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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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Prajna
작품등록일 :
2016.03.15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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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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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신전(8)

DUMMY

표정에서 절망이 드러나는 것을 본 키리에가 분위기를 읽고서 남은 힘을 다한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녀의 공격은 닿지 않은 채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안돼! 키리에!”

“성격이 급하군, 마왕의 편린.”


두려움에 사로잡힌 탓에 말릴 틈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다.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되는 존재를 공격했으니 뒷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곳에 나타난 것은 신계에서 손꼽히는 강자이기에.


『계속 방해할 생각이라면 잠시 사라져라.』


말이 끝나는 즉시 키리에는 사라졌다. 그것을 막지 못한 시온은 비탄에 빠져서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어서 소피아가 다시 전장에 나타나서 시온만이라도 구조하려 했으나 소피아는 가까이 접근하자마자 원래 위치로 송환되었다.


“방해하지 마라. 나는 대화를 하러 왔을 뿐이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당신을 믿겠습니다.”


시온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지 생각하였으나 무조건적인 항복과 순응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억울하고 분한 감정이 솟아났으나 저항은 무의미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네가 애지중지하는 마왕은 가까운 미래로 보냈을 뿐이니 울상짓지 마라.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왔건만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죽은 생선과 같은 눈을 하고 있던 시온은 친구라는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눈을 한번 깜빡이고는 생기를 되찾았다. 게다가 키리에가 소멸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절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도 나를 친구라 불러주는 겁니까?”


“잊었는가? 너는 미래영겁 유일무이한 나의 벗인 것을. 우리의 관계가 변하는 미래 따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너는 내가 말을 번복하는 신으로 보였는가?”


“원망하지 않는 겁니까? 당신에게서 영원을 빼앗고 많은 죄를 지었던 나를?”


“나는 영원을 빼앗긴 적이 없다. 소피아가 너에게 지혜를 허락했듯이 내가 너에게 이름을 주었던 그때 영원을 허락했을 뿐이다. 너의 행보에 많은 형제가 실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면의 사정을 알고 있으며 그로 인해 너를 걱정하는 형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너의 죄는 신이었기에 성립되는 것. 혼돈으로 회귀한 너에게 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


“이제 상황을 이해했으면 나에 대한 거북한 태도는 그만둬라. 네가 나를 불편하게 생각하면 나 또한 편치 않으니.”


“아니, 그래도···”


“의회는 너에게 내린 처벌을 중지했다. 더욱이 네가 인간으로서 겪은 금기의 죄를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니 내 앞에서 죄인으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런가···.”


뜻밖의 소식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어째서인지 구슬픈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매로 눈물을 닦고 있으려니 상냥한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울음을 멈추어라 나의 벗이여. 나는 네가 인간으로 돌아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으니 드디어 이 말을 전할 수 있게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한다.”


“무슨 말을?”


찾아온 용건을 말할 수 있게 된 신은 인간의 예법을 흉내내어 고개를 숙였다. 흠잡을 곳이 없는 자태에 시온은 놀란 표정으로 답했고 신은 가볍게 미소를 보이고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전쟁에서 수많은 신족의 소멸을 피한 것에 대해 뒤늦게나마 감사를 표한다. 형제들이 마계에 잠들었다는 사실이 반갑지는 않으나 언젠가 주신께서 돌아오시고 그 땅을 되찾는 날이 온다면 다시 깨어날 것이기에 완전한 소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아니야. 2차 신마대전은 나로 인해 시작된 일이고 거기서 너무나 많은 신들을 죽게 했어. 마계에 신들을 봉한 것은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자기만족일 뿐이야. 지금도 신들은 고통 속에 잠들어있어.”


“그것은 너의 관점이다. 두 번째 전쟁은 첫 번째 전쟁이 끝났을 때부터 확정된 것. 단지 그 중심에 네가 휘말렸을 뿐이지. 오히려 네가 개입함으로 인해 많은 형제가 영멸이 아닌 봉신이란 형태로 잠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감사를 전하는 것이다.

고맙다. 내가 아는 미래를 바꿔줘서.”


서로 의견을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깃든 눈빛이 오고간 직후 양측 모두 쓴웃음과 함께 피식 소리를 냈다.


“하여간 신이란 것들은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해.”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 굳이 모르는 척, 네 주장만 하니 그런 것이다.”


“그보다 신계의 문에 걸어놓은 봉인을 풀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운데 여기는 어떻게 찾아온 거야?”


“물론 너의 지혜로 만든 문은 여전하다. 형제들은 봉인된 문을 열 수 없고 그저 내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할 뿐이니 의회의 뜻에 따라 내가 움직이게 되었다.”


