바른 과정이라는 건?”
“영혼의 격을 높이는 거야. 기본적으로 운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운이 따르지 않더라도 수없이 많은 윤회를 통해 다양한 인생을 살고 그 경험이 누적되면 영혼의 격은 저절로 높아져. 그러다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영혼의 승천을 이루고 신에 가까워지지. 육체라는 껍질에 얽매이지 않고 신계의 질서에 적응한 존재. 신령.”
“흠, 그런 것이었나? 혹시 성공사례라 할 만한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하군.”
“내 관할 구역에서는 대충 천년에 1명 정도? 이미 멸망하고 지워진 시대니까 네가 알 만한 이름은 없고, 다른 신들의 담당구역도 아마 비슷하겠지.”
갑자기 조용해진 테오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스스로 납득할만한 답을 얻었는지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악신과 비슷한 존재는 구체적으로 뭐지?”
“편법으로 신성해진 인간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세계의 법칙을 뒤흔들어. 신이 정한 법칙이 모두의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니까 그걸 바꿀 수 있다는 건 굉장히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오지. 만약 인간이 임의로 세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그건··· 큰일이겠군.”
“그래, 한 번의 실수로 모든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어. 악신은 아니지만 하는 짓은 악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거야.
고정불변의 법칙으로 보호받는 세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멍청이들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 테니까. 그런 질서가 없는 혼돈계를 겪어보면 감히 건드릴 생각조차 못 할 텐데.”
그의 목소리는 한탄하듯이 들렸다. 동시에 무언가를 비웃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으나 테오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과거에 뭔가 일이 있었을까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마나의 근원인 정령왕은 중간계의 법칙을 존중해 주니까 마법으로 법칙개변을 일으켜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끝나. 그러니 사람들에게 신성을 직접 가르치기보다는 마나부터 가르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야.”
“확실히 마법이 끝나면 여파를 제외한 모든 현상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었다. 거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군.”
대화에 점차 빠져드는 테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생각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무언가를 깨달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잠깐 사이에 시온은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어이, 아직 대화가 안 끝났다. 멋대로 잠들지 마라. 나는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깊게 잠들기 직전에 강제로 흔들어 깨운 탓에 눈을 뜬 시온은 크게 하품하고는 고개를 흔들어 잠을 이겨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내 눈이 다시 감겼다. 능력자의 몸이 수면을 요구하는 일은 흔치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상황은 무언가의 예감을 주었다.
“설마 달에 온 이후로 한숨도 안 자고 있었던 건?”
“아니야··· 몇 번 잤어.”
눈을 뜨지는 못하고 있지만 아직 대화는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잔 게 언제였지?”
“연회 했을 때?”
“과로사하기 전에 자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래서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겠나?”
“문제없어. 지금은 죽더라도 깨워줄 사람이 있으니까.”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군. 너는 원래 이런 놈이었던 건가? 이래서는 마치···.”
“내 걱정보다는 네 걱정이나 해. 악신을 봉인한 뒤에는 티나와 함께 제대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
“그럴 생각이니 두말할 필요 없다.”
“아직은 바쁜 시기니까 피임은 똑바로 하고.”
“너는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가까이에서 소리를 크게 지른 덕분에 떠지지 않던 눈이 떠졌다. 눈을 감고 있었다면 몰랐겠지만 테오는 지금 얼굴이 급속도로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는 자신의 황당함을 어필하는데 옆에서 그것을 보던 시온의 눈빛이 음흉하게 변했다.
“신의 통찰력에서 나오는 예언이다. 너랑 티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사고 칠 거야.”
“헛소리하지 마라. 나는 티나를 그런 눈으로 본 적이 없을뿐더러 우리에겐 육아나 할 여유가 없다는 걸 너도 알 텐데?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건 네가 아닌가?”
“나는 전생에 불임을 맹세한 탓에 아이는 가질 수 없으니까 괜찮아. 인간이 되었어도 신의 맹세까지 사라진 건 아니라서 피임이 필요 없거든.”
“뭐냐? 고자였던 거냐?”
“나는 불임이지 불구가 아니야. 맹세라고 해봐야 언제든지 깰 수 있는 상태고. 아무튼, 만약을 생각해서 시간동결의 결계를 준비했는데 이걸 쓰면 육아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어.”
“미친놈. 말이 안 통하는군. 자격을 잃은 놈이 뭐가 신의 통찰력이고 뭐가 예언이냐? 나는 결코 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두고 보면 알겠지. 세린이 복잡한 심경 때문에 맘고생 좀 하겠는걸? 오해는 있지만 결국엔 너랑 나만 혼날 흐름이야. 후후, 억울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으니 참아야지.”
장난치는 아이 같은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온은 그대로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혼자서 실실 웃더니 이내 잠들었다.
