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산(2)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장모님이라고 불러달라는 이야기라면 사양하지.”
“나도 내 딸이 너한테 간 건 마음에 안 드니까 그렇게 불릴 생각은 없어.”
“그럼 뭐지?”
“어쨌든 네 덕분에 오빠랑 크게 싸우지 않고 끝날 수 있었어.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고마운 기분이 들지 않아.”
“그런 소릴 듣고자 끼어든 게 아니었다.”
“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생 이야기를 꺼낸 탓이야.”
신화시대의 기억은 능력자 중에서도 일부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이야기다. 그것도 단편적인 기억이 많다. 테오는 당시의 기억이 전혀 없지만 상당히 많은 기억을 가진 세린은 불편한 기색으로 말했다.
“오빠는 전생에 누군가를 따로 구해 줄 상황이 아니었어. 더는 도망칠 곳이 없는 세상, 피할 수 없는 종말.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신이 우릴 버렸다며 한탄했지.”
“그러냐?”
“모르는 척하기야? 그때 그런 세상이 되게끔 뒤에서 계략을 꾸민 게 너잖아.”
“······.”
“고대에는 순수한 인간 외에도 많은 유사인종이 지성체로 군림하고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은 순수한 인간만 유일한 지성체로 남았을 것 같아?”
갑자기 시작된 세린의 이야기에 소피아가 다가와 말리려 했지만 세린은 고개를 흔들며 말을 계속했다.
“전생의 너는 영웅으로 칭송받았던 모양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순수한 인간이 아닌 모든 혼혈종을 혐오했던 악당일 뿐이야. 네가 그들을 멸종시킬 계획을 짜지 않았다면 나도 버림받는 일 따위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나에게 사죄라도 바라나?”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단지 네가 옛날 일로 우리에게 거들먹거릴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
“그렇군.”
“따지고 보면 티나, 네가 불행의 운명을 타고나게 된 것도···”
이야기의 상대가 티나로 옮겨지자 티나는 버럭 화를 내며 말을 끊었다.
“그만해요! 나는 그때의 일 따위 모르고 그런 건 모두가 선택한 결과예요.”
갑자기 소리친 탓에 품에 안고 있던 아기가 깨어나 울음을 터뜨렸고 티나는 아이를 달래주었다. 한참 뒤에 아기가 다시 잠들면서 세린은 복잡한 심정을 뒤로하고는 사과했다.
“···그래, 모두가 선택한 결과지. 미안해, 내가 과거를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서.”
“별로 엄마 탓이 아니에요.”
더는 할 이야기가 없었으므로 세린은 시온이 작업하고 있을 공방으로 향했다. 테오도 짐을 챙기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소피아가 불러세우며 한 통의 편지를 건네주었다.
“여길 떠난 뒤에 읽어봐.”
평소에 소피아와 가깝게 지낼 기회가 거의 없었던 테오는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받기를 주저했다. 그러나 티나는 소피아에게 깊은 뜻이 있으리라 예상하고 테오를 대신해서 편지를 받았다.
이후 테오의 짐을 모두 챙기고는 지상과 연결된 거울로 향했는데 거울 앞에는 새 열쇠를 받고 떠나려는 세린과 그것을 배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시 돌아올 때는 매정하게 대하지 말아주세요.”
“그럴 리가 없잖아. 네 방은 건들지 않을 테니까 인생이 지쳤다 싶을 때 언제든지 돌아와.”
“옛날처럼 셋이 여행하면 즐거울 것 같은데. 두 사람 모두 여기에 남으면 심심해서 금방 돌아와 버릴 것 같아요.”
“상아, 그걸 건네줘.”
지시받은 상아가 세린에게 몇 장의 서류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어느 인물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세린은 그것을 보더니 실소했다.
“이런 걸 받아버리면 새 친구는 금방 만들겠네요.”
“나는 함께 가지 못하지만, 가끔 정보를 묻는다면 알아봐 줄 수 있어.”
“고마워요.”
“키리에는 같이 가고 싶으면 다녀와도 괜찮아.”
“그건 다음 기회로 할게. 지금은 널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쓸데없는 걱정이야.”
배웅을 마치고 세린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선을 돌릴 때 테오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미묘한 표정으로 눈인사를 나누고는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테오일행이 거울 앞에 서고 티나가 도착지점을 재설정하는 동안 짧게나마 그들의 작별인사가 이루어졌다.
“앞으로 나랑 만날 일이 없으니 마음대로 살아봐. 충고를 원한다면 해줄 수도 있지만.”
“필요없다. 나도 여기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바가 있으니.”
도착지점이 재설정이 끝나자마자 테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먼저 거울 속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티나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한 후 들어가려는 순간에 그녀를 붙잡듯이 말을 걸었다.
“너라면 열쇠를 이용해서 여기로 연결되는 문을 열 수 있지?”