“그렇군. 내가 실패할 경우 네가 악신을 처단하는 거였나? 그런데 의회가 키리에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무언가의 대대적인 조치를 취할 것 같은데 단순히 미래로 보낸 것으로 끝이라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이번 봉신에 도움을 주었으므로 지켜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엇보다 너를 위해 인간이기를 선택했다. 따라서 특이점으로 계속 주시하기로 결정됐다. 다만 부서진 금제로 인해 문제가 확산될 경우 그 책임은 묻게 될 것이다. 또한 금제복원에는 아쉽게도 아무런 지원을 해줄 수 없다.”


“문이 닫혀있는 상황에서 도움을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지. 그런데 말이야, 마왕의 인간으로 태어난 일에 신들이 관심을 가지진 않았어?”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목소리로 표현되는 일은 없었다. 단지 그들은 서로의 정신을 연결했었고 그렇게 무언의 시간이 흐르면서 시온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후 신이 작별의 인사만 남기고 자리를 떠나가는 것으로 이번 만남은 끝났다.


「괜찮아?」


소피아가 걱정스럽게 물어왔고 거기에 대답하려는 순간 사라졌던 키리에가 다시 나타났다.

적의를 가득 품은 그녀는 공격대상을 잃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신은 이미 떠나고 없었으므로 이내 시선은 시온을 향했다.


“어떻게 된 거야?”


“돌아갔어. 너는 시간도약을 당한 거고.”


“그 자식,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어. 감히 나를!”


“못 이기니까 그러지 마.”


“내가 못 이긴다고?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내가 본래의 몸이었다면···”


“그는 1차 신마대전에서 마족이 파죽지세로 신계의 반을 점령했을 때, 단신으로 모든 마왕을 물리쳐 전황을 뒤집었지. 당시 마신대리가 중상을 입으면서 퇴각을 돕지 않았다면 그때 마왕 몇 명은 죽었을 거라고 해.”


무언가 납득하지 못한 키리에는 불만스러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런 그조차 신계에선 최강이 아니야. 그런 신이 있으면서도 신계의 반을 빼앗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바보라서?”


“신계에는 월권행위가 없기 때문이야. 만약 마족이 주신의 좌를 피해서 다른 지역을 공략했다면 신계는 주신의 좌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빼앗겼을지도 모르지. 우리의 관점으론 답답해 보이겠지만 그것이 바로 극단적인 질서의 존재라고 할 수 있어.”


“뭔가 석연치 않은데. 그럼 최강은 누군데?”


“그건 돌아가서 이야기하자. 너와 소피아에게만 할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악신과의 전투가 끝나고 얼마 후. 능력자들의 회수는 탈레오스에게 맡기고 혼돈의 탑 어딘가에 위치한 비밀의 방에 세 사람이 모였다.

이곳에 모인 이유는 신들의 눈을 피하기 위함이며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던 시온이 소피아와 키리에를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족은 마왕의 인간화를 준비하고 있어. 여러 신성마법을 개발중이고 관련법칙도 개정한다고 해.”


“법칙을 개정한다고?!”


소피아가 놀라며 언성을 높이자 시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키리에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여 물었다.


“큰일인 거야?”


“신이 법칙을 만들 때는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 개정된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언제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 처음부터 정해놓을 정도로 치밀해.

그런데 이번에는 과거의 어떤 경우와도 달라. 마왕을 인간으로 바꾸기 위해 기존의 완전한 법칙을 고친다는 거야.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어쩌면 기존의 법칙이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했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어.”


“별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인 것 같은데.”


“신이 완전함을 잃고 불완전한 존재로 떨어질 뿐이니까 너한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겠지만 사실 아니거든. 가장 우려했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어.”


“너는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


“쓸데없는 걱정이면 낫지. 쓸데있는 걱정이면 심각한 사태니까. 아까 신계 최강이 누구냐고 물었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를 이렇게 표현해 주신과 마신이 하나 될 것을 약속한 증표, 모든 것이 맞이하는 최후의 종착점. 약속된 종말의 신. 그가 얼마 전에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어. 도로 앉긴 했지만, 만약 그가 움직일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하면 골치 아파.”


시온의 시선이 소피아를 향했다. 그러자 소피아가 이야기를 이었다.


“주신께서 마신에게 신계의 종말을 약속하고 그 증표를 만들었으니 마신은 그 약속을 믿고 잠들었다. 신족이라면 모두가 아는 내용이지. 그런데 그 종말의 신은 평소에 누군가 말이라도 걸지 않는 이상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아. 오직 종말의 순간을 위해 존재하니까. 신마대전 당시에도 때가 아니라며 참전하지 않았어. 그런 그가 움직일 때가 왔다는 건···.”


“신계는 물론이고 중간계, 마계에 속한 모두가 영멸할 거야. 마신도 인정할 만큼 멸망에 특화된 자. 세상을 이루는 물질, 정신, 사상, 법칙은 물론 그 어떤 운명도 피할 수 없는 완전한 종언. 심지어 주신과 마신조차 그가 끝을 선언하는 순간 사라져 없어질 거야.”