이것저것 따지고 싶은 게 있었던 테오는 답답함을 느껴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는데 도중에 흥얼거리며 기뻐 보이는 티나와 마주쳤다.
“테오! 마침 잘 왔어. 오늘 밤에 시간 돼?”
“괜찮다만 무슨 일이지?”
“지난번 연회 때 마셨던 와인 기억하지? 영혼의 포도주 신작 15년 숙성 레퀴엠 4병. 어떻게 구했는지는 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후후후.”
음흉한 미소를 짓는 티나를 보며 테오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천공섬에서만 가끔 맛볼 수 있는 그 특별한 술은 시온이 종종 특정한 누군가에게 거듭 도난을 당해서 분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으며 그것을 마실 기회라면 놓치고 싶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조금 전에 들은 이야기 때문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나를 유혹하지 마라.”
“그, 그럴 생각 없었거든!? 흥, 싫으면 됐어. 다른 사람이랑 마시면 그만이야.”
테오가 볼 때 지금의 티나는 시온이 말했던 사고를 치려는 것 같았다. 이전에 마셔본 기억으로 판단할 때 1병만 마셔도 상당히 취하는데 4병이나 마시면 만취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니 저택에 남아있는 인물 중 누가 그녀와 마시게 될 것인지를 생각했다.
“오늘은 아저씨들이 한가한 모양이니 그쪽에 가봐야지.”
남자들이랑 마신다고 했을 때 원인을 알 수 없는 위기감이 솟아났다. 이대로는 좋지 않은 흐름이라고 생각해서 다급하게 불러세웠다.
“잠깐! 차라리 세린이랑 마셔라.”
“엄마랑? 싫어! 엄마는 너무 빨리 마신단 말이야. 음미할 시간도 없이 벌컥벌컥 마시는 걸 보면 화가 난다고.”
“내 고향에서는 부부 이외의 남녀가 같이 음주하는 행위를 경박하게 여겼다. 너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고 믿는다.”
“여기는 네 고향이 아닌데? 경박한 건 내가 아니라 네 머릿속이 아닐까?”
토라진 티나가 자리를 뜨려 하자 테오는 급히 손목을 잡았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말로 꺼내기가 힘들어서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티나는 눈치껏 자기 생각을 말했다.
“저기 있잖아, 이곳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달관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야. 이상한 짓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아니다. 얼마나 나이를 먹어도 남자란 생물은 짐승일 뿐이다. 영원한 젊음으로 살아가는 능력자의 몸. 게다가 요즘같이 절제된 생활이 강제되면서 쌓이고 쌓인 욕망을 남몰래 혼자 해결하고 있을 게 뻔한데, 네가 그렇게 무방비하면 어떤 사고를 당할지 걱정된다.”
“그렇게 말하는 너도 남자거든?”
“나는 여자였던 기억이 있으니 괜찮··· 아니, 나도 믿지 마라. 남자든 여자든 결국엔 똑같은 인간. 양쪽을 모두 알고 있는 나야말로 무슨 짓을 해버릴지 모르겠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자기가 그런 실수를 저지를 거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러나 시온이 아무런 근거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 것 같지는 않으니 나름 진지하게 경고했고 티나가 부디 알아들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나 티나에게 그러한 생각은 잘 전달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장난스럽게 물었다.
“무슨 짓이라니 어떤 짓?”
“알면서 묻지 마라.”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 모르겠는데?”
“···나도 일단은 남자다.”
“그렇구나~ 테오도 일단은 남자구나~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나 몰라? 혹시 혼자서?”
“술 상대는 내가 해줄 테니 놀리는 건 그만해라.”
더는 할 말이 없어진 테오는 생각한다. 절대로 놈의 예언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않겠다고.
취하지 않도록 조절하며 마시는 법은 전생의 기억으로 알고 있으니 여기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테오는 모르고 있다. 본래 신들이 미래를 말할 때는 예지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생각과 행동까지 계산에 들어가 있음을, 언어로 표현된 예지는 다수의 미래를 포함하기 때문에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음을.
나중에 테오가 회상하기를 ‘따지고 보면 사고를 치는 게 아니라 사고에 휘말린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그 계기는 이튿날 오후에 이상한 예언으로 자기를 곤란한 상황에 빠뜨린 원흉을 찾아가,
“이 사기꾼 자식! 그따위 말로 날 속이다니! 티나하고 내가 사고를 쳐? 네가 그런 말만 안 했으면 나는···.”
라고 소리쳤다가 맞은편 방의 세린이 들었고 이후 무언가를 착각한 세린에게 물리적인 설교를 듣게 되면서다.
“젠장! 오해다! 이 사고는 그 사고가 아니라고!”
“큭큭, 이게 바로 예언의 묘미 아니겠어? 이대로 끝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고난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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