“확실히 달에 처음 왔을 무렵에는 그렇게 문을 열었던 적이 있었죠.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나요? 뺏은 열쇠를 돌려주려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열쇠는 돌려주지 않을 거지만 여기가 너의 생가라는 사실이 변한 건 아니야. 네가 엄마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면 열쇠의 재사용 시간을 무시하고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여기에 돌아오고 싶어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엄마랑 싸울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엄마랑 계속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알아주니 고마운걸? 능력자들의 평화가 곧 세상의 평화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지상에서도 행복하게 살아라.”
“지금까지 감사했어요. 한때는 아버지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역시 당신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대부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그것이 너의 답이라면 얼마든지. 하지만 내 안의 아르카시우스는 조금 아쉬워하는걸?”
“어? 설마 아버지가? 아니, 농담이죠?”
“큭큭, 반쯤은.”
뾰로통한 표정의 티나가 거울 속으로 휙 하고 들어가면서 떠나야 할 능력자들은 모두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이제 떠나야 할 사람이 모두 떠났다고 여겼지만 시온의 생각은 달랐다.
“상아, 성아. 앞으로 이곳은 슬립모드로 전환하고 기능을 최소한으로 한다. 관리의 필요성도 느슨해질 테니 너희도 이곳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보도록 해.”
분신과 같은 두 자매를 떠나게 하는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므로 해당 자매는 동요하는 기색이 강하게 드러났다.
“동생들까지 떠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아? 뭔가 위험할 것 같은데.”
“아니, 오히려 다른 능력자들보다 더 안전해. 내 방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상아는 위험한 지식을 많이 알았고 성아는 인간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는 두 사람도 이곳에 묶어두고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정작 그들의 주인은 생각이 달랐으니 소피아는 우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그래도 괜찮아?”
성아는 아직 동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무런 말도 못했으나 상아는 금방 침착하게 대답했다. 다만 감정이 죽어버린 것처럼 무미건조했다.
“마스터께서는 이제 저희가 필요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래, 이곳에서 너희들의 역할은 끝났어.”
그렇게 딱 잘라 말하는 순간 상아가 정팔면체의 수정을 꺼내 들고 머리에 향했다.
“마스터의 의사를 확인. 지금부터 폐기절차에 들어갑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시온이 급히 상아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수정을 아공간으로 날려버렸다.
“이건 무슨 짓이야?”
“제가 필요 없으시다면 폐기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화근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너한테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데.”
“폐기하는 것 외에 마스터의 방해가 되지 않는 방법은 없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골치 아픈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에 두통을 느끼며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하던 찰나, 소피아가 급하게 끼어들어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서로 무슨 생각 하는지는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해.”
“잠깐, 이 녀석 지금 수작 부리려 한다고.”
상아가 극단적인 행동을 취하려 했기 때문에 성아에게 눈짓하여 상아를 보호하게 했다. 그리고 둘을 방으로 돌아가게 한 후 이번 일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들어 보기로 했다.
먼저 시온의 생각을 듣기 위해 소피아가 독대했다. 이 역할은 키리에가 맡으려 했지만 소피아의 설득에 못 이겨 물러났다.
“상아는 어때?”
“일단은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우선 네 생각을 들어 볼 건데 나는 역시 동생들까지 떠날 것까진 없다고 생각해. 그 애들은 너의 권속이고 이곳에 영원히 갇혀 지낸다 해도 아무런 불만을 품지 않아. 그런데 아까는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그 애들은 내 곁을 떠나 더욱 성장할 필요가 있어.”
“지금보다 더? 혹시 예전에 했던 그 이야기 때문이야?”
“그래, 세 번째 전쟁은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의 무대가 아니야. 그렇다고 수수방관하겠다는 건 아니고 그 시대의 주역을 위해 최강의 카드를 준비해 줄 필요가 있어.”
“동생들은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해. 오히려 과도한 힘을 얻는 걸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세 번째 전쟁이 인간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상, 나는 그 애들의 부족한 인류애와 인간성을 키우고 싶었어. 하지만 나랑 함께 있으면 그럴 기회가 없어져.”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네.”
“언젠가 그 애들을 떠나보내는 순간을 상상하곤 했어.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으로 기쁘게 떠나보내려 했는데 막상 떠나보내려니까 전혀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
“딸처럼 생각한 적도 없으면서. 너도 참 부질없는 고민을 했구나?”
“그런가? 그래도 나는 더 나은 결말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야. 너라면 알 수 있지? 그 애들이 내 곁에 있던 건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야. 여기를 떠날 수 있으면서 남는 것과 여기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달라.”
“흠, 결국 떠나지 않는다면 무슨 차이냐고 되물을 것 같네.”
“그럼 나는 해줄 말이 없어.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 의미 없으니까. 지금은 다소 감정을 거스르더라도 나란 존재로부터 졸업해야 해.”
“졸업인가··· 여전히 너 다운 발상이야. 그럼 이제 너희들의 생각을 들을 차례야.”
소피아는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을 건넸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방구석에서 어둠의 장막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니 그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세 여성이 나타났다.
뭔가 못마땅해 보이는 키리에는 시선만 힐끗 보내며 잠자코 상황을 살폈고 생각지 못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상아는 성아와 함께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마스터.”