“뭔가 좀 대단한 것처럼 들리네.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모양이지?”


“그렇지.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불쌍한 녀석이라고 생각해.”


“불쌍해?”


“내 관점에서 종말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는 오직 끝을 위해 존재하니까. 다음 세상의 창조주가 된다거나 하지는 않아. 새로운 세상의 씨앗조차 남기지 않겠지. 그런 의미에서 주신도 참 성격이 나빠. 마신과 하나되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뜻이잖아?”


“아니야, 주신께서는 싸움을 피하고 신계를 지키는 선택을 하셨을 뿐이야. 마신이 잠든 위치가 바뀌지만 않았어도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래, 주신을 향한 네 마음은 알고 있으니까 애써 변호할 필요 없어. 지금은 그런 이야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를 생각하자. 아마 이대로라면 훗날 봉인된 문이 열렸을 때 분명 너희를 사로잡으려 할 거야.”


“나는 그렇다 쳐도 소피아는 왜? 신족은 소피아를 불경하게 여길 것 같은데 굳이 사로잡을 이유가 있어?”


“악신이 말했었지, 자기는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소피아는? 신의 관점에서 보면 소피아는 아슬아슬하게 인간이야. 그런데 신족에는 인간이 되고 싶은 친구가 생각보다 많을 것 같은데 그들이 소피아에게 과연 무슨 짓을 할 것 같아?”


잠시 찾아오는 침묵. 고요 속에서 세 사람은 머나먼 훗날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공통된 상상을 했다.


“신은 잔혹한 짓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거야?”


“기본적으로 잔혹함과 거리가 멀지만, 조건이 갖춰지면 세계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어.”


“앞으로는 신족과 전쟁할 준비를 하면 되는 거야?”


“아니지, 봉인된 문이 열리면 즉각 혼돈계로 도망칠 수 있도록 준비해야지.”


“도망? 너는 여전히 신들과 싸우는 걸 싫어하는구나?”


키리에의 눈빛은 서늘했고 시온은 그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너는 마왕의 인간화를 입증했고 나는 신족의 인간화를 증명했어. 그리고 신계에선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 신족은 마족을 인간으로 바꿔 화근을 잠재우려 할 거고 마왕들에게 정보가 들어가면 그들도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을 이용하겠지.”


“세 번째 전쟁의 보이지 않았던 전말이 드러났네.”


“필연적으로 우리는 노려지게 될 테고 붙잡히면 실험체 신세일 거야. 분명 무관계한 인간들까지 휘말리겠지.”


세 사람은 신마 양쪽에서 동시에 노려지는 상상을 하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상황이 되면 혼돈계로 도망친다고 한들 추적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훗날의 이야기가 될 테니 당장 우리가 걱정할 요소는 아니야. 지금으로서는 전쟁을 이끌어갈 주인공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면서 대비하고 있을 수밖에 없어.”


“주인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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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최종장(1) 24.07.17 44 0 16쪽
206 시대의 끝(3) 24.07.17 48 0 13쪽
205 시대의 끝(2) 24.07.16 35 0 15쪽
204 시대의 끝(1) 24.07.16 37 0 14쪽
203 외전 - 이름 없는 왕(10) 24.07.15 38 0 16쪽
202 외전 - 이름 없는 왕(9) 24.07.15 35 0 16쪽
201 외전 - 이름 없는 왕(8) 24.07.14 35 0 15쪽
200 외전 - 이름 없는 왕(7) 24.07.14 39 0 16쪽
199 외전 - 이름 없는 왕(6) 24.07.13 36 0 16쪽
198 외전 - 이름 없는 왕(5) 24.07.13 35 0 13쪽
197 외전 - 이름 없는 왕(4) 24.07.12 42 0 17쪽
196 외전 - 이름 없는 왕(3) 24.07.12 41 0 15쪽
195 외전 - 이름 없는 왕(2) 24.07.11 37 0 15쪽
194 외전 - 이름 없는 왕(1) 24.07.11 47 0 17쪽
193 해산(2) 24.07.10 60 0 17쪽
192 해산(1) 24.07.10 39 0 16쪽
» 악신전(8) 24.07.09 49 0 13쪽
190 악신전(7) 24.07.09 40 0 11쪽
189 악신전(6) 24.07.08 44 0 12쪽
188 악신전(5) 24.07.08 35 0 11쪽
187 악신전(4) 24.07.07 41 0 11쪽
186 악신전(3) 24.07.07 41 0 12쪽
185 악신전(2) 24.07.06 39 0 12쪽
184 악신전(1) 24.07.06 44 0 11쪽
183 그들의 대화 24.07.05 45 0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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