“방심했어. 옛날부터 생각했지만 내 프라이버시는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미 들어버린 것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자매를 내려다보았다. 상아의 금빛 눈동자가 올곧게 자기를 향하고 있었으니 이제부터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소피아가 지금 상황을 만든 목적일 테니.
과연 그녀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한 대처와 설득은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하며 먼저 상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당신은 저의 존재이유입니다. 저는 당신의 유일한 신자이기를 원합니다.”
여느 때보다 감정이 깃든 목소리였다. 항상 무뚝뚝하고 무표정했던 성아가 이렇게까지 절실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당신의 마음을 알았던 그날, 저는 영원히 당신을 섬기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시도 그 맹세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과거 혼돈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알고 계십니까? 저는 당신의 분신이기를 원했던 것을, 당신의 일부이기를 원했던 것을. 그래서 스스로 분신을 자처했던 것을. 그런 제가 다른 인간을 마음에 품는다면 저는 언젠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저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당신의 권속, 당신의 도구입니다. 다른 기회는 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변심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위하게 된다면 그건 제가 아닙니다. 부디 제 존재의의를 버리라 하지 말아주십시오.”
진심어린 고백이 끝나자 시온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주인의 곁을 떠나야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결심을 이해했다.
여기서 모질게 쫓아내 봐야 자결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전의 나는 무엇을 만든 것이냐며 따지고 싶어졌고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생각했으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네 마음은 무겁구나. 꽃을 피우기도 전에 거목이 되어버렸어. 나로서는 그 나무를 벨 수가 없을 만큼 웅장해졌어. 지금은 너의 그 신앙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 같네.”
상아의 뜻을 받아들여 그녀에게 손을 건네자 상아는 그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언니는 이런데 성아 너는 어떻지?”
성아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언니인 상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고 스스로 무언가의 결정을 내린 것인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다시 돌려 자신의 주인을 향해 똑바로 말했다.
“나는 언니만큼의 각오는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무작정 떠나는 건 싫고 이곳에 남아 주인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되고 싶어. 그러니 부탁할게. 이곳에서 떠나지 않으면서 주인이 말하는 성장을 이룰 방법을 알려줘. 주인이라면 그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
“흠···.”
성아가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처럼 들렸다. 환상세계와 거짓세계를 활용한다면 어떻게든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또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될 것 같아서 귀찮은 마음도 생겨났다.
“어차피 손님을 시험해야 할 수단이 필요했잖아? 겸사겸사 같이 처리하면 되지 않아?”
일하기 싫다는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소피아가 말을 덧붙이니 그 순간 제법 괜찮은 방안이 떠올라 손으로 턱을 괴고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을 생각했다.
“결과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으로선 시도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아. 너희가 도와준다면 자세한 계획을 검토할게.”
“뭐든 말만 해. 우리 세 자매가 힘을 모아 전력으로 도와줄 테니까.”
세 자매의 힘을 빌린다면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이번에는 그녀들보다 더 적임자가 있다. 다만 문제는 일을 시킨다면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점.
“키리에, 도와줄 거지?”
“귀찮은 일은 싫은데···.”
대놓고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악신과 싸울 준비를 할 때도 협조적이었으니 이번에도 도와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안 도와주면 어쩔 수 없고.
이날 성아가 제안하고 시온이 구상하였으며(키리에는 결국 도와주지 않고 옆에서 훈수밖에 하지 않았다.) 소피아와 상아가 검수하게 되는 이것은 훗날 천공섬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시험하는 관문이 되는데 ‘하늘의 관문’으로 불리기도 하고 ‘시련의 계단’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것은 무성한 소문을 낳기만 할 뿐이지 실체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천공섬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귀환한 테오와 티나. 그들은 하룻밤의 휴식을 취한 후 이튿날 한 장의 편지를 사이에 놓고서 의견을 나누었다.
“어떻게 생각해?”
“신경 쓸 필요 없다. 고민한다고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지도 않을 테니.”
“하지만···”
“당장의 일도 아니고 지금은 아무런 단서가 없다. 때가 되면 의미를 알 수 있겠지. 아니, 선택해야 하는 건가?”
티나는 편지를 손에 들고 살펴보았다. 몇 번이나 다시 읽어서 이미 내용을 전부 기억할 정도지만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았다.
편지에는 인간의 손으로 썼다고 생각하기 힘들 만큼 매끈한 글씨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 일찍이 너희가 뿌린 씨앗으로 마법의 시대가 열렸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이 되어 찬란한 역사가 시작됐지만 그만큼 멸망은 앞당겨졌음이라. 영원의 시간은 그것을 사소한 차이라 말할지라도 선지자는 한탄하며 시대의 종막을 결정할 것이다.
문명의 이기를 주체하지 못할 때 인류는 스스로 창조한 피조물의 지배를 받으리라.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자 인간의 손에 파괴되리니 종말의 도래는 피할 수 없게 되리라.
힘있는 자의 결속은 파멸을 멈추나 그들의 결속이 쉽지 않음이라. 인간은 결국 지난 실수와 기적의 대가를 치를 것이며 새로운 시대는 빛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니 시대의 끝에서 결정하라. 쌓아 올린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쳐 일부라도 살아남을 것인지,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릴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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